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553화
새로운 일상(8)
‘내가… 내가 갑이구나!’
그래….
예전부터 중국은 체면을 중시하는 문화가 아주 중요하게 자리 잡았다고 했다.
언제부터 시작된 건지, 도대체 이유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무튼 간에 타인에게 자신이 어떻게 비칠지에 대해 극도록 신경 쓰는 문화가 존재한다. 오죽하면 체면을 살려주면 친구, 체면을 깎으면 원수라는 말이 있을까.
심지어 자신의 목숨보다 체면을 더 중요시 하는 풍조가 있다고 듣기도 했으니 이 체면, 미엔즈라는 것은 중국인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고 있는 셈이었다.
당연히 이 미엔즈 문화는 손님을 초대하는 것에도 영향을 끼친다. 손님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으면 집주인으로서의 체면이 제대로 서지 않는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식사를 대접하는 것은 물론, 집에 돌아갈 때는 선물까지 챙겨주는 경우도 있더랬다.
손님은 음식을 적당히 남겨놓아 주최자에게 제대로 대접을 받았다는 것을 표현해야 한다고 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중국인의 인간관계는 체면으로 시작해서 체면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지금에 이르러서까지 이런 관습 아닌 관습이 남아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다른 이들은 그렇지 않을지 몰라도, 진 군사님은 이런 문화에 목을 매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야 우리 군사님께서 가장 중요시 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명예가 아니었던가. 아마 체면 쪽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아이나 페넬로티에게 선물했던 어처구니없이 큰 다이아 목걸이도… 혹시 1군사 자신의 체면을 위해서였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프로포즈를 거절당해 자신의 체면이 무너졌다고 생각해 전쟁을 일으킨 것일 수도 있다.
사실 진 군사가 체면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건 굳이 추측할 필요도 없다. 눈 앞에 보이는 녀석의 태도가 그걸 증명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차가… 전혀 줄지 않고 있어….’
마시고 있는 차가 전혀 줄지 않고 있다. 아까부터 민망함을 덮기 위해 계속해서 후루룩 후루룩 마시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전혀 차가 줄지 않는다.
아마 이것 또한 손님을 대하는 데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임이 틀림없으리라. 손님의 잔이 비어 있는데 채워주지 않으면 무례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
“…….”
다시 한번 내가 처한 환경을 살펴본 것은 당연지사.
‘이거… 너무 푹신푹신한데?’
단순한 접견실이 아니다. 모든 것이 최고급이다. 국경 근처에 있는 건물 안에 뭐 이런 게 있나 싶을 정도로 편안하다.
생각해 보니 이 건물에 들어오기 전부터 뭔가 남다른 것 같지 않았던가.
붉은색으로 카펫이 깔려 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당시에는 그저 희생과 부활의 성자를 위해 준비된 것 같았지만 분명히 카펫은 대중들이 볼 수 없는 건물의 안까지 이어져 있었다.
교국의 귀빈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롯이 이쪽을 위해서 준비된 카펫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좀… 좀 과한 것 같은데…?’
그것뿐만이 아니다.
‘비용 처리도 해준다고 하자너… 필요한 거 있으면 무조건 부르라고 그랬자너. 그냥 아무거나 다 해준다고 했자너.’
분명 본인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평소였다면 절대로 하지 않을 말이다. 진 군사의 손님이 되기 전까지는 꿈에도 꾸지 못했던 대사였다.
어째서 녀석이 이쪽을 흔한 식사에도 초대하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그냥 어쩔 수 없이 함께하거나 같은 공간에 있는 것에는 반응하지 않았지만, 누군가를 손님으로 인식한 순간 녀석의 태도에 변화가 생긴다.
자신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유전자에 각인된 체면 문화가 고개를 치켜드는 것이 분명했다.
그래, 무려 초대장까지 보낸 녀석이다. 음식을 과하게 시켜 남기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한다는 곳에서 자라온 녀석이었으니 과하면 과할수록 본인의 체면이 선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나… 나… 지금 진 군사의 손님으로 여기 있는 거자너….’
이 얼마나 가슴이 웅장해지는 단어라는 말인가.
진 군사의 손님이라니.
그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신 외에는 모두를 원숭이로 바라보는 진 군사의 손님이라니 말이다.
슬그머니 남아 있는 차를 후루룩 마시기 시작한 것은 당연지사.
“…….”
“…….”
내 잔이 비워지는 것을 보고 있던 진 군사가 다시 한번 찻잔을 내 잔에 따라주기 시작한다.
‘진짜야. 꿈이 아니자너. 이건 현실이자너.’
차와 함께 곁들여 먹는 다과의 종류도 많다. 소파는 잠이 올 것같이 편안하다. 공기와 습도, 온도 모든 것이 완벽하다.
긴장을 벗어 던지고 주변을 둘러보니 이만큼 편안한 환경이 있을 수가 없다. 장담하건대 이 접견실 안에는 초미세먼지 한 톨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슬쩍 의자의 윗부분을 살펴봤지만 역시나 먼지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는다. 장담하건대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이 대륙에서 가장 청결한 장소일 것이다.
‘여기서는 개복 수술해도 될 것 같자너.’
살균이라도 된 것 같지 않은가. 만족스러운 위생 상태에 금방이라도 잠이 쏟아질 지경이었다.
“콜록… 콜록….”
차를 마시다 잠깐 콜록거리자, 녀석의 신경이 곤두서는 것이 느껴진다. 녀석이 나를 걱정하고 있다.
그 진청이 말이다.
“어디… 불편한가?”
“아니요. 불편하기는요. 이런 장소에 있는데 불편할 게 뭐가 있겠어요?”
“…….”
“…….”
“다행… 이군….”
“접견실도 너무 편안하고, 차도 너무 맛있네요. 제가 평소에 좋아하던 차인 것 같은데….”
“…….”
“대접받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라니까요?”
“…….”
“…….”
‘이 새끼… 살짝 안심하고 있는 건가.’
일단은 내 대답이 마음에 드는 것 같았다. 아니, 그것보다는 책을 잡히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최선을 다해 이쪽을 대접한다는 것이 치욕스러우면서도 자신의 면이 살고 있다는 것에 안심하고 있다.
당연하게도 다시 한번 내 생각에 확신하게 된다. 제대로 접대받았다는 것을 표현해 녀석의 체면을 높여주었으니, 저런 반응이 나오는 게 자연스럽다.
하지만 여전히 얼굴의 미소가 어색하다. 인지 부조화가 오고 있는 것이다.
“빨리 군사님 저택도 보러가고 싶네요. 3일 뒤라는 게 너무 아쉬운 거 있죠?”
“곧바로 향하려면 향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 준비가 끝나지 않아 아쉽군. 천천히 수도로 오면서 주변을 둘러보면 시간에 맞출 수 있을 거다. 공화국에 들른 김에 공화국 3대 절경도 꼭 눈에 담는 것을 추천하고 싶군.”
“아. 그러고 보니 그런 게 있다고 했었죠?”
“그래.”
“교국으로 따지면 거울호수 같은 곳이겠네요. 일정이 좀 팍팍 하겠지만 온 김에 들러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아, 또 여기도 가 보고 싶었는데.”
“내가 미리 말을 전해놓도록 하지.”
“여기도!”
“미리 말을 전해놓겠다.”
“여기도!!”
“미리… 미리… 말을… 전해놓겠다.”
“정말로 여행경비도 주시는 거예요? 꼭 그러실 필요까지는 없는데.”
“내 손님의 자격으로… 공화국에 왔으니 당연한 일이다.”
“아. 너무 당연한 거였구나. 근데 뭐 증표 같은 건 없어요? 물론 제가 군사님의 손님이라는 건 전 대륙이 다 알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뭐 상징 같은 거 만들어 놨을 거 아니에요.”
인상을 찡그린 녀석이 이쪽에게 무슨 동그랗게 생긴 묵패를 건넨다.
‘이건 또 뭐야. 시바. 진짜 있었어? 이 새끼는 이거 아무래도 무협지 같은 데 떨어졌어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아도… 건네주려고 했었다.”
패 안에는 3마리의 용이 양각되어 있다. 여기에서 드래곤이라고 부르는 생명체가 아니라 동양의 용이 말이다.
이것이 공화국 전설 속에서나 등장하는 진 군사의 손님이 되었다는 증거인 것일까.
“이거… 있으면 공화국에서 뭐든 지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냥 증표일 뿐이다.”
“웰컴 기프트 같은 건 없나요?”
“…….”
“오늘 저녁식사도 같이 해주시나요?”
“…….”
“근데 군사님 저택에 가기 전까지는 어디에 묵는 거예요? 저 잠자리는 좀 예민한데 따로 준비된 방이 있겠죠? 거기도 깨끗하겠죠? 넓겠죠?”
“…….”
“아이쿠! 실수로 차를 쏟아 버렸네요. 좀 닦아 주시겠어요?”
“…….”
“군사님! 군사님!”
“…….”
문득 너무 흥분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와 꽂힌 것은 바로 그때.
‘아니지. 이게 아니지….’
진 군사의 기를 살려주려고 온 것이 아닌가. 적당히 대접받고, 녀석의 체면을 살려주고, 귀국하면 모든 게 끝나는 일이다.
‘시바 근데 참기 힘들자너.’
인내심이 시험받고 있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참아야 되는데… 참아야만 하는데….’
스멀스멀 올라오는 정체 모를 감정이 뇌를 지배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 새끼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면서 어떻게든 진정하려고 해도 진정할 수가 없다.
정신을 놓아버리고 싶은 충동에 화제를 돌려야만 할 것 같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 일단은 이 일에 대해서 논의해 보는 게 좋겠네요. 지금 이거요. 아무래도 사태가 커져도 너무 커진 것 같기는 한데… 뭐라도 합의를 하긴 해야 되겠죠?”
“공동선언문 정도로 마무리하는 방안으로 생각 중이다.”
“겨우 그걸로 될까요?”
“…….”
“지금 평화 콘서트 하고 난리 난 거 안 보여요? 그 정도로 안 돼요. 다른 것도 아니라 제가 진 군사님 저택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건데 공동성언문 하나로 퉁 치면 분명히 이러쿵저러쿵 떠들어 댈 거라고요. 군사님은 저를 저택에 초대까지 했고, 심지어 저는 맨발로 공화국 국경을 넘었는데, 겨우 한다는 게 실체도 없는 선언문 발표? 분명히 어딘가에서 의견이 맞물려서 대충 때웠구나 하는 느낌이 팍팍 온다고요.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어야죠. 그게 대중을 만족시키는 방법이라고요.”
“일에는 단계가 있는 법이다. 너무 많은 변화는 오히려 혼란을 초래할 뿐이지.”
“왜 이렇게 보수적이에요?”
“보수적? 이건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방법의 문제다. 멍청한 놈. 내가 변화는 필수적이라는 걸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나? 나는 시대의 정신을 부정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속도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는 거다.”
‘이 새끼. 시바.’
“국경으로 모여들고 있는 머저리들의 뜻이 곧 공화국과 교국의 뜻이 아니야. 오스칼과 바젤교황이 2만의 평화사절단을 공화국으로 보낸 것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나 보군. 네 생각보다 대륙민들은 훨씬 폐쇄적이다. 지금의 상황을 반기지 않은 집단도, 그 집단으로 인해 일어날 부작용도 분명 존재한다는 거다. 심지어 국경에 모여 있는 저 머저리들도 예외가 아니야.”
“이것저것 전부 따지고 들어가는 순간 정체되는 거예요.”
“공화국과 교국은 이미 많은 변화를 앞두고 있다. 정체라는 표현과는 어울리지 않지. 그리고 변수를 생각하지 않고 패를 던지는 건 도박이나 다름이 없다. 네 표현대로 말하자면 이것저것 따지고 들어가야 한다는 거지.”
“군사님 도박 좋아하잖아.”
“어처구니가 없군. 할 말은 그게 끝인가?”
‘띠껍기는 해. 시바. 진짜….’
본인의 말 이외에 다른 답안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저 표정이 사람을 화가 나게 만들기는 한다.
“…….”
“…….”
“저 이제 슬슬 움직일래요.”
“…….”
“…….”
“배웅해 주지.”
‘배웅해 줄 줄 알았자너.’
“아니요. 산책회담 한다고 뻥쳐놨으니까. 요 앞 정원 산책하다가 나갈 거예요. 굳이 안 나오셔도 돼요.”
“아니, 배웅해 주겠다.”
‘그래. 무조건 배웅해 준다고 할 것 같더라.’
그래야 면이 서니 말이다.
곧바로 바깥으로 향한 것은 당연지사. 개미 한 마리 비치지 않았던 건물이었지만, 조금만 바깥으로 나가니 아까 지나왔던 예쁘장하고 커다란 정원이 시야에 비쳐왔다. 진 군사와 이쪽의 산책회담이 있다고 말한 장소였다.
곧바로 정원을 돌고, 바깥으로 나오자 저 멀리 인파들이 시야에 비친다. 확실하게 통제되고 있었지만 아마 나와 진청의 모습을 확인하고 있을 것이다. 성능이 좋은 카메라는 분명히 이쪽을 비치고 있을 거라 장담할 수 있다.
말해 무엇 하랴.
일단은 아까부터 눈에 한가득 담아왔던 즙을 짜내야 할 시간이었다.
“?”
진 군사가 미친놈이라도 보는 것마냥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