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538화
조우, 해후(16)
저도 모르게 바깥을 바라보니, 노을빛이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여느 때와 같은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두 손을 모으고, 시끌벅적했던 분위기가 어느새인가 가라앉는다. 모두가 하늘을 조용히 바라본다.
정하얀 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차이점이 있다고 한다면 하늘을 가로지르는 노을을 바라보며 실실 웃고 있었다는 것뿐이다. 분명 처음에는 이렇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느 때는 눈물을 줄줄 흘리기도 했고, 또 어느 때는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 틀어박히기도 했다. 원래 상태가 조금 불안정할 때면 보통 그런 모습을 보여주었던지라 그런 행동들이 그리 이상하게 느껴지지도 않았었지만 확실히 최근 보여지는 모습은 조금은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갑작스레 과하게 밝아진 모습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이 마치 손바닥을 뒤집은 것 같은 극단적인 변화였던 터라 한동안은 적응이 되지 않았을 정도였다.
“히… 히히… 헤헤….”
노을을 바라보며 넋이 나간 듯이 웃고 있지 않은가.
마치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보고 있는 것 같은 표정이었던지라 괜스레 마음이 복잡해진다. 거기에….
“봐. 소라야.”
“네?”
“역, 역시… 다들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지?”
“네…? 아… 네. 그런 것 같은데… 죄, 죄송해요. 사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
“역시 소라도 아직 기억하지 못하고 있구나.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마. 곧 소라도 기억하게 될 테니까.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약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해도 내가 소라는 특별히 기억할 수 있게 만들어 줄게.”
“아아… 네.”
“다, 다, 다들 오빠를 잊었어. 다시 생각해 봐도 너무 로맨틱한 것 같지 않아?”
“네? 도대체 어떤 부분이 로맨틱한 건가요?”
“모든 사람들이 오빠를 잊었는데, 나만 오빠를 기억하고 있잖아.”
‘그러니까. 그 오빠라는 사람이 도대체 누구냐고.’
이해하려고 해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자신의 행동이었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분명히 어떤 위화감이 있다. 분명히 알고 있었던 것이었는데, 모르는 것을 당연시하게 되어버린 것 같다.
기억 한구석에 공백이 있다는 게 느껴진다. 아니, 사실 어느 순간부터는 정하얀 님의 저런 행동들이 딱히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루가 지나면, 아니, 잠깐이라도 생각의 끈을 놓아버리면 다시 이 모든 것이 다시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최소한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정하얀 님의 행동들에 공감하게 된다.
더욱더 이상했던 것은 자신만 이런 위화감을 느끼는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던 길드원들도 간혹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길드마스터와 부길드마스터의 집무실을 기웃거리기도 했으니까.
단언하건대 앞에 쌓여 있는 업무 보고서 때문이 아닐 것이다. 무언가 의아함을 느끼면서도 서로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을 뿐이다.
어느 순간부터 마치 말하지 않는 것이 당연시되는 것처럼 되어버렸다. 애써 그 공백들을 모른 체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소라 역시 이상하다는 건 알고 있구나?”
“아니요. 저는… 저는… 저는… 잘 모르겠어요. 정하얀 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시는 건지….”
“머리가 아프면 너무 애쓰지 마. 그렇지 않아도 괜찮고… 아마 조, 조, 조금만 있으면 분명히 기억하게 될 테니까. 내가 오빠한테 부탁할게.”
심지어는 이런 이상현상들은 길드 내에서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전 대륙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란다. 갑작스레 우울증을 호소하고 있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통계가 나오고 있지 않았던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아마 자신과 같은 현상을 겪는 이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실제로도….
“너. 내 동료가 되라!”
‘봐… 확실히… 요즘 이상한 사람들이 많아지기는 했잖아.’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간 본적이 없는 얼굴이 시야에 비쳤다.
‘이것도 우울증의 일종일까? 대륙민들이 단체로 정신질환에 시달리고 있다는 게 정말 사실이었나 봐.’
그동안 애써 외면했지만 자신의 눈으로 직접 목도하게 되니 머릿속이 더 복잡해진다. 역시 무언가 방책을 마련해야 하는 걸까.
괜스레 안쓰러운 눈으로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게 되는 것이 당연했다. 왠지 모르게 불쌍해 보였던 탓이다.
마치 옛날 동화책에서 본 것 같은 용사 같은 복장을 입고 있었고 얼핏 맑아 보이는 눈에는 뭐라고 설명하기 힘든 광기가 묻어 나오고 있었다.
“네가 대마법사라고 불리는 정하얀 맞지? 본디 용사에게는 그에 맞는 마법사가 필요한 법이지.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할게! 부디 나의 멀린이 되어주지 않을래?”
‘어떻게… 해… 진짜 미친 사람인가 봐.’
심지어 눈앞에 있는 게 대마법사 정하얀 님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모양새다. 자칭 용사는 자신의 가슴을 탕탕 두드리며 다시 한번 말을 이어나간다.
“아. 자기소개가 늦었구나? 나는 성지훈이라고 해. 대륙에게 선택받은 용사고. 튜토리얼을 끝낸 지 얼마 되지 않았지. 물론 내가 이상해 보이기는 할 거야. 이곳에서는 분명 회색빛의 용사도 있고… 지금에 와서 무슨 용사냐고 누군가는 반문할지도 몰라. 하지만, 오히려 이런 시기이기 때문에 용사가 더 필요해. 지금의 대륙이 얼핏 보면 평화로워 보일지는 몰라도 언젠가는 큰 위협이 닥쳐올 게 분명하거든….”
“…….”
“우리는 그때를 대비하고자 해. 물론 지금은 처음 시작하는 단계에 있어. 파티원이라고 해봤자 옥사나 누나 하나뿐이고… 실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없기는 하지만…. 언젠가는 이 대륙에서 가장 이름을 크게 떨치는 파티가 될 거야. 그 시작이 바로 우리 파티의 멀린을 영입하는 일이지. 그래. 바로 대마법사 정하얀 말이야!”
“…….”
누가 봐도 미친 것이 확실해 보인다. 옆에서 불안한 표정으로 미친 사람을 말리는 여자 역시 불안에 떨고 있다. 아마 저 사람이 옥사나라고 불리는 사람일 테지. 그간 그녀가 했던 고생을 떠올려보자 저도 모르게 안쓰러운 마음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상황을 중재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게 당연했다. 요즘 많이 얌전해지시기는 했지만 갑작스레 정하얀 님이 폭주하는 상황을 방지하고 싶었던 탓이다. 갑작스레 대로변에서 살인사건이라니, 방지하고 싶은 것이 당연하다.
“제가 해결하고 올게요. 정하얀 님.”
“응.”
품에 넣어둔 골드 몇 개를 꺼내 옥사나라고 불리는 여자에게 건넨다.
“많이 힘드시죠?”
“아… 네?”
“동정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받아주세요. 그리고 저희가 조금 바쁜 상황인지라…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저분 좀 데려가 주실 수 있으실까요? 평소에는 이렇지 않은데… 정말로 바빠서요.”
“아. 네. 물론입니다. 빨리 가자. 뭐해! 성지훈 빨리 가자니까! 이러는 거 실례라고 이야기했잖아!”
“누나! 원래 큰일에는 이런 모험이 따르는 법이야! 내가 말했잖아! 오늘 대마법사를 기필코 동료로 만들고 말 거라고!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대마법사가 필요하다니까! 원래 예로부터 용사 옆에는 항상 대마법사가 있었단 말이야! 잠깐만 기다려 봐! 저기요! 마법사님! 저희는 이런 골드가 필요한 게 아니라… 당신이 필요….”
“…….”
“어?”
“…….”
“오… 오드아이….”
‘뭐… 뭐야. 뭐… 뭐야? 뭔데?….’
“오드아이….”
‘뭐 어쩌라고… 왜 그래? 왜 그러는 거야?’
얼굴을 붉히고 있는 꼴이 눈에 들어온다.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이게 못된 행동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남자의 얼굴을 한 대 후려치고 싶어진다.
“저… 실… 실례지만…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레… 레이디….”
‘제발 좀….’
“혹… 혹시 제가 숙… 숙녀분께 식사를 대접할 수 있을까요?”
저도 모르게 비명을 내지르게 되는 게 당연했다. 아까의 패기는 온데간데없다. 인정하기도, 이해하기도 싫었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남자는 자신에게 호감을 표시하고 있었다.
남자들의 관심을 받은 적이 처음이 아니고, 개중에서는 성에 차지 않은 남자들도 분명히 있었지만 이토록 온몸과 본능, 세포 하나하나가 거부감을 불러일으킨 적은 처음이었다.
굳이 도망칠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몸을 돌려 이 사람과 최대한 멀어지고 싶다.
“미… 미친….”
“무… 무례하게 들릴 수 있다는 거 알고 있습니다만… 꼭…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 식사가 아니라면 차라도 한 잔 대접할….”
“성지훈 너 진짜!!! 당장 그만두지 못해!?”
“아… 누나! 나 진짜!”
“너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 저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고 하는 소리야?! 진짜!!! 한소라 님이시라고! 파란 길드의 한소라! 흑마법사들의 우상이라고 불리는 그 한소라 님이시란 말이야!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아?! 이 바보 같은 놈아!”
“오드아이의… 흑마법사?”
심지어 이유는 모르겠지만 호감도가 더 올라버린 듯했다.
“죄송합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저희 파티장이 조금 모자라서! 죄송합니다! 평소에는 정말로 이렇지 않은데….”
“아니에요. 하… 하하하….”
“잠깐만! 누나! 잠깐만 이야기를 나누게 해줘!”
“그러지 말고 지훈아. 공화국으로 가자. 응? 공화국으로… 거기에서 사라진 1좌를 찾는다고 했었잖아! 동료로 만들고 싶다며! 공화국은 내가 잘 알고 있으니까. 일단은 거기를 거점으로 움직이자. 응?”
‘역시 미친 사람들인 게 확실해.’
이제는 옥사나까지 의심이 되는 상황이다. 자칭 용사의 목을 붙잡고 계속해서 끌어당기고 있는 것이 보인다.
“한… 한소라!”
‘내 이름 부르지 마! 제발!’
“다… 다음에 꼭!”
‘다음은 없어!’
마치 한차례 폭풍이 지나간 듯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정하얀 님은 갑작스레 나타난 불청객들에게는 그리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 같았다.
아직도 조용히 하늘을 올려다보기 여념이 없다. 노을이 끝이 날 때까지 계속 바라볼 작정인지,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실실 웃고 있었다.
뭐라고 말을 건넬까 하는 고민을 반복하기를 수차례, 하지만 굳이 말을 건네지는 않았다.
갑작스러운 사건으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자신 역시 괜스레 노을로 물든 하늘을 바라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저도 모르게 하늘을 바라보니, 다시 한번 노을빛이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마치 이곳 구석구석을 비추는 듯하다. 건물과 동상, 정하얀님의 얼굴, 웃고 떠드는 사람. 조용히 손을 모으는 사람들까지.
심지어 지금 점점 멀어지고 있는 자칭 용사와 옥사나라고 불리는 여자에게까지 노을빛이 닿는다.
이 모든 게 딱히 이상하게도 느껴지지 않는다. 어쩌면 정말로 정하얀 님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틀리지 않을 거란 맹신이라기보다는 그저 자신의 감이다.
언젠가는 분명히 기억해 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차를 홀짝였다.
* * *
문득 모든 것이 기억났다는 생각을 하며 찻잔을 들어 올렸다.
저도 모르게 바깥을 바라보니, 노을빛이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아니, 애초에 노을빛이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다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는다. 현재 2회차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곳은 계속해서 노을빛으로 물들어 있는 상태였으니 말이다.
이곳에 생명체 따위는 없다. 어느 순간 모든 것이 멈추어 버렸고 노을빛이 모든 것을 먹어버렸다.
본래는 이곳에 함께 온 이들은 어느 순간 자신들이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 버렸다. 어처구니없게도, 자신만 빼고 말이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흐릿했었지만 지금은 조금씩 조금씩 기억이 돌아오고 있었다. 그래. 빌어먹을 기억이 말이다.
찻잔을 다시 테이블에 내려놓은 이후에, 저도 모르게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왜 나만 이곳에 남겨놓은 거냐.”
대답을 듣지 않아도 답은 뻔했다.
“이기영 이 개자식.”
아마 자신이 짜증 내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