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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555화 (1,553/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555화

새로운 일상(10)

‘시바… 진짜 짜증 나네. 이 새끼.’

단순한 인터뷰라고 하기에는 꽤나 긴 대담이었다. 심지어 일반 기자와 인터뷰를 한 것도 아니라, 당대의 공화국 지식인들을 모아놓고 토론 형식으로 인터뷰를 진행한 모양인 것 같았다.

현시점의 공화국과 현 대륙의 정세에 대해 긴 이야기를 풀어낸 것이다.

교국민과 공화국민들이 평화를 바라는 것은 이해하나, 이미 양국은 과거와는 다른 관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구태여 평화 협정 같은 것을 통해 서로가 우호적이라는 것을 재확인할 필요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문서로 이루어진 쓸데없는 계약은 의미가 없으며, 협정을 통해 만들어질 특수 기관, 혹은 단체도 불필요하다?’

심지어 이쪽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대충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국경에 평화지구를 만들어 공화국과 교국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자유 도시를 선포, 양국의 모험가들, 상인들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화합을 도모하겠다는 그림까지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연하게도 녀석은 선수를 쳐 혹시라도 만들어질 자유도시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선보였다.

첫 번째로는 경제적인 이유를 들먹였고, 두 번째로는 현실성을 들먹였다. 세 번째 타국의 무력집단이 공화국 내부에 들어와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을 들먹였다.

그래, 정확히 타국의 무력집단이라고 모험가들을 표현했다. 현 상황에 상충되는 다소 과격한 표현을 사용한 셈이다.

당연히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표현이기는 했지만 사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대륙에서 모험가들은 필수 불가결한 존재였지만, 그만큼 문제가 되는 이들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해마다 모험가들이 일으키는 크고 작은 사고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온다.

“오, 오빠… 이것 좀 보세요!”

“…….”

“저… 저기 상점도 한번 들어가 봐요!”

“…….”

그야 모험가들은 대부분이 초인이다. 아니,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몇몇 모험가들은 걸어 다니는 전술 무기나 다름이 없다.

대륙 보호 관리 위원회에 통제를 얌전히 받아들이고 있는 이들도 있는 반면에 그렇지 않은 이들도 존재한다. 기본적으로 칼 밥을 먹고 사는 이들인 만큼 성정이 거친 놈들도 많았고, 평소에는 얌전하다가 술만 처먹으면 개로 변하는 새끼들도 모래알마냥 깔려 있다.

심지어 대륙의 파워 인플레이션도 꽤나 높아지지 않았던가. 김현성, 차희라, 정하얀 같은 초월자들? 아니면 교국 10강? 오호대장군 같은 0티어 모험가까지 갈 필요도 없다.

1티어, 아니, 1.5티어의 모험가들은 단신으로 평범한 소도시 하나 정도는 지도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소도시에 다른 억제력이 없을 경우에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겠지만, 그 억제력이란 것조차 더욱더 수준 높은 모험가들 앞에서는 무의미하다.

그냥 김예리만 예를 들어도 답이 나온다.

파란의 딸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박기리 삼 남매와 함께 바보 같은 짓거리를 일삼고 있어 외부에서는 그녀를 귀여워하기도 하지만 그녀가 가지고 있는 무력은 그렇지 않다.

특히나 암살자라는 측면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만약 헤르엔 같은 소도시를 새장으로 가둬놓고 김예리를 보낸다고 가정한다면 하룻밤 사이에 헤르엔에서는 지옥이 펼쳐질 거라고 장담할 수 있다.

그곳에 주둔하고 있는 병사들이고, 네임드고 나발이고 모조리 목이 잘리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지들이 누구에게 당했는지조차 알 수 없을 것이다.

무력집단이 모조리 뒈지고 난 이후에 남은 일부 모험가들과 일반인들이 어떻게 될지는 구태여 설명할 필요도 없다.

“…….”

물론 이런 초인들은 거의 대부분이 대륙 보호 관리 위원회의 관리를 받고 있었지만 그게 걸어 다니는 전술 무기가 안전하다는 보장은 해주지는 않는다.

목줄을 잡고 있어도 맹수는 맹수였고, 대륙 보호 관리 위원회에 등록되지 않은 모험가들도 존재한다.

심지어 지금 당장 이쪽의 옆을 지나가고 있는 이름 모를 모험가도….

‘제법이네.’

딱 녀석 정도만 돼도, 힘없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공포의 대상이다.

“…….”

“…….”

진 군사는 대중들에게 가장 현실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 문제를 지적한 셈이었다. 공화국은 교국보다 통제와 검열이 빡세기는 했지만….

‘모험가들에 대한 통제도 확실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니까.’

그렇지 않아도 공화국에서는 교국 모험가들이 거칠고 제멋대로라는 인식이 있지 않았던가.

‘입으로만 평화, 평화 외치는 게 편했지….’

여러 가지 규제들을 완화하고 드러날 현실적인 문제들을 대놓고 수면 위로 올린 것이었다.

‘이걸 어떻게 반박하지?’

이쪽도 대놓고 인터뷰를 내놓아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방향으로 공식입장을 발표해야 하는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던 시점.

바로 옆에서 조금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 오빠… 무, 무슨 생각 하세요?”

“어… 어? 아니… 아무것도….”

“거짓말.”

“…….”

“…….”

“아, 아까부터… 계, 계, 계. 계속… 다른 생각 하고… 하고 있었잖아요. 계속 말 걸어도, 대, 대, 대답도 제대로 안 하고….”

“아… 아니야… 그런 거….”

‘시바….’

순간적으로 숨이 멈춘 것은 당연지사.

내가 지금 대륙에서 가장 위험한 모험가와 함께 있다는 것을 잊어버렸다. 김예리가 소도시라면 정하얀은 아예 지형을 변화시킬 수 있는 인물이지 않았던가.

“오, 오랜만에 같이… 나온 데… 데이트인데….”

그나마 다행이었다는 것은 예전처럼 정하얀이 속에 있는 생각들을 마음속에 담아두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예전이었다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어느 날 갑자기 폭탄 하나를 터뜨리고 시작했을 텐데… 지금의 정하얀은 자신의 입장을 확실하게 밝힐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했다.

사실상 온갖 사건을 몰고 다니며 드라마 킹 행세를 했던 김현성보다 더욱더 성장한 셈, 그녀는 조금은 내게 미안해하는 표정으로, 하지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이야기를 꺼냈다는 듯이 고개를 내리깔고 입을 열었다.

“저, 저… 저한테 집… 집중 좀 해주세요.”

“…….”

“…….”

‘괜히 미안하기는 하자너…’

이번 여행을 기획한 것은 이쪽이 아니었고, 정하얀 역시 그 사실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둘이 함께 나와 있는 상황에서 좀처럼 자신에게 집중하지 못하는 건 섭섭한 모양이었다.

예전 같았다면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치를 보고 있었음이 분명, 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뭔가 큰 사고를 쳤을 것이 분명했다.

물론 지금도 눈치를 보고 있기야 하다.

자신이 제대로 말을 한 것인지, 혹시나 괜한 이야기를 해서 미움을 받는 것은 아닌지, 바쁜 이쪽을 귀찮게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고 있는 것이 시야에 비쳐온다.

내 표정을 확인하는 것이 무서워 눈도 쳐다보지 않고 있는 모습이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슬그머니 그녀의 손을 맞잡은 것은 당연한 행동이었다.

‘손깍지도 껴줘야지.’

손을 꽉 잡아 오자 다급하게 고개를 들어 내 표정을 확인하고서는 곧바로 표정이 밝아진다. 자신의 발언이 별문제가 없었던 것은 물론이거니와 효과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표정이었다.

조금은 침울했던 얼굴에 환한 미소가 서리고, 손깍지를 낀 것을 확인한 이후에는 얼굴이 헤벌쭉해진다.

“오, 오… 오, 오빠….”

“미안해. 하얀아. 생각할 일들이 너무 많아서….”

“아, 아니에요! 저, 저, 저도… 괜, 괜히 따라와서… 고, 고집부리고….”

“아니야. 고집부려도 돼. 그동안 내가 너무 무심했지?”

“좀… 좀 무심하기는… 했… 했어요.”

‘너무 솔직한데.’

“그, 그, 그래도… 히…흐… 히히…히히힛… 푸…흣… 히… 히히히히힛….”

‘웃음소리 왜 이렇게 음흉한데.’

손가락을 너무나도 빠르게 꼼지락거리는 통에 손등에 마찰이 일어날 지경이었다. 심지어는 손이 금방 축축해진다.

‘하얀이 다한증 있는지 몰랐자너.’

당연히 축축해서 기분이 나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정하얀은 그런 것도 신경 쓸 겨를이 없는 모양이다. 계속해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면서 뭔가 신호를 보내려고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냥 이쪽의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었지만, 지금의 행위로 묘한 성적 긴장감을 유지하려고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묘한 표정으로 이쪽을 힐끔힐끔 바라보고 있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너무 귀엽자너.’

그런 모습조차 무척 귀엽게 느껴진다. 원래 종종, 아니, 꽤 자주 정하얀이 귀엽다고 느껴질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녀가 특히 귀엽게 느껴진다.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는 상태에서 히죽히죽 새어 나오는 웃음소리가 마치 작고 무해한 동물이 낑낑거리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물론 정하얀은 무해하지 않다.

“후… 힛…히… 흐히히히힛….”

‘하얀이는 왜 근력이 계속 오를까?’

이제는 맞잡은 손에서 격통이 느껴지고 있는 상황, 하지만 애써 미소 지은 이후에는 맞잡은 손을 흔든다.

“갈까?”

“네? 어. 어디를요? 잠깐 쉬… 쉬, 쉬, 쉬는 건가요?”

“저기 마법 상점에 가고 싶어 했잖아.”

“아… 아! 네… 네. 맞아요… 가고 싶었어요!”

인식 저해 마법을 받았으니 거리낄 것도 없다. 꽤 날씨가 좋은 국경도시 안의 시내를 손을 흔들며 걸어가자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온다.

사실 머릿속이 갑작스레 환기되는 기분이었다. 진청과의 기 싸움 때문에 복잡했던 머릿속이 환기되는 것이 아니다.

‘기분 좋자너.’

지난 1회차에서 있었던 피곤이 날아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물론 실제로 날아간 것은 아니기는 했지만 상쾌하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불쾌감을 주지 않을 정도로 모여 있는 인파들과, 좋은 날씨, 교국과는 다른 이국적인 간판들과 모험가들,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상인들과 모험가들이 나누는 대화 소리, 심지어 코끝을 기분 좋게 만드는 향기가 바로 옆에서 느껴진다.

토끼마냥 방방 뛰고 있는 정하얀의 웃음도 전염되는 것 같은 느낌이다.

“헤… 히히헤헤… 여기서부터는 길거리 상점인가 봐요.”

“그러네?”

자연스럽게 그간 보이지 않았던 공화국 국경도시의 전경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진짜 잘 되어 있기는 하네.’

“깨끗하네.”

“네. 길거리에 쓰레기도 없어요. 린델 같은 느낌이에요.”

“여기는 자유도시가 아니라 국경 근처인데도 이렇게 잘 관리가 되어 있다는 거니까. 길거리 음식들도 꽤 위생적인 것처럼 보이고….”

“마, 마도 용품들도 전부 좋, 좋더라고요. 생긴 건 교, 교, 교국에서 판매하는 것들이 훨씬 예쁜데… 물, 물론 질도 그렇게 차이가 나지는 않지만….”

‘너한테는 전부 거기서 거기겠지.’

하지만 일반 마법사들 같은 경우에는 이런 촉매들과 재료에 따라 발현되는 결과물이 천차만별이다.

“굳이 질을 따진다면 어때?”

“여, 여기가 더 좋, 좋은 것 같아요. 교, 교국에서는 안 보이던 것들도 보이고요. 마, 마탑에서도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꼭 공화국에 들러보라고 했거든요. 학, 학자들한테는 정말 좋은 곳이래요.”

“그것도 그래. 연금술도 마찬가지고….”

물론 연금술과 마도의 미래가 어디에 있느냐 묻는다면 당연히 고개를 들어 교국을 바라보라고 했겠지만 마도와 연금술의 과거는 공화국에 있다. 예로부터 이어져 온 인프라가 어디로 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문들 들어와 꽂힌다.

‘협정 맺으면 저것도 다 우리 거야. 하얀아.’

“저기도 한번 들러보….”

갑작스레 누군가와 툭 하고 부딪힌 것은 바로 그때였다.

“어?”

꽤 덩치가 큰 녀석이었던지라 순식간에 몸이 휘청거리고, 뒤로 넘어가려던 내 몸을 정하얀이 붙잡는다.

“아!”

“…….”

“…….”

“…….”

“…….”

녀석의 일행은 사과할 생각이 없는지, 아니면 이쪽이랑 부딪혔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대로 이쪽을 지나치는 중, 정하얀이 녀석이 맨 가방을 붙잡는다.

그리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너… 눈, 눈… 누, 눈, 똑바로 뜨, 뜨고 다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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