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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560화 (1,558/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560화

새로운 일상(15)

마음 같아서는 곧바로 출발하고 싶어지기야 한다. 진 군사의 저택으로의 초대가 3일밖에 남지 않았던 시점이기도 했고, 일부 커뮤니티 반응이 부풀어 오르는 풍선마냥 터지기 일보 직전인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시간은 제한되어 있는데,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 상황, 본래대로라면 여행 일정 따위는 전부 취소해 버렸겠지만, 모든 일정들을 전부 취소할 수는 없었다.

‘개가 짖어도 기차는 달려야 되니까.’

예정된 스케줄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진행되어야 했다. 뭐가 어떻게 됐건 간에 희생과 부활의 성자의 행보가 언론이나 여론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걸 보여줘야 했다는 거다.

갑작스레 공식적인 스케줄을 취소하거나, 미룬다면 오히려….

‘부풀어 오르는 풍선에 바늘을 가져다 대는 격이자너.’

온갖 추측 여론들이 들끓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별 말 같지도 않은 이야기들이 나올 것이 분명했다.

극단적으로 희생과 부활의 성자가 베니고어 님의 계시를 받고 공화국 여행을 취소했다든지, 공화국과 마찰이 있었다든지 하는 추측성 기사와 떡밥이 흘러나올지도 모른다.

물론 이 상태로 스케줄을 소화한다고 해서 여론을 잠재울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내 의지가 확고하다는 것을 대중들에게 전해야 한다는 것이 중요했다.

부정적인 여론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긍정적인 여론에 힘을 실어주는 것도 중요하니까.’

베니고어 넷의 반응이 조금씩 조금씩 치우치고 있는 현시점에서 희생과 부활의 성자가 아직까지 공화국에 우호적이라는 것을 계속해서 어필하고 보여줘야 했다는 거다.

그게 지금 나와 파티원들이 공화국 관광을 이어나가고 있는 이유였다.

“후우… 이 안기모. 어젯밤, 당장에라도 임무에 몸을 던지고 싶었지만, 부길드마스터의 뜻이 그러하니 아주 조금만 공화국 관광을 즐기겠습니다. 다시 한번 확실하게 말씀드리지만, 제가 즐기고 싶어서 즐기는 것이 아닙니다. 공화국에 좋은 인상을 남기는 게 중요하다고 부길드마스터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제가 이렇게….”

‘진짜 말 많네.’

“뭐, 지금 시점에서는 그게 중요하기는 하죠. 그런데….”

‘이 새끼 왜 이렇게 피곤해 보여?’

딱히 뒷말을 중얼거리지는 않았지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예상이 간다. 어젯밤에 말실수를 했으니 쌍둥이들에게 시달린 것이 분명할 것이다.

“아. 어, 어젯밤에 사실 조금 문제가 있어서 말입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여자친구들이 화가 나서….”

“이유를… 몰라요?”

“네. 아무리 생각해도 뭘 잘못했는지 기억이 안 나지 뭡니까.”

‘이 새끼 진짜 안 되겠자너.’

“처음에는 정말 이해가 안 갔었는데… 조금 혼나다 보니까 뭘 잘못했는지 알겠더군요.”

“…….”

“아마 제가 임무수행 때문에 이런저런 일정들에서 빠져야 하는 게 섭섭했던 것 같습니다. 함께 하는 시간이 너무 적다고 투정을 부리는 것 말입니다. 다른 남자들이었다면 왜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냐고 함께 열을 올렸겠지만, 제가 누굽니까? 몬스터 앞에서는 물러서지 않아도, 사랑 앞에서는 물러서는 남자 안기모 아닙니까. 새벽 5시에 남자답게 무릎 꿇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래서 용서받았어요?”

“네. 확실하지는 않지만 용서받은 것 같았습니다.”

‘어딜 봐서 용서를 받은 건데 도대체?’

지 입으로 확실하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백미다. 강원도 연애박사 박덕구에게도 그런 안기모가 어리석어 보이는 모양, 조금 피곤한 기색으로 걸음을 옮기다 툭 하고 말을 던져온다.

“그것 때문에 화가 난 게 아닐 거요. 기모 형씨.”

“…….”

“그럼 뭡니까?”

“말하지 않겠소. 연애의 답은 스스로 찾아야 하는 법.”

‘돼지 새끼도 왜 쌍둥이들이 화났는지 모르는 게 분명하자너.’

심지어 가만히 있던 정하얀은 안기모의 의견에 손을 보탠다.

“아, 아, 아마… 기, 기모 오빠 말이 맞을 거라고 생각해요. 갑작스럽게 일, 일정이 취소되면, 화, 화, 화가 나는 게 당, 당연하죠. 그, 그렇지? 소, 소라야?”

“…….”

“…….”

“네. 물론이죠. 정하얀 님. 갑작스럽게 일정이 취소되면 화가 나는 게 당연해요.”

‘왜 나를 보고 그래.’

아무래도 갑작스럽게 생긴 일정에 불만이 생긴 것이 분명했다. 볼을 부풀리고 있는 정하얀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한소라의 말에 뼈가 들어가 있는 것은 의외다.

심지어 이쪽 보고 들으라는 듯이 말하는 것처럼 느껴져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약간의 시간이 지난 이후에는 그녀가 어째서 저런 모습을 보이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정하얀과의 약속을 취소한 원망이 아닐 것이다.

‘얘… 그거 마음속에 계속 품고 있었구나.’

자신에게 한 약속들이 지지부진하게 이행되고 있는 게 불만인 모양인 것 같았다. 로헨에서 꽃기영이 제멋대로 그녀에게 건넨 약속, 교국에 흑색 마탑을 짓고, 흑마법 주문서 사업을 하고 싶다는 그 약속 말이다.

유야무야 넘어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꽃기영 안에 내가 일부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같았다.

‘하얀이가 말해줬나 봐….’

그러고 보니 출발하기 전부터 묘하게 저기압인 것 같은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육망성이 끝난 이후로 쭈욱 저기압이었다. 그래도 한소라와는 가끔 잡담을 나누고는 했었는데, 생각해 보니 그녀와 잡담을 언제 나누었는지 기억이 흐릿하다. 다시 한번 기억을 떠올려보니, 정하얀과 함께 방을 사용했을 때도, 한소라는 내게 따로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세 명이서 함께 누워서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물론 바쁘기야 했다.

아니, 틀림없이 바빴다. 로헨에서 돌아온 이후로는 유소년 아카데미 건으로, 아카데미가 건이 끝난 이후에는 곧바로 육망성이 터지지 않았던가.

사실 로헨에서 돌아온 이후에는 김현성의 문제가 길드 전체의 뜨거운 감자가 되었던 터라, 다른 일들을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아마 한소라 역시 그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 역시 파란 국제 학원의 결계를 새로 짜기 위해 바쁜 시기였고 말이다.

하지만 한소라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 섭섭할 만도 하다는 생각이 문득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자기 차례인 줄 알았나 봐.’

모르긴 몰라도, 김현성과 관련된 일들이 대충 후루룩 지나가면 본인의 차례가 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

흑색마탑이 세워지고, 주문서 사업을 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건만, 갑작스레 공화국과 평화협정 이야기가 나와 버리니 자신이 까맣게 잊혀졌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리라.

아니면 내가 애초에 약속을 지킬 생각이 없다고 생각해 시위 아닌 시위를 하고 있었던 모양인 것 같았다.

‘얘가 진짜 똑똑하기는 해….’

시위 아닌 시위를 하고 있는 타이밍이, 그리고 자신이 내게 불만이 있다고 말한 타이밍이 귀신같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시위를 하고 있는 게 아니었을지도, 생각해보면 그녀와 함께 육망성 연구를 한 적도 있다. 그저 가장 완벽한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몸값이 제일 비싸졌을 때, 내게 거래를 걸어온 것이다.

“…….”

“…….”

“잠, 잠깐 이야기 좀 할까요? 소라 씨?”

“무슨 일이신데요? 부길드마스터?”

“무슨 일이긴요. 꼭 일이 있어야 이야기를 주고받나요.”

슬쩍 입꼬리가 올라간 모습. 자신의 가치가 높아졌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그녀의 설계가 제대로 먹혀들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구태여 지금 파티에서 가장 믿을 만한 인선을 꼽으라면 단연 한소라가 아니었던가.

안기모 이 새끼는 의외로 일을 확실하게 처리하기는 하지만 뺀질 거리는 것이 문제, 박덕구는 애초에 이런 여론전이나 사회 문제에 완전히 무관심하다.

김예리 같은 경우에는 시키는 일 만 처리하는 주의였고, 정하얀은 그냥 정하얀이다.

지금 이 인선에서 그나마 말이 통하는 건 한소라밖에 없다. 길드 내에서도 조혜진과 선희영과 함께 믿을 수 있는 전력으로 분류되고 있었고, 다른 길드원들에게는 미안하기는 하지만 유일하게 홀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아… 네. 부길드마스터.”

내가 콕 집어 한소라를 불러내자 정하얀의 큰 눈이 커지면서 그녀와 나를 살펴보고 있었지만 눈치 빠른 박덕구가 정하얀의 시선을 끈다.

“…….”

“…….”

먼 발치를 바라보며 한소라를 향해 입을 연 것은 당연지사.

“멋있지 않아요?”

“네? 뭐가요?”

“교국과 공화국의 평화도시 안에 세워질 흑색마탑.”

“!?”

“저 우뚝 솟은 탑의 모습이 제 눈에만 보이고 있는 거… 아니죠?”

“…….”

“…….”

그래도 설마, 설마했는데….

‘이거 맞았구나?’

“그… 그게 갑자기….”

“제가 잊어버렸다고 생각한 거 아니시죠? 소라 씨.”

“잊… 잊어버리신 거 아니었나요? 어차피 모르는 척하실 생각이셨잖아요. 로헨에서 약속은 엄밀히 말하면 부길드마스터가 제게 한 것도 아니고… 파란 국제 학원 쪽만 떠넘기시길래 그걸로 끝인 줄 알았죠. 약속하신 대로 회의에 불러주시기도 했고요….”

“그래도 제가 아닌 건 또 아니었으니까요. 그리고 나 기억력 좋은 거 알잖아. 우리 소라 씨도. 잊어버릴 리가 있겠어요?”

“…….”

“…….”

“솔직히 딱 입지가 적절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마도의 미래가 있는 교국과, 과거의 유산이 있는 공화국, 거기에 공화국은 교국보다 흑마법에 우호적이니까. 관련 촉매나 실험도 꽤 활발하고… 평화도시만 생기면… 그냥 곧바로 공사 착수하고 들어가면 되잖아. 평화도시에 아예 처음 들어온 마탑이 흑색 마탑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으니 장사 잘되는 거야 당연한 거고… 평화협정만 제대로 이루어지면, 리스크를 엄청나게 줄일 수 있을 것 같은데… 내 생각이 틀린가?”

“…….”

“…….”

“원, 원하시는 게 뭔가요. 부길드마스터.”

“하얀이 좀 잘 달래줘요. 저도 시간을 내기는 낼 건데, 처음 계획처럼은 못 움직일 것 같거든요. 그래도, 공식 일정은 그대로 진행할 거예요. 그리고….”

“…….”

“…….”

“소라 씨 SNS 잘하죠?”

시키는 일이라면 무슨 짓이든 하겠다는 결연한 표정의 한소라가 눈에 들어왔다.

“계약서도 쓰시는 거죠?”

그리고,

“…….”

“…….”

“정하얀 님! 사진 찍어드릴게요! 여기 부길드마스터 옆에 꼭 달라붙어 보세요!”

“어… 어? 으… 응….”

“폭포 배경으로 한 컷 뽑을게요. 멋지네요. 3대 절경이라는 이름이 아깝지가 않네요. 여기 폭포. 정하얀 님! 조금 더 웃으셔야죠. 활짝이요! 네 활짝!! 활짝!!! 여기 보시고!! 활짝!!!!”

“헤… 헤히…!!”

“네. 여기 보시고요… 화알짝~”

“푸…히…히히힛….”

“자자자. 빨리 이동할게요! 다음 장소로요!”

“어… 어? 벌써?”

“공화국 전통음식만찬 예약되어 있어요.”

“어? 어?”

“다음은 공화국 난민캠프에 들를 예정이고요. 그다음에는 전통시장에서 간단히 사진 찍을 거예요. 그 다음은 공화국 보육원, 이후에는 부길드마스터는 신전으로, 정하얀 님은 저랑 같이 쇼핑 가요.”

“아… 그, 그렇지만 오… 오빠랑….”

“오랜만에요. 저도 정하얀 님이랑 둘이서 시간 좀 보내고 싶은걸요….”

“…….”

“…….”

“아… 으… 으응!! 응! 그, 그러자 소라야.”

“자자! 덕구 오빠! 빨리 움직이세요! 빨리요! 잠깐 여기 멈춰주세요. 사진 한 번 더 찍을게요! 활짝! 부길드마스터 독사진도 한 장 찍을게요! 정하얀 님 잠깐만요! 잠깐만요! 부길드마스터 독사진부터 찍을게요! 네네. 정하얀 님도 들어오세요!”

“으… 응!”

“…….”

“…….”

입질이 생각보다 금방 들어왔다.

[작성자 : 베니고어님을위하여.]

[제목 : 희생과 부활의 성자님 너무 행복해 보이시지 않나요?!!!(댓글 : 6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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