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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524화 (1,522/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524화

조우, 해후(2)

꺼림칙하다. 불쾌한 장소였고, 불편했다.

그야 위와 같은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할 것이다.

‘연출 한번 죽이자너….’

이 모든 게 녀석의 연출된 행동이었을 테니 말이다. 싸구려 여관이나, 식당에서 떠들고 있는 저 인형들이 연출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애초에 저건 본래부터 이곳에 있던 것들이었으니까.

소품들을 활용한 녀석의 등장이야 말로 연출적인 행동이라 할 만했다. 박수를 치고 난 이후에 인형들을 멈춘 것부터, 굳이 한쪽 손에 도끼를 쥐고 2층에서 친히 행차하신 것까지.

‘너 근력 낮잖아.’

물론 송정욱을 도끼로 찍어 죽인 것은 무척 그로테스크하고 충격적인 장면이기는 했지만 녀석은 전위가 아니다.

도끼를 휘두른 것도 악에 받쳐 휘두른 것뿐이지, 저걸 들고 전투를 이어나갈 수 있는 능력 따위는 없다. 단언하건대 몇 번 풀스윙을 하다 보면 체력이 동날 것이라는 건 안 봐도 뻔했다.

애초 흑마법사인 놈이 지팡이를 들지 않고 도끼를 들고 내려온 것만 해도 속이 전부 다 보이는 개수작이었다.

‘이 새끼도 남은 게 없는 거야.’

이미 예상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했다. 자원을 쉴 새 없이 쓴 건 이쪽뿐만이 아니었으니까.

녀석 역시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많은 자원을 사용했다. 마력은 동이 났을 것이고 혹시 존재할지도 모르는 다른 자원까지 전부 소비했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다.

구태여 저런 퍼포먼스를 보이며 치고 나온 것은 어떻게 봐도 블러핑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구태여 블러핑을 하고 있는 이유는….

‘확신할 수 없구나?’

내가 자원을 전부 사용했는지, 아닌지….

‘이 새끼도 확신할 수 없는 거야.’

만약 녀석이 만전의 상태였고, 이쪽을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면 장담하건대 저런 병신 같은 이벤트를 벌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형들이 제대로 된 기능을 할 수 있는지 할 수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곧바로 싸움을 먼저 걸어왔을 것이 분명했다. 곧바로 뭐 마력화살부터 날리고 시작했겠지.

‘한 번, 아니… 두 번은 제대로 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나?’

벨리알에게 마력을 다시 한번 빌려올 수도 없을 만큼 몸이 망가진 상태일 것이다.

곧바로 녀석과 이쪽을 재단해 본 것은 당연지사.

가지고 있는 것은 연금소환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촉매 몇 가지와 한 번 발동할 수 있는 마력, 용 숨결 물약 두 개. 그리고 단검.

녀석이 가지고 있는 것은 흑마법 한두 번을 사용할 수 있는 마력, 그리고 싸구려 여관에 상주 인형들, 아, 그리고 도끼.

승률을 쉽게 점칠 수가 없다.

다른 부분은 상관이 없지만, 아무래도 도끼와 단검의 차이가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놈이 뭐 초급도끼술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초급단검술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이쪽 역시 마찬가지.

물론 놈이 체력이 조금 더 빨리 소진될 것이고, 이쪽이 조금 더 기민한 움직임을 할 수 있겠지만, 원래 개싸움일수록 무구 자체의 파괴력에 기대게 마련이었다.

적어도, 김현성에게 배운 살인검술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단검보다는 제대로 된 검이 필요했다. 이를테면 인형 중 하나의 허리춤에 걸려 있는 저런 검 말이다.

천천히 인형에게 다가간 것은 당연지사. 긴장감에 침이 넘어가기는 했지만 본래 이럴 때일수록 더욱더 자기 자신을 부풀려야 한다는 것은 녀석도 알고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손가락으로 언제든지 녀석을 짓누를 수 있는 것마냥 움직이는 것이 맞다. 녀석에게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스윽 장검을 가지고 있는 인형의 옆자리에 풀썩 주저앉는다.

“모자란 새끼. 둥지 안 보금자리에 만들어 놓은 게 고작 싸구려 여관이야?”

“네가 알 바 아니지 않나?”

“그냥 네가 불쌍해서 하는 소리야. 이 멍청한 새끼야. 왜 네가 굳이 이 곳을 만들어 놨는지 알 수 있을 것 같거든. 이제 와서 돼지 새끼를 기억하고 싶다느니, 예전 추억을 기억하기 위해서니 하는 같잖은 이유보다는 그냥 네 복수심이 풍화되지 않게 하기 위한 장치가 아닌가 싶어서.”

“…….”

“너는 부정하겠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고, 복수의 대상이라고 생각했던 이를 동정하게까지 하게 되니 다른 생각을 하지 않게 될 리가 있나. 목적과 목적지는 확실하겠지만 그것과는 별개의 이야기니까. 이런 거지 같은 싸구려 여관에 머무른다는 것 자체가 스스로가 약하다는 걸 증명하는 거야. 병신아. 도피처를 만든다는 건, 그만큼 네가 흔들리고 있다는 걸 증명하고 있는 거라고.”

“개소리하고 자빠졌네.”

녀석 역시 천천히 근처로 다가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도끼를 휘두르기 위해 사정거리 안쪽으로 들어오지 않을까 걱정되기는 했지만 이쪽을 경계하고 있는 것은 녀석 역시 마찬가지다. 너무 깊숙이 다가오지 않는 선에서 가면을 벗고 입을 여는 1기영의 모습이 눈에 비쳐온다.

“딱 하나만 맞았어. 이 새끼야. 여기가 내 복수심이 풍화되지 않기 위한 장소라는 거.”

“…….”

“당연히 뭐, 아끼는 사람들이 뒈졌다거나, 복수의 대상이라고 생각했던 이를 동정하게 되었다거나 하는 시시한 이야기는 아니고….”

“아아. 그러시구나?”

“왜,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적어도 진실을 말하고 있지 않다는 건 알겠는데. 습관을 버릴 수 있는 건 아니니까.”

“…….”

“…….”

“지금 내 옆에 있는 이 털복숭이 새끼가 누군지 알아?”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병신 새끼.”

“이름이 아마 정백수였지? 튜토리얼에서 바깥으로 나온 이후에 처음 나랑 돼지 새끼를 파티에 초대한 새끼야. 그 옆에 있는 여자도, 또 그 옆에 있는 할배도, 운도 없었지.”

“왜 처음 들어간 파티가 초보들 등쳐먹고 사는 새끼들이기라도 했나 봐. 흔한 일인데… 속은 게 병신 아니야?”

“아니야. 그냥 평범한 놈들이었어. 굳이 초보자들 등쳐먹을 만한 놈들도 아니었고, 경험도 나름대로 풍부했었고, 초보자들 사이에서는 나름 이름 날리던 놈들이었지만 뭐… 알잖아.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또 죽기 직전에 처하면, 자기 목숨이 제일 중요하다는 거. 운 나쁘게 고블린 사냥을 하다 놈들의 함정에 굴러떨어졌고, 이 새끼들은 우리를 버리고 간 거. 그게 전부야.”

“…….”

“이 버러지 새끼들을 따라간 사냥터에서, 돼지 새끼의 발목이 부러졌거든. 왼쪽 어깨는 고블린들의 단검에 난도질을 당하고, 폐를 찔려서 호흡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됐는데… 당시에 나랑 돼지 새끼가 신전에 갈 돈이 있었겠어? 싸구려 치료사랑 하급 포션이 전부였는데… 그걸로 전부 회복될 리가 없지. 가장 최악인 건 트라우마가 생겼다는 거야. 모험가로 밥 벌어 먹고살기에는 조금 치명적이지.”

“아하. 그랬어? 그것참 슬펐겠네.”

“슬퍼했겠어? 그것보다는 화가 나더라니까. 네 말대로 내가 굳이 이 싸구려 여관을 만든 건 돼지 새끼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게 아니야. 거창한 이유 같은 것도 없고… 그냥, 내 실수와 안일함을 잊지 않기 위함이고, 스트레스를 풀려고 하는 거지 뭐.”

별안간 녀석이 도끼로 정백수라고 불리는 인형의 어깻죽지를 내려치는 것이 눈에 비쳐온다.

“아아아아아악!”

곧바로 어깨를 감싸 안으며 비명을 지르는 인형이 눈에 띈다. 피가 튀고, 어깨를 부여잡는다.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다시금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행동하는 녀석을 본 이후에는 저게 프로그래밍된 행동일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참 공을 많이도 들였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체력소모 개이득.’

녀석의 체력을 소모시켰다는 것이 고무적이다. 물론 놈의 쇼맨십이 내 멘탈과 기세 싸움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기는 했지만, 그것보다는 이후 벌어질지도 모르는 전투에서 조금이라도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미 너무 멀리 왔어. 쓸데없는 걸로 고민하고, 고뇌하고, 신파 짓거리하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다고.”

“그래서, 원하는 게 뭔데.”

“완전한 멸망.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것. 처음에 널 봤을 때는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내 계획이 반쯤은 성공했다는 거니까. 아니, 네가 있으므로 인해서 새로운 가능성이 생겼다는 걸 확인한 거니까. 재시작이 가능하다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있었지만 그걸 직접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잖아? 현자의 돌도 그래서 만들기 시작한 거고, 덕분에 망설임도 없어졌지. 물론 네 말대로 많은 일들이 있기야 했었지.”

“지혜 누나가 죽었고, 카스가노 유노도 죽었고?”

“그래.”

“김현성에 대해서 차츰 이해하게 됐고? 그렇지?”

“그것도 부정하지는 않을게. 사실 지금은 김현성을 그렇게까지 증오하지는 않아. 처음부터 같이 시작했더라면, 어쩌면 이런 결말을 맞이하지 않았을 거라는 것도 대충은 예상이 가고… 내 이런 생각으로 인해서 시작된 2회차의 결과물이 너라는 것도 알고 있어. 문제가 있다면 네가 실패했다는 거고.”

“…….”

“이곳에 알타누스가 없다는 거지. 그렇지?”

‘눈치는 빠르네. 진짜.’

“참 이상하더라고….”

‘짜증 날 정도로 빠르네. 진짜.’

앞서 말했듯이 이곳에 알타누스 교단은 존재한다. 그대로 다운로드되었을 뿐이었으니 알타누스의 흔적들이 남아 있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기는 했지만….

그녀가 없어졌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하기사 그 더미기영도 지들이 더미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지 않았던가.

빗대어 생각해 보면 1기영이 알타누스가 없다는 걸 깨달은 게 그리 이상한 일처럼 느껴지지도 않았지만….

“그녀의 흔적은 분명히 있는데, 그녀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게.”

‘짜증 나기는 하자너.’

흘러가는 상황이 조금 짜증 나게 느껴질 정도로 눈치가 빠르다.

“우리가 참 추리하고 추측하는 거 좋아하잖아. 내가 재미있는 가설을 하나 들려줄게. 기영아. 현자의 돌을 어떻게 만드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본래 재료로 사용된 게 알타누스였지?”

“…….”

“지금 이곳에서 그녀가 없는 것을 보니, 한 번 쓴 건 다시 쓸 수 없는 것 같고… 네가 그녀와 비슷한 존재가 된 걸 보니까… 아마 김현성도 그녀와 비슷한 존재가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

“…….”

“아! 혹시 김현성이 그녀를 대신하려고 하는 건가 봐?”

“…….”

“그래서 네가 그렇게 김현성을 찾고 있는 거고. 응? 그렇지 않아?”

“…….”

“생각해 보면 그렇게 이상한 일도 아니야. 물론 김현성과 꽤 오랜 시간을 지낸 너만큼 내가 김현성을 이해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김현성이랑 꽤 오랫동안 똥밭을 뒹굴었던 사이니까. 전문가라면 전문가고, 그 새끼가 멍청하다는 건 대충은 알거든. 그야 대륙을 구한 영웅이시잖아. 우리 정의로운 김현성 백작. 덜 여물었을 때는… 그러니까 아직 애송이였을 때는 이리저리 흔들리고, 실수들도 많이 하고 다니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생각해 보면 걔는 항상 자기가 저지른 일에 책임을 지려고 하기는 했으니까. 그 수단과 방법이 지 마음대로라는 게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이번 일에도 책임을 지려고 하고 있겠지. 그렇지? 어떻게 1회차에 와서 자기가 저지른 일을 다시 한번 목도하기라도 했나 보네. 다른 이유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알 바는 아니고….”

“시나리오 쓰고 있네. 애초에 전제가 틀려먹었는데. 굳이 내가 네 말에 살을 붙여야 할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다. 기영아.”

“굳이 답을 바란 건 아니야. 너도 내 말을 믿지 않듯이, 나도 네 말을 믿지 않고, 본래 우리 같은 인간들은 서로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족속이잖아. 결국에는 스스로 판단해야 하고,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거지. 기영아.”

“…….”

“당장 네가 이곳을 먼저 찾은 이유도, 김현성과 나를 만나게 하지 않기 위해서고.”

“…….”

“나를 죽이고 싶어 하는 이유도, 내가 김현성을 재료로 만들까 봐 그런 것 아니야?”

‘이 새끼 그 와중에 현자의 돌은 시바 귀신같이 맹신하고 있자너.’

“나도 큰 유감은 없어. 만약 이게 본래대로 진행됐을 1회차라면, 김현성을 회귀자로 선택할 가능성도 있겠지만 어쩌겠어. 이곳에 알타누스는 없고, 현자의 돌이 될 수 있는 건 걔 하나뿐인 것 같은데. 물론 네게 다른 방법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너도 알다시피 우리는 남에게 운전대를 맡기는 걸 선호하는 편이 아니잖아. 넌 실패했고, 나는 그 실패를 반복할 생각이 없어.”

그 돌 외에는 딱히 태클을 걸 수 있는 부분이 없다는 게 다시 한번 짜증 나게 느껴지기야 한다. 그리고 놈과 협상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 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슬금슬금 장검에 손이 가기 시작한다.

“이 인형들은 전부 데리고 온 건가 봐.”

“직접 처리한 것도 있고, 무덤에서 파온 것도 있고, 만든 것도 있고.”

“무기들이나 장비들도? 뭐야. 이건 싸구려 여관에 상주하는 모험가가 착용하는 장비치고는 질이 좋은데?”

“뭐, 그 정도로 디테일하게 파고들기에는 내가 좀 바빠서. 대충 가지고 온 거지 뭐.”

“움직이기도 하나?”

“…….”

“…….”

“그럼. 움직이기도 하지.”

꽤 자연스럽게 인형의 품 안에 있는 장검을 꺼낸 것 같았지만, 내가 생각해도 부자연스럽기는 했다. 아마 녀석 역시 알고 있을 것이다. 서로 완전히 빈털터리라는 것을 말이다.

‘시바 살 떨리기는 하자너.’

도끼 살인마 역시 말을 줄이고 눈치를 보고 있었다.

가슴이 웅장해지는 개싸움이 일어날 것이라는 걸 직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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