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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517화 (1,515/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517화

소실(27)

때로는 수백 가지 작전보다 한마디 말이 더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다. 지금 같은 경우가 그러했다.

물론 나는 후자의 힘을 완전히 믿지는 않지만, 방패를 들고 투구를 고쳐 쓰며 전장으로 향하는 이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적어도 지금 저들에게 필요한 게 전술 같은 게 아니라는 사실을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물론 이 이상 신성을 소비하기 싫다는 심리가 아예 깔리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결과적으로 효과가 좋기는 하자너.’

결코 그들에게 감화되어 승리를 전해 주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쓸데없는 말보다 저 한마디가 저들에게 더 힘이 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진! 전지이이이인!!”

“으아아아아아아아악!”

“전진하라! 전진하라! 신께서 승리를 원하신다! 그분께서 나아가기를 원하신다!”

“승리! 승리를 위하여!!”

“승리를 위하여! 대륙과 정의를 위하여!!!”

“흐으으윽… 승리를 위하여!”

‘질질 짜지 마. 새끼들아.’

방주에서 내리는 병사들과 그들을 둥지 안으로 들이지 못하게 하려는 비둘기들의 줄다리기가 계속해서 이어진다.

머리 위로는 계속해서 마법과 화살들이 서로의 진영을 가로지르며 떨어지고 있었고, 성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잔인하고 잔혹한 그림들이 계속해서 그려진다.

마치 공성전 같은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차이점이 있다면 성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성에서 나오기 위한 전쟁이었다는 것.

본래 이런 종류의 전투는 공격하는 쪽보다 막는 쪽이 유리하건만, 지금은 딱히 그리 보이지도 않는다. 오히려 높은 곳을 점령하고 있는 것은 아군이다.

방주를 방패 삼아 화살을 계속해서 쏘아 보내고 있었고, 둥지 안에 처박힌 비둘기들은 새장 안에 갇힌 새 마냥 기동성을 잃어버렸다. 가장 결정적이었던 것은 전장에 감돌고 있는 분위기다.

결국 전쟁을 치르는 것은 결국 인간이었던 터라, 이런 분위기에 휩쓸릴 수밖에 없다.

승리할 것이라는 분위기, 결국 해낼 거라는 분위기가 병사들 사이에서 감돌고 있다. 기어코 적을 앞마당까지 허용한 비둘기들과는 마음가짐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거다.

녀석들 역시, 생각할 수 있고, 판단할 줄 안다.

우습게 생각했던 전쟁이 기약이 없을 정도로 길어지고, 자신들의 옆에 있는 이들이 죽어 나가고 있다. 벌레들이라고 생각했던 인간들이 결국 본인들의 터전까지 들어와 창과 칼을 내밀고 있다.

몇몇 놈들의 얼굴에는 당황스러움, 심지어 두려움이라는 감정까지 드리운다. 자존심 때문인지, 아니면 물러서면 정말로 끝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인지 몸을 뒤로 내빼고 있지는 않았지만 자신들이 생각하던 성스러운 전쟁과는 이미 멀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을 터였다.

“뚫어내!!! 뚫어내라!!!”

“뭉치게 내버려 두지 마! 날아오르는 놈들부터 저격한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마법지원! 마법지원!!!”

“부상자는 뒤로 빼! 치료를 받고 다시 투입한다!”

“빛과 승리가 우리와 함께하고 있음을 잊지 마라!!! 빛과 승리의 신이 우리와 함께하고 있음을 결코 잊지 마라!!”

본래 정신이 흔들리면, 육체도 흔들리는 법이다. 비둘기들의 진영에 구멍이 생기는 게 당연하다는 거다.

1기영이 녀석들에게 어떤 명령을 내렸건 상관이 없다. 녀석들은 명령을 수행할 수 있는 이성과 판단력을 잃었으니까.

“밀어어어어어!!!! 비집고 들어가!!!”

병력들 중간중간에 섞여 있는 하연수와 알프스, 류한이 존재 여부는 관계가 없다.

물론 그들이 있음으로써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지만, 문이 열리는 것은 이미 예정되어 있던 결과였다.

“뚫었다! 뚫었다고!!!”

알렉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녀석이 직접 말했던 대로, 기어코 비둘기들의 진영을 깨부수고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하는 병력들이 눈에 비친다.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하연수까지 그 안쪽으로 들어가 진영을 완전히 헤집고 있는 상황, 선임 비둘기가 하연수를 발견하고 구멍을 메우려 날개를 펼쳤지만 류한의 검에 목이 잘려 떨어진다.

자신들의 부대장을 잃은 비둘기들 십 수 명이 혼란에 빠지기 무섭게, 다시 방패와 창을 고쳐 잡은 아군 병력들이 놈들을 삼킨다.

뒷걸음질 치는 비둘기들이 스멀스멀 보이기 시작하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아마 전술의 문외한인 녀석들이 봐도 현재 자신들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쉽게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퇴각하지 않으면.’

전부 다 죽는 거야.

‘전부 다 죽는다.’

이미 뚫린 진영 속으로 아군 병력들이 꾸역꾸역 들이닥친다. 아군 병력이 점점 비둘기들과 섞이기 시작하며, 놈들을 잡아먹고 있다.

더 이상 마치 자신들의 차례만 기다리고 있는 사형수 마냥 한 얼굴을 하고 있는 놈들이 눈에 들어온다. 지금 이 시점에서 1기영이 놈들에게 무슨 명령을 내렸는지는 알 수도 없고, 알 바도 아니지만….

아마 그 명령은 놈들의 머릿속에 제대로 입력되지 않을 것이다.

결국에는….

“후… 후퇴!”

“…….”

“후퇴하라!”

“…….”

“후퇴하고 전열을 정비하라!”

치욕스러운 선택지에 손을 올리는 놈들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마치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비둘기들, 당연하지만 이미 전선에 붙잡혀 있던 비둘기들이 몸을 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놈들의 날개와 몸에 창과 검이 꽂힌다. 섣부르게 공중으로 치솟던 놈들은 순식간에 화살로 벌집이 되어 떨어지고 있다.

전쟁을 한두 번 한 놈들이 아닌 만큼, 적들이 후퇴할 때 가장 괴멸적인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됐다.’

“승리의 신이 우리와 함께하신다!!”

물론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사실상 지금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는 하지만, 가장 힘든 능선은 넘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여기서부터는 게릴라.’

놈들의 시가지 안에서 벌어지는 게릴라다. 다수의 병력들이 부딪치는 것이 가능한 환경이 아니다.

큰 길이 있기야 하지만 수도 없이 많은 좁은 길들도 있고, 층도 나누어져 있다.

하루 종일 전쟁만 했던 아군 병력들 역시, 본인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이해하고 있는 모양새.

한 번에 많은 병력들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으니 길이 나누어질 때마다 병력도 나누어진다.

물론 본능적으로 무리와 떨어지기 싫어하는 이들이 존재했던 터라, 커다란 나무에 가지가 생겨나는 것처럼 병력들이 분리되기는 했지만, 퀘스트로 직접 병력들을 분리시켜 주자 알아서 끼리끼리 뭉치고 있는 녀석들이 시야에 비쳐왔다.

“조금 이따가 보자고!”

“죽지 마라!!!”

“진짜 이길 수 있어….”

사실상 아군 병력이 비둘기 둥지를 점령하고 있는 꼴이었다. 물론 비둘기들도 비둘기 나름대로 둥지를 탈환하려고 애쓸 것이고, 실제로도 둥지의 곳곳에서 소규모 전투가 벌어지게 되겠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다.

‘1기영 어디 있어. 시바.’

지금 나는 녀석을 찾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으니까. 당연하지만 예전의 망원경으로 봐왔던 집무실에서는 녀석을 찾아볼 수 없었다. 방주가 둥지에 부딪히자마자, 아니, 이미 부딪히기도 전에 몸을 숨긴 것이 분명했다.

모습을 드러낼 때는 드러내더라도 최대한 상황이 정리된 이후가 되겠지.

물론 합리적인 판단이다.

“연수 씨.”

“네.”

“사람 좀 찾아주실래요?”

“네.”

말하지 않아도 뻔한 이야기였지만 지휘관이 이런 난전에서 인파에 섞여 있다는 건 나 죽여 달라고 외치는 것과 진배없을 테니까.

실제로도 이쪽을 발견한 비둘기들이 곧바로 창을 들고 쇄도해 오는 것이 눈에 보인다.

‘너무 대놓고 죽이겠다는 거자너.’

심지어는 원거리 공격마저 이쪽을 향하고 있는 것 같다. 푸드덕푸드덕거리면서 나오고 있는 몇몇 비둘기들은 정신착란 마법이라도 걸렸는지 게걸스럽게 침을 흘리며 다가오고 있는 중, 심지어는 언데드들도 시야에 비친다.

‘대환장 파티네. 아주. 더 이상 숨길 필요도 숨기고 싶지도 않다는 것 맞지?’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장 자체가 자연스레 난전으로 치닫고 있는 중.

“신이시여! 저 부정한 것들을 멸해 주시옵소서!”

‘그런 기능은 없어요.’

“착란 마법이다! 정화 주문을 외워!! 사제들은 정화 주문을 외우라고 제기랄!”

“대협! 대혀어어업! 저 부정한 것들을 어서 처리해 주시옵소서!!”

‘너희들 아직도 안 죽었구나.’

“어이! 조지! 이쪽으로 와! 알렉스! 젠장!!”

“절대로 물러서지 마라!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마라! 뚫어내야지 산다! 이미 퇴로가 없다는 걸 기억해!”

“시발… 씨발!! 내 다리!!!”

‘정신이 없기는 해.’

장담하건대 류한이 없었다면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비둘기들은 결코 약하지 않다.

집단으로 뭉치면 인류 쪽이 조금 더 유리할지는 몰라도, 순수한 전투능력을 비교해 보자면 엄연히 높은 레벨에 랭크되어 있는 상위 종이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 심지어 이 비둘기들은 궁지에 몰린 쥐가 아니라 궁지에 몰린 고양이다.

전쟁이, 전투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지쳐가고 있는 것은 아군 병력이다. 한 번 죽였다고 생각한 비둘기들은 다시금 몸을 일으키고 있었고, 설상가상으로 전투 외적으로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아마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이게 그냥 일반적인 전쟁이었다면, 아군 병력이 속속들이 무너져 내려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일 것이다.

“나아가라!!”

“나아가라!!! 나아가라!!! 그리하면 빛이 보일 것이다!!”

“나아가라!! 그리하면 빛이 보일 것이다!”

쟌느라는 동료를 잃은 여전사가 온몸에 창이 꽂힌 채로 피를 토하며 소리를 내지른다.

“나아가라!! 나아가라! 나아가….”

“…….”

“나아가라… 나… 나아가라….”

죽어가면서도, 계속해서 걸음을 옮긴다.

“가라… 나아… 가라… 아… 보인다… 아… 빛이… 보여… 쟌느….”

어깻죽지가 잘린 야만전사도 마구잡이로 한 손으로 도끼를 휘두르며 소리를 내지른다.

“나아가라!!! 빛이 보일 것이다!!!! 발할라!!!”

‘아니, 발할라 아니라고. 진짜.’

“발할라아아아아아아아!!!!!”

상처 입은 노병도, 창을 한 번도 쥐어본 적 없는 피난민들도, 위험할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불구덩이 속으로 스스로 뛰어든다.

“나아가라! 그리하면 빛이 보일 것이다!!”

‘알프스 너는 또 왜 그래?’

심지어 알프스마저 목이 터져라 소리를 내지른다. 그만큼 상황이 쉽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리라.

상처투성이의 몸으로 흰둥이와 함께 검을 휘두르며 성전을 치르는 병사들의 가장 선두에서 앞서고 있다.

지금 저들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내가 한 약속 때문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깨닫는다.

나아가라. 그리하면 빛이 보일 것이다. 그 문장 하나에 매몰되고, 매료되어 있다. 그게 지금 저들을 지탱하고 있었다. 쥐와 고양이의 싸움을 가능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오르고, 팔이 더 이상 올라가지 않고, 목소리가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걸음을 옮기고 검을 휘두르고, 목이 터져라 외친다.

“나아가라! 빛이 보일 것이다!”

저들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믿음과 신념이었다.

이윽고,

갑작스레 병력들을 향해 마법이 쏘아 보내졌을 때였다.

피슉! 하는 소리와 함께 하늘을 수놓은 마법들이 모조리 베어지며 사라진다. 내가 타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류한이 검을 휘두른 것이다.

‘아 진짜 시발… 갑자기 각성하지 말라고… 진짜… 반갑지 않다고….’

단순히 마법만 베는 것이 아니라, 병력 전체에게 몰려들고 있는 비둘기들을 베어 넘기고 있는 것이 눈에 비쳐온다. 다시 한번 밀릴 뻔한 전황이 뒤집힌다.

내게 이로울지, 이롭지 않을지 판단하기는 아직 시기상조였지만 지금껏 수동적이었던 녀석이 능동적으로 변하게 되니 이른 변화가 찾아온다. 문제는….

“…….”

“…….”

‘넌 죽을 거야.’

녀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비둘기들을 죽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사람들을 지키려고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장담하건대 몇 시간 안에 분명히 뒈질 것이다.

‘멍청한 새끼. 시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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