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572화
새로운 일상(27)
“희생과 부활의 성자님!!!! 성자님!!!”
“노을빛의 검신과 대마법사도 함께야!!!”
“절대 지켜!!! 희생과 부활의 성자 절대 지켜!!!!”
‘너희들이 제일 위협적이야.’
“굴욕외교 물러가라! 굴욕외교!!!!!! 물러가라!!!!!!”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성자님!!!! 저희가 구해드리겠습니다!!!”
“흔들리지 마세요!! 명예 추기경님!!!! 평화유지회에서 명예 추기경님을 지지하겠습니다!!!”
“밀지 마!!! 씨발 밀지 말라고!!!! 굴욕외교!!!!”
‘시바 이거 맞아?’
“평화의 노래를 부르자!!! 평화의 노래를!!!”
“굴욕외교오오오오!!!!!!! 물럿거라아아아아!!! 물럿거라아아아아아아아!!!!”
‘뭔 구마의식이라도 하는 거냐고…’
“우리는 부른다!!! 평화의 노래를!!! 평화의 노래를!!!!!”
‘시… 시바 진짜 광기의 현장이자너.’
사전에 마음의 준비를 하고 나온 것이었지만 막상 현장에 도착하니 그 열기가 남다르다. 심지어 이쪽과
시위대의 거리가 결코 가깝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쓸모없어 보였던 평화사절단을 데리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는 평화의 노래와 그런 그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구마의식을 시전 중인 반평화협정 시위파의 모습은 가관이다. 나도 적응이 되지 않으니 김현성이나 다른 이들은 오죽할까 싶다.
‘아니, 현성이만 조금… 어색해하는 건가.’
정하얀은 애초에 이쪽의 옆에 착 달라붙어서 걷고 있으니 논외, 사실 시위대고 나발이고 신경 쓰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소라 같은 경우에는 정하얀 때문에 조금 불안한 것 같기는 했지만 평소보다 더 힘을 줘서 옷을 입은 것을 보아하니, 언론에 드러날 자신의 사진이 신경 쓰이는 모양이다.
파란 길드원들은 유명 셀럽들 이상의 인기를 구가하니, 데일리룩을 비롯한 패션 사진들이 베니고어 넷에 돌아다니는 게 일상이었으니까.
참고로 매번 최악의 패션을 선보이는 것은 박덕구가 아닌 파란색을 좋아하는 조혜진. 어느 가십 잡지에도 최악의 워스트 드레서 Top 5로 이름을 올렸을 정도였다. 한소라는 정하얀과 함께 베스트 드레서 Top 5에 랭크된 적이 있었던 만큼 오늘도 단단히 준비한 것처럼 보인다.
굴욕 사진을 찍히지 않기 위해서 자세를 바르게 하고, 항상 웃는 모습을 유지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자신만 신경 쓰고 있는 것이 아니다. 혹시라도 정하얀이 굴욕 사진을 찍힐까 신경이 쓰였는지, 계속해서 그녀의 모습을 점검하고 있는 것이 눈에 보여왔지만….
‘하얀이는 어디에서 찍어도 귀엽게 보여서 그런 걱정할 필요 없기는 하자너.’
그리고, 굴욕 사진 따위에 굴하지 않는 것은 이 구역 최고 존엄 김현성도 마찬가지다. 사실 얘는 굴욕 사진이나 워스트 드레서 선정보다 괜한 떡밥이 언론에 나돌까 걱정이 된다.
“생각했던 것보다… 사람이 더 많군요.”
딱딱하게 굳어 있는 모습이 마치 삐걱거리는 로봇 같지 않은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표정이 일그러져 있다. 애초에 언론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사람들이 너무 많은 곳에 자리하면 괜한 불안증에 시달리는 녀석이었으니 이런 상황이 불편할 만도 하다.
전쟁터에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있었던 것이 이런 상황에서도 불필요한 불안감을 선물해 주는 것이리라.
“생각보다…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아, 아무래도 마차를 타고 저택 안으로 들어가는 편이….”
“물론 마차를 타고 들어가도 상관이 없기는 하지만 상징적인 순간이니까요. 대중들에게 얼굴을 비추는 게 당연한 거죠. 조금 불안하시죠?”
“아니… 아닙니다. 딱히 불안하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혹시라도 저 인파들 사이에 적들이 섞여 있을까 걱정이 돼서.”
“그걸 불안하다고 하는 거예요. 그냥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옆에도 쳐다보지 말고 앞만 보고 걸어요.”
“아… 네.”
‘대답하면서도 계속 두리번거리자너.’
웬만하면 내 말에 고분고분 따르는 김현성이었지만 본능적으로 주변을 둘러보게 되는 모양이다. 심지어 기자들까지 설치면서 어떻게든 인터뷰를 따내려고 손거울을 들이밀고 있으니 진정할 수 있을 리 만무.
당연히 김현성에게 질문을 건네는 이들도 상당수다. 애초에 내가 언론에게 아무 정보를 주지 않을 것이라는 걸 확신하고 있어서인지 오히려 녀석에게 달려드는 기자들이 더 많다고 느껴진다.
“교국일보입니다!! 한 말씀만 해주십시오!!! 파란 부길드마스터!!!! 교국 지도부와 오스칼에게 정치적 압력을 받고 있다는 게 사실입니까!!!”
“그림자의 저택에서 진행되는 비밀 회담의 쟁점에 대해서 한 말씀만 부탁드립니다!!”
“파란 길드마스터가 함께 동행하신 연유가 궁금합니다!!!!!”
“두 분 불화설에 대해 한 말씀만 부탁드립니다!!!”
“희생과 부활의 성자님께서 공화국으로 귀화하시는 게 사실입니까?!”
“…….”
“…….”
심지어 본인이 저렇게 멈칫멈칫 질문에 대답하려고 하고 있으니 기자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나는 계속해서 앞만 보고 가자고 분명 이야기했건만….
“기영 씨는 공화국으로 귀화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저와 기영 씨 사이에 불화설 같은 것은 없습니다. 현재 기영 씨와 저는 영혼이 연결되어 있는 상태이며….”
‘아니, 씨발 아무것도 대답하지 말라니까. 진짜.’
“정확히 영혼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상세하게 말씀 부탁드립니다!!!”
“그러니까… 하나의 영혼을 두 개의 몸이 공유하고 있다고… 정확히 설명드리기는 어렵습니다만 무언가 변화가 있었던 것은 확실합니다.”
‘아니, 계속해서 대답하지 말라고요. 시바.’
괜스레 이쪽의 얼굴이 화끈거려 걷는 속도를 올리자 아니나 다를까 김현성도 기자들을 무시한 채로 재빠르게 걸음을 옮겨온다. 문제가 있다면 계속해서 입을 열고 있었다는 것이 아닐까.
“저와 기영 씨도 아직까지 이 현상이 무엇인지, 어떻게 된 것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 계속해서 알아가고 있는 중이지만 저는 둘의 유대가 더욱더 돈독해졌다는 증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금안의 눈도 더욱더 밝아지기도 했고 말입니다. 이 정도면 대답이 되셨습니까? 다시는 불화설 따위는 입에 담지도….”
“대듭흐지… 믈르그요….”
“…….”
“…….”
“아… 죄… 죄송합니다. 기영 씨.”
‘시바 진짜. 눈치 좀 챙기라고요. 현성 씨. 시바.’
본래는 조금 더 느긋하게 걸으며 대중들과 눈을 마주쳐주기도 하고, 진정시키며 저택 안으로 들어서려고 했었는데 이 새끼 때문에 계획이 흐트러져 버렸다. 별다른 퍼포먼스도 하지 못하고 진 군사의 저택의 앞에 서게 된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진 군사의 저택을 보자마자 녀석이 언론에 보였던 추태를 곧바로 잊어버릴 수 있
었다는 것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발가벗겨진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눈앞에 있는 거대한 아방궁을 보고 있자니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마치 역사적인 건축물을 앞에 두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어마어마하네….’
“…….”
‘참 취향 한번 지 같기도 하고.’
이곳이 중국인지, 공화국인지 헷갈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저택. 아니. 이걸 저택이라고 부르는 것이 올바른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녀석이 고국을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뭔 중국 황제의 별장 같은 모양새의 저택이 시야에 비쳐온다.
심지어 파란 길드보다 더 크다. 대충 보기에도 부지가 엄청나다는 것이 느껴진다. 딱히 집의 크기나 규모 같은 것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김현성이도 무척이나 놀란 표정을 담고 있었다.
‘돈이 썩어나는 건지… 뭔지. 시바…’
왠지 모르게 소시민적인 사고방식이 발동된 것은 당연지사. 이상하게도 이곳에 들어가는 게 꺼림칙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그냥 친하게 지내던 동네 친구가 사실은 엄청난 부잣집 아들래미였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이쪽도 골드는 쌓아두고 잘 수 있을 정도로 많기는 하지만 본래 진짜 부티는 사소한 것과 마음가짐에서 우러나온다고 하지 않았던가. 남들에게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커다란 저택이 진 군사에게는 당연한 일상이었던 것일까. 이미 예상하기는 했지만….
‘이 새끼 분명히 지구에서도 엄청 부자였을 거야.’
잘나가는 사업체를 가지고 있는 아들내미 김현성도 나름 준재벌 느낌이기는 했지만 진 군사 이 새끼는 격이 다른 부자였을 것이다. 벌써부터 쭈삣쭈삣하고 있는 정하얀을 보면 답이 나온다.
“엄, 엄청 커요. 오빠….”
“그… 그렇네… 가까이서 보니까 더 크네… 저 멀리서 공원이라고 생각했던 게… 전부 진 군사님… 집이었구나?”
‘우리 같은 인간들은 괜히 부담스럽자너.’
그나마 이쪽이야 사치스러운 생활과 사치스러운 파티에 익숙해져 있어 조금 덜 부담스럽지는 했지만 정하얀은 그렇지도 않은 편이다.
태어나길 흙수저로 태어났으니 아마 그녀에게 더 편한 장소는 진 군사네 저택이 아닌 빅보이 햄비어 꼬치집이겠지.
그래도 좋은 곳에 최대한 많이 데려가기도 했고, 한소라 역시 그녀에게 많은 경험을 시켜주기 위해 다양한 분위기에 익숙해져 있겠지만 그 많은 경험들이 아무것도 아니게 될 정도로 규모가 큰 아방궁이 눈에 들어오니 살짝 흔들리는 모양이었다.
심지어 한소라 역시 괜히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아니, 한소라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부담스러운 것일지도 모른다.
정하얀처럼 나만의 길을 걷는 스타일도 아니고, 김현성처럼 준재벌 느낌도 아니고… 한소라는 그냥 일반인 한소라였으니까.
갑작스럽게 옷매무새를 점검하는 모습을 보니 실제로 당황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듯했다. 그대로 발길을 돌리지 않아도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
끼이이이익 거리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저택의 문이 열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문이 커다라니 문이 열리는 속도도 느린 것처럼 느껴진다.
가까스로 전부 열린 문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당연히 평소의 진 군사.
그리고….
‘뭐… 뭐야. 시바.’
엄청난 숫자의 사용인들이었다. 특징이라고 한다면 모두가 고국의 향기를 풍겨오는 복식을 입고 있었다는 것. 뭔 시바 갑자기 과거로 타임슬립한 줄로만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남녀 가릴 것 없이 치파오를 입고 있다.
‘이 새끼. 시바 차이나 드레스 페티쉬라도 있어?’
그야 이 넓은 저택을 관리하려면 저렇게 어마어마한 사용인들이 필요로 하기는 하겠지만 그럼에도 숫자
가 눈에 띌 정도로 많다.
심지어 일부는 상당한 무력도 갖추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솔직히 진 군사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뒤에 호수인지 연못인지 모를 곳에는 작지만 고급스러워 보이는 나룻배가 띄어져 있었고, 조경은 아름답다 못해 감탄이 나을 지경이다.
어처구니없지만 이곳으로 오는 동안 구경했었던 삼대 절경인지 나발인지보다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나… 여기서 살아도 되나?’
슬쩍 쳐다보기가 무섭게 모든 사용인들이 인사를 올리는 중.
황당하게도.
“…….”
“…….”
포권이었다.
‘컨셉… 뭔데? 너… 원래 안 그러잖아…’
“…….”
‘단체로 포권하고… 그러는 거… 좀 이상한 거… 아니야? 당연…한거야?’
“…….”
“저택에 방문한 것을 환영한다. 이기영. 그리고….”
“…….”
“저택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파란 길드 여러분들.”
내게 말을 편하게 거는 진 군사를 보고 있는 김현성의 얼굴이 조금 불편한 듯 보이기는 했지만 지금은 김현성을 신경 쓸 겨를도 없는 상황.
“…….”
“…….”
윗동네에서 베니고어에게 컵케이크 테러를 받고 있는 하찮은 진 군사의 모습은 떠오르지도 않는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것은 진 군사가 아닌 무언가였다.
‘너… 너… 너 왜 지금까지… 컵케이크나 맞으면서 살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