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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529화 (1,527/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529화

조우, 해후(7)

얼굴 표정만 봐도 박덕구의 연애사에 진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표정 봐. 시바 진짜.’

설마 설마 하기는 했지만 정말로 박덕구의 결혼이 이번 일의 마지막 분기점인 것일까. 1회차의 황정연이 흑화하기라도 했던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하기사 1회차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그런 상황이 이상하게 생각되지도 않는다. 대륙민이나 모험가에 대한 복지 같은 것보다는 전쟁기술과 마법에 발전이 우선시 되는 환경이었으니까.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연구했던 황정연이, 어떻게 하면 인간을 효율적으로 죽일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를 하며 매드 사이언티스트적인 면모를 드러냈을 확률이 분명히 존재한다.

거기에 플러스로 지나치게 돼지를 상향 평가하는 것 같은 느낌. 대충 봐도 박덕구의 성장 상태와 걸치고 있는 아이템 같은 것들이 눈에 보이고 있을 테니, 1회차의 박덕구보다 2회차의 박덕구를 더 높이 평가하는 게 맞다고 판단하고 있는 모양이다.

‘마음의 눈도 가지고 있을 테니까. 전부 다 보이고 있겠지.’

이전과는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아니나 다를까 결혼정보회사의 평가원마냥 박덕구의 스펙을 일일이 확인하던 녀석의 얼굴에 놀라움이 서린다.

그야 성장할 거라고는 생각했겠지만 자신만의 아기 돼지가 이 정도로 성장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 같았다.

‘그래. 그건 나도 예상 못 했어.’

녀석을 남겨두고 가지 않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해왔던가. 몸에 좋은 거 있으면 찾아다 먹이고, 여러 가지 이벤트도 해주고, 탱커인 만큼 아이템과 장비에 쏟은 돈도 천문학적이다.

과장하지 않고 녀석이 걸친 것 중에 명품이 아닌 것이 없다. 웬만한 중소 길드 하나를 인수할 수 있었을 정도, 녀석이 먹은 영약도 구태여 환산하자면 중소 길드 서너 개 정도는 들어갔을 것이다.

처맞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재능 없는 탱커를 위해 투자한 것치고는 말이 되지 않을 정도의 금액이라는 거다.

그나마 본인이 의지가 있어 한 번 더 벽을 넘었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어처구니없는 투자가 될 뻔했다.

1기영의 놀란 얼굴을 보니 괜스레 콧대가 올라간 것은 당연지사. 깜짝 놀란 녀석은 갑자기 요리를 하다 말고 박덕구의 팔뚝을 주무르기 시작한다.

“흐음….”

“뭐… 뭐요. 갑자기 왜 그러쇼?”

근육에 대해서는 쥐뿔도 모르는 주제에, 이전보다 한층 더 밀도 높아진 내구 스탯과 근력 스탯을 확인해 보려는 것이다.

“음….”

“아니, 갑자기 왜 그러는 거요. 나 참….”

심지어 장비들도 확인하고 있는 모습은 가관,

“사냥 가는 게 무섭지는 않고?”

“도대체 언제 적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는데, 이 박덕구 처음부터 방패를 드는 일에 두려움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았소.”

“그렇구나. 역시 우리 돼지 새끼. 아, 근데 너 정도면 아마… 위에서 몇 번째….”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는데.”

“대륙 탱커들 기준으로 위에서 몇 번째냐고 묻고 있는 거야.”

“그, 그런 건 잘 모르겠는데… 그게 중요한 거요?”

“크게 중요하지는 않지만….”

‘속물근성 어디 안 가기는 해. 꼭 순위를 매겨야 하는 거냐고. 시바.’

내가 키운 돼지 새끼이니 단언하건대 열 손가락 안에는 들어갈 것이다.

방어력과 내구력만으로 평가하자면 무조건 대륙 1위, 물론 모든 스탯, 경험을 환산하고, 전투기술 같은 것까지 따지고 들어가면 조금씩 순위가 내려가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 네 번째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위에 네 놈 재끼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장비는 더 좋아질 거고, 돼지도 학습하면 배우기는 하니까.’

참고로 돼지 새끼 교육비에 들어가는 돈도 만만치 않다.

“아. 널 따르는 돼지들이 몇 명이야?”

“아아아. 우리 형제들!”

“그래! 형제들!”

“셀 수도 없이 많지! 다들 형님이랑 한번 만나보고 싶어 하는데, 형님이 매번 나오기 싫어하니까! 좀 같이 나와서 땀도 흘리고, 같이 어? 술잔도 기울이고, 사우나도 하고, 어? 그러면 좀 좋소!”

‘내가 시바 그 돼지들 모임에 뭣 하러 나가.’

아마 1기영 역시, 그 모임에는 나가지 않을 것이다. 땀을 주룩주룩 흘리며 바벨이나 들어대는 돼지 새끼들 사이에 끼는 것으로 모자라 놈들 체취에 질식하며 땀 흘리는 취미 따위는 우리 둘 다 없다.

“다음 모임에는 무조건 나갈게. 그러니까 몇 명이냐고.”

‘시바 그거 내가 나가야 되는 거잖아.’

“그야… 그야 셀 수도 없이 많지! 린델에서 내가 다니는 체육관에 사람들이 제일로 많다는 거 아니요!”

“아아 그래? 그렇구나! 하하하핫! 그렇구나!! 와!!! 대단하네! 우리 돼지 새끼!!!!!”

“흠… 흠… 뭐 내가 좀 대단하기는 하지!”

“대륙에서는 몇 번째로 많아? 아니, 그건 모르려나. 최소한 린델에서는 제일로 많다 이거지!”

“그렇소! 뭐 정확히는 잘 모르겠는데 사실 확실하지도 않고… 큼. 여기저기서 같이 운동하고 싶어서 찾아오는 형제들이 많다니까. 연방에서도 많이 오고, 뭐 실리아에서나 다완에서도 많이….”

“다른 지역에서도 찾아온다고?!”

“뭐. 린델이 그만큼 좀 좋으니까 사람들이 찾아오는 거겠지만….”

“아니! 굳이 린델에 가서 왜 거지 같은 체육관을 가겠어? 다 너 보러 가는 거지. 새끼야!”

“아아. 흠… 흠… 그런가?”

“그래! 그래! 대단하네! 장하다! 돼지 새끼야!”

“오늘따라 왜 이렇게 칭찬을 해주는지 모르겠는데… 큼… 이게 칭찬받을 거리인지도 모르겠고… 뭐 아무튼 체육관에 사람이 바글바글 하니까 운동할 맛도 나고 좋다니까. 형님도 꼭 오기로 약속한 거요?”

“당연히 나도 가야지!!”

‘시바 그러니까 안 간다고.’

“진짜로 약속한 거요?!”

“그래! 약속! 무조건 약속이지!”

‘진짜 기분 좋아 보이네. 새끼.’

세상을 다 가진 얼굴이 이러할까. 지 새끼가 전교에서 1등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해 듣고 있는 헬리콥터 맘의 얼굴을 하고 있다.

“그런데 장비 관리는 제때 하고 있는 거 맞지?”

“아암! 자기 장비는 자기가 직접 관리해야 한다는 거 아니요!”

신경 쓰이는 것도 많은가 보다.

“보조 장비들도 잘 관리하고 있고?”

“큼….”

“매일매일 관리해 줘야지! 새끼야! 언제 들고 갈지 모르는데! 네가 지금 쓰고 있는 장비들이 박살 나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아… 알았다니까!”

잔소리를 하면서도 기뻐 보이는 얼굴을 감추기가 어렵다. 지 손바닥이 아픈 줄도 모르고 박덕구의 등을 팡팡 두드리고 있었고, 입가에는 미소가 서린다. 문제가 있다면… 딱 하나.

놈의 머릿속에서 박덕구가 지나치게 상향 평가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내 새끼가 전교에서 1등도 하고, 능력도 좋고 돈도 많이 버는데 뭐가 아쉬워서 황정연과 결혼을 하느냐는 얼굴이다. 솔직하고 담백하게 재수 없이 느껴질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내가 저렇게 표독스러운 시어머니의 얼굴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이야. 만약 황정연과 녀석을 단둘이 내버려 둔다면 당장에라도 백지수표를 내밀며 박덕구와 헤어질 것을 종용할 것 같았다.

“…….”

“…….”

“다… 다른 사람은… 있나?”

“다른 사람이라니….”

“그냥 자주 연락하는 사람이라든지… 다른 뜻은 없고, 그냥 원체 대륙이 연애관이 자유로우니까. 주변에 좋은 사람들 많을 거 아니야. 여기저기서 소개해 주려고 하기도 할 거고… 우연히 만난 사람들도 있을 거고.”

“형님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이 박덕구! 일편단심이라니까!”

“아니, 네 순정을 무시하는 건 아니고 혹시 그런 상황이 없었냐고 이야기하는 거잖아! 돼지 새끼야!”

“크흠… 그렇지 않아도 그런 경우가 있기는 했었소.”

“뭐?!”

‘뭐?!’

“물론 뭐 형님이 생각하는 그런 나쁜 일은 아니고, 아는 후배 중에 한 놈이 하도 사람을 소개시켜 준다고 어찌나 그렇게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던지. 물론 내가 누구요! 절대로 그럴 일은 없다고! 못을 박았다는 거 아니요! 근데! 이 배은망덕한 놈이 함정을 파 놓은 거 아니겠소! 강원도 연애박사 박덕구! 척하면 척이지! 형제들끼리만 모이기로 한 술자리에! 떡하니! 다른 여성이 앉아 있었다니까!”

나도 듣지 못했던 이야기다. 자연스럽게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래?! 어떻게 그런 일이! 그래서? 걔는 누군데?!”

“뭐 잘은 모르겠는데… 어디 어디 마탑에서 수석 졸업을 했다고 하드라고.”

“수석 졸업… 어! 대륙민이야?”

“아니, 지구 출신이고… 마도 왕국에서 뭐 궁정 마법사를 잠깐 했다고 했다가 다시 돌아왔다고 했던가….”

“마도 왕국 궁정 마법사!? 그래! 스펙은 괜찮네! 아니, 궁정 마법사면 귀족 작위도 있겠는데? 그렇지? 귀족이겠네! 변방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귀족은 귀족이지!”

‘이 새끼는 그냥 옛날 사람이라서 무조건 귀족이면 최고인 줄 알자너. 교국은 그런 거 없어. 시바. 아직도 김현성 백작 시대인 줄 아나.’

“교국으로 돌아와서는 어디였더라… 회색 마탑의 교수직을….”

“아 회색 마탑… 나쁘지는 않은데 좀… 밸류가 낮네. 그래도 커리어 자체는 괜찮은 것 같은데? 일단 열심히 한다는 게 중요한 거니까. 커리어는 쭉 이어나가고 결국에는 시작보다는 도착지가 중요한 거니까. 그렇지?”

“나야 그런 건 잘 모르지! 그냥 그런갑다 했지. 회색 마탑이 좀 안 좋은 마탑인 거요?”

“안 좋다는 건 아니고… 일단 국립이기는 하니까. 근데 사실 좀 아쉽기는 하지… 그래도 그렇게까지 나쁘게 보지는 않아. 여기저기 나돌아다녔다는 게 마법사치고는 활동적이라는 거니까. 원래 덕구야. 마법사들은 보통, 바깥에 나 돌아다니는 걸 별로 안 좋아하잖아. 연구에 지나치게 몰두하다 보면 그럴 수밖에 없고, 나도 그걸 일부 이해하기는 하지만 많은 마법사들이 생활고에 시달리는 이유가 뭐겠어? 연구 말고는 다른 건 신경 쓰지 않는 마법사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

“큼… 그… 그런가?”

“그래. 그런 의미에서 자기 커리어를 먼저 생각한다는 건 충분히 메리트가 있는 거라고.”

“…….”

“그리고… 덕구야. 귀족이 최고다.”

“어… 최고인 거요?”

“그래. 귀족이 최고야. 여기는 무조건 귀족이야.”

‘아, 진짜 얘한테 이상한 거 사상주입 좀 시키지 마. 진짜. 요즘은 작위 돈 주고도 사요.’

“아… 아무튼 간에 이름은 기억나?”

“아! 이름… 이름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조금만 더 잘 기억해 봐.”

마도 왕국의 궁정 마법사, 회색 마탑에 교수직을 역임할 정도라면 1회 차에서도 이름을 날릴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 실제로도 그렇고 말이다.

이쪽 역시 궁금증이 인다. 물론 내가 모든 인재를 전부 다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생각해도 커리어가 나쁘지 않다.

특히나 마도 왕국에서 궁정 마법사로 지냈다는 것이 꽤 인상적이다.

정하얀의 등장과 교국의 전폭적인 지원에 왕국연합이 조금 주저앉기는 했지만 그래도 마도 왕국이 아니었던가.

여전히 유능한 마법사들을 배출해내는 장소였고, 공화국과 교국을 제외하면 여전히 굳건한 포지션을 유지하고 있었다. 아직도 교국 내에서도 마도의 근본은 마도 왕국이라며 유학을 가는 이들도 많다. 당연히 공화국도 다르지 않고 말이다.

“…….”

“하아… 이름이 기억이 안 나는 데… 아아… 으….”

“아 쫌!”

“아! 기억났소!”

“그래? 누군데?”

“미로… 라고 부르라고 했던가?”

“미…로?”

‘미…로?’

“미… 미로? 미로? 도미로?”

“성이 도 씨인지는 모르겠고… 그냥 미로라고….”

“…….”

“…….”

‘걔 시바 여단원이잖아. 시바 마도왕국에서 불법 실험하다가 쫓겨난 거 아니야? 아니, 2회차에서도 살아 있기는 했었구나?’

1기영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갑작스레 벌떡 일어나는 모습이 눈에 비쳐왔다.

“시바! 미친! 죽일!!”

“아… 아니 왜 그러쇼! 갑자기!”

“붉은 머리 트윈테일에 맨날 마스크 쓰고 다니는 그 미로 말하는 거 맞아?!”

“어?! 형님도 알고 있었소?”

“그… 그 여자랑은 말도 섞지 마! 시바! 돼지 새끼! 알아들어?!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말도 섞지 말라고!! 가까이 다가가지도 마! 시발! 아니 회색 마탑 근처에도 가지 마!”

“아… 안 할 거요… 안 한다니까! 애초에 그럴 생각도 없는데….”

“그, 그래… 그래! 황정연이랑 빨리 결혼해! 최대한 빨리 결혼하라고!”

“안… 안 그래도 올해 한다고 말했는데….”

무슨 역병이라도 온 것 같은 표정이었다. 하기사 나도 얼굴이 굳어지는데 여단과 한솥밥을 먹던 녀석이야 오죽할까.

1회차 붉은용병에서도 단원들을 상대로 생체실험을 하다 도망치고, 그 이후에 여단에 들어가 밥 먹듯이 불법 실험을 자행한 그녀, 그녀와 함께 지내는 동안 1기영은 내가 상상하는 것보다 많은 것들을 봐왔을 것이다.

여단 내에서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평범남이랑 뭔가 있었던 것 같았는데 여단에 들어갈 기회가 없었던 이곳에서는 박덕구에게까지 시선이 닿았던 모양이다.

‘시바 왠지 돼지 새끼 데리고 실험하려고 구멍 파놓은 것 같자너.’

“도미로? 도미로라고? 씨발! 진짜!”

“아니, 형님… 진정 좀… 알았다니까! 알았으니까! 좀 밥부터 먹읍시다! 좀!”

“아! 아… 그래? 배고프지?”

황정연이 얼떨결에 시어머니의 인정을 받은 것 같아 기쁘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박덕구가 눈에 띈다.

‘저 은근히 눈치 빠른 새끼가 모를 리가 없는데….’

눈앞에 있는 이기영이 2기영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머릿속을 스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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