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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528화 (1,526/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528화

조우, 해후(6)

도대체 뭐가 그리 미안하길래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1기영의 반응에 무척 당황한 돼지의 얼굴이 눈에 보인다.

당연하지만 깜짝 놀란 얼굴이다. 박덕구의 입장에서는 갑작스레 잘 지내고 있던 형님이 넝마가 된 모습으로 미안하다고 중얼거리며 눈물을 펑펑 쏟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얼마나 놀랐겠는가.

심지어 1기영은 반쯤은 패닉 상태로 진입한 것으로 보인다.

장담하건대 본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그저 울면서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는 것이 전부다. 마치 고장 난 것처럼 말이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1기영 자신이 만들어 놓은 인형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흐으윽… 흐어어으으윽… 끄으으으으윽….”

“아니… 뭐… 지금 이게… 무, 무슨 일 있는 거요? 아니, 여기서 뭔 일이라도 있었던 거냐니깐… 울면서 미안하다고만 말하지 말고, 도대체 대관절 무슨 일이 있었는데 이야기를 해야지 내가 뭘… 뭘 해야 할지 알지….”

“흐…으으으윽… 흐어으어엉….”

“거. 알았다니까. 그… 그만 우쇼. 좀….”

“흐으으으엉… 흐어어어으으으윽… 미아내에… 미… 미안….”

“알… 알았다니까. 뭐가 그렇게 미안한지는 모르겠는데, 형님은 뭐, 나한테 미안할 것도 없고, 빚진 것도 없소.”

“흐으어어으으응… 흐으으으윽….”

“거, 무녀님 우리 형님 와인을 너무 많이 잡수신 거 아니요? 술 냄새는 안 나는데… 거 알았소… 알았다니까. 이리 오쇼.”

‘이 눈치 없는 새끼야. 카스가노 유노도 좀 신경 써주고 그래라.’

어떻게 생각하면 2회차에서도 유일하게 자신을 기억하고 있는 이가 아니었던가. 심지어 돼지 새끼를 이쪽으로 모시고 온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1기영의 눈에는 카스가노 유노가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하지만 슬쩍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자신에게 신경을 써주지 못하는 게 딱히 섭섭하게 느껴지기도 않았던 것 같다.

아니, 섭섭하기보다는 1기영을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야 고대하고 고대하던 순간이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었던가. 심지어 몇 발자국 뒤에서 살짝 눈물을 훔치고 있기까지 하다.

그 얼굴에는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던 안도감, 심지어는 이쪽에 대한 감사함까지 보이고 있었다.

그녀 역시 1기영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이 2회차를 기다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생각해 보면 박덕구와의 만남을 주선한 것은 1기영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1기영 이 새끼는 그 선물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마치 어미 코알라에게 달라붙은 새끼 코알라마냥 박덕구에게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중이다. 마치 손이라도 놓으면 돼지 새끼가 어딘가로 도망갈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새였다.

박덕구 역시 그런 이기영을 바라보고서는 한마디 얹는다.

“우리 형님 많이 외로우셨나 보오.”

울면서 안겨 오고 있으니 일단 당황스럽더라도 녀석을 위로해 주고 싶은 모양이다. 지극히 박덕구다운 반응이었다. 문제가 있다면….

“흐으으으윽… 끄으으으윽… 미아내….”

“거, 알겠다니까.”

“흐으으윽… 으윽… 으으으으윽….”

“이제 안심하쇼. 내가 여기에 있으니까.”

그 시간이 너무나 길었다는 것이었다.

‘너무 오래 우는 거 아니냐고. 웬만하면 스킵 좀 해줘.’

벌써 몇 분이나 저기서 질질 짜고 있는지 모르겠다. 물론 녀석이 오랫동안 기다린 시간을 생각하면 저런 반응도 이해가 가기는 했지만, 시바 너무나도 하염없이 울고만 있는 중.

이쯤 되면 눈물샘이 마를 만하건만 여전히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다. 사실 놈의 목적은 돼지 새끼의 위로를 받는 것 그 자체가 아닐까.

“흐으윽….”

‘아니, 알았다잖아. 이제 그만 좀 해.’

아마 어떤 말을 해도 녀석에게는 들리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 마음을 정리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어 보인다.

별안간 녀석이 정신을 차린 것은….

‘그래. 지도 민망하기는 할 거야.’

그로부터 꽤 많은 시간이 흐른 뒤였다.

“…….”

“…….”

‘봐. 진짜 민망할 것 같자너.’

슬그머니 정신을 차리자마자 부끄러워하는 녀석. 여기저기 눈치를 보다 별안간.

“냄새나잖아….”

라고 중얼거린다.

‘내가 다 도망치고 싶네. 시바.’

“뭐… 뭐라고 했소? 형님.”

“냄새… 난다고! 돼지 새끼! 좀 씻고 다니라고 했지!”

오히려 박덕구를 파악 밀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저렇게 반응을 보이면 이전에 보였던 추태가 사라진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당황하는 박덕구를 보니 일부 먹혀든 것 같기는 했지만 돼지 새끼는 속여도 자기 자신을 속일 수 있을 리 만무하다.

‘돼지 새끼 상황을 모를 리도 없고 말이야.’

돼지 새끼는 그간 훈련의 결과물로 훌륭한 개인위생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마치 기계처럼 말이다.

정신없이 여기까지 달려오느라 아마 제대로 쉴 틈도 없었을 것이 분명, 1기영 녀석이 그런 사정을 모를 리가 없지 않은가.

이 모든 게 본인의 얼굴이 벌게진 것을 감추기 위한 개수작이었지만 그런 사정을 알 리가 없는 박덕구는 필사적으로 변명 아닌 변명을 하고 있었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거, 분명히 원정 중이었는데, 갑자기 무녀님이 따라오라고 하더니… 나도 영문도 없이 이곳으로 끌려온 거라… 씻을 시간이 없어서… 진짜 냄새나나?”

“아! 유노.”

‘이제야 깨달은 모양이자너.’

하지만 카스가노 유노에게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물론 그녀의 모습을 다시 본 건 녀석에게도 충분히 기쁜 일이겠지만, 아무래도 1회차와 2회차를 분리하지 않는 것은 돼지 새끼에게만 통용되는 이야기였던 것 같았다. 심지어 카스가노 유노는 시바 1회차의 기억을 일부 계승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하는 카스가노 유노와 그런 유노를 바라보는 1기영이 눈에 띈다. 간단하게 하는 눈인사에 여러 가지 감정이 담긴 것 같기는 했지만 그 시간은 찰나였다.

녀석은 다시 한번 돼지 새끼에게 시선을 돌린다.

“밥은 먹었어?”

“아! 그러고 보니까.”

“그럼 올라와. 밥이나 먹게.”

‘코리안이기는 해.’

“물… 물론 나야 좋기는 한데. 지금 상황에서 밥을 먹는 게 맞나. 형님… 형님이 아는지 모르는지 잘 모르겠는데. 지금 밖이 난리가 아니라니까! 아니, 이럴 게 아니라 물어나 봅시다. 도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었던 거요? 아니, 그리고 방금은 대체 뭐였소? 물어보기 조금 민망하기는 한데, 이게….”

“그것보다, 배 안 고파?”

“아니, 배는 고프지. 근데 지금 밥이 문제가 아니라니까! 무녀님도 뭐라고 말 좀 해보쇼. 지금 밥 먹을 정신이 있나 없나.”

“안 먹을 거야?”

“주면… 주, 주면 먹기는 하겠지만….”

“그럼 올라가자.”

“…….”

“…….”

‘와. 이 새끼 하다 하다 이제 요리까지 하려고 하자너.’

내 새끼에게 직접 한 끼 먹이겠다는 마음가짐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간에 곧바로 주방으로 향하는 모습이 비친다.

화들짝 놀란 돼지 새끼 역시, “어? 형님이 직접 하려는 거요?”라고 의문을 표하고 있다.

직접 뭘 만든 지 오래됐으니 아무래도 박덕구의 입장에서는 여간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던 모양, 아니나 다를까 돼지 새끼도 손을 보탠다. 1기영도 딱히 제지하지는 않는다. 아무래도,

“이,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자꾸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다면서 이 새끼 자연스럽게 손이 가자너.’

“손 씻었어?”

“어?”

“이 돼지 새끼. 요리하기 전에 손은 좀 씻으라고!”

“아 아!! 아 씻었소! 아까 분명히!”

“왜 지가 손을 씻었는지 기억을 못 해?”

“아니, 너무 정신이 없으니까 그렇지! 갑자기 대뜸 주방으로 들어와서 요리를 하지 않나! 갑자기 막 울지를 않나… 그… 그건 그렇고 뭘 만들려고 하는 거요?”

“고기 넣고 채소 넣고 볶으면 그게 요리지 뭐.”

“아! 여기 빵도 있네!”

“꺼내 놔. 빵은 안 잘라도 되지?”

“그럼! 한 손에 쥐고 뜯어 먹는 게 국룰 아니요! 내, 내가 뭐 할 거는 없나? 아. 이거 고기 스튜라도 끓여야겠다니까!”

“…….”

“나도 옆에 불 좀 씁시다.”

박덕구야 언제나 주변과 잘 융화되기 때문에 저 배경과 잘 어울리기는 했지만, 1기영 녀석도 나름 익숙해 보인다.

아마 식비를 줄이기 위해서 주방을 쓰지 않는 시간에 여관의 주방을 자주 빌렸던 모양이다.

싸구려 여관치고는 꽤 좁은 주방임에도 불구하고, 동선 활용이 남다르다. 당연하지만 요리하는 것 자체도 익숙해 보인다.

지구에서 있었던 것보다 더 일취월장한 모습이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돼지 새끼가 많이 쳐먹는다는 것을 당연히 알고 있는지라 한꺼번에 여러 가지들을 만들고 있다.

심지어 잠깐 고민하다 야채도 꺼내고 있는 모습, 아마 박덕구는 그다지 손을 대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을 위해 일단 먹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놈의 목적은 박덕구에게 뭘 먹이는 것이 아니다. 그냥 돼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놈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뭘 하고 있는지, 그냥 박덕구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게 목적일 것이다. 당연히 첫 질문은 가장 궁금했던 것부터.

“결혼은 언제 한다고 했었지?”

“아마 올해 안에는 하지 않을까 싶은데 말이요. 정연 씨는 좀 서두르고 싶어 하는 것 같기는 한데 자꾸만 상황이 꼬여서… 뭐, 나는 사실 형님이랑 하얀이 누님이랑 결혼한 다음에 하려고 했었지! 어떻게 형님이 안 갔는데! 내가 먼저 가겠소?”

“나랑? 정하얀이랑 결혼을 한다고?”

“그럼. 안 할 생각이었소?”

“…….”

“…….”

“하얀이 누님이 형님만 보고 산 지가 벌써 몇 년인데… 그러면 안 된다니까!!”

“어?”

“말해보쇼! 정말 결혼 안 할 생각이었소?!”

“아니….”

“진짜 실망할 거요!”

“아니, 결혼은 하지… 근데… 그냥….”

‘그걸 왜 네가 대답해? 시바.’

“그리고… 정연 씨는… 황정연… 아… 황정연?! 마도학자 황정연!?”

“뭐 문제 있소?”

“아니…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파란… 길드의… 그 황정연… 그래… 걔 좀… 이상하기는 했었지… 아니, 이상하기보다는 별나… 아니… 괜찮나. 오히려 잘 어울리는 느낌인가? 아니… 이런 타입 좋아했었나.”

‘자꾸 혼잣말하지 마. 이 새끼야. 돼지가 이상하게 쳐다보잖아.’

그만큼 충격을 먹은 것처럼 보인다.

“걔가… 어땠었지… 아니….”

“형님! 탄다니까! 전부 다 탄다니까!”

“황정연… 별다른 문제는 없었지? 그래… 좋은 느낌이기는 한 것 같기도 하고… 황정연… 으음… 황정연… 책만 보는 샌님인 줄 알았는데… 그래… 여기서도 제법 퀄리티 좋은 논문들도 많이 냈으니까… 음… 논문 이름이 기억이 안 나는데….”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요?! 아 진짜!”

“그 여자가 이상한 약 같은 거 많이 먹이지는 않고?”

“뭐 영양제 같은 거라고 많이 주기는 합디다. 아니, 근데 왜 갑자기.”

“아니, 그럴 리는 없겠지만… 황정연이라… 하아….”

‘나도 돼지 새끼를 아끼기는 하지만 얘는 진짜 남다르기는 하자너.’

객관적인 판단이 안 되는 지경까지 가버렸다. 아마 오랜만에 만났기 때문에, 그리움 때문에 미쳐서 돼지 새끼를 상향평가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처구니없게도 돼지 새끼에게 황정연이 아깝다고 여기고 있는 모양이다. 자꾸만 그녀를 탐탁지 않아 하는 느낌이 든다면 기분 탓일까.

‘시바 이 새끼 쳐 돌아가지고…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거지. 오히려 시바 황정연이 돼지 새끼 데려간다고 하면 감사하다고 절하면서 보내야 되는 수준인데.’

이 쓰레기 같은 1회차에서도 논문을 몇 개 냈다는 게 그녀를 설명한다. 물론 얘가 조금 독특하기는 하지만… 2회차에서도 어마어마한 양의 논문을 게시하고 대륙 마도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 바로 황정연이 아니었던가.

딱히 전투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대륙민들의 편의와 기술 발전을 위해 낸 논문도 수두룩하다.

솔직히 나도 돼지 새끼를 아끼고 사랑하는 입장이지만, 틈만 나면 박기리와 어울리며 사고 아닌 사고를 치고 다니는 녀석에게 황정연이 다가갔다는 게 기적이다.

‘시바 무조건 황정연이랑 결혼시켜야 돼. 이 멍청한 새끼야. 괜한 소리 하지 마.’

심지어 손가락으로 허벅지를 툭툭 두드린다.

어처구니없지만 꽤 중요한 분기점이 온 것 같다. 혹시 누가 알겠는가. 이 미친놈이 황정연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2회 차를 지켜주지 않을지 말이다. 물론 그럴 확률은 희박하겠지만 진심으로 눈빛이 심상치 않아 보인다.

“…….”

“…….”

“황정연… 하아….”

‘이 새끼 진짜 쳐 돌았나 봐.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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