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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578화 (1,578/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578화

새로운 일상(33)

억지로 참아보려고 했지만 감정을 컨트롤 할 수가 없었다. 턱이 덜덜 떨려온 것은 당연지사. 손과 발도 떨려온다.

소중한 영이를 잃은 가슴 아픈 기억이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재생되고 있다.

겉으로는 냉정해 보이기는 했지만 사실은 그 누구보다도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그 녀석, 결국에는 대륙의 위협을 위해 초개처럼 목숨을 던져 버린 그 녀석과의 추억이 떠오른다.

그 누구보다도 자신의 아버지를 잘 따르고 좋아하던 작은 꼬마의 모습이 말이다.

‘파파가 오셨다고요?’

‘그래… 영아.’

‘그… 그럼….’

‘아쉽게도 이곳에는 들르지 않을 계획이라고 하시는구나… 밀린 일이 많으신 것 같아….’

‘아….’

‘너무 아쉬워하지 마렴… 파파가 얼마나 영이를 사랑하는지는 영이가 가장 잘 알고 있지 않니?’

‘네….’

‘다음번에 오실 때에는 함께 나들이라도 나가보자고 말씀드려보렴.’

‘형도 같이 가는 거죠?!’

‘물론이지.’

‘헤헤헤….’

‘후후후후후… 그렇게 좋으니?’

‘네!’

왈칵.

그래, 그러고 보니 틈이 날 때마다 어머니에 대해 물어오기도 했었던 것 같다.

‘형은 마마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시나요?’

‘만난 적은 있었지. 정말로 아름다운 분이셨단다.’

‘파파는 마마를 많이 사랑했겠죠?’

‘그럼~ 군사님께서 한눈에 반해버리실 정도로 멋진 사람이었어. 상상할 수 있니? 그 강하고 고집스러운 분이 네 어머니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셨는데… 어떻게든 네 어머니 기분을 맞춰주려고 하시고는 했었지. 요리를 해서 가져다 주기도 하고… 노래를 불러주기도 하고 말이야.’

‘아….’

‘혹시 또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니지?’

‘아… 아니에요.’

‘…….’

‘…….’

‘네 잘못이 아니란다.’

‘…….’

‘이리 오렴.’

그럴 때면 녀석을 꽉 껴안아 주기도 했었다. 자신이 어머니의 죽음에 연관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미 깨닫고 있었던 터라, 그럴 때면 유독 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내 품에 안겨서 오열하는 모습이 얼마나 가슴 아프던지… 솔직히 당시에는 녀석을 교국으로 보낸 이후에 나 몰라라 했던 진청 파파가 원망스럽기도 했었다.

물론 교국으로 향한 것은 영이의 선택이었다. 그 작은 녀석은 아주 어릴 때부터 자신이 뭘 할 수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인지 인지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게 자신을 돌봐줄 사람이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다. 영이는 아직 어렸고, 부모님의 사랑을 갈구할 나이였다. 조금 부끄럽기는 했지만 내가 어느 정도는 그 역할을 대신해 줬던 기억이 난다.

‘형!’

‘영아.’

왠지 모르게 진영의 캐릭터가 조금 바뀐 것 같기는 했지만 본래 해석이라는 건 상황과 시기에 맞춰 달라지게 마련, 대충 기영이 형 앞에서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다는 설정을 덧붙여 추가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어차피 나를 바라보고 있는 이들은 우리 둘 사이에 무슨 추억이 있었는지 알 수 있을 리 없었으니 말이다.

“…….”

“…….”

‘하지만 대충 예상할 수는 있겠지? 그렇지? 딱 너희들 머릿속에서도 그려지지?’

무언가 할 말을 잃은 듯해 보이는 반 이기영 세력의 모습이 시야에 비쳐온다. 다행이라고 하기에는 뭣 하지만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는 멍청한 놈들은 없는 모양.

모든 것을 알아차리지는 못할지라도 이쪽이 진영과 아주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 내가 업어 키웠자너….’

아주 작았을 때부터, 내 옆에서 자랐자너….

‘너희들이 얼굴도 본 적 없는 소가주… 내가 돌봤다니까?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다 내가 돌봐준 거라니까?’

개연성은 충분하다 못해 넘친다. 애초에 진영의 안에는 진짜 가문의 정체 모를 힘이 봉인되어 있었으니 그 힘을 제어하기 위해 학생과 부활의 성자의 도움이 필요했다는 걸로 퉁 치면 되겠지 뭐.

주기적으로 억눌러주거나 발산해 주지 않으면 결국에는 폭주해 버리고 만다는 근본 설정이었다.

실제로 영이가 폭주했을 때의 기억도 생생하다. 그때 녀석을 막기 위해 무리하게 힘을 사용했던 터라, 아직까지도 몸이 정상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고, 먼 거리를 걸을 수조차 없다. 조금 무리해서 움직이는 날에는 몸이 녹초가 되어버린다. 다리도 아프다.

갑작스럽게 가슴을 움켜쥐자 깜짝 놀라는 김현성과 정하얀,

“기영 씨!”

“오, 오빠!”

“괜찮아요. 그때의 상처가 또….”

얘네들만 지금 무슨 상황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일단 정하얀이 눈물을 흩뿌려 주고 있으니 분위기가 잡힌다.

거기에 한소라가 안쓰럽다는 눈으로 진 군사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아마 저건 아들을 잃어버린 아버지를 보는 종류의 슬픔은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사용인들이 보는 관점은 또 다르겠지만 말이다.

드디어 정신을 차린 진 군사가 입을 열어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이게 무슨 짓… 짓거리냐….”

“더 이상 숨기는 것이 의미 없다고 생각했을 뿐이에요. 저분들도 알 권리가 있어요. 아니, 공화국이 대륙이 알아야 해요. 영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이었는지… 영이가 어째서 교국에서 지냈었던 건지… 그리고 우리에 대해서도 말이에요.”

“미… 미친….”

사용인이 없었다면, 이쪽이 손님이 아니었다면 아마 쌍욕이라도 날아들어 왔을 것이다. 놈의 표정이 딱 그랬으니까.

이곳은 진 군사의 영역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녀석의 영역이 녀석을 가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용인들 앞에서도 주인의 체면을 유지해야 하는 녀석이었으니 오죽할까.

“이… 이런 게 아니었단 말이다.”

“…….”

“…….”

자기가 원한 즐거운 두뇌싸움은 이런 게 아니라고 말하는 듯했지만 녀석의 말에는 호응해 줄 수가 없다.

‘나… 나도 이렇게 될 줄 몰랐어. 어떻게 하다 보니까 이렇게 된 거지….’

꼼짝없이 아들을 잃은 실망감과 슬픔을 아직도 잊지 못한 아버지가 되게 생겨 버렸다.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하책이라는 것을 모를 정도로 멍청하지 않은 진 군사가 곧바로 커다란 노호성을 터뜨리는 모습이 시야에 비쳐온다.

“저… 놈들을 지금 당장 끌어내라!!! 왕강!!!!”

조금이라도 자신을 압박하는 충신들을 눈에 치우기 위함이었다.

“당장!!!”

“…….”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군사님 그거 알아요? 지금 목소리 너무 커요… 지나치게 흥분했다고요. 누가 봐도 속내를 들켜서, 상처를 끄집어내는 게 너무나도 가슴 아파서 무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당장 일어서라고 이야기했다!!!! 더 이상 꼴도 보기 싫으니!! 내 눈앞에서 사라지란 말이다!!!!”

“…….”

“이런 미… 미친놈들이!!!!”

하지만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는 사용인들. 움직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충격적인 소식을 접해 이미 몸이 굳어버린 것이리라.

거기에 가만히 서서 상황을 관망하고 있었던 김현성까지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시바 뜬금없이 일장연설을 늘어놓고 있다. 이쪽을 바라보며 말이다.

“저 역시… 소중한 사람을 잃어본 적이 있습니다.”

“뭐… 뭐?”

“그렇기에, 당신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힘드시겠지요. 삶이 어째서 나에게만 이리 가혹한 것인지, 어째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난 것인지 현실을 부정하고픈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는 말솜씨가 없어 어떻게 당신을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꼭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당신은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진청 군사.”

“이… 이런….”

무척이나 진지한 얼굴로 진 군사를 위로하고 있는 중, 당연하지만 김현성의 저 동정하는 눈빛을 녀석이 견딜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심지어 진 군사를 위로해 주기 위해 포옹까지 시도하고 있는 것 같아 화들짝 놀란 진 군사가 놈의 손을 쳐낸다.

퍼엉!!! 하고 무슨 공기가 터지는 소리가 들려올 정도였다. 만약 진 군사가 내 팔을 저렇게 쳐냈다면 장담하건대 팔이 통째로 뜯겨져 나가 천장 위에 붙어버렸을 것이다.

“할 줄 아는 거라곤 네발 독수리 사료나 주고 경매장에서 가방 사는 것밖에 없는 멍청한 놈이… 감히 뭐라고?!!”

‘시… 시바 큰일 났다. 진짜 화났다.’

아무래도 장구벌레에게 동정의 눈길을 받는 것이 자존심이 상했던 것일까.

손님이고 뭐고 없는 것 같은 느낌이기는 했지만 여전히 내게는 지랄을 하지 않는 것을 보아하니 애초에 김현성을 손님이라고 생각한 것 같지도 않은 것 같았다.

“다시는 나를 그딴 눈으로 바라보지 마라!! 이 해파리 같은 놈!!!”

“분노로는 슬픔을 해소할 수 없습니다. 저는….”

“그 입 닥치라고 이야기했다!!!”

“진청 군사….”

“제… 제기랄….”

‘현… 현성이 상처받겠다.’

진 군사가 김현성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그 편린을 엿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 동정받고 있다는 것만으로 경기를 일으키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실제로도 해파리 같은 놈이라는 대사를 치는 걸 보면… 가슴 아프지만 진 군사는 김현성을 인간으로도 보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생각이라는 걸 하지 않는 바위 같은 걸로 보이는 모양이다. 다행이라고 하기에는 뭣 하지만 김현성은 그저 진 군사가 흥분해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지 아는 모양인지, 서글픈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근데 현성이 의외로 똑똑하고 눈치 빠른데… 가끔 이상한 부분에서 애가 망가져서 그렇지….’

하지만 진 군사에게 김현성의 좋은 부분은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진짜 너무 싫어하는 것 같은데?’

심지어 그 와중에 김현성의 손이 닿았던 곳을 벅벅 닦고 있다. 장구벌레 바이러스라도 옮는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지 화를 못 이겨 손수건을 집어 던진 진 군사가 다시 한번 사용인들을 향해 소리를 치려고 했을 때였다.

쾅!!! 쾅!!! 하는 소리가 들려온 것.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한 노야가 시바 이마를 계속해서 땅에 부딪치고 있었다.

머리가 깨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물불 가리지 않고 계속해서 이마를 땅에 박고 있는 중이다.

“불충을… 흐으으으으윽… 군사님의 슬픔을 미처 헤아리지 못한 죄!! 이기영 님에 대해 함부로 혓바닥을 놀린 죄!!!! 소가주님의 큰 뜻을 알아차리지 못한 죄!!!!! 죽음으로 다스려 주시옵소서!!!”

쾅!!! 쾅!!!!!

“죽음으로 다스려 주시옵소서!!!!”

쾅!!! 쾅!!!!!

“흐어으으으으으으윽… 흐으으으으으으으윽… 죽음으로 다스려 주시옵소서!!!!”

쾅!!! 쾅!!!!!!!

‘저러다 진짜 죽겠자너….’

한 노야뿐만이 아니다. 아주 용월이는 오열을 하고 있다. 아무래도 진영의 유품을 이 저택에 전시한 장본인인 만큼 그 유품들이 진 군사의 상처를 계속해서 헤집어 놓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만 같은 표정이었다.

“흐으으으으으으윽… 흐으으어어으으응….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왕강은 아예 눈에 수도꼭지를 틀어 놓은 듯하다. 저 새끼 왠지 반은 연기인 것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당연히 이쪽에 대한 태도에도 변화가 있다.

‘근데 나… 아직 아무 이야기 안 했는데….’

사특한 뱀을 운운하며 당장에라도 내 목을 잘라버리고 싶은 표정들이었는데 지금 사용인들의 눈에는 충정이 깃들어져 있다.

명실상부 확고하게 이 그림자 저택의 넘버2를 바라보는 듯한 얼굴이다. 존경심이 우러나온 것은 물론이거니와 자신들이 하지 못했던 일들을, 그러니까 소가주를 돌보며 물심양면 도운 나를 향한 감사함이 느껴진다.

태세전환이 너무 빠른 것 같아 좀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응당 받아 마땅한 반응이기는 했다. 무려 진가의 소가주를 직접 돌본 인물이 아닌가.

은혜를 입었다는 말로도 부족하다. 장담하건대 몇몇은 나를 위해서라면 불구덩이라도 뛰어들 것이다.

볼과 몇 분 전까지는 표독스러운 후궁을 바라보는 듯한 표정이었는데 지금은 명실상부 이 저택의 진정한 정실이 왔다는 듯한 분위기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심지어 시바 그 용월이 조차 나를 존경한다는 스탠드를 취하고 있을 정도였다. 평생을 진 군사와 함께 모시고야 말겠다는 눈동자가 분명했다.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이며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서는

것은 당연한 행동.

“그만. 되었어요… 한 노야.”

한 노야를 제지하고 모두를 바라본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무릎을 꿇고 있다. 모두가 내 입에서 나올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

“…….”

“우리는, 슬픔을 딛고….”

“…….”

“나아가야 해요.”

“…….”

“영이의 유산을….”

“…….”

“지켜나가기 위해서… 말이에요.”

“…….”

“여러분들이 함께 싸워주실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

“…….”

“추… 추웅!!!!!!!!!!!!!!!!”

도저히 이 꼴을 볼 자신이 없었는지 그새 정체 모를 방으로 들어간 진 군사가 자기 방 안에 있는 진영의 유품을 집어 던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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