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558화
새로운 일상(13)
‘이 새끼 진짜….’
걱정거리라고는 조금도 존재하지 않은 것 같은 행복한 표정이었다. 언제나 볼 때마다 얄미운 캐릭터이기는 했지만 괜스레 오늘따라 더욱더 얄미워진다.
진심으로 한 대 때려주고 싶은 심정이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헤실헤실 풀어진 얼굴과 취한 지 오래되었는지 벌겋게 변한 얼굴이 눈에 띈다.
박덕구나 한소라보다 훨씬 더 술을 많이 잡수신 모양인지, 혀도 조금을 꼬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쌍둥이들은 또 시바 어디서 튀어나왔어?’
심지어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쌍둥이들도 함께 자리해 있다. 양옆에 쌍둥이들을 하나씩 끼고 있는 모습은 가관, 언제나처럼 찰랑거리는 머리로 트윈테일로 묶은 쌍둥이들은 시대와 어울리지 않은 드레스를 걸치고 있었는데 예전에 봤던 것처럼 머리 색이나 옷 색을 제외하면 완벽하게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양쪽에서 안기모에게 애교 아닌 애교를 부리고 있는 모습, 녀석의 품에 푸욱 안겨 입으로 고기 튀김을 넣어준다든가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쪽을 바라보고 화들짝 놀란 모습. 이렇게 빨리 합류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는 얼굴인 것 같았다. 아무래도 자신들의 정체를 알고 있는 내가 꺼림칙하게 느껴졌던 것이리라.
물론 당황한 것은 안기모도 마찬가지. 이미 거나하게 취해 사리분별을 하지 못하는 상태인 것 같기는 했지만, 그래도 길드원들의 자리에 자신의 여자친구들, 아니, 여자친구와 남자친구를 데리고 온 것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다.
심지어 공화국 파견 중이 아니었던가. 물론 굳이 구분하자면 지금은 자유시간이었고, 녀석이 뭘 하든 터치할 생각은 없었지만, 안기모 녀석이 스스로 느끼기에는 지금의 상황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퍼뜩 정신을 차린 녀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아… 아!! 부, 부길드마스터 빨리 오셨군요!”
“…….”
“…….”
“아… 이, 이게… 그러니까… 제, 제 여자친구들이 길드원들한테 인사를 하고 싶다고 해서… 말입니다. 헤헤… 제가 그렇게 따라오지 말라고 했는데, 어떻게 또 평화사절단에 합류를 했는지… 참… 어떻게 공화국에 있더군요. 그, 그런데 이럴 수가… 또 마침 근무가 없다고 하지 뭡니까?! 그래서 제가 잠깐 들러서 길드원들한테 인사나 하자고….”
“안…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
“기모 오빠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기모 오빠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
“…….”
“아… 아. 네. 안녕하세요. 전에 뵌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또 뵙네요. 지혜 씨는 잘 지내시죠?”
“네! 언니가 안부 전해 달라고 하셨어요~”
“안부 전해 달라고 하셨어요~”
“언제 한번 부길드마스터께 정식으로 인사드리고 싶었는데… 헤헤헤… 마침 잘된 것 같습니다.”
‘와… 이 새끼 진짜 못났다.’
누가 봐도 쌍둥이들의 뒤에 숨은 것처럼 보인다.
‘기모야… 진짜….’
혹시라도 본인이 혼이 나는 상황을 상정한 것이 분명하리라. 당연히 내가 손님들이 있는 자리에서 화를 낼 리가 없다는 계산이 기저에 깔려 있는 행동이었다.
일단은 쌍둥이들을 먼저 소개시킨 뒤에 유야무야 넘어가려는 개수작이 훤히 보인다.
심지어는 이쪽이 그다지 화가 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지 조금 더 자신의 몸을 드러낸다. 더 나아가 쌍둥이들의 양쪽 어깨를 잡는 녀석.
‘그러니까. 오른쪽에 분홍머리가 남자 맞지?’
분홍색 머리를 한 녀석이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안기모에게 안겼고, 곧바로 헤벌쭉해진 녀석은 한층 더 당당해진 모습이 시야에 비쳐왔다.
당연하지만 길드원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한소라는 못 볼 걸 본 것마냥 고개를 돌렸고, 박덕구는 혀를 쯧쯧 차고 있다.
김예리의 표정은 쓰레기라도 보는 것 같은 표정이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안기모에게 단검을 쑤셔 넣는 게 좋지 않을까 하고 고민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안기모 녀석은….
“제,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부길드마스터.”
요상한 얼굴로 고백을 갈겨 버렸다. 본인의 여론이 좋지 않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
“…….”
김예리와 한소라의 싸늘한 시선이 녀석에게 닿은 것은 당연지사.
‘얘네들도 둘 중 하나가 남자인 거 모르나 보자너.’
제삼자의 시선으로 보자면 쌍둥이가 녀석을 가지고 노는 것이 아니고, 안기모가 녀석을 가지고 노는 것처럼 보일 테니 그럴 만도 했다.
“물론… 예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이게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압니다. 아무리 대륙이 일부다처제가 일처다부제가 보편화되어 있다고 해도… 네. 납득하시기 어려우실 겁니다. 자매들을… 그것도 쌍둥이들을 동시에 애인으로 두다니요. 평범한 사람들의 기준으로는 용납하지 못할 행위일 겁니다. 심지어 나이 차이도 있고 말입니다. 하지만 부길드마스터….”
‘이 새끼 왜 나를 설득하려고 그래?’
“사랑이… 잘못된 겁니까? 그녀들을 사랑하는 것이 정녕 죄가 되는 겁니까?”
“…….”
“…….”
“쓰레기 같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부길드마스터. 저, 안기모, 진정한 사랑이라는 게 무엇인지, 그녀들과 만나고서 깨달아버렸습니다. 그렇습니다. 만약 이 사실이 대륙에 밝혀진다면 이런저런 비난이 있겠지요. 벌써부터 베니고어 넷에 온갖 추측과 비난의 화살들이 제게 날아 들어오는 게 상상이 됩니다. 하지만 저 안기모, 절대로 그들의 억압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이 자리에서 다시 한번 다짐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된 이상 까놓고 조금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겠습니다, 부길드마스터! 어차피 대륙은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계 아닙니까.”
김예리의 표정이 조금 더 싸늘하게 변한다.
“마음껏 떠들라고 하십시오. 저는 당당합니다!”
반대로 쌍둥이들은 반짝반짝거리는 눈으로 안기모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기모 오빠!”
“기모 오빠~”
장담하건대 연기라고 장담할 수 있다. 1회 차 때의 살벌하던 쌍둥이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사랑의 빠진 두 소녀, 아니, 두 소년 소녀의 모습만 자리하고 있다. 마치 순정만화에나 나올 것 같은 모습이었다.
둘이 동시에 안기모에 양쪽 뺨에 뽀뽀를 갈기는 모습은 또 가관, 녀석이 용기를 얻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렇습니다… 이 안기모.”
‘이게 시바 무슨 연설이야.’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녀석이 이 연설을 시작했는지 알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연설을 할 타이밍도 아니었고, 장엄한 사랑 고백 연설을 시바 무슨 다 무너져 내리는 공화국 주점에서 하고 자빠졌다.
아직도 주변에서는 취한 녀석들의 헛소리, 어디에선가 구토를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어떻게 봐도 본인이 먼저 찔려서 아무렇게나 지껄인 것 같은 모양새. 심지어 취한 상태로 연설을 갈겨대는 것도 최악의 모습이라고 할 만했다.
너무 당연한 소리지만 녀석의 열정적인 연설 또한 여론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한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김예리의 눈은 더 싸늘해져 있었고, 박덕구 마저 쓰레기를 보는 것 같은 표정으로 안기모를 바라보고 있었으니 말이다. 정하얀은 아예 안기모에게는 관심이라는 게 없는 모양, 그저 쌍둥이들의 몸에서 나오고 있는 마력 냄새에 코를 킁킁거리고 있을 뿐이다.
“큼… 큼….”
“…….”
“…….”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녀들에게 저의 모든 것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래. 이미 바치고 있는 것 같기는 하다 야.’
쌍둥이들의 자리에 놓여 있는 가방을 보고 있자니 고개가 끄덕여질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내가 저걸 알고 있는 것인지 스스로도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샤넬리아 에르메스 넘버링이네.’
111번과 112번이었다. 두 개가 같은 디자인으로 속칭 쌍둥이라고 불리는 모델, 가방의 안쪽을 서로 공유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최근 방 안에 놓여 있는 카탈로그에서 본 적이 있다.
‘안기모 연봉으로는 좀 빡세지 않나.’
물론 안기모의 연봉이 결코 낮은 것이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린델에서도, 심지어 파란 길드에서도 꽤 높은 연봉을 받고 있는 녀석이었지만….
‘요즘 비싸져도 너무 비싸졌자너.’
예전에도 비싸기는 했지만 지금에 이르러서는 예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값이 올라버렸다. 이쪽이 샤넬리아 에르메스를 수집한다는 이야기가 돈 부작용이었다.
심지어 정보도 풀리지 않았던 예전과는 다르게 지금은 넘버링까지 붙어서 보물 취급 아닌 보물 취급을 받고 있단다.
도시 전설로 취급받는 1번부터 50번까지는 이쪽의 진열장에 진열되어 있어 뜻밖의 투자가 되기는 했지만….
‘110번대 정도도 거의 부르는 게 값 아닌가….’
저 남매가 가지고 있는 쌍둥이의 가격도 결코 만만치 않다.
‘저 새끼… 돈 관리 잘 하고 있는 거 맞겠지?’
“…….”
“…….”
장담하건대 새로 들어온 신입 벨리에 보다 모아놓은 돈이 없을 것이다. 구태여 쌍둥이들 때문이 아니라 녀석의 씀씀이만 봐도 예상이 간다.
물론 내가 알 바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가끔은 정이 가는 녀석이었고, 가족은 가족이었던지라 까먹을 때 즈음에는 신경이 쓰인다.
물론 신경만 쓰일 뿐이다. 딱히 쌍둥이들과 녀석의 이야기에 끼어들 생각은 없었다.
“아… 아.. 네. 세 분의 사랑 응원할게요.”
“인… 인정해 주시는 겁니까?”
‘내가 시바 인정하고 말고가 뭐가 그렇게 중요해.’
“그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듣는 게 좋겠네요. 기모 씨. 지금은 조금 다른 중요한 이야기가 있어서….”
“아… 아! 네!”
“물론 같이 즐기자고 모였는데 갑자기 진지한 이야기를 드리는 것 같아 죄송하기는 하지만 기모 씨 도움이 필요해서요.”
“아… 네… 괜찮습니다. 부길드마스터.”
본격적으로 궁금한 것을 물어볼 차례였다.
‘그래. 이 새끼… 사제였지.’
“기모 씨 베니고어 교단 쪽의 전투사제였죠?”
“아… 네… 아마… 맞을 겁니다.”
‘맞을 겁니다?’
“제가 중간에 모시는 분들을 조금 바꾼 적이 있어서… 잠깐 확인을 해 봐야 할 것 같은데… 아! 여기 있군요. 그러니까… 네. 지금은 베니고어 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이 새끼가… 도대체 어떻게 사제가 된 걸까?’
믿음 없이 저 수준으로 올라간 것이라고 생각하니 새삼스레 안기모가 재능충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기도는 드리는 거죠?”
“물론입니다. 부길드마스터. 물론 가끔 믿음이 흔들려 다른 분들의 신전에도 자주 들르기도 하고… 가끔 가까운 신전 아무 데나 찾기도 하지만… 저는 매 순간순간마다 진심으로 기도를 드립니다. 집회도 자주 참석하고 말입니다. 모르셨습니까? 부길드마스터 기도회 때에도 매번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교단에서 하는 행사들은 기본적으로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기도 합니다. 물론 전부 다 나갈 수는 없지만….”
“교단에서 하는 행사들이요?”
“네. 뭐 여러 가지 많습니다. 사조직도 있고, 봉사활동이나 선교단 활동….”
“…….”
“그럼, 기모 씨.”
“네.”
“혹시 교단 내에 극단주의자들… 본 적 있어요?”
“극단주의자들이라고 말씀하신다면….”
“말 그대로 극단주의자들이요.”
“아아아… 네. 물론입니다. 오히려 없는 게 이상한 거 아닙니까? 제가 지금까지 가본 신전들이 꽤 많았지만 어디에나 극단주의자들은 있었습니다. 베니고어 교단도 크게 다르지 않고 말입니다. 뭐 흔하게 일어나는 일 아닙니까. 본래 신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들을 애매모호하게 말하거나, 돌려 말하니, 해석의 차이에 따라 극단적인 놈들도, 그렇지 않은 놈들도 생길 수밖에 없죠. 직위가 높은 사제들도 다르지 않습니다. 교황청 같은 경우에는 그나마 바젤 교황님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기 때문에 정도가 조금 덜하기는 하지만, 어떻게 대륙 곳곳에 있는 신전들을 교황님이 전부 관리할 수 있겠습니까?”
“…….”
“교황청에서 멀리 떨어진 개척신전 같은 경우에는 아마 더할 겁니다. 장담하건대 몇몇 신전들은 아예 극단주의자들로 꽉 차 있을 겁니다. 근데 뭐, 크게 문제 될 건 없을 겁니다. 말 그대로 그런 극단주의자들은 크게 보면 소수에 불과하고… 사제들 일이라는 게… 어? 표정이 왜 그렇습니까? 부길드마스터?”
“…….”
‘사제가 문제가 아니야. 이 새끼야.’
“…….”
‘그러니까 네 말은….’
“…….”
‘미친 광신도 사제들한테 영향을 받은 신도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거잖아….’
어쩌면 진 군사가 이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 * *
“누나. 옥사나 누나아… 누나아….”
“어. 왜? 지훈아.”
“여신님한테 기도드릴 시간이야.”
“누나 지금 너무 피곤한데… 조금 있다가 드리면 안 될까?”
“…….”
“…….”
“안 돼! 누나!!!!”
“어?”
“다음 주에는 꼭 개종하러 신전에 들르기로 했었잖아!!!! 어제도 기도 안 드렸지!!!! 꼭 통과한다고 약속했었잖아!!! 기도 시간에는 빠짐없이 기도드려야지!!!! 그래야지 빨리 개종할 수 있단 말이야!!!!!”
“…….”
“…….”
“알겠어. 알겠어. 얘가 왜 이렇게 버럭 소리를 지르는 거야? 눈은 또 왜 그래… 무섭게.”
“미… 미안….”
“아니야. 그래. 기도드리자. 넌 베니고어 교단의 성검용사고… 나는 네 파티의 일원이니까. 같이 기도를 드리는 게 맞겠지.”
“응… 으응. 고마워. 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