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565화
새로운 일상(20)
다시 한번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이 튀어나온다.
어째서 이런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을까. 반 농담, 반 걱정 삼아 중얼거리던 게 현실로 튀어나왔으니 당황하지 않는 게 이상한 상황이었다.
‘진짜가 튀어나올 줄 누가 알았겠냐고.’
다행히 이쪽은 최면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 같기는 했지만, 안기모 녀석이 최면이 걸려 버렸다는 것이 문제였다.
-어? 부길드마스터는 어디에 계신 겁니까? 어라? 제가 어째서….
-안기모 사제님. 희생과 부활의 성자님께서는 안전한 장소에서 베넷 사제님과 긴히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아아아. 그렇군요. 그렇다면 어쩔 수 없겠군요.
-…….
-혹시 부길드마스터에게는 비밀로 하고 잠깐 혼자 나갔다 와도 됩니까? 제 여자친구들이….
-그게 무슨….
-아니,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아 방금 드린 말은 부길드마스터에게는 비밀로 부탁드립니다. 저는 부길드마스터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이 안기모 절대로 임무 중에는 다른 곳에 한눈을 팔지 않습니다. 안전한 곳에 계시다고 하시니 잠깐 몹쓸 생각을 해버렸군요. 아니, 생각해 보니 여기 있을 게 아니라 저도 부길드마스터 옆에 있어야 될 것 같은데….
-…….
-그나저나 요즘 공화국 지부는 수익이 얼마나 납니까?
-네? 그게 무슨….
-헌금이 제법 짭짤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저 새끼는 최면을 당한 상태에서도 저 난리자너.’
그렇게 잘난 척을 했던 녀석이 최면에 걸려 버렸다는 것도 당황스럽다. 연봉 인상이 아니라 감봉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고민하던 순간 내 시야에 작은 빛이 머물다가 사라진다.
“…….”
“…….”
‘아예 손 놓고 있었던 것 아니구나?’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녀석이 최면에 걸리기 전에 내게 디스펠 주문을 외워놓은 모양, 보아하니 나한테는 굳이 필요가 없는 주문이기는 했지만….
‘적어도 뭔가 이상하다는 건 캐치하고 있었다는 거자너.’
단순히 최면 아저씨의 겉모습 때문에 저도 모르게 주문을 외웠을 수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안기모 녀석이 직접 전조를 느꼈다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평소에는 영 믿음직스럽지 못한 모습을 보이는 녀석이었지만 적어도 일 적으로는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었으니까.
단지 실실거리는 얼굴에 가려져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뿐이다.
차라리 자기 자신한테 거는 게 더 좋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기는 했지만 아마 녀석의 자의적인 판단이 있었을 것이 분명. 안기모는 내가 최면에 걸리는 것보다 자신이 최면에 걸리는 것이 더 리스크가 적다고 판단했다.
거기에 이 신전 내부에 숨겨져 있는 비밀을 캐내기에 더 적절한 인물이 나라고 생각했겠지.
이전에 있었던 대화로 인해, 내가 최면에 완전면역이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상정하기도 한 것 같고….
말하자면 신성주문을 외울 수 있는 그 짧은 시간에 자체적인 판단을 마쳤다는 거다.
완벽한 정답이라고는 볼 수 없었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그저 상대가 조금 나빴을 뿐이다.
‘도대체 언제 최면에 걸린 건지도 못 알아차렸을 정도자너.’
주문을 외우거나, 마력이 움직이는 것도 보지 못했다. 거의 즉발로, 눈치챌 수 없는 시점에는 이미 최면이 들어가 있었다. 안기모가 눈치챈 것이 기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정황상 아티팩트로 시전되었거나, 한 놈씩 눈을 마주쳤을 때 최면이 걸린 것은 아닌가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것도 확실하지 않다.
심지어 눈앞에 있는 최면아저씨가 최면을 걸었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녀석이 끄나풀일 가능성도 아예 배제할 수 없었다.
“그래요. 그래요. 희생과 부활의 성자님. 우힛… 개인기도실에 들어갈 때는 맨발로 들어가는 것이 상식입니다.”
‘왜 웃는 것도 시바 최면 아저씨 같이 웃는 거냐고.’
하얀이가 냈으면 무척 귀엽게 들려왔을 저 웃음소리가 놈의 지방 낀 성대에서 발현되니 소름 끼치기 그지없게 들려온다.
“우히힛….”
‘시바 진짜 뒤에 끄나풀이 있는 게 맞나?’
“우히히히힛….”
‘누가 봐도 이 새끼가 최면 건 본인 아니야?’
“크… 히히히히힛.”
‘아니야. 이 새끼가 본체라기에는… 이 새끼… 너, 너무 멍청하지 않나? 너무 멍청한 것 같은데?’
독 오른 두꺼비, 욕망의 항아리마냥 자기 자신의 쾌락밖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이다. 이딴 멍청이가 아직까지도 들키지 않고 버젓이 활동하고 있다는 게 믿겨지지가 않는다.
‘벌써 잡혀갔어도 이상하지 않자너….’
물론 녀석의, 혹은 놈들의 최면능력이 그만큼 위험하다는 방증이기도 하겠지만, 여기가 어디였던가. 다른 놈도 아니고 진 군사가 있는 그 공화국이 아닌가. 공화국의 중심에서 극단주의자들을 양성하고 있는 이 교단이 아직까지 발각되지 않았다는 것부터가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다.
일은 아주 천천히, 수면 아래에서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던 상황이었으니… 적어도 눈앞에 있는 멍청이는 이 모든 일들을 컨트롤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우히힛.”
저 웃음소리가 연기가 아니라면 말이다.
“자자. 들어가시지요. 희생과 부활의 성자시여.”
“네.”
‘분명히 뒤에 누군가 있어. 시바. 없을 리가 없어.’
천천히 개인 기도실로 진입한 것은 당연지사. 조금 불안하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위생적인 환경의 기도실이 눈에 띈다.
아무래도 녀석의 생김새 때문에 비위생적인 광경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편견이었던 모양이다.
작은 제단이 기다리고 있는 텅 빈 방에 자리한 것은 몇 개의 의자. 자연스럽게 제단 앞에 자리를 서서 자리를 잡자….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희생과 부활의 성자님.”
“네?”
“개인 기도실에 들어오면, 이 공화국 지부의 대표 사제인 제게 먼저 예의와 성의를 표하는 것이 ‘상식’ 아닙니까?”
“아. 그렇죠. 개인 기도실에 들어오면 베넷 사제님께 예의와 성의를 표하는 게 상식이었죠.”
녀석에게 머뭇머뭇 다가가 조심스레 인사를 올리자. 다시 한번 짜증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쯧.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쳐야 한다니… 예의와 성의를 표하실 때는 제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 ‘상식’입니다.”
‘뭐 이렇게 시바, 내가 모르는 상식이 많아? 이 새끼야. 넌 좀 씻어. 그게 상식이야.’
“그랬었죠. 죄송합니다. 베넷 사제님. 제가 오늘 조금 정신이 없네요. 이런 무례를 저지르다니. 제 사과를 받아주시겠어요?”
“네. 물론입니다. 희생과 부활의 성자님. 전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베니고어 교단의 공화국 지부에 오신 것은 처음일 테니 말입니다. 다른 이였다면 절대로 용서하지 않았겠지만, 희생과 부활의 성자님께서는 특별하신 분이니 용서해 드리겠습니다.”
“아! 감, 감사해요.”
매우 기쁜 듯이 활짝 웃음을 짓는 것은 당연한 행동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만족스러운 웃음을 띠고 있는 녀석의 얼굴이 눈에 보였다. 지금 이 상황이 꽤나 마음에 드는 모양인 것 같았다.
“…….”
그래, 녀석의 표정 속에 비쳐온 것은 우월감이다. 마치 자신이 이쪽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다는 것에 어마어마한 의미를 두고 있는 듯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쾌감이라도 느끼고 있는 얼굴이었다.
다시 한번 녀석이 본체가 아닐 가능성을 떠올리게 된다.
‘이 새끼… 피라미야.’
확신에 확신을 더한다.
‘이딴 열등감 덩어리가 본체 일리가 없자너.’
사실 이 새끼가 어째서 교황청 본부에서 여기로 좌천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저 최면 아저씨 같은 외모가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모지상주의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것 같아 미안하기는 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내게 결정권이 있었다면 최면 아저씨는 곧바로 교단에서 밀려… 아니, 곧바로 추방이다.
그야 신도들이 최면에 걸릴까 봐 노심초사하며 기도를 드리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헌금을 내기도 싫어질 것이 분명하다.
그에 비해 이쪽은 어떠한가. 물론 김현성에 비하면 조금 부족하기는 하지만 색욕과 영면과 희생과 부활로 인해 만들어진 후광 버프, 거기에 관리에 관리를 더한 탱탱하다 못 해 빛나는 피부, 지혜 누나의 화장기술로 한 층 더 발전한 외모. 어떻게 봐도 미움받을 수밖에 없는 포지션에 처해진 것 같기야 하다.
심지어 대뜸 내게 최면을 갈긴 것을 보면, 애초에 희생과 부활의 성자에 대한 존경심은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극단주의자로 예상되는 만큼 베니고어에 대한 일말의 신앙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이쪽과 베니고어를 철저하게 분리한 모양이다.
‘마음에 들지 않을 만해.’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베넷 사제님.”
“큼… 큼….”
슬그머니 무릎을 꿇은 것은 당연지사. 기다렸다는 듯이 의자에 앉아 이쪽을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시야에 비쳐왔다.
“아주 좋은 자세이십니다. 희생과 부활의 성자님. 개인 기도실에서는 무조건적으로 제게 감사하는 것이‘상식’이라는 걸 알고 계셨군요.”
“아! 네! 물론입니다. 베넷 사제님께서 베니고어 님을 위해 기도드리는 이 개인 기도실에 저를 초대해 주셨으니 베넷 사제님께 감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행동이지요.”
이윽고 이쪽의 뺨에 손을 가져다 대는 놈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꽤나 거칠게 볼을 잡아당긴다. 몸이 딸려 올 정도로 말이다. 마치 장난감을 대하는 듯한 태도였다.
“가…감샤… 하… 하니다.”
“이딴 게 베니고어 님의 아들이라니… 쯧. 말도 안 되는 소리지. 그렇지 않습니까?”
“…….”
‘역시 시바 이 새끼….’
심지어 머리카락을 잡고 거칠게 잡아당기는 모습. 솔직히 말해 조금 쫄려온다. 이 최면 빌런의 열등감으로 비롯된 무차별 폭력을 받아내야 하는 순간이 오게 될까 봐 무서웠지만 일단은 위와 같은 포지션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녜….”
하지만….
‘시… 시바 그냥 이 새끼. 죽이고 튈까?’
언제나 품에 숨기고 다니는 단검에 생각이 닿는 것은 당연지사. 이 짧은 단검으로 녀석의 두꺼운 지방층을 뚫을 수 있을까 걱정되기는 했지만, 시바 왠지 모르게 여기에 계속 있는 게 위험하다는 판단이 선다.
지금까지 많은 위험에 몸을 던졌지만, 이렇게까지 꺼림칙한 것은 처음. 가장 결정적으로….
‘시… 시바 구역질 나.’
말을 내뱉을 때마다 구취가 올라와서 참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다는 표정을 유지하고 있는 내 평정심이 대단하게 느껴질 정도다.
지금은 녀석이 희생과 부활의 성자가 자신의 밑에서 무릎을 꿇고 있다는 상황 자체에 기뻐하고 있었지만, 열등감과 사회에 대한 분노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상황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기다려야 되자너.’
“…….”
“…….”
‘분명히 이 새끼 위에, 혹은 옆에 누가 있을 것 같자너.’
없을 리가 없다. 더욱이 모든 극단주의자들이 내게 부정적일 리가 없다.
공화국과의 협력을 꾀하는 지금 내 행동이 마음에 들지는 않겠지만 결국 베니고어와 희생과 부활의 성자는 밀접한 관계에 있다.
‘내가 소중하지 않을 리가 없자너.’
“…….”
“…….”
물론 나를 피싱 한 것은 저 단체들 전체의 뜻일지도 모르겠지만, 지금과 같은 행동은 어디까지나 최면 아저씨의 독단적인 행동.
“이쪽을 보시지요. 희생과 부활의 성자님.”
“…….”
“제 말씀이 들리지 않으시는 겁니까?”
“…….”
‘누군가 올 거야. 분명히.’
“제 말에 경청하는 것은 ‘상식’입니….”
다시 한번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왔을 때였다.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겁니까. 베넷.”
아니나 다를까, 어두운 곳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