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510화
소실(20)
‘이렇게 빠르게 반응할 줄은 몰랐자너.’
완전 파블로프의 개 아니냐구….
목이 잘린 채로 순식간에 허물어지는 일반 비둘기들의 모습은 가관, 처음 들어온 녀석들뿐만이 아니라 근처에 있던 놈들의 목도 모조리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마치 놈들의 목에 설치되어 있는 폭탄 목걸이를 일순간 터뜨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아니… 폭탄 목걸이 맞지. 그럼.’
차이점이 있다면 퍼엉! 하고 터지지 않았을 뿐이다.
언제나 그렇듯 아주 작은 소음도 들리지 않는다. 본인들이 베었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한 모양인지, 비명도 내지르지 못하는 비둘기들.
순간적으로 발악하는 놈들 역시 시야에 비치기는 했지만 결과는 같다. 전투태세를 취하던 녀석들도, 거리를 벌리던 녀석들도, 방패를 들어 올리던 녀석들도, 내게 다가오던 녀석들도, 모조리 목이 땅바닥으로 떨어진다.
‘진짜… 이 새끼… 왜 이렇게 센 거야? 얘는 심지어 오래 쉬지 않았나?’
“어….”
“뭐… 뭐야… 뭐야?”
“어? 어?”
성검용사에게 패배한 이후로 폐인이 된 녀석이 훈련 같은 걸 할 시간이 있었을 리 만무, 애초에 녀석의 몸 상태를 보고 있자면 훈련은커녕 몸 관리도 한 적이 없어 보인다. 근육이 빠져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어떻게 서서 검을 휘두를 수 있는 건지 의문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얘는 시바… 어떻게 더 강해진 거지?
“…….”
‘뭐 자동으로 레벨 업 하는 기능이라도 있는 거냐구….’
그냥 우스갯소리는 아니다. 희라 누나의 경우가 그랬으니까. 언젠가 그녀가 직접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포식자는 훈련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실제로 희라 누나가 훈련하는 걸 그다지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숨만 쉬어도 레벨 업이 되는 부류, 종이 다른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드는 부류, 인간 그 자체가 강하다는 생각이 드는 부류.
김현성도 천재기는 하지만, 이런 종류의 인간은 아니다. 각성을 위해 한두 번 정도 이벤트를 열어 둬야 하고, 끊임없는 자기관리와 체계적인 훈련을 마친 이후에 나오는 강함, 저들의 강함은 김현성의 강함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이해할 수 없는 그 강함에 알맞게 마치 시체가 일어서 있는 것 같은 느낌. 정리되지 않은 머리를 축 늘어뜨리고 있었으니 정체를 알 수 없는 귀기마저 느껴진다.
비주얼이 비둘기보다 더 무섭게 보이는 것은 착각이 아니다. 실제로 녀석의 주변에 있던 피난민들은 본능적으로 류한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전쟁터에서 서 본 적이 있는 이들의 반응은 다르다.
“젠장… 믿고 있었다고!!”
‘도대체 뭘 믿고 있었다는 건데.’
“미… 미친! 미친! 이게 뭐야! 뭐야!”
“우와아아아아아아악! 살았어! 우리 산 거야. 알렉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그게 뭔 상관이야! 조지! 중요한 건 우리가 살았다는 거야! 저런 괴물이 도대체 어디에 숨어 있었던 거냐고!! 아… 아니, 괴물이 아니고… 귀… 귀인이시여! 저, 저희가 보조하겠습니다!!!”
네임드 하나가 전쟁터에서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전장에 서 본 놈들은 안다.
단신으로 전황을 완전히 뒤집어 버릴 수 있는 이의 존재가 아군에게 얼마나 큰 희망으로 다가오는지, 또 적들에게는 얼마나 큰 절망으로 다가오는지, 모를 수가 없다.
허구한 날 전쟁터에서 드잡이질을 했던 놈들이 견적을 내봐도 류한이 괴물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모양, 대충 봐도 텐션이 오른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더… 더 옵니다! 대협!”
‘이 새끼 장르 잘못 찾아온 것 같은데?’
당연하지만 저 3인조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도 아니다. 오는 족족 비둘기들의 목이 평등하게 잘려 나가고 있으니까.
피슉.
“아.”
톡. 톡. 데구르르르.
“어?”
피슉.
“젠…장….”
툭.
아무래도 지하실의 입구가 좁다 보니 더욱더 놈의 모습이 두드러진다. 손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한 놈.
‘몰라서 더 당하는 것 같자너.’
성지훈 역시 저 속도에 익숙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 했는지 모른다.
극단적으로 말해 류한의 속도에 익숙해지지 못한다면 녀석과 함께 서 있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어디까지나 성지훈의 경우가 특이 케이스였다.
‘보통은 익숙해지기 전에 전부 뒈지니까.’
우리 한이 검은 공간을 가른다고.
이미 전황이 기울었다는 것은 1기영도 이미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전장에 갑작스레 이레귤러가 나타난 상황이었으니까.
알렉스 3인조도 알고 있는 사실을 어떻게 녀석이 모를 수가 있겠는가. 이미 균형을 무너지고 있다.
계속해서 전력을 투입시킨다면 어쩌면 유의미한 성과를 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조금만 더 버텨! 본대가 돌아올 때까지만 버티라고!”
회군하고 있는 병력들이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녀석들의 자원도 무한하지 않다. 병력은 한정되어 있는 것은 이쪽이나 저쪽이나 마찬가지, 소모전으로 향하게 된다면 인류 진영 측에서는 소리를 질러야 함이 옳다.
일반 병사 하나와 비둘기 하나를 교환하게 되는 것만으로도 이득을 보는 장사라는 거다.
상황이 이렇게 치달아 가고 있었으니 1기영 녀석이 가만히 있을 수 있을 리 만무. 그런 상황에서 류한은 오히려 밀고 들어오는 비둘기들을 밀어내고 있었다.
‘근데 이 새끼… 대화는 할 수 있는 상태인가?’
정상적인 대화가 가능한 상태인지는 모르겠다. 아까부터 계속해서 아무 말 없이 검만 휘두르고 있었으니까.
다른 액션도 보여주지 않고, 그냥 로봇처럼 적들에게 검을 휘두르는 것이 전부, 물론 이쪽이 지하실 밖으로 나가자 함께 따라와 주기는 한다.
“대협! 바깥으로 나가시는 겁니까?”
“…….”
“일단 우리도 밖으로 나가자! 조지!”
“음… 그렇게 하도록 하지.”
심지어는 능동적으로 검을 휘둘러 주기도 한다. 창밖에 보이는 녀석들이 아까부터 계속해서 목이 잘려 나가며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그 와중에 하늘을 유영하는 세라핌까지 시야에 비친다. 류한이 녀석의 목까지 잘라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때.
“히이이이익!”
거리는 소리와 함께, 곧바로 성에서 멀어지는 세라핌이 눈에 들어왔다.
‘얕았구나?’
목이 살짝 긁힌 것뿐이다. 그 조심스러운 성격 때문인지, 아니면 일반 비둘기들에 비해 스펙이 높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녀석은 자신에게 닿을 뻔한 공격에 반응했다.
상처가 생기기는 했지만 목이 잘리지는 않았으니 나름대로 선방한 셈이었지만, 죽을 뻔했다는 공포를 머릿속에 각인시키는 것은 성공한 것 같았다.
안개에서 날아 들어오는 화살과는 질이 다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목이 달아날 뻔했다.
심지어 다른 비둘기들은 여전히 목이 잘려 나간 채로 땅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는 중, 세라핌이 허겁지겁 도망치는 것도 무리가 아니리라.
‘우리 기영이 속이 타들어 가겠자너.’
“도미니온스! 어디 있어! 도미니온스!!”
‘크으 친구 부르는 것까지 완벽하자너.’
새삼스럽지만 저 녀석이 1기영을 동경하면서도 1기영을 흉내 내려고 했던 것도 이해가 간다.
“도미니온스!”
‘저 멀리서 봐도 진짜 꼴불견이기는 해.’
“도… 도미니온스….”
자신감 없어 보이는 눈빛, 초조한 얼굴, 겁먹은 듯한 입꼬리, 한껏 움츠러든 날개, 앵무새 마냥 도미니온스를 찾는 목소리까지, 부모님을 잃어버린 아이처럼 느껴질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현시점의 내게는 너무나 사랑스러운 모습이었지만 1기영에게도 같은 느낌으로 비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죽이고 싶겠지. 뭐.’
녀석을 거꾸로 매달아 화형시켜도 시원치 않을 것이라 장담할 수 있다.
거기에,
‘안개도 점점 짙어지고 있는 것 같은데.’
류한이 떨어뜨리고 있는 비둘기 외에도 떨어지고 있는 비둘기들이 늘어나고 있다.
공화국으로 파견을 나가고 있었던 병력들이 되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안개 소환사가 가까이에 있다!”
“조금만 더 버텨! 제길! 조금만 더!”
“이 역겨운 비둘기 새끼들 전부 쓸어버려!”
“밀집 대형! 밀집 대형!”
“그물을 던져라!”
‘이래도 안 비킬 거야? 이래도?’
“조금만 더 버텨라! 원군이 올 때까지만 버텨!!”
‘이래도 양보 안 할 거야?’
물론 캐슬락에서도 아무런 피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갑작스러운 기습에 기존에 성벽을 수비하고 있는 병력들의 피해가 막심했으니까.
이미 성내에 비둘기들을 들였다는 것 자체가 피해가 결코 적지 않음을 의미하기는 했지만, 구태여 누가 더 피해를 입었냐 따지자면 1기영 쪽이 압도적이다.
심지어 그 피해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누적되고 있다.
‘우리 진 군사님 자존심 회복하려 하고 있자너.’
엄한 화풀이를 비둘기들에게 하려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린델에서 병력들이 움직이는 것이 시야에 비쳐온다.
물론 그쪽이야 케루빔과 쓰로누스가 버티고 있으니 어느 정도 균형이 유지되기야 하겠지만 정작 녀석들을 관리할 수 있는 지휘관은 이쪽에 시선이 쏠려 있다는 것이 결정적이다.
이대로라면 정말로 이종족 연합군과 린델을 잇는 저항 전선이 구축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존재할 것이다.
‘너 바보 아니잖아.’
순간적인 감정에 휩쓸려서 대의를 그르칠 정도로 병신은 아니잖아.
이 형은 너를 그렇게 키운 적이 없단다.
그래, 억울해도 어쩔 수 없자너.
‘상대가 나잖아.’
[일반 등급의 강제 퀘스트를 생성합니다.]
[비융신(0/1)]
[이기영에게 일반 등급의 퀘스트를 전달합니다.]
‘상대가 나자너.’
[일반 등급의 강제 퀘스트를 생성합니다.]
[비융신새끼 푸흐푸헿푸흐흐흫(0/1)]
[이기영에게 일반 등급의 퀘스트를 전달합니다.]
‘네가 아무리 노력해도 이건 어쩔 수 없는 거였자너.’
[일반 등급의 강제 퀘스트를 생성합니다.]
[멍청한 새끼야. 네가 그따위니까 돼지 새끼 하나, 못 지킨 거야.(0/1)]
[이기영에게 일반 등급의 퀘스트를 전달합니다.]
‘응 그래서 못 지킨 거야.’
[일반 등급의 강제 퀘스트를 생성합니다.]
[자기 새끼 하나 못 지킨 새끼가 뭘 할 수 있을 줄 알았어? 이 무능력하고 쓸모없는 새끼야. 현자의 돌? 완전한 멸망? 에라이 병신 새끼야.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 시바 관상은 못 속인다고 부모님 없이 자란 티가 나기는 해.(0/1)]
[이기영에게 일반 등급의 퀘스트를 전달합니다.]
‘내 얼굴에 침 뱉기이기는 한데 효과 하나는 기가 막히자너.’
[일반 등급의 강제 퀘스트를 생성합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넌 똑같아. 기영아. 그래 지금 거기서 분을 삭이고 처박히고 있는 게 딱 너다운 모습이라고 이 패배자 새끼야. 지금 이게 고집이라는 건 알지? 너 지금 고집부리는 거 맞잖아. 실패한 게 뻔한데, 그것도 인정 못 하고 지금 거기서 그러고 있는 거잖아. 그러니까 이 새끼야 네가 너희 애비한테도 버림받은 거야. 인정받고 싶어서 개 염병을 떨어도, 눈길 한 번, 연락 한 번 못 받는 병신이 된 거라고, 놓을 때는 놓을 줄도 알아야지. 아직도 거기에 갇혀서 새끼야. 언제 철들래?(0/1)]
[이기영에게 일반 등급의 퀘스트를 전달합니다.]
‘형이 너무 거친 거 아니지?’
[일반 등급의 강제 퀘스트를 생성합니다.]
[네가 돼지 새끼한테 집착하는 이유도 예상이 가. 이 비융신아. 넌 패배자야. 실패자고. 아무리 덩치를 부풀려도, 알 사람은 전부 다 알 거야. 네가 실패했다는 거.(0/1)]
[이기영에게 일반 등급의 퀘스트를 전달합니다.]
‘충분히 신사적이지?’
[일반 등급의 강제 퀘스트를 생성합니다.]
[야. 우냐?(0/1)]
[이기영에게 일반 등급의 퀘스트를 전달합니다.]
‘그렇지?’
[우냐?(0/1)]
[우냐?(0/1)]
[우냐?(0/1)]
[우냐?(0/1)]
[우냐?(0/1)]
[우냐?(0/1)]
[우냐?(0/1)]
“…….”
-…….
그리고,
-이 개새끼… 개새끼야아아아아!!!!!!
화를 참지 못한 1기영이 펜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마구잡이로 내려찍는 모습이 망원경 속에 들어왔다.
허벅지를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리며 입꼬리를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다음 페이지에 알프스 일러스트가 첨부되어 있습니다.
흙수저 : 알프스 일러스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