소설리스트

회귀자 사용설명서-1509화 (1,507/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509화

소실(19)

‘이 새끼 제정신인가?’

[…….]

[…….]

‘어떻게 시바 한 줌의 부끄러움도 없이 저런 대사를 칠 수가 있지?’

이 새끼가 가오에 살고 가오에 죽는 진성 가오충이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정말로 한 점 부끄러움도 없이 저런 대사를 내뱉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어딜… 따라가? 새로운 경치를… 보여줘?’

듣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는 명대사였다. 그의 긍지를 더럽히지 마. A.K.A.그긍더의 조혜진 선생님도 한 수 접어줄 정도의 명대사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웬만한 자극에는 무덤덤한 이쪽의 손등에 실제로 소름이 올라오고 있다.

혹시나 그냥 귀찮아서 아무 대사나 던진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이는 것도 당연하다.

심지어 저게 진실이라고 해도 문제다. 말인즉슨 류한 저 새끼는 저 대사를 실제로 듣고 비웃음을 보내기는커녕 진청에게 큰 감명을 받았다는 뜻이 아닌가.

‘공화국 새끼들… 시바… 제정신인가?’

심지어 새로운 경치를 보여준다는 놈이 뒈져 버리자 폐인이 되어버렸단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대륙에 수치심이 사라져 버린 것일까. 아니면 역시 진 군사가 적당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직접. 그렇게 이야기했다고요?]

[무슨 문제라도 있나?]

[아니… 문제가 없는 건 아닌데.]

‘이 새끼 애써 당당한 척하고 있자너.’

정상인이라면 저런 쪽팔리는 대사를 치고도 아무렇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 멋진 말이네요. 새로운 경치를 보여주고 싶다는 게… 네…]

[그다지. 그저 네 말대로 집단의 사기를 올리기 위한 말이었을 뿐이다.]

[…….]

[…….]

‘그러니까 왜 하필 사기를 올리기 위해서 아타라시히 게시키가 나온 거냐고 시바.’

[아… 네… 그… 잘됐네요. 그래서 튜…토리얼도… 빠르게 클리어하시고… 네….]

[…….]

[…….]

‘솔직히 놀리기도 민망해.’

숨이 막히는 적막. 진 군사 이 새끼도 차라리 내가 놀려주기를 바라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나도 차라리 녀석을 도발하거나 놀리는 게 더 나은 선택지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진심으로 녀석에게 경멸을 보내는 사이에 텐션을 높일 타이밍을 놓쳐 버렸다.

사방팔방을 망원경으로 비추며 멀티태스킹을 하는 와중에도 진 군사의 표정을 꼭 확인하고 싶어진 것은 당연지사.

슬그머니 녀석의 얼굴에 망원경을 클로즈업해 봤지만 좀처럼 표정이 드러나지 않는다.

물론 저게 억지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임을 깨닫는다.

‘이거… 민망한 거 숨기고 있는 거 맞지?’

[볼일은 끝났나?]

‘본인도 확실히 민망해하는 거지?’

사실 적당히 상황에 대입해 보자면 그렇게 이상한 상황도 아닐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혈기 넘치던 시절이 있었으니 당연히 진 군사에게도 혈기 넘치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본인 인스타에 흑백으로 된 예술작품 사진을 올린다든가, 흑백으로 된 아타라시히 게시키 사진을 올린다든가, 자기 자신이 직접 그린 흑백 추상화를 그려 올린다든가, 아무런 코멘트도 남기지 않은 흑백 감성 사진으로 피드를 꽉 채운다든가 하는 종류.

자신의 감성은 남들과 다르고, 우월하며 특별하다고 생각했던 젊은 날의 진 군사가 어느 날 갑자기 튜토리얼로 떨어지면서 시작되는 이야기.

실제로 오만하고, 그 오만함에 어울리는 능력도 갖추고 있고, 적응력도 빠르다.

혼란에 빠진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놈은 차분하고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했을 것이고, 결국 생존자 집단을 만나고 형성하기까지에 이른다.

‘그래. 딱 봐도 그랬을 거야.’

철저하게 이능을 분석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히든 피스 아닌 히든 피스들을 찾아가며 공략해 나가는 진청, 그리고 우리 쪽과 마찬가지로 안전을 위해 전진하기를 포기하고 현상 유지를 선택하는 사람들.

튜토리얼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 녀석이 어떤 선택을 했을지는 뻔했다. 아무리 녀석이 재능이 있다고 해도, 당장 수십 마리의 아귀들을 혼자 상대할 수는 없었을 테니 말이다.

결국에는 민중들을 마음을 울릴 만한 대사를 칠 수밖에 없었다는 거다.

‘따라와라.’

[…….]

‘새로운 경치를 보게 해주지.’

멋있는 건가. 이거 멋있는 거였나? 당시에 류한을 비롯한 진청의 하수인들이 느낄 만한 감정을 생각해 보자면 그럴듯하기도 하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부족한 식량과 전진하는 것을 포기한 대부분, 그 와중에 꼿꼿이 서 있는 한 인물이 등을 보여주며 아라타시히 게시키를 보여주겠다고 선언.

녀석을 따르면 뭔가 있지 않을까. 저 녀석이라면 뭔가 해주지 않을까. 극한의 상황에서 대사에 위화감을 느끼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거 멋… 멋있는 거야? 그런 거야?’

시바 그래도 이해할 수가 없다.

‘아니, 시바 내가 비정상인 거야? 이거 맞아?’

[그럼… 이만 끊겠다.]

다행히 내가 비정상은 아닌 모양이다. 진 군사 이 새끼가 아직까지도 통신 채널을 끊지 않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진심 어린 경멸과 탄식을 받아내느니 차라리 놀려주기를 바라는 것 같은 모양새.

웬만해서는 진 군사가 수치심을 느끼는 것을 즐기고 싶었지만 생각하기도 전에 억지스러운 텐션이 튀어 나간다.

[풋… 아… 그게 모… 모예요~ 그래서 새로운 경치는 보여주신 거죠?]

‘아. 시바 어색했다.’

[뚝.]

‘아. 시바 진짜 티 나게 어색했다.’

결국 녀석도 참지 못하고 통신 채널을 끊어버린 모양이다. 계속해서 망원경으로 놈을 예의주시하고 싶었지만 왠지 모르게 봐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실 진 군사에게 계속해서 시선을 고정시킬 수도 없는 상황이었고 말이다.

아마 하루, 아니,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다시 아무렇지도 않은 척 멘탈을 가다듬고 등장할 것이다. 그때 다시 조금 텐션을 올리는 게 좋지 않을까.

‘그래. 시바. 당장 이걸 어떻게 써먹어야 할지도 신경 써야 하니까.’

에베리아 쪽과 공화국의 메슬라는 이제 관성을 타고 있는 시점으로 향하고 있었지만, 캐슬락 쪽은….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꺄아아아아아악!”

“아아악! 신이시여… 신이시여….”

후드득 후드득.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으아아악! 신이시여!”

“제발 입 좀 닥치라고 캐넌!”

“아니, 그럼 어떻게 해! 진짜 놀… 놀랐단 말이야. 제기랄.”

이 모양 이 꼴이었으니까.

“시발! 맞서 싸워! 절대 밀리면 안 돼!”

“아아악! 사제! 사제에!”

“비둘기들이 성 내로 진입했다! 반복한다! 비둘기들이 성 내로 진입했다!”

이제는 단순히 폭음뿐만이 아니라. 병사들의 비명 소리와 전쟁으로 인한 소음도 가까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지하가 아비규환이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알렉스 3인조는 개인 능력들은 나쁘지 않았지만 피난민들을 통제하기는커녕 오히려 혼란을 더욱더 가중시키고 있다.

“시발… 이대로 죽는 거 아니냐고. 어… 어떻게 해? 알렉스?! 우리 어떻게 하냐고!”

“지금까지… 좋은 인생이었네. 알렉스. 캐넌.”

“제발… 입 좀 닥치라고! 캐넌! 조지! 제기랄! 사람들이 무서워하잖아!”

“죽음이라는 것은 모두에게 평등하고,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법이지.”

“흐어어어어어엉… 엄마아…. 엄마아….”

‘진짜 이 새끼들도 미친놈이자너.’

이미 죽음을 받아들인 듯 눈을 감고 있는 조지라는 녀석, 호들갑 떠는 캐넌이라는 녀석, 유일한 정상인처럼 보였지만 두 놈 때문에 모두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알렉스라는 녀석, 놈들의 기행 때문에 이미 이곳은 눈물바다가 되어 있다.

죽음의 공포에 공황 상태에 빠진 이들이야 흔하고 어린아이들은 소리를 내지른다. 서로를 껴안고 있는 연인, 어떻게든 아이만은 데리고 나가 달라고 외치는 부부, 시바 여기에 사람들이 숨어 있다는 걸 대놓고 광고라도 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시바 지하실에서 동춘 서커스라도 펼쳐지고 있는 것만 같다. 그 와중에 노이즈 캔슬링 고막이라도 가지고 있는지 류한 새끼는 미동도 하지 않고 있다.

아마 이곳에서 광란의 파티가 열려도 저 자세 그대로 유지하고 있지 않을까.

일단 은은하게 빛부터 뿌려보는 것이 정답이라는 생각이 든다.

“씨발! 공격이다!!! 도망가!!!”

“아아아아아아아아아! 엄마아아아!!”

“흐어어어어어엉!!! 아아아아악!”

“아… 아니구나. 공… 공격이 아니었습니다. 여러분.”

“넌 그냥 입 닥치고 있어. 캐넌. 제발 부탁이니까.”

“…….”

“…….”

녀석 덕분이라고 하기에는 뭣하지만 덕분에 시선이 집중된다.

촛불도 하나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갑작스레 빛이 지하실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으니 눈길이 쏟아지는 것이 당연하다.

본능적으로 자신들이 차분해지고 있다는 것 또한 느끼고 있을 것이다. 아쉽게도 류한은 이 은은한 빛에도 반응하지 않고 있었지만 말이다.

“모두 침착해 주세요.”

“…….”

“위에서 캐슬락의 병사들이 침입자들을 상대로, 최선을 다해 싸워주고 있어요.”

“…….”

“물론 혼란스럽고, 두려우실 것이라는 건 십분 이해해요. 하지만 이곳에서 소리를 내지르고 공포에 매몰된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닐 거라는 걸 다들 알고 계실 거라고 생각해요. 그 누구도, 무섭고, 두렵지 않은 사람들이 없을 거예요. 캐슬락의 수호자들 역시 무서울 거예요. 그들도 내려앉은 공포를 씹어 삼키며 적들과 맞서고 있을 거예요. 우리가 지금 해야 하는 일은 공포에 매몰되는 것이 아닌, 그들을 돕고 응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후드득. 후드득.

‘다들 조금 침착해졌자너.’

확실히 딕션과 빛이 조금 먹어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알렉스 님.”

“네… 네?”

“혹시 지하실에 무기로 쓸 수 있는 것들이 있는지 살펴주세요.”

“아… 네… 네?”

“캐넌 님.”

“네… 넷!”

“피난민들 중에 싸울 수 있는 인원이 몇이나 있는지 파악해 주세요.”

“넷!”

“조지 님?”

“…….”

“혹시 이곳에서 이어지는 다른 출구가 있을까요?”

“확인해 보겠습니다.”

“…….”

“…….”

당연히 여러 목소리가 들릴 수밖에 없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은….

‘대놓고 싸우겠다는 거였으니까.’

“지금 뭣 하고 있는 겁니까.”

“맞… 맞아요. 도대체….”

반대에 부딪히는 것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상황이 마치 튜토리얼 때로 돌아간 것 같지 않은가. 이곳에 몰려 있는 피난민들 대부분이 비전투 인원들, 혹은 전투력을 상실한 이들뿐이다.

갑작스레 우리 싸우자고, 말한다고 해도 알아들을 리가 없다. 밖으로 나가 고기 방패가 되느니 차라리 이곳에서 안전하게, 상황이 해결되기 전까지 기다리는 게 더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거다.

‘우리 왕국 연합 귀족 영애들도 시바 목숨 걸고 싸웠는데. 참….’

물론 이런 상황은….

‘오히려 원하던 거였자너.’

적어도 류한에게 보여줄 연극으로는 딱 알맞다.

“이곳에서 기다린다고 한들,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을 거예요.”

“구조대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저희가 어떻게 저런 괴물들과 맞서 싸울 수 있단 말입니까.”

“그렇다고 한들, 이곳에서 죽기를 기다리는 것보다는 나을 거예요.”

“그런….”

“물론 여러분들 모두에게 함께 가자고 말씀드리지 않을 거예요.”

콰아아아아아아아앙!!

후드득. 후드득.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함께 나갈지, 나가지 않을지는 여러분들의 선택이에요.”

“…….”

“하지만, 저를 믿고 따라와 주신다면….”

‘새로운 경치는 좀 뜬금없지? 에바지? 캐릭터랑 상황이랑 별로 맞지도 않지?’

대사를 조금 수정하는 게 좋지 않을까 고민하던 시점.

별안간,

콰아아아아앙! 하는 소리와 함께 지하실의 문이 뚫리며 비둘기들이 들이닥친다.

곧바로 무기를 들고 나가는 알렉스 3인방, 그리고 내질러 오는 창.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 시간이 느려진 것 같다.

비둘기의 창은 정확히 그들을 피해 이쪽으로 날아온다. 말 한마디를 전부 내뱉을 시간도 없다.

그 와중에 류한 이 새끼는 미동도 하지 않고 있다.

괜스레 시바 재활용 한번 해보겠다고 이 사달이 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꽂힌다. 그래도….

“ㅅ….”

발음을 가까스로 내뱉는다. 그 와중에 창은 여전히 목을 향해 돌진하고 있는 중, 그리고….

“어?”

“어….”

비둘기들의 목에 실선이 생기는 것이 시야에 비쳐왔다.

툭.

“…….”

툭.

“…….”

툭.

약간의 시간 차를 두고, 놈들의 머리가 모조리 몸에서 떨어진다.

저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자 귀신같이 머리를 늘어뜨린 류한의 동공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시야에 비쳐왔다.

“…….”

“…….”

‘인터셉트 했다.’

진 군사가 버린 일반 쓰레기.

‘시바 내가 억지로 재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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