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 사용설명서-1516화 (1,514/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516화

소실(26)

“방주에 올라타라! 방주에 올라타!!”

“닻을 펴고 노를 저어라!!!”

“뭐야… 이게… 하… 하하하하하핫! 도대체 이게 뭐냐고!!!”

“기적… 기적이다.”

“방주에 올라타!!!!!! 전원 전투 준비! 전투 준비!!!!”

“신이시여!!! 아직 대륙을 버리지 않으셨습니까!! 신이시여!!!”

“배에 올라타!! 밧줄을 내려라!”

“빨리빨리 올라타세요! 빨리요!”

“출항이다!! 출항이야아아아아!!!”

‘난리 났자너.’

“말도 안 돼….”

‘내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되기는 해.’

하지만,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본래 기적이라는 건 준비된 이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법사들도, 사제들도, 병력들도, 심지어 비둘기까지 멍하니 기적이 일어나는 순간을 바라보고 있었다. 직접 기적을 일으킨 내 입장에서도 입을 커다랗게 벌어질 수밖에 없을 진데 다른 이들이야 오죽할까.

저 많은 이들이 모두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비비는 것도 무리가 아니리라. 그간 대륙에서 볼꼴 못 볼 꼴을 전부 봐왔던 알렉스 3인 방이 무기를 뒤흔들며 소리를 지르고 있는 모습만 봐도 답이 나온다.

“올라타아아아!!!”

“내가 이럴 줄 알고 있었다고! 퍼즐 조각들이 모일 줄 알고 있었다고 이야기했잖아!!! 젠장!!”

“나도 알고 있었어! 알렉스! 제길!!”

어처구니없었던 것은 의외로 이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이들도 결코 적지 않았다는 것. 자신들에게 응당 기적이 일어날 것임을 알고 있었다는 표정들이 눈에 띈다.

그야 계속해서 신의 목소리를 들어왔었으니 무언가 일이 벌어질 것임을 대충은 알고 있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것이 놀랍다.

대륙이, 이곳에 있는 신들이 절대로 자신들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리운다.

자신들의 투쟁과 노력이 분명히, 또 마땅히 보상받을 것이라는 걸 믿고 있었기 때문에 보일 수 있는 반응일 거라는 생각이 드리운다.

괜스레 여러 가지 잡념들이 머릿속에 들어와 꽂힌다. 지금 당장은 이들을 보상받았다고 느낄지언정, 종장에는 보상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굳이 내가 신경 쓸 필요 없자너.’

“감사합니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하…흐…하하하하핫!”

“흐윽… 흐으으으윽… 신이시여….”

“무릎 꿇고 기도하지 말고 새끼들아! 방주에 올라타라고!! 지금 기도하고 있을 때야?”

‘설마 이거. 시바. 나한테 보고, 배우고, 느끼라 이거야?’

필멸자들을 저버리지 말라고, 이걸로 교훈이라도 느끼라는 거냐고.

물론 내 망상, 혹은 그저 끼워 맞추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1회차가 김현성과 나를 위해 마련된 무대라고 생각하자, 단순히 개연성을 끼워 맞추는 것만이 목적의 전부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어와 꽂힌다.

‘이거 뭐 튜토리얼이야? 아니면 교육과정 뭐 그런 거야?’

김현성도 나도, 무언가 얻어가기를 바라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도대체 뭘 얻어가라는 건지, 뭘 느끼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녀석은 개연성을 충족시키는 것 외에 다른 어떤 것을 원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콰아아아아아아앙!!

하는 소리가 상념을 깨운다. 순간적으로 다시 시선을 돌리자, 방주에서 내린 밧줄을 타고 올라오는 병사들이 시야에 비쳐왔다. 비둘기들이 그들을 향해 창을 들고 쇄도하고 있었지만.

“발사!! 발사!!!”

하는 소리와 함께 배 위에 올라가 있는 이들이 비둘기들에게 화살 비와 마법을 연신 뿌려댄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계속 발사해! 계속!!!”

“노를 저어라!! 노를 저어!!!”

“발사!!!”

비전투 직군과 전투력을 상실한 이들은 노를 젓고 있었고, 마법사들은 방주의 마법진에 마력을 쏟아붓고 있었으며, 병사들은 방주에 달라붙은 비둘기들을 향해 창을 내지르고 있었다.

계속해서 방주가 하늘로 오르고 힘차게 노를 젓자 바람을 뚫고 뻗어 나가는 모습은 장관 아닌 장관, 어째서 돼지 새끼가 이것에 집중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지원해! 지원!!”

“오른쪽 후미에 비둘기들! 오른쪽 후미에 비둘기들이다!!”

“끝까지 버텨!! 밀어내!!! 멀리서 오는 놈들은 마법으로 처리한다! 사수들을 보호하라! 사수들을 보호하라!”

“아직 끝난 게 아니야! 새끼들아! 집중해! 집중하라고!!”

“마법사들은 마력 아끼지 마! 무조건 떨쳐내야 된다! 무조건!! 이 개새끼들!!”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 방주에 조금씩 조금씩 속도가 붙는다. 흐르는 바람을 타고 배가 한 번 더 출렁이며 크게 뻗어 나간다.

이미 배에 달라붙은 비둘기들이 계속해서 전투를 벌이고 있었고 거리를 벌리는 놈들은 온몸에 화살 세례를 받으며 떨어지고 있는 중.

사실상 비둘기들이 이 항해를 막을 수 있는 수단과 여력이 없다. 놈들 또한 화력을 집중하고 있었지만, 방주의 내구를 벗겨내기에는 모자라다.

단언하건대 도미니온스가 이곳에 와도 이 방주를 쉽게 저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난리자너. 이미 난리 났을 것 같자너.’

1기영 역시 인상을 구기고 이 장면을 바라보고 있겠지만… 녀석의 입장에서도 마냥 기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이쪽의 통장에서 또 한 번의 커다란 지출이 나오기를 기다렸을 테니 말이다. 실제로도….

‘이제는 여력이 별로 없기는 하네.’

신화 등급의 퀘스트, 그리고 그 보상으로 지불해야 하는 신성이 결코 적지 않은 양이다 보니, 그나마 여유 있어 보였던 우물이 완전히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물론 완전히 바닥을 친 것은 아니었지만 대륙 전체를 감당할 수 있는 양이 아니다. 조금씩, 조금씩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생길 수밖에 없었던 시점이었다.

‘왕국연합, 연방의 피난민.’

아직까지 메슬라 성으로 향하고 있는 공화국민. 북부 프로스트 월의 생존자. 그리고….

캐슬락까지.

작을 불빛 의지하며 길을 찾고 있는 이들에게 등불을 빼앗는 셈이었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다.

‘캐슬락에 있는 비둘기들을 최대한 많이 잡아주기를 바라야지 뭐.’

녀석들이 캐슬락을 점령한 이후에는 다시 둥지로 돌아오게 될 테니 말이다. 차라리 조금 더 캐슬락에 투자를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이내 고개를 젓는다.

위란을 잃은 캐슬락은 자력으로 버틸 수 있는 힘을 잃었다. 지금이야 결계와 안개로 최대한 웅크리고 앉고 있겠지만, 결국에는 신의 목소리고 나발이고 점령될 것이 뻔했다.

차라리 세계수 전선에서 도미니온스와 세라핌을 상대하고 있는 흑장미 살롱의 영애들과, 이종족 연합에게 투자하는 것이 더 옳은 판단이라는 거다.

‘전쟁은 숫자 싸움이니까.’

버릴 곳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 것이 맞다. 어차피 뒈져갈 때에는 신이 우리를 버렸다느니, 살려달라느니 울부짖으며 이쪽을 저주할 게 뻔할 테니 말이다.

아마 지금쯤 1기영 역시 내가 캐슬락 쪽을 버렸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지 않을까.

조금 더 캐슬락을 붙잡으며 블러핑을 했어야 했나 싶기도 했지만 지금은 블러핑에 자원을 투자할 여력도 없다.

결국 내 자원이 유한하다는 가설을 녀석에게 확신시켜 준 셈이었지만….

‘그래 봤자야.’

녀석도 자원을 함께 소비하고 있다는 것이 유효했다. 결국에는 둘 모두 맨몸만 남게 되었으니 동등한 상황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옳다.

“중요한 건 내가 여기에 닿았다는 거지. 그렇지?”

그래, 내가 비둘기 둥지에 닿았다는 것이 중요했다.

‘파이팅 넘치네.’

신의 선택을 받은 신의 병사 같은 느낌이라도 받는 것일까.

방주를 타고 도망갈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겠지만, 설마 비둘기의 둥지로 그대로 박치기하듯이 들어갈 거라 예상했던 새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주에서 대기하고 있는 병사들의 두 눈이 흔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의 무구를 두드리거나, 투구를 팔로 쳐대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전투 준비! 전투 준비!!”

“기적이 함께 있음을 기억하라!”

“신이 우리와 함께하고 있음을 절대로 잊지 마라!”

공화국의 가장 먼 곳에서부터, 메슬라 성까지, 메슬라 성에서부터 방주까지, 방주에서부터 이곳, 둥지까지, 신의 인도를 따라 이곳에 들어왔다고 느낄 테니 승리를 위한 성전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그들은 수많은 죽음과 마주해왔다. 동료, 가족,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이곳에 도착했다.

본인들이 살아 돌아갈 것이라 생각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두려움은 없다.

신의 인도에 이곳에 도착했을 테니, 죽는다고 하더라도 신의 품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들이 죽더라도 결국에는 승리한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일까. 본인들의 죽음이 의미 없는 것이 아니게 된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으로 다가오기 때문일까.

각각 느끼는 이유는 다르겠지만 공통점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모두가, 모두가 이것이 마지막임을 직감하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다들 고맙다.”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라. 알렉스. 나는 살아 돌아갈 거니까. 그렇지 조지?”

“우리가 이번에도 살아남는다면, 그거야말로 진짜 기적이겠지.”

“아무튼… 다들 고마웠다. 미안하기도 하고….”

“아니, 그러니까. 진짜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말라니까.”

“나도 알아. 그냥 말하고 싶어서 말하는 거야.”

“후우… 가 보자고. 가 보자고.”

“그래. 가 보자고.”

알렉스 3인방도.

“지옥에서 보자고 이년아.”

“왜 우리가 지옥에 가? 신의 선택을 받은 병사로 죽는 건데. 가더라도 천국 같은 곳 아니겠어? 난 말이야. 미중년들이 가득 찬 곳에 떨어질 게 분명해.”

“취향하고는, 그럼 나는 미소년들이 잔뜩 있는 곳으로 떨어질란다.”

서로의 투구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두 여전사도.

“사랑해.”

“저도 사랑해요.”

지팡이를 들고 있는 두 마법사도, 용병단도, 함께 방주에 올라탄 피난민들도, 평범한 삶을 살고, 평범한 하루를 꿈꿨던 수많은 이들이 무기를 고쳐 잡고 서로를 독려한다.

그리고,

“충격에 대비하라!!”

“잡을 수 있는 건 뭐라도 좋으니까 붙잡아!!!”

“충격에 대비하라!!! 충격에 대비하라!!!! 신이 우리와 함께하고 있음을 기억하라!!!”

가장 세뇌가 잘 된 새끼 한 명이 악에 받친 듯이 소리를 지른다.

“신과 기적이 우리와 함께하고 있음을 기억하라!! 대륙이 아직 우리를 버리지 않았음을 기억하라!!! 이것이 그분이 인도한 길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전투 준비!! 전투 준비!!!”

“부딪친다!!”

“꽉 잡아!!!”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아까 투구를 고쳐 쓴 여인 중 한 명의 머리에 창이 박힌다.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는 뒤로 넘어가지만, 그녀와 함께했던 여인은.

“곧 따라갈게. 쟌느.”

라는 말을 남기고 투구를 똑바로 쓰며 방패를 들고 적들에게 부딪친다.

“들어가!! 빨리 밀고 들어가!! 신이 우리와 함께한다!”

“마법! 보호막!!! 보호막!!!!”

“뛰어내려! 뛰어내리라고! 새끼들아! 안으로 진입한다!”

“발할라!!”

‘발할라 아니야. 시바 누가 여기에 북유럽 새끼 데려왔어.’

“방패 들어!! 방패 들고 밀고 들어가!!!”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내 팔…. 내 팔!!”

“신의 목소리가 함께하신다!”

“제발… 제발….”

[일반 등급의 강제 퀘스트를 생성합니다.]

[나아가라. 그리하면 빛이 보일 것이다.(0/1)]

[일반 등급의 퀘스트를 전달합니다.]

[…….]

[…….]

[퀘스트 보상을 등록….]

[…….]

[퀘스트 보상을 등록하지 않….]

[…….]

[퀘스트 보상을 등록합니다.]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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