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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568화 (1,568/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568화

새로운 일상(23)

“저… 저는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

“색욕과 영면이시여….”

순간적으로 온몸에 소름이 돋은 것은 당연지사. 저도 모르게 녀석의 뺨을 내려칠 뻔했을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실제로 시바 거의 손이 나갈 뻔했다. 저 앞쪽에 김현성과 안기모가 보이지 않았다면 분명히 놈의 타격감 넘쳐 보이는 뺨에 손을 댔을 것이 분명했다.

‘진짜 표정 관리가 안 되자너’

그 대신이라고 하기에는 뭣하지만 슬쩍 인상을 찌푸리며 혐오스럽다는 표정을 그대로 드러낸다. 미처 생각하기도 전에 표정이 먼저 놈을 마중 나간 것이다.

“너무 가까이 붙지 마세요. 시바… 냄새나니까….”

“죄, 죄… 죄송합니다. 그… 그리고 감사합니다.”

“…….”

“…….”

태도가 변하는 게 당연하겠지만 그 변화가 너무 극적이라 당황스러웠을 정도, 오죽했으면 녀석이 코가 커다란 빌런에게 조종당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까.

물론 정황상 녀석의 명령을 따르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으니, 다른 의미에서 생각해 보면 조종당한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런다고 죄가 없어지는 건 아니자너.’

그 과정에서 사리사욕을 채웠다는 것만은 명확했다. 아마 본인 역시 그 사실을 깨닫고 있음이 분명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처우에 대해 저리 궁금해하고 있는 거겠지.

어째서 자신이 살아 있는지 의아하다는 얼굴이지 않은가. 당장에라도 코가 커다란 빌런마냥 으깨진 감자가 되어버릴 줄 알고 있었을 텐데… 갑작스레 이쪽이 자신을 쉴드 쳐 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것 같았다. 심지어 안기모도 말이다.

저렇게 우호적인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것도 무리가 아닌 상황. 문제가 있다면 단순히 우호적인 것만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었다.

이쪽을 바라보는 녀석의 얼굴에는 지나칠 정도로 부담스러울 정도의 신앙이 서려 있었다. 마치 제 삶을 구원한 구원자를 바라보는 듯한 얼굴이 아닌가. 이 새끼가 대뜸 색욕과 영면의 사도로 전직하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빨리 떨어지라는 의미로 손을 휙휙 휘젓자 허겁지겁 멀어지는 녀석,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답이 없자 불안해하는 모습이었지만 감히 다시 질문하지 못하고 눈치를 보고 있었다.

조금만 더 가까이 오라는 의미로 손가락을 까닥거리자 정중한 모습으로 조심스레 다가오며 굽신거리는 것이 눈에 보인다.

“뭐… 뒈질 줄 알았는데 어째서 살아 있는지 그게 궁금한 거죠?”

“네. 그렇습니다. 색욕과 영면이시여….”

“아마 뒈질 거예요.”

“네… 네?!”

“그럼 살 수 있을 줄 알았어요?”

“…….”

“…….”

“지금 거짓말 안 하고 솔직하게 말씀드리는 거예요. 최면 아저씨. 감히 교국의 명예 추기경에게 정신계 아티팩트를 사용하고, 그 뺨을 잡아당기기까지 했는데, 오히려 살아 있는 게 이상한 상황이잖아. 아. 현성이한테는 어떻게 설명할 거냐고요? 설명할 필요가 뭐가 있겠어요. 어차피 현성이는 최면 아저씨가 언제 어디서 죽었는지도 모를 텐데… 제가 마음먹는 순간이 오면 최면 아저씨는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거예요. 어느 날 갑자기 붉은 복면을 쓴 암살자가 아저씨의 목에 단검을 밀어 넣을 거라니까요.”

“…….”

“물론 저는 공명정대한 사람이니까. 여러 가지 생각해 볼 게 있기는 하겠죠. 솔직히 관상만 보면 너무 좀 그렇기도 하고 정황도 확실한데… 그렇게 너무 색안경 끼고 바라보지는 않으려고. 당신이 저 으깬 감자의 명령을 따르게 된 계기, 자의적으로 협력했는지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는지에 대해서도 알아봐야 하고… 저기 극단주의자들을 양성하는 과정에서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도 알아봐야죠. 범죄를 저질렀으면 응당 벌을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아….”

“문제는 어떻게 죽느냐겠죠. 편하게 죽느냐. 아니면 이단 심문실로 끌려가서 온갖 고초를 겪은 이후에 성수에 몸이 담가지느냐. 아, 정말로 운이 좋으면 살 수도 있어요. 당신이 생각보다 나쁜 새끼가 아니라면 말이에요. 물론 감옥에서 썩어야 하는 건 매한가지겠지만, 당신이 어떻게 협력하느냐에 따라 죄가 덜어질 수도 있다는 거예요. 제가 무슨 말 하는지… 이해하고 계시죠?”

“제… 제가 뭘 하면 되는 겁니까?”

“뭘 하면 될 것 같은데요?”

“죄송합니다. 색욕과 영면이시여… 제가 멍청해서 그런 것까지는 잘….”

“일단 당신이 가지고 있는 아티팩트에 대해서부터 이야기해 보죠.”

“네… 넵. 그렇지 않아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아이템은… 바… 바로 이 겁니다.”

녀석이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품에서 작은 반지 하나를 꺼내는 것이 시야에 비쳐온다. 말 그대로 아무 특징도 없어 보이는 반지… 화려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빈티지해 보이지도 않은 반지였다.

“본래는 개인 기도실에 보관하고 있는데 혹시나 여쭈어보실 것 같아서 챙겨왔습니다.”

[루키페르의 상식개변 반지-모브링 NO.3 -등급 측정 불가]

[대륙을 버린 잊혀진 여신이 심심풀이로 만들어낸 최면의 반지입니다. 사용자는 주인의식을 통해 간단하지만 효과가 강력한 최면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최면에 걸려 있는 이들과 접촉했을 시에도 사용자가 최면 효과를 발동시킬 수 있게 됩니다. 루키페르의 신도들에게는 최면 효과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사용자의 행운이 50 감소합니다.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으면 좋겠는데…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겠지? 그래. 재미있을 거야. 그야 이런 반지가 나타난다면 재미있어지는 게 ‘상식’이잖아?]

설명을 읽어보니 어떻게 안기모와 내게 최면을 걸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녀석에게 최면이 걸린 다른 사제들과 접촉했을 당시부터 이미 효과가 들어가 있었던 것이리라.

물론 지금 이 시점에서 최면 아저씨의 최면 트릭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아이템의 이름과 정보에 반갑지 않은 것들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브링? 넘버링도 붙어 있어?’

거기에다가….

‘등급 측정 불가?’

결정적으로….

‘루키페르….’

“…….”

“…….”

“이거 어디서….”

“네?”

“어디서 얻었어요?”

“…….”

“…….”

“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게 무슨 개소….”

“정말로 잘 모르겠습니다. 한… 한 6개월 전쯤에… 갑자기 제 손에 끼워져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갑자기 주인의식이라는 게 시작되지를 않나. 행운이 감소한다는 메시지가 들리지를 않나… 정말로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닙니다. 정말로 어느 날 아침에 갑자기 제 손가락에 끼워져 있었습니다.”

‘아주 지랄 났네. 진짜.’

“그, 그 이후에는 계속 안 좋은 일이 벌어지고… 사, 사실 저도 처음부터 이렇게 뚱뚱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반지를 낄 때부터 식욕이 왕성해져서… 지금은 반지가 손가락에 들어가지도 않게 되어버렸는데, 심지어 가끔 이상한 웃음소리와 말투가 튀어나오는 바람에… 믿으실지 안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저… 저 제법 성실하게 살아온 사제였습니다. 그 못된 놈들 명령에 따르기는 했지만… 아니,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솔직히 그렇게 성실하게만 살아오지는 않았지만, 조금 사고가 있어서 이곳으로 좌천되기는 했지만 적어도 범죄자들이 할 만한 짓은 저지르지 않았단 말입니다.”

“…….”

“절대로 나쁜 짓 따위는 하지 않았습니다. 이건 조사해 본다고 하셨으니 언젠가 알게 되시겠지요.”

“나쁜 짓을 안 해요? 참나. 무슨 개소리를….”

“이상하게 들리실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색욕과 영면께 무례를 저지른 것은 왠지 그래야 될 것 같다는 충동이 들어서….”

“…….”

“…….”

“충동은 넘어가고 다음 질문할게요. 모브링 넘버1이랑 넘버2는 본 적 있나요? 아니면 다른 넘버링의 소유자를 만난 적은?”

“없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저 하나로 알고 있지만 워낙에 숨기는 것이 많은 녀석들이니….”

“으깬 감자랑은 언제 만났는데요?”

“약 3개월 전입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으, 으깬 감자가 갑자기 저를 찾아오지만 않았으면 절대로 이런 일에 연루되지 않았을 겁니다. 저 나름대로 저항해 보려고 하기는 했지만 루키페르의 신도라는 놈들에게는 제 최면 능력도 먹히지가 않아서….”

‘하… 으깬 감자 새끼. 시바… 그러니까 움직이지 말라니까. 진짜’

김현성에게 으깬 감자가 되어버린 녀석이 허무하게 죽어버렸다는 게 아쉽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녀석이 대가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판단이 선다. 하는 짓이 너무 어처구니없어 오합지졸인 줄 알았는데 또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왜 살려놨는지도 알겠네.’

어째서 이 최면 아저씨를 살려놨는지도 알 수 있었다.

‘주인의식 때문에 그런 거구나?’

아이템 설명창에는 적혀 있지 않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났다고 했으니, 소유주가 사망하는 즉시 반지가 사라질 확률도 적지 않다.

아마 내가 알지도 못하는 어느 공간으로 빨려 들어갔다가 다시 적합한 소유주를 찾아 헤매지 않을까.

루키페르의 신도들의 입장에서는 저 반지가 사라지는 것을 그 어떤 것보다 원치 않았을 테니 억지로라도 최면 아저씨를 품을 수밖에 없었겠지. 겸사겸사 대륙에 작업을 칠 수도 있고 말이다.

“그 루키페르의 신도들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계세요?”

“사실 정확하게는 모릅니다. 저는 언제나 으깬 감자를 통해서 명령을 전달받았던 터라… 물론 으깬 감자 외에도 몇몇이 있기는 하지만… 도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할 따름입니다.”

“아니요. 그 정도면 충분히 도움이 됐어요. 적어도 뒤에 누군가가 있다는 건 확실히 알게 됐으니까요.”

‘짜증 나네. 진짜.’

아직 끝난 게 아닌 모양이다. 육망성 사건이 한창 진행됐을 당시에 루키페르의 신도라 부르고 이단이라 쓰는 놈들을 대부분 잡아 쳐넣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육망성 게이트를 통해 1회차의 개연성을 충족시키고 온 것과 육망성을 추앙하는 루키페르의 신도들은 완전히 별개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물론 녀석들에 대해서 완전히 긴장을 늦추고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실제로 교황청의 이단심문관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이단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고, 어느 정도 미약한 성과도 내고 있는 상황이지 않았던가.

규모가 얕고 넓게 퍼져 있다고 느껴져 쥐 잡듯이 박멸하면 놈들이 영향력을 키울 수 없다고 판단했건만…

뜻밖의 깊은 구덩이를 발견해 버렸다. 그것도 깊이가 어느 정도가 될지 확인할 수 없는 구덩이를 말이다.

물론 놈들이 지금 당장 무엇을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 놈들 역시 현시점에서 자신들이 대륙의 큰 영향을 끼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은밀하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심스럽게 균열을 내려고 하고 있는 거겠지.

만약 놈들이 대륙의 근간을 통째로 뒤흔들 만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면 최면 아저씨와 장난질을 하고 있을 게 아니라 어딘가에서 전쟁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지금 녀석과 만난 것은 행운이나 다름이 없다. 진 군사와 밥 먹으러 왔다가 이상한 일에만 휘말리는 것 같아 어처구니없기는 했지만 말이다.

“전혀 다른 정보가 없나요? 규모는?”

“그…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워낙 비밀리에 움직이는 놈들이라 잘은 모르겠지만 뭔가 분위기를 보면 딱 그런 거 있지 않습니까? 당장 저한테 떨어지는 지원도 적었고, 심지어 제가 지원금을 요구하면 으깬 감자 녀석은 말을 돌리거나 헛기침을 하기 바빴습니다. 있는 폼, 없는 폼은 전부 다 잡으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심지어 다른 놈들은….”

“아. 몇 명 더 봤다고 말했었죠?”

“네. 네.”

“그럼 이게 가장 중요한데 으깬 감자 외에 몇몇은… 잘생겼어요?”

“네? 그건 갑자기 왜….”

“아니, 잘생겼냐고요.”

“잘… 생겼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가운데에 있었던 한 명이 무척 잘생겼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네. 분명히 잘생겼습니다.”

“현성이 정도는 돼요?”

“조금… 분위기가 다르게… 잘생겼습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네.”

“저는 그 사람이 더 잘생겼었던 것 같습니다. 키도 더 크고 말입니다.”

“…….”

“…….”

‘하… 시바… 이거… 위긴데?’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대륙에 시바 엄청난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혹시….”

“…….”

“금발은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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