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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575화 (1,575/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575화

새로운 일상(30)

“…….”

“…….”

‘진… 진짜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 진짜야… 진짜….’

순간적으로 당황스러운 감정이 온몸을 지배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며 손짓하자 다시 한번 무언가가 툭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콰직 하는 소리도 들려오는 것을 보니 심지어 내가 발로 무언가를 밟아버린 모양, 우당탕거리며 그대로 장식장과 함께 나동그라질 뻔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이거… 이거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 아니… 시바….’

깜짝 놀란 사용인들의 표정이 그대로 얼굴에 드러났던 탓에 더욱더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쉽지가 않다.

모두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고, 허망한 표정으로 산산조각 난 진영의 물건을 바라보던 용월은 어느샌가 이쪽을 노려보기까지 하고 있었다. 혹여나 칼침이라도 맞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다.

몇몇 사용인들의 얼굴에도 그대로 적개심이 감돈 것은 당연지사. 언제나 당당한 태도를 유지하려고 했던 새로운 안주인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조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시… 시바.’

눈치를 보지 않으려고 해도,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

‘아니, 시바 애초에 시바 저 물건이 여기에 왜 있었던 건데?’

솔직히 말하면 진영의 물건들이 이 저택 이곳저곳에 놓여 있는 게 이상하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진 군사의 아들, 그러니까 진영의 죽음 이후에 공화국에서 정식으로 녀석의 유품들을 보내달라 말을 전해왔던 적이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진영의 물건들은 대부분 이쪽의 물건이었던지라 보물창고에 있는 오래된 것들을 주워서 공화국 쪽에 유감을 표하며 전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연히 진 군사가 쓸 만한 동양적인 색채가 강한 아이템들이었다. 그중에서는 그냥 별것 아닌 물건들도 있고, 무척이나 고급스러운 아이템이나 장식물들도 있었지만 공화국에서 직접 확인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공을 들이기야 했다.

말하자면 내 취향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값비싼 물건이었다는 거다. 당연히 진 군사의 저택에 장식되어도 별다른 위화감이 없을 아이템들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이걸 시바 집에 장식을 해놨어?’

진영과 함께 묻히거나, 어딘가의 창고에서 썩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이렇게 진 군사의 저택의 곳곳에 놓여 있을 거라고 어떻게 상상할 수 있겠는가.

“…….”

“…….”

‘모르는 척해야 돼.’

“에… 에그머니나… 실… 실수했네요?”

‘시바 에그머니나가 뭐야. 너무 연기톤이었어. 시바.’

평소에 잘하던 것도 꼭 이럴 때는 안 되더라.

누가 들으면 일부러 깽판을 치고 천연덕스럽게 구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

“…….”

또 무슨 작정이냐는 듯 이쪽을 한심하게 바라보는 진 군사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아무래도 내 생각이 맞는 모양이다.

그 와중에 이 새끼는 저게 진영의 유품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는 표정. 마치 기르던 고양이가 냥냥편치로 선반 위의 물건을 떨어뜨렸을 때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은가.

도대체 어떤 경위로 저 물건들이 이곳에 널려 있는지 깨닫게 된다.

‘이거 시바 그냥 너희들이 진 군사 의견도 안 묻고 여기에 가져다 놓은거구나?’

진 군사 성격상 내가 보낸 진영의 유품들은 묻고 따지지도 않고 창고에 처박아 버렸을 것이고, 그 유품들을 사용인들이 관리하게 된 것 같았다.

아마 용월을 비롯한 진 군사의 수족들이 과잉 충성을 한답시고 진영의 유품을 여기 적재적소에 배치해 진 군사의 외로움과 그리움을 달래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진 군사가 따로 인테리어 소품까지 이것저것 관리하지 않았다는 게 조금 의외이기는 했지만 아마 본인이 보기에도 나쁘지 않으니 가만히 내버려 뒀을 것이다.

상황이 그러했으니 진 군사의 수족들은 그걸 일종의 오케이 사인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그래. 이거 엄연히 말하면 너희들 잘못이에요. 내 잘못이 아니에요. 이건….’

커다란 목소리가 튀어나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지… 지금 이게 무슨 짓입니까!!!”

‘뭐… 뭐야? 너… 너 그러는 거 맞아?’

용월이 저도 모르게 비명을 내질러버린 것이다.

‘아니… 용월 씨. 저기요. 저… 저 희생과 부활이에요. 이 아방궁의 넘버2라고요.’

허겁지겁 이쪽을 향해 다가와, 그 기백에 눌려 저도 모르게 자리를 비켜줬을 정도였다.

“아… 아아아아… 이를… 이를 어째… 흐윽… 흐으으으윽….”

엎드린 이후에는 깨진 파편들을 손으로 쓸어 모으기 시작한다. 손이 엉망이 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마치 무너진 모래성을 다시 세우려는 것처럼 보이는 터라 괜스레 짠해 보인다. 오열하고 있는 모습이 마치 등껍질을 잃어버린 거북이처럼 보였던 터라 미안한 감정이 더욱더 커지고 있다.

‘아니… 그 정도로 소중한 거였냐고….’

“이걸 어떻게 해야 한단 말입니까… 흐윽… 흐으으윽….”

심지어 뒤에 있는 사용인들도 눈물을 참고 있지 않은가.

‘아니… 너희들 도대체 왜 그래? 진영이… 본 적은 있어? 조금… 과몰입…한 거 아니야?’

찌릿하고 이쪽을 째려보는 용월이의 표독스러운 시선이 느껴진다. 사실 저쪽 입장에서 보면 표독스러운 것은 이쪽이었겠지만 아무튼 간에 괜스레 주눅이 들게 하는 표정이었다.

“남의 물건을 이리 함부로 건드리는 것은 대체 어느 나라의 법도입니까! 흐윽… 흐으으흑….”

“아… 아니… 변… 변상하면….”

“이것은 변상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아… 아니, 고함치지 마세요. 하얀이 화나요. 하, 하얀이 화나면 진영이 유품 정도가 아니라 저택 전체가 날… 날아간다니까요. 제가 당사자한테 직접 사과할게요.’

장담하건대 사용인 용월이 이 저택에 지내게 된 뒤로 내뱉은 최대 데시벨. 그 와중에 김현성은….

“저 물건은 대체 얼마나 하는 겁니까? 제가 지불하도록 하겠습니다.”

라고 사용인 왕강에게 눈치 없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심지어 정하얀은… “저, 저거 깨진 거 가지고 진짜 유, 유난이다. 그… 그치 소라야.”라고 한소라를 향해 중얼거리고 있는 중.

뭔가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고 느껴진 한소라 정도만이 정하얀이 나의 흑기사가 되어주려 나서는 것을 말리고 있었다.

‘진… 진짜 미친놈들이 따로 없자너.’

사용인들 사이에서 파란 길드 혐오가 생겨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지 않은가. 오히려 벙찐 것은 진청 쪽이었다.

“?”

“흐윽… 흐으으윽….”

“?”

도대체 용월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당최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 진 군사답지 않은 행동이었지만 뇌가 정지된 것 같은 표정이었다.

‘많이 당황했나 봐.’

분명히 용월에게 주의를 주었던 것이 얼마 전, 저게 진영의 유품인지 알 리가 없는 진 군사는 그저 급발진한 용월이 이해가 가지 않는 모양이다. 심지어는 분노도 느껴진다. 자신의 손님에게 무례한 행동을 하고있는 사용인들에 대한 분노 말이다.

“흐윽… 흐으으으으윽… 흐윽….”

“흐으… 이를 어찌한단 말입니까….”

그 와중에 또 눈에 띄었던 것은 용월이 진 군사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이걸 가만히 두고 보실 겁니까? 이 오만방자한 손님들을 이대로 두고 보질 거냐는 말입니까. 군사님.’

더불어 이쪽에게는 분노의 눈빛을 다시 한번 보낸다. 당신은 이제 큰일 났다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곧 이 저택의 주인이 당신이 받아 마땅한 벌을 내릴 거라고 여기는 듯했다.

‘네가 넘버2였구나?’

진 군사가 들어오기 전까지 이 저택의 살림꾼 역할을 맡고 있었던 넘버2가 바로 그녀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그게 아니라면 이토록 무례하게 소리를 칠 수가 없을 테니 말이다.

자연스럽게 그녀를 필두로 한 로맨스 소설이 한편 뚝딱 그려진다. 남몰래 저택의 주인을 사랑하는 사용인 용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진 군사에게 조금씩 다가가는 것이 이 소설의 전반적인 스토리일 것이다.

커다란 슬픔에 파묻혀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은 진 군사였지만 결국에는 사랑하는 부인과 아들을 잃은 슬픔을 용월을 통해 치유하기 시작하겠지.

매일 아침 그를 위해서 차를 타주고, 매일 아침 그에게 업무 보고를 올리며 저택의 전반적인 상황에 대한 브리핑을 하는 소중한 일상을 겪다 보면 저도 모르게 그런 발칙한 상상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미 사용인들 사이에서의 서열도 높을 것이고, 다들 알게 모르게 그녀를 존중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 언젠가는 그녀가 이 아방궁의 안주인이 되는 것이 잠정적으로 확정된 것이라 판단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분명 진영의 유품을 이곳저곳에 장식해 놓은 것도 그녀의 판단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왠지 모르게 내 입장에서는 그녀가 무척이나 계산적인 악녀 포지션으로 그려지기는 하지만 용월이라는 사용인의 성향과 기벽을 보고 있자면 딱히 그런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진 군사를 위하는 순수한 마음이 가장 커 보이기도 했고,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변에 좋은 사람들의 응원을 받으면서 순수하고 귀여운 연심을 키워가는 이미지가 그려진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진 군사가 한번 머리라도 쓰다듬어주면 80년대 순정만화 주인공마냥 얼굴을 붉히는 재질이라는 거다.

그녀가 내게 소리를 지른 것도, 아마 화를 못 이겨서 그런 것이겠지만….

안타깝게도….

‘진 군사는 너한테 관심 없자너….’

아니, 정확히 말하면 모든 인간에게 관심이 없자너….

저 인간이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허둥지둥 귀염로티 깜찍발랄 천재로티 정의로운 도둑로티 외에는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관계를 맺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용월이 진 군사와 어떤 추억을, 무슨 추억을 쌓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상처 입은 진 군사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어떤 것들을 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불행하게도 그건 그녀 혼자만의 상상일 가능성이 높다.

지금 그녀의 행동은 진 군사의 입장에서는 갑자기 사용인이 선을 넘어 자신의 손님에게 무례를 끼친 행동,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거다.

‘시바… 괜… 괜히 미안해지게.’

“…….”

당연히 이 이야기의 결말은….

“하….”

“…….”

“지금 이게 무슨 짓이냐. 용월.”

비극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

“…….”

“네?”

“내 손님에게 지금 무슨 무례한 짓을 저지르는 것이냐고 물었다.”

“분명 내가 이전에도 분명히 일러두지 않았나? 내 말이 말같이 들리지 않았던 모양이군.”

“군… 군사님… 하… 하오나….”

싸늘한 눈빛이 그녀에게 쏟아지는 것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시바 이 와중에도 진 군사의 옆에서 고개를 치켜들고 그녀에게 너와 나의 눈높이에 대해 설명해 주고 싶은 본능과 DNA가 비명을 지르기는 했지만 이번만은 내가 먼저 실수했다는 자각이 있다.

시바 솔직히 진 군사가 얼마나 냉혹해질 수 있는 인물인지 아는 만큼 그녀의 운명에 대해서 걱정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인간은 시바 사람을 원숭이로 보는 새끼라고. 너 그러면 안 된다고, 막 선 넘고 그러면 저택에서 분명히 쫓겨날 거라고….’

“군사님 한 번만 제 이야기를….”

“그 입 다물어라. 용월. 내가 지금 당장 네 팔을 자르지 않은 것은.”

‘팔도 잘라? 하기사 이 새끼 게임에서 지면 손가락 자른다고 했던 새끼이기는 했자너.’

“그간 너와 함께 했던 정과 그간 네가 내가 보였던 충성 때문이니.”

‘그… 그래도 정은 있었어?’

“너는 나를 한없이 부끄럽게 만드는구나. 용월.”

“…….”

“내 손님에게 얼굴을 들 수 없을 지경이다.”

“흐… 으으윽… 흐으윽….”

‘그… 그러지 마. 진짜. 그러지 마. 용월 씨 착해… 내… 내가 봤어.’

갑작스럽지만 당연히 진 군사를 향해 귓속말을 갈길 수밖에 없었다.

“적당히 해요. 시바. 저거 딱 보니까 군사님 첫째 아들 유품인 것 같아서 그런 것 같아요.”

“…….”

“제가 제 물건인 줄 알고 손댔다가 깨진 거예요. 사용인들이 진 군사님 힘내라고 저택 곳곳에 넣어둔 것 같은데….”

“…….”

“암… 암튼 간에 적당히 하라고요.”

갑작스레 이를 악문 진 군사가 이쪽을 살짝 밀친다. 모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진짜로 모르고 있었던 모양인지, 마치 본인의 저택에 똥이라도 묻어 있는 것마냥 반응하기 시작한다.

‘어? 시… 시바. 이… 이게 아닌데?’

녀석이 자리한 것은 또 다른 진영의 유품. 기어코 녀석이 그걸 바닥으로 집어 던진다.

쨍그랑.

그리고 찾아온 정적.

이윽고.

“왕강.”

“추… 충.”

“전부 버려라.”

“?”

“내가. 분명히. 전부. 가져다. 버리라고. 이야기. 했다.”

“존… 존명!”

‘시… 시바 존명은 또 뭐고 씨발 그건 또 왜 버려….’

그리고….

왜….

무릎은… 나한테… 꿇는 거야.

왕강의 자세가 미묘하게 이쪽에게 틀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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