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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559화 (1,557/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559화

새로운 일상(14)

어쩌면 진 군사가 이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공화국뿐만이 아니라 교국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쪽 역시 짐작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더 썩어 있는데….’

상황이 더 기분 나쁘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눈앞에 있는 안기모 녀석은 정말로 이 일이 별것 아니라는 듯이 중얼거리고 있는 중.

물론 여러 신전을 드나들며 수많은 극단주의자들을 본 적이 있는 녀석이 이 일을 가볍게 여기는 것도 이해가 간다.

녀석의 말대로 어디에서나, 언제나 극단주의자들은 존재해왔었으니 말이다. 심지어 평화를 사랑하는 엘프들 중에서도 극단주의자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더욱더 그렇다.

엘룬이 엘프들만을 위한 주신이라고 주장하고, 세계수 아래에 뭉쳐 엘프들의 대륙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들도 존재한다.

눈에 띄지 않을 뿐이지, 경전을 자신들 마음대로 해석해 병신 같은 해답을 내놓는 이들은 어디에나 있다는 거다.

과장해서 말하면 대륙에 있는 사제놈들 중에 3%는 극단주의자들일지도 모른다. 내가 지금까지 그들을 신경 쓰지 않았던 것도 지금 안기모가 딱히 그들을 문제 삼지 않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냥 바람 불면 날아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체급이 낮았으니까.’

개가 아무리 짖어도 기차는 달린다. 그들은 개가 아니라 기차 안에 탑승한 승객들이었지만, 그들은 선로를 바꿀 수 있을 정도로 영향력이 크지 않다.

“부길드마스터가 걱정하실 정도는 아닐 겁니다. 헤헤헤… 사실 딱히 그런 극단주의자들이 하는 게 없는 것도 아니니 말입니다.”

“…….”

“부길드마스터, 저는 그런 사람들이 필요악이라고 봅니다.”

“필요악?”

“필요악?”

안기모가 쌍둥이들을 다시 한번 품으로 끌어당기며 말을 이었다. 부패한 사제처럼 말이다.

막상 녀석의 입에서 저런 대사가 나오니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 같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 새끼가 틀린 말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애초에 모든 경전을 한 가지 줄기로 해석하게 만드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거니와, 아이러니하지만 소수의 극단주의자들 또한 신학에 기여하는 것이 없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이 새끼들은 신성벌이에 도움이 된다. 그들이 내놓은 논제와 해석을 토론하는 과정에서 신학이 발전하고, 진화하고, 변화한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어처구니없게도 이 극단주의자들은 교단 내에서도 가장 부패하지 않은 집단이 아니었던가.

눈앞에 있는 방탕한 녀석과는 다르게, 몇몇 극단주의자들은 욕망을 극한으로 절제하고 자신을 수련한다.

심지어 몇몇 신도들은 그들을 통해 자신의 해석의 당위성을 찾게 되고, 깨달음을 얻게 되기도 한다.

아마 이 대륙의 윗대가리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거나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을 것이다. 신탁을 내릴 때 애매모호하게 말을 흐리는 것은 시스템에 의한 여러 가지 제약이나, 가오의 문제도 있겠지만, 아마 인간들 스스로가 발전하기를 원하고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네. 필요악 말입니다. 교단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뭐 이런 놈들도 있고, 저런 놈들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당연히 사제들이 모두 극단주의자들처럼 되는 일은 경계해야겠지만, 요즘 대륙민들이 얼마나 똑똑한지 아십니까? 사제들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저보다 똑똑한 노동자들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겁니다.”

“…….”

“여신의 손거울 때문에 정보들이 폭발적으로 풀리기 시작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만… 뭐, 예전처럼 광신도들한테 흔들리는 신도들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겁니다. 신도들이 접할 수 있는 정보가 제한적이지 않으니까요.”

“…….”

“당장 교황청 공식 페이지에만 들어가도 교황님과 부길드마스터의 기도회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세상 아닙니까. 뭐가 잘못되고, 뭐가 잘못되지 않았는지에 대한 변별력을 갖출 지성도 정보도 생겼다는 겁니다.”

‘그래. 네 말도 일리는 있어.’

하지만….

이건 정보들이 많다거나 사람들의 지적 수준이 향상된 것과는 무관하다. 물론 아예 상관이 없지는 않겠지만….

‘지구에서도 병신들 없었던 게 아니었으니까.’

정보에 바다에서 헤엄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잠수를 하고 있었던 지구에서도, 배울 만큼 배울 놈들이 똥 글을 싸지르고, 사기를 당하기도 하고, 사이비에 빠지기도 한다.

오히려 정보들이 너무 많으니 변별력을 갖출 능력을 상실하게 되고, 스스로의 지성에 대한 믿음이 있으니 남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방법을 잊어버리게 된다.

지금의 대륙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빠르게 발전한 만큼 그 부작용도 클 것이다.

지금까지 문제가 없었던 이유는 극단주의자들이 소수이기도 했겠지만….

‘계기가 없었던 것뿐이야.’

이 새끼들을 한마음 한뜻으로 뭉치게 만들 계기가 없었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은 없었던 계기가 생겼다.

잔잔했던 호수에 파문이 일어난 것이다.

“…….”

“…….”

‘확인해 보면 알겠지.’

슬그머니 여신의 손거울을 들어 올린 것은 당연지사.

굳이 딥하게 들어가 볼 필요도 없다. 베니고어 넷에 들어가 대충 리서치를 하는 것만으로도 어렵지 않게 여론 조작을 시도하는 놈들을 찾아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작성자 : 0177]

[제목 : 희생과 부활의 성자의 뜻을 잘… 모르겠음. (댓글 : 4113)]

[아 참고로 나 그분을 부정하는 게 아님. 그분이 베니고어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성자님께서 이 대륙을 위해서 얼마나 희생했는지 알고 있지만… 솔직히 이번 결정은 그닥… 마음에 와닿지 않음… 그렇지 않아도 연방이랑 연합에 대규모 투자가 들어간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공화국과 평화협정이니, 공동도시 설립이니 하는 건 조금 이르지 않나 싶음. 이렇게까지 빠르게 할 필요가 있는 거임? 근데 또 진청 군사가 이번 일에 부정적인 게 더 자존심 상하고 짜증 나는 부분, 우리가 협정 맺어달라고 납작 엎드릴 필요가 있나? 솔직히 그리고 말 뿐인 협정이 뭐가 중요한지도 잘 모르겠고 공화국 놈들이야 언제든지 뒤통수 때릴 수 있는 놈들인데… 중략….]

[아이디미정 : 공감 누르고 감.]

[린델마을주민 : 의심하지 마세요~ 공감하시는 척 은근히 분탕 치지 마시고요.]

[아이디미정 : 분탕이 아니라 맞말 한 것 같은데?]

[천연사러버 : 아이디미정 얘는 여기서 또 이러고 있네.]

‘이것 봐.’

중립적인 척 가면을 쓰고 분탕을 치려고 하는 놈들이 지천에 깔려 있는 수준이다.

그간, 극단주의자들에게 영향을 받아온 교국민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나 그림자의 영웅이 부정적이라면 부정적인 대담을 내놓은 이후에는 저런 종류의 게시글이 많은 호응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작성자 : 제드99]

[제목 : 다시 보는 공화국의 만행 15가지.]

같은 글들도 꽤 많은 댓글과 추천을 받고 있다. 심지어는….

[작성자 : 베니고어님을위하여.]

[제목 : 정말로 베니고어 님의 뜻일까요?]

같은 글들도 보인다. 얼핏 보면 어디까지나 중립적인 입장에서 현재의 이슈를 분석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보자는 의도처럼 보인다.

아마 실제로도 휩쓸려 버린 이들이 대다수겠지만, 여론을 휩쓸리게 한 쪽도 분명히 존재할 거라고 장담할 수 있다. 괜스레 베니고어 님의 뜻을 들먹이는 이 녀석처럼 말이다.

곧바로 녀석의 정보를 추적한 것은 당연지사. 마스터 계정에 접속해 놈이 어떤 글을 싸질렀는지에 대한 여부를 확인하니….

‘아… 얘는 아닌가.’

[우리 희생과 부활의 성자님 불쌍해서 어떻게 하죠?]

[천재검사와 연금술사 외전 재개!!!! 베니고어시여 감사합니다. 베니고어시여 감사합니다. 베니고어시여 감사합니다. 베니고어시여 감사합니다. 베니고어시여 감사합니다.]

[파란 길드마스터, 오늘 경매장에 나타났네요! 샤넬리아 에르메스 넘버링 96번 사가신 것 같아요! 희생과 부활의 성자님의 컬렉션에 하나가 더 추가되는 건가요? 흐뭇합니다!]

[역천사 파시는 분들 죄송하지만 차단할게요. 악의가 있는 건 아닙니다. ㅜㅜ]

[희생과 부활의 성자님 기도회 영상, 왜 이렇게 안 올라오나요… 일해라… 교황청… ㅜㅜ 직접 뵈러 갔어야 했는데… 바빠서 못 간 벌을 이렇게 받네요….]

[미치겠네요. 아!! 내가 이런 거 좋아하는지 어떻게 알고… 아아아아악!!!]

‘아… 얘는 그냥 순수한 친구인 것 같은데….’

괜스레 민간인 사찰을 하는 것 같아 미안해진다. 다른 글을 찾은 놈을 다시 발견하고, 이번에야말로 꼬리를 붙잡겠다 다짐한 이후 놈의 정보를 추적하자….

[공화국 놈들 전부 다 찢어 죽이고 싶으면 개추 ㅋㅋㅋㅋ]

같은 글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염치도 없는 벌레 새끼들 ㅋㅋㅋㅋ 어떻게든 희부성한테 붙어 보려고 ㅋㅋㅋㅋㅋㅋ]

[베니고어 아래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개인적으로 신민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글귀 ㅋㅋㅋㅋ 여기에 평등하지 않은 놈들 없쥬?]

[그림자의 영웅이라는 것도 그냥 공화국 놈들이 열폭으로 만들어낸 환상 같은 거지. 진청인지 뭔지 흰머리만 보면 전부 쥐어 뜯어버리고 싶음 ㅋㅋㅋ]

[솔직히 말한다. 공화국민들은 기본적으로 열등하다. 연방이나, 연합은 뭐… 말할 것도 없고… 베니고어 님의 축복을 받은 우리들 외에는 전부 열등하다 보면 됨 ㅋ]

‘진짜 막장이네.’

녀석이 쓴 글은 차라리 양반이다. 놈이 자주 이용하는 커뮤니티로 들어가자 어처구니없어 헛웃음이 나오는 글들이 눈에 띈다.

극도로 폐쇄적인 것은 물론이거니와 몇 번의 우회 과정을 거친 이후에야 접속할 수 있는 모양, 물론 마스터 계정을 가지고 있는 이쪽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진 군사 합성짤은 왜 이렇게 많냐고.’

아무래도 진 군사를 극도로 혐오하는 커뮤니티인 모양이다.

“…….”

“…….”

“저… 부길드마스터?”

그 와중에 안기모 이 새끼의 불안해 보이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대단해. 진짜.’

본능적으로 무슨 사건이 터질 것이라는 걸 알고 있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야 그렇게까지 극단주의자들에 대해 물었으니, 본능적으로 그들로 인해 사고가 일어날 것이라는 걸 느끼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아까부터 계속해서 극단주의자들을 별것 아닌 걸로 치부하는 이유도, 괜스레 일이 커질까 무서워서일지도….

‘와… 진짜….’

살살 눈치를 보고 있는 꼴은 가관, 혹시나 내 입에서 뭔가 다른 명령이라도 떨어질까 두려워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아마 내가 녀석만 빤히 바라보고 있어서,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혹…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겁니까? 하하… 이렇게 평화로운데… 무슨 사건이 일어날 리가… 없죠… 그렇지 않습니까.”

“…….”

“저… 일단 한 잔 받으시죠! 이렇게 쉬러 왔으니 조금 즐기시는 게 어떻습니까? 머리 아픈 일들은 모두 잊고 말입니다! 뮤직 스타트! 같이 흔들어 봅시다!”

“그래요! 즐겨요!”

“그래! 즐기자! 기모 오빠!”

이제는 어거지로 텐션을 올리고 있다.

“하하하. 왜… 왜 그렇게 보십니까? 부길드마스터?… 하… 하하하….”

한소라와 함께 웃으며 춤을 있는 정하얀과 저쪽 테이블에 가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있는 박덕구에게 보란 듯이 다가가 쌍둥이들과 함께 애써 분위기를 끌어올리고 있었지만….

“기분 나빠… 기모 아저씨.”

조금 심한 말을 하고 있는 김예리가 슬그머니 자리를 피한다.

“하… 하하하… 예리 씨… 방금 전에 제가 했던 열정적인 사랑 고백을 듣지 못하신 겁니까? 저, 저는 진심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덕구….”

“큼… 거… 나는… 강원도 연애박사로서 아직… 시간이 좀 필요한 것 같다니까… 기모 형씨가 나쁘다는 건 아니요. 그저… 시간이 필요할 뿐….”

박덕구 역시 마찬가지….

“하하… 저… 정하얀 님?”

“정하얀 님께 가까이 다가오지 마세요.”

“…….”

심지어 한소라 조차 안기모를 경계한다. 오히려 아까의 진심 어린 고백이 더 역효과를 불러일으킨 모양이다. 이제는 추욱 늘어진 녀석의 모습이 불쌍하게까지 보인다.

도와달라고 나를 바라보는 녀석의 얼굴이 보여 조심스레 말을 이을 수밖에 없었다.

“…….”

“…….”

“베니고어 교단 공화국 지부… 다녀오는 게 좋겠죠?”

“…….”

“…….”

“이 안기모, 이번 임무에 사활을 걸겠습니다. 제 여자친구들을 걸고 말입니다.”

“…….”

“…….”

‘여자친구들은… 아니, 여자친구랑 남자친구는 안 거는 게 좋지 않을까?’

“하….”

“하….”

1회차 여단이 떠오르는 듯한 표정을 짓는 쌍둥이들이 시야에 비쳐왔다.

“지금 당장 출발하면 되는 겁니까? 부길드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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