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548화
새로운 일상(3)
‘이 새끼 도대체… 목적이 뭐지?’
“…….”
‘제정신인가?’
이미 심각한 상태에 있다는 건 듣고 또 듣고, 또 들어 알고 있었지만 새삼스럽게 녀석이 미쳐 버린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고민해 보게 된다.
‘이게 도대체… 뭐야? 이게… 뭐냐고….’
지금 내 손 안에 들려 있는 초대장을 보고 있노라면 더욱더 녀석의 상태에 대해 고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시바 믿기지는 않지만 내 손에는 초대장이 들려 있었다. 오늘 아침에 진 군사가 보낸 초대장 말이다.
‘과해. 시바 과하다고.’
그냥 간단하게 자리 한번 만들어 보자는 의미로 건넨 이야기였는데, 이 새끼에게는 다른 의미로 전달된 모양이다.
밥 한번 먹자는 게 초대장까지 발송해야 할 만한 일이었던가.
도대체 이 새끼에게는 식사 한번 하자는 게 어떤 의미일 것일까. 평생 동안 남과 밥 한번 같이 먹어본 적이 없으니 괜스레 그 의미가 크게 다가오는 것일까.
심지어는….
‘저택… 으로… 가야 돼?’
무려, 녀석의 저택으로의 초대였다.
공화국에 있는 녀석의 개인 저택 말이다.
그냥 윗동네에서 편한 분위기에서 간단하게 풀어나가고 싶었는데, 졸지에 시바 공화국에 방문하게 생겼다. 언제나 모든 것이 과하다고 생각했었지만 이번에는 특히나 더 과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냥 공화국으로 가서 밥 한번 먹고 끝나는 일이었다면 그마저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이 새끼의 집으로 향한다는 것이 꺼림칙하게 느껴진다.
혹시 이 새끼가 이쪽의 암살을 계획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게 전부 함정은 아닐까. 꼭 그게 아니더라도 자신을 1회차에 내버려 두고 온 것이 화가 나 무언가 일을 저지르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다른 장소도 아니라 공화국 그림자 영웅의 저택으로의 초대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을 지경이었다.
-…….
-…….
-무슨 다른 목적이 있는 거… 확실히 아니겠지. 누나가 생각해도 이거 좀 이상하지 않아? 언제 한번 식사하자고 이야기 나눈 뒤에, 오늘 아침에서야 초대장이 왔거든? 이게 말이 돼? 누나?
-딱히 의미부여 하지 마요. 평생 동안 누군가랑 같이 어울려 본 적도 없으니 뭘 모르는 거겠죠. 차라리 기대를 해보지 그래요? 원래 그쪽이 손님 대접 하나는 확실하다고 하잖아요? 진 군사도 손님으로 오빠를 초대하는 만큼 자기 체면이 구겨지지 않게 열심히 할 테니까요. 저는 오히려 기대되는데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누나.
-이번 기회에 공화국 순방도 한번 한다고 생각하자고요. 몇 번 들르기는 했었지만 공식적 방문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으니… 공화국민들도 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할 거예요. 교국의 희생과 부활의 성자와 공화국의 자랑 그림자의 영웅이 그의 저택에서 회담을 나눈다. 이거 어떻게 봐도 뉴스거리잖아.
-뉴스거리이기는 하지. 근데 이거 공식적인 방문 아니야. 그냥 식사만 하고 돌아올 거라서.
-네?
-왜?
-그런데 기사는 왜 냈어요?
-누가… 기사를 내?
-오빠 쪽에서 기사 낸 거 아니에요? 지금 난리 났는데요?
-…….
-…….
-일단 빨리 확인해 봐요.
지혜 누나와 문자를 주고받다가 상단에 뜬 기사로 손을 가져간다. 당연하게도 모든 페이지 1면을 장식하고 있는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희생과 부활의 성자, 예고 없는 공화국 방문, 공화국의 그림자 영웅 진청 군사의 저택에 초대를 받은 연유를 파헤쳐 본다. -교국일보 김성경 기자.]
[큰 결단을 내린 이기영 명예 추기경, 정확한 공화국 방문 일정과 그 목적에 대해서. -린델 문화부 강유미 기자.]
[희생과 부활의 성자와 그림자의 영웅 비공식 회담, 과연 어떤 정치적 의도가 숨어 있는가. 왕국연합에 들어가는 대규모 투자와 연방 복원 사업이 그 목적인가. -공화국 소식통]
[어째서 비공식, 비공개 회담인가. 대륙민들의 알 권리를… -교국일보 김성경 기자.]
‘아니, 시바 이게 뭐야.’
심지어는 공화국뽕티비까지 미쳐가고 있는 것이 보인다. 이 새끼들 국뽕티비는 언제나 악질적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정도가 좀 심하게 느껴진다. 그야말로 미쳐 날뛰고 있다는 표현이 가장 잘 들어맞는다.
[파란 부길드마스터 이기영이 허겁지겁 공화국 방문 일정을 잡은 까닭은? 우리들의 진청 군사님께서 다시 한번 해내셨다.]
‘도대체 시바 진 군사가 뭘 해낸 건데.’
[희생과 부활의 성자, 진청 군사님의 저택 방문 소식으로 교국민들이 거품을 물며 뒤집어진 이유! 공화국 지도부가 무릎을 꿇고 사죄한 이유까지! 굴욕외교의 시작!]
‘아니, 시바 뒤집어진 교국민들은 한 명도 없는데. 시바. 누가 무릎을 꿇어?’
[희생과 부활의 성자, 충격적인 공화국으로의 귀화?! 교국은 날 버렸다. 그림자의 영웅께서 그를 품에 들이신 까닭이 궁금하다!]
‘무슨 귀화야. 시바 품에 들이긴 뭘 들여.’
조회수를 올려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굳이 보지는 않았지만 진청 군사 때문에 내가 공화국으로 귀화를 한단다. 물론 신뢰 따위는 없는 찌라시 영상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교국의 기자들이 낸 기사에서는 꽤나 전문적인 내용들도 섞여 있었다.
정치적 의도가 어떻고, 투자 목적이 어떻고, 얻을 수 있는 건 무엇이고, 잃을 건 또 무엇인지, 그림자의 영웅과의 저택 회담에서 무슨 이야기들이 나오게 될지, 어떤 이야기들이 오갈지 자세하게 추측하고 있었다. 아예 전문 칼럼까지 등장을 할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심지어는 백오십분 토론도 열리고 있단다.
‘아니, 시바 이 정도로 난리 날 일이야?’
생각해 보니 난리가 날 일이기는 하다. 그야 무려 희생과 부활의 성자와 그림자의 영웅의 비공식 대담이었으니 이 정도로 관심이 쏠리는 것도 이해가 간다. 단언하건대 대륙민들의 입장에서는 아마 이것보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없을 것이다.
평범한 이들은 윗동네 사정을 알 리가 없고, 나와 진 군사의 관계를 알 리도 없다.
사실상 이쪽과 진 군사는 공식적인 자리를 제외하고서는 함께 찍힌 사진 같은 것들이 나돌아다닌 적도 없다. 심지어 공식 사진마저 몇 장 되지 않는다.
파란 길드원 정도가 아니라면 녀석과 내가 잡담을 나누고, 가끔 게임을 하고, 서로의 연락처를 알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완전히 타인처럼 거리감을 두고 있었다는 거다.
그렇게 공적인 자리에서도 자주 만나지 않았던 두 사람이 갑작스레 진청 군사의 저택에서 회담을 가진다니….
[교국와 공화국의 경쟁이 완전히 끝이 나는 것인가. 평화로운 시대에 발맞추어 보인 두 상징의 행보의 끝은 과연 어디인가. -특별칼럼 김성경 기자.]
이런 뉴스들이 판을 치고,
전 대륙민들의 귀추가 주목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리라.
교국의 상징과 공화국의 상징의 만남.
심지어 저택에서의 회담.
이미 냉전 따위는 없었지만 그동안 끝없이 경쟁했던 두 국가의 앙금을 완전히 지워 버리겠다는 행보로 보이기도 했을 것이고, 정치적인 대격변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신호탄처럼 보이기도 했을 것이다.
[성황리에 완결된 천재검사와 연금술사가 사랑하는 법, 깜짝 외전 연재 재개. 부제는 그림자 저택으로의 초대.]
‘아니, 이건 또 뭔데 메인에 있는 건데?’
기다렸다는 듯이 여신의 손거울에서 메시지가 불같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카트린 의원, 마를린 의원같이 정치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물론이거니와 오스칼과 바젤 교황에게도 메시지가 쏟아진다.
이름만 들으면 누구라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던 대륙 각국의 유력인사들과 언제나 모이던 다과회와 파티 멤버들, 변화하는 시대에 뒤떨어지기 두려워하는 이들이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지,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에 대해 알아보고 추측하고자 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이 회담이 향후 대륙의 운명을 결정이라도 지을 것처럼 달려들고 있었다.
시바 그냥 밥이나 한번 먹어보려고 했었는데 순식간에 일이 이상해져 버렸다. 혹시나 자신도 참가할 수 있는지 물어보는 메시지도 수두룩하다.
그 외에도 눈에 띄는 것은 정하얀과 함께 공화국을 방문한다는 대목.
‘시바.’
순식간에 손가락을 바삐 움직여 정하얀의 개인 SNS 급하게 침투하자 아니나 다를까 여행 가방을 싸고 있는 정하얀의 사진이 시야에 비쳐왔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한소라도 함께 사진에 담겨 있다.
[Love Rabbit 119 : 오빠와 함께 신나는 공화국 여행 준비!!! /(≧ x ≦)\]
[journalist KIM : 너무 좋으시겠어요! 부럽네요~ 정확히 어디로 여행가시나요!]
[Love Rabbit 119 : 자세한 일정은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 공화국 사람 저택에 잠깐 머무를 것 같아요! ₍⑅ᐢ›ﻌ‹ᐢ₎]
[Report ahn2024 : 공화국 사람이요?]
[Love Rabbit 119 : 진청이요!₍ᐢ﹘ܫ﹘ᐢ₎]
‘아니….’
아무래도 이게 원인이 된 모양이다. 어째서 정하얀이 이 소식을 전해 들었는지는 놀랍지도 않다. 얘도 엄연히 윗동네에 끈이 있었고, 기본적으로 아네모네의 눈을 비롯한 여러 가지 감시 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가.
이쪽이 공화국으로 향한다는 정보를 얻은 이후에는 곧바로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을 만들려고 했음이 분명했을 것이다. 또 자신만 놔두고 공화국으로 향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단 저질러 버린 것이겠지.
SNS 게시물에 왠지 모르게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한소라의 얼굴이 가장 큰 증거였다. 어처구니없는 실소가 튀어나오기는 했지만 딱히 그녀를 책망할 상황은 아니다.
마음을 편하게 먹자 은근히 나쁘지는 않다는 판단이 서기도 했다. 조금 귀찮아진 것뿐이지 않은가. 오히려 느슨해진 정신상태에 적당한 긴장감을 준 듯한 느낌이었다.
‘그래. 오랫동안 잘 참기는 했어….’
1회차에 있던 시간은 2회차를 기준으로는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정하얀에게는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을 것이다. 사실상 함께 시간을 보낼 기회가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오매불망 자신의 턴이 오기만을 기다리던 상황이었고, 그 외로움을 한소라로 달래기도 했었겠지만 이번에도 자신의 턴이 오지 않자 급하게 기정사실화를 만든 것으로 보였다.
아마 먼 곳으로 여행 아닌 여행을 떠난다는 사실도 정하얀의 마음에 불을 지핀 원인 중에 하나가 아니었을까.
무려 공화국으로의 여행이다. 매번 시간이 없어 린델에서만 돌아다니던 것과는 질이 다른 진짜 데이트다. 어쩌면 무언가 엄청난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같은 생각이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을 것이다.
“…….”
“…….”
그 와중에 누가 봐도 기자로 보이는 이들에게 친절하게 댓글을 달아주고 있지 않은가.
‘그래. 어차피 수행원들도 데리고 가야 하니까.’
본래는 치고 빠질 생각이었지만 이렇게까지 대륙민들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면 쇼를 해줄 수밖에 없다.
또 중간에 일정을 취소하거나 하면 또 부정적인 기사들이 올라올 게 뻔했으니까.
사실 문제는 이쪽이 아니라 진 군사의 반응이었다. 분명히 이 새끼도 지금 현 상황에 당황하고 있음이 틀림없을 테니 말이다.
“…….”
“…….”
‘아이씨 몰라. 뭐 어떻게든 되겠지. 공화국에도 한 번 정도는 들르려고 했었으니까.’
그렇게 지혜 누나에게 나중에 연락한다는 말을 남기고 일정을 정리하기 시작했을 때였다. 별안간 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온 것. 들어오라는 말을 남기자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인형 하나가 시야에 비쳐왔다.
왜 오지 않나 했다.
김현성이었다.
“기영 씨.”
“…….”
“…….”
“네. 현성 씨. 오늘은 일찍 출근하셨네요.”
“공화국으로 향하신다는 게 사실입니까?”
“…….”
“…….”
“네. 아마 그렇게 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