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579화
새로운 일상(34)
마치 투수가 강속구라도 던지는 듯한 모양새, 있는 힘껏 물건들을 집어 던지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이 새끼가 정말로 괜찮은 것인지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정확히 진영의 유품들만 집어 던지고 있는 것을 보니 과연 기존 저택에 있는 물건들과 새로 들어온 물건들을 정확하게 구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진영의 유품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는 것. 저도 모르게 흥분해서 물건들을 집어 던지고 있으니 다른 물건들이 남아날 리 만무하다.
당연히 방 전체가 개판이 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웬만해서는 잘 흥분하지 않는 녀석이었고 호흡도 거칠어지지 않는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다.
“…….”
“…….”
‘이… 이거 좀 미안해지기는 하자너….’
왠지 모르게 김현성에게 동정을 받은 것이 결정적이었던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다른 건 다 참아도 해파리 같은 놈에게 받았던 눈빛이 신경 쓰였던 모양일까. 지금의 자신이 갈 데까지 갔다고 여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나 다를까 손에 잡히는 물건들을 다시 한번 집어 던지는 중, 그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던 터라 충성스러운 사용인들의 걱정 어린 시선이 내게 쏟아질 정도였다.
‘뭐야. 왜 나를 쳐다보는 건데?’
잠시 후에는 커다란 고함 소리도 들려오기 시작한다.
“으아아아아아아아!!!”
하는 진 군사답지 않은 비명 소리 말이다.
다시 한번 사용인들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본 것은 당연지사.
과연 사용인들에게도 체면을 차리는 녀석이었던 만큼 이들 앞에서도 저런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무척이나 충격을 받은 것 같은 한 노야와 용월이의 눈빛이 쏟아진 터라 괜스레 중얼거리게 된다.
“아직 마음이 정리되지 않으신 모양이군요….”
‘그러니까 왜 나를 쳐다보는 거냐고….’
당연히 한마디 더 보탤 수밖에 없었다.
“이만하면 소란은 되었습니다. 진 군사님께서 따로 언질이 있으실 때까지 각자의 자리에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해 주셨으면 해요. 저는….”
‘아니, 왜 자꾸 쳐다보는 거냐고 진짜.’
“군… 군… 군사님을 뵈어야겠으니….”
“존! 명!!!!!”
“존! 명!!!!!”
‘이게 정답이었냐고.’
다시 한번 이마를 땅에 박은 이후에는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몸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당연히 이쪽 역시 진 군사가 들어가 있는 방에 시선을 놓는다. 사용인들에게 등을 떠밀리는 진 군사의 심정을 일부 이해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시… 시바 가기 싫자너…’
터벅터벅 걸음을 옮기는 와중에 이쪽의 앞길을 가로막는 사용인 하나.
‘용월이?’
작은 키에 만두머리를 하고 있는 그녀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로 내게 이야기를 건네고 있었다.
“죽을죄를… 지었사옵니다.”
“…….”
“정말로… 죽을죄를 지었사옵니다… 무지했던 것이 변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저질렀던 잘못을 덮고자 이리 찾아와 사과를 드리는 것이 아니지만… 또… 용서를 받기 위해서 이렇게 말씀을 올리는 것 또한… 아닙니다. 벌이라면… 벌이라면 달게 받겠사옵니다. 저택을 떠나라고 이르셔도 웃으면서 떠나겠사옵니다. 군사님의 곁에서 영원히 사라지라고 명하셔도… 그리하겠습니다. 흐윽… 흐으으윽….”
“…….”
“하나 그 전에… 제 처우를 결정하시기 전에… 딱 한 가지만 염치없는 부탁을 드려도 되겠사옵니까?”
‘얘… 얘는 또 시바 뭐라는 거야?’
“부디… 부디… 군사님을 구해주시옵소서.”
‘아니, 그러니까 시바… 뭐라는 거야?’
“저로서는… 역부족이었사옵니다. 군사님의 마음에 있는 어둠과 슬픔을 걷어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저로서는 역부족이었사옵니다. 군사님의 옆자리에 서기에는… 저는 역부족이었습니다… 흐윽… 흐으으으윽… 흐윽… 영원히 끝나지 않을 이 어둠과 슬픔 속에서… 부디… 군사님을 구원해 주시옵소서….”
“…….”
“흐윽… 흐으으으윽… 부디 군사님을 구원해 주시옵소서….”
왜 갑자기 애는 로맨스 소설에서 퇴장하는 선의의 라이벌 같은 대사를 치고 있는 걸까.
심지어 그 얼굴이 무척이나 진지하다.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는 눈물은 마치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괴로운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남주를 맡기는 듯한 분위기다.
그 눈물이 얼마나 서글퍼 보였는지 다른 사용인들 또한 그녀를 바라보며 함께 눈물을 흘리고 있을 정도였다.
“부디… 군사님을 구원해 주시옵소서… 흐윽….”
타이밍 좋게….
“으아아아아아아아아!!”
하는 소리와 함께 진 군사가 한 번 더 방을 만신창이로 만드는 소리가 들려온다. 빼도 박도 못하는 듯한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는 터라 일단 고개를 끄덕인 것은 당연지사. 당연히 그 손을 꽉 잡아줄 수밖에 없었다.
“이… 이기영 님”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어요.”
“…….”
“그리고, 그리 자책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용월 님께서 그간 해주셨던 것들이 아무것도 아니지 않다는걸… 그 누구보다 제가 가장 잘 알고 있어요. 용월 님께서 있으셨기에, 용월 님께서 힘써 주셨기에… 군사님께서는 자신의 슬픔과 어둠을 온전히 바라보게 될 수 있게 되었어요. 분명 진 군사님이라면 자신의 슬픔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셨겠죠. 저리 감정을 드러내고 마주할 수 있게 된 것은 모두 용월 님 덕분이에요.”
“흐윽… 흐으으윽… 흐으으으으으윽… 이기영 님.”
‘그래, 나 악녀 아니야. 상… 상냥한 사람이라구.’
“부디 앞으로도 군사님을 잘 부탁드려요. 용월 님.”
그리고 상냥한 포옹까지.
“흐으으으윽… 흐으어으어으으응….”
슬픔과 어둠에 잠겨져 있는 방을 눈앞에 두고… ‘이야기는 최종장으로!’ 같은 다음 예고가 나올 것 같은 분위기였지만 아쉽게도 나는 지금 당장 저 방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이거 끝나면 이제 밥 먹을 수 있는 거지?’
심지어 물 한잔 들이켤 시간도 없었다. 뭔 저택에서 들어오자마자 급발진했던 이야기에 휘말렸던 탓이었다.
솔직히 진 군사라면 한 한 시간쯤 저기 내버려 두면 알아서 진정하고 튀어나올 것 같기는 했지만….
모두의 기대를 등에 진 채로… 일단 방문을 열고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시야에 비친 것은 슬픔과 어둠에 묻혀 있는 사연 있는 남주가 아니라 단순히 화가 나 있는 진 군사.
“…….”
“…….”
“군… 군사님…?”
“…….”
“저… 저택이 화려하니… 좋네요… 다들 환대해 주시는 듯한 분위기고….”
“…….”
“일, 일부러 그런 거 아니라는 거 알고 계시죠? 저는 가만히 있었는데 갑자기 사용인들이 급발진을 하잖아요. 그리고… 진영이 유품이 여기서 이렇게 장식되고 있을 줄은 진짜 꿈에도 생각 못 했다니까요? 저도 이게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는데… 군사님도 제가 잘난 사람 앞에서 약해진다는 거 알죠? 이 저택 보는 순간 사용인들을 확 휘어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 근데 유품은 진짜 일부러 떨어뜨린 거 아니에요.”
“…….”
“처음에는 오해가 있기는 했는데 사용인들도 다 좋은 사람이더라고요. 진짜 충성심이 넘치는 사람들이라서 왜 군사님이 곁에 두는지 아는 것 같고… 솔직히 좀 짜증 날 때도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저런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옆에 두면 좋잖아요.”
“…….”
“제… 제 미안한 마음이 잘 전달되고 있… 있는 거죠?”
“…….”
“그, 그래도 나쁜 면만 있는 거 아니에요. 딱 보니까 군사님 사용인들이 아직 군사님이 우리 영이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 것 같더라고요. 이 방에 들어오기 전에도 용월이가 계속 진 군사님을 잘 부탁한다고 그러는 거 있죠? 여기에 유품들을 곳곳에 놓아둔 이유가 뭐겠어요.다 군사님을 생각해서 그런 거지… 근데 이제는 그럴 걱정할 필요 없다니까요. 평화협정 잘 마무리하고 군사님이 영이의 죽음을 극복했다… 막 슬픔과 어둠을 벗어났다 하는 스탠스로 가면 이제 그런 걱정 할 필요도 없어요. 진정한 의미에서 영이를 잃은 슬픔을 극복하고 나아가는 거죠.”
“…….”
“솔직히 설득력 있잖아요. 아니, 제가 이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니까요. 저도 군사람이랑 이 게임을 재미있게 즐기고 싶기는 했는데 본의 아니게 이렇게 된 거예요. 솔직히 제가 미쳤다고 이런 자리에서까지 군사님을 골탕 먹이고 싶어서 군사님 측근들까지 건드리겠어요? 다른 자리도 아니고 군사님한테 미안해서… 그 이야기 한번 해보자고 만든 자리인데….”
“…….”
“제가 깜빡 군사님을 1… 1회차에 놓고 왔잖아요. 그, 그것 때문에 미안해서라도 이렇게 안 하죠… 저도 평소에는 안 그러는데… 그때 막 현성이랑 합체한 상태였잖아요. 들으셨죠? 영혼이 완전히 연결되어 버렸다는 거요. 아직 뭐가 뭔지,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느끼기에는 아마 그거 때문인 것 같더라고요. 물론 지금은 괜찮아진 것 같기는 한데 영혼이 이어졌을 당시에는 좀 혼란스러웠어서….”
저도 모르게 대충 아무 말이나 늘어놓고 있는 중이다. 뭔가 스스로도 그럴듯한 변명을 생각해 냈다고 생각했을 때였다.
“그렇군.”
이라고 녀석이 중얼거린 것.
“?”
“확실히… 그럴 만할지도….”
심지어 긍정하고 있다.
“그, 그렇죠?”
‘먹혔나?’
아니, 먹힌 정도가 아니라 거의 확실히 내 변명이 들어맞았다고 생각한 느낌이다.
하기사 해파리 혹은 장구벌레, 네발 독수리에게 먹이 주는 것밖에는 할 줄 모르는 놈과 영혼이 합쳐진 상황이었으니 잠깐 동안 머리가 훼까닥 돌아버려도 이상하지 않다고 판단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심지어 이쪽을 걱정하는 듯한 눈빛을 보내오기도 한다.
“지금은… 괜찮은 거겠지?”
“네?”
“네가 지금보다 더 멍청해지면 큰일이니 말이다.”
“아, 아니에요. 그건… 머리가 합쳐진 게 아니라 영혼이 합쳐진 거라니까요. 합일됐을 당시에만 조금 부작용이 있었던 거지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렇군.”
“…….”
“…….”
“그래… 그런 거였어.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었던 거겠지.”
‘그… 그치?’
“내 저택에서 벌어진 일도 본의가 아니었다는 걸 인정하마. 엄밀히 말하면 내 수족들이 네게 안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그, 그래? 왜 이렇게 따뜻해?’
“네 입장에서는 너를 변화하기 위해서 저지른 멍청한 짓의 일종이었겠지. 용월에게 더 확실하게 말을
해 놓지 않은 내 실수였다. 중요한 손님이라 더 확실하게 말을 해놨어야 했던 것 같군.”
‘진짜야?’
“나도 사과하지. 네가 이 저택의 손님으로서 응당 받아야 할 대접을 받지 못했던 것을 인정하겠다.”
‘그… 그래요?’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기는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확실하게 하고 싶군.”
‘진짜?’
이렇게 극적 합의가 이루어지는 것일까. 조금 예상외의 상황이기는 했지만 진 군사는 나름대로 이번 일을 잘 받아들이는 듯하다.
‘우리… 그럼 화해하는 거야?’
“이번만은 네놈의 장단에 어울려주지. 하지만 착각하지 마라. 네 말대로 네놈이 만들어 놓은 아들이 계속해서 내 발목을 잡는 걸 원치 않을 뿐이니까.”
‘그래? 우리 그럼 이제 다시 베프 되는 거야?’
왠지 모르게 이번에는 악수를 신청해도 받아줄 것 같다. 슬그머니 손을 건네자 녀석 역시 고개를 끄덕이는 중.
갑작스레 방문이 쾅! 열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큰… 큰일입니다! 군사님!”
“?”
“?”
“시위대가… 반 평화협정 시위대가 호위 병력들을 밀어내고 저택으로 침입하려 하고 있습니다!”
“?”
“?”
“정문이… 정문이 뚫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