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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521화 (1,519/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521화

소실(31)

“네가 어떻게 개새끼야. 감히 김현성을 대신하려고 해?”

“…….”

“…….”

“이기영 님?”

“긴 여정? 긴 싸움? 누가 그걸 시발 너랑 하고 싶대? 내가 김현성을 완전히 잊어버릴지 몰라도 내 여정에 네가 함께할 가능성은 제로야. 이 구역질 나는 새끼야. 애초에 이 일이 누구 때문에 일어났는지 잘 알고 있는 새끼가 뭔 거지발싸개 같은 소리를 입에 담아?”

‘시바 진짜.’

“김현성의 부탁? 의무감? 변명하지 마.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도 안 나오는 새끼야. 대륙과 차원에 내가 필요하다고. 괜한 이유 들먹이지 말라고. 그 없는 머리에서 나올 수 있는 아이디어가 진심으로 그것밖에 없어? 진짜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거야. 아니면 아예 떠올릴 생각 자체를 안 하는 거야?”

“…….”

“너도 네가 뭘 해야 하는지 알고 있잖아.”

“…….”

“네가 대신 뒈지는 게 가장 이상적인 결말이라는 거, 병신이 아니고서야 알고 있어야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고. 그게 진정으로 이 대륙을 위한 길이라는 걸 깨닫는 게 자연스러운 흐름 아니냐고 이 멍청한 새끼야.”

“…….”

“병신이 아니면 당연히 네가 응당 책임을 지는 게 맞다고 말하고 있는 거야. 이 구역질 나는 새끼야. 너랑 그 거지 같은 정신과 의사가 합작으로 그 지랄을 떨다가 현성이가 갈려 나간 게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이에요. 도대체 그 모자란 머리로 뭘 어떻게 생각해야, 네가 내 옆에 서겠다는 발상이 튀어나오는 거야?”

“저… 저는… 제 말뜻은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김현성 님을 포기하겠다는 의미로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김현성 님을 되찾을 때까지 제가….”

“그러니까!”

“…….”

“시바! 왜 네가 내 옆에 있어야 하는지 묻는 거잖아요. 미카엘 님. 네? 상식적으로 그게 말이 되냐고요. 혹시….”

“네… 네?”

“혹시 저랑, 미카엘 님이랑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생각했어요? 뭐 같은 아픔을 공유하고 있다고… 동류라고… 뭐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했어요?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고,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어서, 서로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있을 거라고… 그딴 말도 안 되는 생각한 거 아니죠? 아니면 이미 당신이 한 번 겪어본 일이라, 나를 가엽게 여긴 것도 아닐 테고… 내 모습에서 과거의 자신의 모습을 보기라도 했어? 설마… 설마 정말로… 그런 건 아니지? 머릿속에 제대로 뭐가 박혀 있었으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는데 말이에요.”

“…….”

“그럴 리가 없잖아. 미카엘 님. 네? 내가 너 같은 새끼랑 비슷할 리가 없잖아….”

“이기영 님 조금 흥분하신 것 같습니다. 일단은 지금 상황이 급하니 제 말대로… 이야기는 나중에….”

“흥분? 시발! 흥분?! 지금 흥분 안 하게 생겼어? 너 같은 거지 같은 새끼가 감히! 주제도 모르고 나를 멋대로 평가하고 김현성을 대신해서 내 옆에 서겠다고 지랄 옆차기를 하고 있는데! 새끼야! 내가 흥분하지 않게 생겼냐고! 너랑 나랑은 본질적으로 달라. 김현성과도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너는 김현성을 대신하기에는 너무나도 유약하고 보잘것없다고. 병신 같은 새끼야. 왜 네가 김현성을 대신 할 수 없는지 알아? 왜 네가 이 새끼야. 정답을 떠먹여 줘도 못 얻어먹고 근처를 배회하는지 아느냐고.”

“…….”

“넌 희생해 본 적이 없어서 그래. 너 같은 새끼는 누군가를 대신해서 뒈질 용기가 없어서 그렇다고. 이 새끼야. 그래서 그런 간단한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거야. 가장 간단한 해결책도 떠올리지 못할 정도로, 그 어떤 것보다 네가 소중해서 그런 거라고… 근데 네가 현성이를 대신 할 수 있겠어?”

“저는… 다릅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럼 왜, 아직 살아있어? 왜 아직도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 하고 있는 거냐고….”

“네?”

“네가 말했잖아.”

“…….”

“1000년 전쟁인지, 시바 100년 전쟁인지, 10000년 전쟁인지는 모르겠고, 내 알 바도 아니지만 많은 동료들과 전우들 가족들을 잃고 결국에는 너 혼자 살아남았다며, 그들을 기억 속에 품고, 살아가고 있다며? 우리 솔직해지자. 아니, 솔직해지자고요. 미카엘 님. 왜 당신이… 당신만 살아남았던 것 같아요?”

“…….”

“…….”

“왜 당신만 살아남은 것 같냐고… 그야 이상하잖아. 엄청 이상하잖아. 그렇게나 오랜 시간 동안 전쟁이 이어졌는데. 왜 하필… 너만 살아남은 것 같냐고… 나는 상상하지도 못 한 일들이, 전쟁들이 수백 년이 넘도록 이어졌을 텐데… 어째서… 너만… 멀쩡하게 살아남아서 이 자리에 있었을까. 나는 알 것 같은데… 그리고 그 전쟁에서 허무하게 뒈져나간 네 전우들도 전부 알고 있을 것 같지 않아? 뭐가 이유인지?”

“그런 게 아닙니다… 저는….”

“그런 게 아니긴 뭐가 아니에요… 대충 봐도 답이 나오는데… 사실 이런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는 건 대충 예상하기도 했어. 네 성향을 보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닐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역시나 예상에서 벗어나지를 않더라고. 그거 알아 차라리 너 같은 위선자 새끼보다는 네가 잡아먹은 미켈레가 더 나아.”

“…….”

“적어도 그 멍청한 정신과 의사는 쥐꼬리만 한 신념 같은 게 있기라도 했지, 너한테는 그런 것도 보이지 않거든. 넌 인간보다도 불안정하고, 불완전한 존재야. 비겁하고, 구역질 나오는 새끼라고. 그 누구보다도 지가 소중한 새끼라고. 그런 새끼가 어떻게 희생과 부활의 옆에 설 생각을 했을까. 어떻게 감히 내 옆에 설 생각이 든 거냐고. 아니? 그것보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미켈레를 삼킨 거야? 스스로 뒈질 것도 아니면서 무슨 생각으로? 마음이 급했던 건가? 아니면… 네가 정말로 우리 대륙에서 김현성의 옆자리를 꿰찰 수 있다고 생각한 건가?”

“모든 게 오해이십니다. 절대로 저는 그런 생각 따위는 추후도 한 적이 없습니다.”

“야.”

“…….”

“…….”

“너는 내가 병신으로 보여?”

“…….”

“내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병신이라고 생각했던 거야?”

“…….”

“네가 어떻게 어떤 경위로 이 대륙에 타고 들어온 건지. 정말로 모르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 거야? 미켈레한테 너를 꽂아준 게 누구인지, 진짜로 모르고 있다고 생각한 거냐고. 미켈레 옆에 조수랍시고 달라 붙어있던 그 여자의 존재에 대해서 내가 그냥 넘어갈 거라고 생각했어? 너무 뻔하잖아. 너무 뻔하다고요. 미카엘 님. 네가 누구한테 비자를 받아서 여기에 입국했는지, 빤히 보인다고요.”

“이기영 님.”

“그래서,”

“…….”

“루시퍼는 어디에 있어?”

“…….”

“뭘 그렇게 놀란 표정을 짓고 그래요. 베니고어 이전에, 알타누스 이전에, 루키페르가 있었다는 건 바보가 아니면 다 알고 있고, 루키페르가 루시퍼라는 사실도 쉽게 유추할 수 있는 사실인데. 아니, 유추하고 말 것도 없지. 발음만 다르잖아. 그 여자가 매일 목에 걸고 있는 브로치도 육망성 모양 아니었나? 그게 그 여자의 상징 아니야? 물론 억측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런 자격도, 쥐뿔도 없는 라파엘이 맨 처음에 육망성 게이트를 탈 수 있었던 이유도 라파엘에게 그 여자의 흔적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보면 영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도 아니지 않나? 내가 너무 터무니없는 상상을 하고 있는 건 아닐 거 아니야.”

“…….”

“내가 뭐 이상한 망상을 하고 있는 게 아니잖아. 미카엘 님. 내가 지금 제일 화나는 게 뭔지 알아요? 그 여자가 우리 대륙에서 뭘 하고 있는지, 실제로 호의로 시스템을 돕는 건지 아니면 본인이 자의적으로 혼란을 초래하는 건지는 모르겠어. 사실 이 상황에서 그게 중요한 것도 아니지만… 내가 지금 화가 나는 건 너 때문에, 내가 그 여자에 대해 다시 떠올렸다는 거야. 너 때문에 이제는 루시퍼가, 내가 자신의 존재에 대해 깨닫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을 거라는 게 짜증 나는 부분이라고. 나는 끝까지 그 여자에 대해서, 네 옆에 알짱거리고 있던 그 조수의 존재와 정체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어야 한다고 이 개새끼야!”

“…….”

“물론 내가 이성을 잃었다는 것에도 지분을 주고 싶지만, 어떻게 이성을 잃지 않을 수가 있겠어?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자신은 이 사태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얼굴로, 정의로운 척, 깨끗한 척, 올곧은 척을 하고 있는데… 그래. 그래도 너한테 일말의 기대를 하기는 했어. 악마 새끼들이나 너희들이나 별다를 게 없다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네가 최소한의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었다고, 아니, 정확히는 네가 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

“결국 이 모양 이 꼴이 나버렸네.”

“…….”

“…….”

“넌 1000년 전이나, 100년 전이나 여전히 달라지지 않았고, 여전히 남에게 책임을 지기를 강요하고, 싸우기보다는 타협하는 걸 선호하고, 여전히 도망치고 숨고 싶어 하나 봐. 하기사 인간도 변하기 힘든데, 너희들이야 오죽하겠어. 너희들이 진정으로 변화를 바란다거나, 변화하고 싶었다면 차원이 이 꼬라지가 나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야. 그렇지?”

“그… 그렇지 않습니다.”

“뭐가 그렇지 않은데? 네가 이곳으로 오기 위해 루시퍼와 타협했다는 사실이? 아니면 네가 뒈지는 걸 무서워하고 책임지는 걸 무서워했다는 게? 루시퍼와는 어떻게 알게 됐을까? 혹시 그것도, 천 년 전쟁에서 네가 살아남은 것과 관련이 있을까? 너는 그때에도 살아남기 위해 결국 그 여자랑 타협했던 걸까?”

“루시퍼와 이 일은 관계없습니다. 대륙의 이상현상은 그녀가 아니더라도 벌어질 일이었고, 그녀는 시스템의 의지에 답해 게이트를 활성화한 것이 전부입니다. 오히려 2회차의 대륙을 위한 행동이었습니다. 물론 쉬이 믿으실 수 없으실 겁니다.”

“참 신뢰가 가는 이야기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리고… 이기영 님의 눈에 제가 어떻게 비칠지 역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녀가 제게 초대장을 준 것, 그리고 제가 그녀의 도움을 통해 미켈레 박사의 안에 들어온 것 역시 사실입니다. 하지만 다른 어떤 개인적인 욕망이나, 욕심, 혹은 이곳을 해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전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저는 차원의 위기를….”

“변명이 필요한가?”

“…….”

“이게 변명한다고 해서 변명이 될 것 같냐고.”

“…….”

“집주인의 허락도 없이, 집에 들어와 깽판을 치는 새끼들을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요? 강도 새끼라고 불러요. 강도 새끼라고. 루시퍼가 이 집 주인이었나? 내가 모르는 사이에 이 집 주인이 바뀐 게 아니면 당신은 엄연히 허락도 없이 남의 집에 신발 자국을 찍은 강도 새끼라고. 본인의 잘못에 대해 최소한의 죄책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면, 무릎을 꿇게 사죄하는 게 먼저야. 내가 이 집의 새로운 주인이 되겠다고 설치는 게 아니라.”

“저는….”

“네가 김현성을 대신할 수 없는 이유는 너무 많아서 차마 하나하나 열거할 수 없을 정도야. 일단 재수 없는 금발이라는 것부터가 그렇고, 거짓말을 밥 처먹듯이 한다는 것도 그래. 생긴 게 재수가 없다는 것도 한몫하고, 속이 검고 계산적이라는 건 더 그래. 그런 주제에 자신이 정의롭다고 자위하는 게 가장 웃기는 부분이지. 하지만 아까 말했다시피 가장 큰 차이점이 뭔지는 네가 더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

“이런 상황에서 김현성이었으면, 너처럼 내빼지 않았을 거라는 거야.”

“…….”

“이미 눈에 결과가 보이고 있잖아. 김현성은 뒈지려고 할 때, 너는 도망치려고 하고 있다는 거, 김현성이 받아들일 때, 너는 회피하려고 한다는 거. 네가 생각해도 김현성과 네가 다르다는 걸 알 거야.”

눈빛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 시야에 비친다. 팔은 덜덜 떨리고 있다.

“되돌리고 싶어?”

“무엇을 말입니까.”

“모든 것.”

“그게… 무슨 뜻입니까. 이기영 님….”

“네 실수들을, 아니, 당신이 지금까지 저질렀던 모든 실수를 되돌리고 싶냐고요… 미카엘 님.”

“…….”

“1000년 전쟁에서의 일도, 그리고 여기에서 저지른 일들도, 지금까지 당신의 삶에 일어난 모든 실수를 바로잡고, 고귀해지고, 깨끗해지고 싶냐고 묻고 있는 거예요.”

“…….”

“왜요. 용기가 생기지 않아요? 계속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거예요?”

“바… 바뀌고… 싶습니다.”

“결심했다면, 움직여야죠. 미카엘 님.”

“…….”

“지금까지 당신이 하지 못했던 걸, 그간의 실수들을 바로잡을 시간이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

“…….”

“…….”

“진심으로 부탁드리건대….”

“…….”

“대륙을 위해서, 현성이를 위해서, 또 당신을 위해서….”

“…….”

“희생과 부활을 위해서,”

“…….”

“…….”

“…….”

“죽어 주시면 안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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