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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581화 (1,581/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581화

새로운 일상(36)

‘시바… 내 저택….’

스멀스멀 불안함이 차오르는 게 부자연스러운 상황이 아닐 것이다. 박기리까지는 그러려니 했지만 갑작스레 튀어나온 성검용사의 존재가 신경 쓰일 수밖에 없는 상황.

어떻게 봐도 이레귤러라고 할 수 있는 녀석의 등장에 긴장감이 차오른다. 물론 현시점에서는 성검용사 성지훈이 완전히 성장한 상황은 아니기는 했지만….

‘이 새끼… 김현성이랑 같은 재질이잖아.’

흔히 말하는 소년만화 주인공 같은 재질이었다. 매 분 매 초마다 한계를 뛰어넘고 위기가 있을 때마다 근성이나 기합으로 버텨내고 결국에는 이겨내는 종류의 새끼들 말이다.

심지어 이 새끼 같은 경우에는 김현성보다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 않았다. 안 좋은 쪽으로 더 지독하다. 열혈계 속성까지 섞여 있었던 터라 한 번 기세를 타면 좀처럼 멈추기 힘들다.

그나마 마음이 혼란스러우면 제동이 걸리기는 하지만 한 번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목표를 잡는다면 무서울 정도로 맹목적으로 달려드는 미친개로 변모하는 녀석이었다.

‘저 새끼… 시바 세뇌당했어.’

눈빛이 맛탱이가 간 것이 보인다. 그야말로 맑은 눈의 광인이라고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수준, 우연치 않게 공화국에 당도해 신전에서 세뇌라도 당한 것일까.

저건 이미 최면에 걸린 수준이 아니라 머리가 완전히 굳어버려 본인의 판단만이 옳다고 굳게 믿고 있는 듯한 얼굴이었다.

-베니고어 님의 성검 용사로서의 첫 임무야! 누나!

-이래도 되는 거야? 지훈아? 이래도 되는 거 맞아?!

-이 거짓으로 가득 찬 평화협정을 막아야 해. 모두 진청 군사의 음모라고!

‘그게 도대체 무슨 개소리야. 시바.’

-베니고어 님의 목소리가 들려. 희생과 부활의 성자님을 구하라는 목소리야.

‘그 목소리 시바 너한테만 들리는 것 같은데?’

어쩌면 이 새끼가 시바 루키페르 비밀 집단의 수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아무리 봐도 김현성보다 잘생기지 않은 얼굴에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몇 년 뒤 본인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아 진화를 거친다면 혹시 몰라도… 지금은 그저 풋내 나는 애송이에 불과하다.

애초에 이곳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녀석이 비밀집단의 수장이라는 것도 우습지 않은가.

이쪽이 자신을 보고 혀를 차고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저택 안으로 무혈 입성한 성지훈은 모든 게 잘 풀릴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 하지만 아직 저택 안에 남아 있는 병력들과 네임드 몬스터들은 많다. 아니나 다를까 곧 병력들과 마주친 녀석이 눈에 띈다.

-이야아아아아아아아!!!

-막아라!!! 절대로 저택으로 진입하지 못하게 해라!! 군사님의 엄명이다!!

-누나!

-나… 나는 여기까지… 인 것 같….

-이 나쁜 놈들!!! 누나를 건드리지 마!!! 이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무… 무엇이!

‘시바 그 와중에 성장했어.’

천재기는 천재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기는 하다. 확실히 성장기에 있는 녀석이었던지라 시시각각 성장하는 중.

부족한 전투 경험치를 이곳에서 메우고 있다는 게 느껴질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지금 막아야 돼.’

잡졸들을 경험치로 내보내며 용사가 성장할 시간을 주는 멍청한 마왕이 될 생각은 없었지만….

“바깥이 조금 소란스럽군. 일단은 차부터 들도록 하지.”

테이블에 앉아 차를 홀짝이는 저택의 주인이 시야에 비쳐왔다. 잔잔한 음악이 시바 깔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 한소라와 함께 제법 많은 대화를 나누는 것이 눈에 띈다. 컨셉과 함께 존댓말도 가져다 버린 채였다.

“그러고 보니 흑색마탑…이라고 했나?”

“네.”

“확실히… 교국의 입장에서는 괜찮은 선택처럼 보이는군… 흑마법사들에 대한 인식이 아무리 좋아졌다고 한들, 교국 본토에 흑색마탑을 세우기에는 무리가 있겠지.”

“네. 바로 그거예요. 진청 군사님. 물론 공화국 내에서도 흑마법에 대한 연구가 충분히 진행되고 있기는 하지만, 시대가 많이 바뀌었으니까요. 특히나 그… 안 좋은 사건들 이후에는 조금 더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경향이 강하고요. 공화국 내에서 눈치가 보이는 연구도 분명히 있을 테니… 양국이 양질의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도….”

“그전에… 교국이 흑마법에 대해서 아는 것이 있나? 양질의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군.”

“…….”

“…….”

“교국은 아는 것이 없지만… 대신 제가 있어요. 장담하건대 현 대륙에서 저보다 더 흑마법에 대해 능통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 거예요.”

“정말로 능통했다면 공화국이 쌓아놓은 인프라를 필요로 하지 않았을 테지. 네가 유능한 것이 아니라, 네가 유능한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나?”

“…….”

“…….”

“진… 진짜 재수 없다. 소라야. 그… 그치? 역시 내가 도와주는 게… 우, 우리 마탑에 소라 연구실도 세… 세우면 되니까. 그… 그렇지?”

“아… 아니에요. 정하얀 님… 잠, 잠깐만요….”

정하얀이 흑마법에 대해 파고드는 순간 분명히 커다란 재앙이 찾아오고야 말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다. 진 군사 역시 그 사실이 신경 쓰였는지 조금 더 호의적인 태도로 한소라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었다.

“네. 아직 제가 많은 공부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에요. 공화국이 지금까지 쌓아놓은 인프라가 탐이 나는 것도 사실이고요. 하지만 분명히 공화국도 얻을 게 있다고 생각해서 드리는 말씀이에요. 거기에….”

“…….”

“거기에, 제 진짜 목적은 흑마법의 발전 같은 게 아니에요. 정말로 중요한 건 인식의 변화죠.”

“…….”

“물론 흑마법이 위험한 학문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에요. 실제로 악마소환과 관련된 연구는 저희들 사이에서도 금기시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조금 지나칠 정도로 대중들에게 박해받고 있어요.”

“흥미롭군.”

“네. 흑색마탑을 중심으로 간단한 흑마법 스크롤들을 양산해 볼 생각이에요. 연금공방과 협력이 가능하다면 포션도 제조해 볼 생각이고요. 아시다시피 파란 길드의 연금 공방에서는 제 포션이 나가기 힘들어서….”

“연금술에도 조예가 있나?”

“처음에는 연금술을 지망했었으니까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공부도 끊임없이 해오고 있고요. 물론 부길드마스터의 비할 바는 못 되지만 공화국에서 유통되는 포션들을 양산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은 된다고 생각해요.”

“흐음….”

‘아니, 두 분이서 시바 분위기 좋게 이야기 나누는 건 좋은데….’

한소라를 그저 그런 원숭이에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니, 호모 에렉투스 정도로 생각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표정이었다. 실제로 대화가 점점 심도 깊어지고 있다.

정하얀은 이 상황이 그리 기분 좋지는 않은지 뾰로통해져 있었지만 한소라는 무척 즐거워 보인다. 그녀답지 않게 오랜만에 생산적인 대화를 하고 있다는 표정.

왠지 모르게 잘 맞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했었는데 실제로도 저리 잘 맞는 모습을 보니 내가 다 어색하다.

‘근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니까.’

“저기요. 군사님.”

“아니. 잠깐 기다려라. 이기영. 그녀와 마저 이야기를 끝내고 네 투정을 받아주도록 할 테니. 몇 분이면 충분하다. 아. 식사라면 얼마 뒤에 나올 테니… 조금만 참도록.”

‘시바 투정이 아니라고. 뭔 시바 투정이야. 지금 별채 하나 날아갔어. 내 소중한 별채가 날아갔다구.’

다른 사람들이 휘말리지 않게 자리를 옮기자고 합의한 한 노야와 박덕구가 별채를 박살 낸 주인공들이었다.

임무도 임무였지만 오랜만에 적수를 만나 끓어오른 한 노야와 박덕구가 서로 힘겨루기를 하다 죄 없는 건물 하나가 작살 나버린 것이다.

리모델링을 앞두고 있는 아름다운 조경은 이미 황폐화된 지 오래. 김예리와 용월이는 호수 위에서 수상비를 밟으며 무림고수마냥 자웅을 겨루고 있었고, 쌍둥이들은 자신들의 자랑거리인 마법들을 사방으로 쏘아대며 왕강과 꼬마를 견제하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 저택이….”

“쯧. 참을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군. 조금만 기다리라고 하지 않았나? 계속 이야기해도 된다. 흑마법사.”

“일단 상품 목록들은 전부 준비해 왔어요. 공화국에 유통되어도 되는 물건인지 검수를 받고 싶어서… 혹시 몰라서 샘플도 준비해 왔고요. 일단 초기 상품으로 내놓을 것들은 세 가지인데… 가장 간단하고 던전에서도 유용한 흑마법 주문 중의 하나인… 아! 가장 자신 있는 상품은 이거예요. 한번 봐주시겠어요?”

“흐음….”

“어때 보이시나요?”

“…….”

“…….”

“마음에 들지 않는 곳이 없는 건 아니지만….”

“…….”

“나쁘지 않군. 솔직히 이야기하면… 투자를 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 정도야.”

“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래요. 시바 아주 둘이서 지지고 볶고 다 하세요.’

일단은 이쪽이라도 움직여야 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었다. 곧바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자 김현성이… “기영 씨? 어디 가십니까?” 라고 질문해 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라고 대답한 이후에는 몸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사실 김현성이나 정하얀 둘 중에 하나라도 데려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들기도 했지만, 차라리 없는 것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아직 저택의 초입에서 씨름을 하고 있는 박기리보다는 성지훈부터 잡아 놓는 것이 먼저다. 다시 한번 급하게 망원경으로 저택을 두리번거린다.

‘뭐야… 이 새끼… 그새… 어디 갔어?’

녀석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이라고 하기에는 뭣하지만 창백해진 얼굴로 분주해진 저택의 사용인들의 표정만이 눈에 비친다.

본능적으로 성검용사 이 새끼가 기어코 포위망을 뚫고 어딘가로 숨어들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후우… 후우… 하아….”

“…….”

“하아… 후우우… 누… 누나는… 잠깐 여기에 숨어 있어.”

“나… 나는 괜찮다니까. 지훈아… 왜… 왜 여기까지 들어온 거야. 우, 우리 그냥 돌아가자. 지금이라도 잘못했다고 빌면 어쩌면 용서받을 수 있을지도 몰라. 뭔가 잘못된 것 같아… 이… 이건 아닌 것 같다고… 이 넓은 곳에서 그 사람들 눈을 전부 다 피해서 희생과 부활의 성자님을 어떻게 찾을 수 있겠어?”

“베니고어 여신님께서 길을 안내해 주실 거야. 누나.”

“나, 나도 여신님을 믿지만… 나는 아무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걸… 그리고 이건… 나… 나쁜 짓이잖아. 남의 집에 함부로 무단침입을 한 걸로 모자라서….”

“?”

“?”

널따란 복도에서 녀석을 마주할 수 있었다. 곧바로 눈이 화악 커지는 성지훈이 시야에 비친다. 옥사나 역시 깜짝 놀란 듯한 표정.

“금… 금안의… 오드아이….”라고 중얼거리는 성검용사 이 새끼를 보니 한 대 쥐어박아 주고 싶어진다. 이윽고 격양된 얼굴로 “희… 희생과… 부활의… 성자님….”이라고 입을 열고 있다.

“눈이… 빛나고 있어… 누나….”

“정말… 정말 희생과 부활의 성자님이다….”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어. 누나….”

“그… 그래 나도 보여 지훈아….”

처음에는 무척 당황하기는 했지만…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녀석은 분위기에, 아니, 후광에 압도당한 듯하다. 오히려 원하는 상황이었다.

아니, 이곳에서 이렇게 마주친 것은 흔치 않은 행운이다. 말로 잘 타이르면 알아서 자수하거나 돌아갈 것 같은 느낌이었던지라 속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날개를 한 장 정도 펴는 게 좋을 듯해 활짝 펼치자 빛의 깃털들이 사방으로 흩날린다.

“천사… 천사님… 오드아이의 천사님이야… 누나….”

“나도 보여… 지… 지훈아….”

‘이 새끼 진짜 오드아이 왜 이렇게 좋아해?’

“…….”

“…….”

조심스럽게 한마디를 던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

“돌아가세요. 그것이 베니고어 님의 뜻이니.”

하지만…

“성… 성스러운 몸… 몸에 감, 감…히… 손… 손… 손… 손…. 손… 손… 아… 윽… 손을 대는… 불… 무… 무례를… 용… 용서해 주시… 옵… 옵소서어어….”

앗 하는 사이에 내 몸을 껴안고 뛰는 녀석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언제 튀어나왔는지,

저 복도의 끝에….

기분이 좋지 않은 정하얀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

“…….”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앙!!!!!!!!!!!!!!!!

‘나도… 나도 모르겠다. 시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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