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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582화 (1,582/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582화

새로운 일상(37)

당황스러울 정도로 커다란 굉음이 귀를 때린다. 별다른 주문이나 수인 없이 정하얀의 마법이 발동된 것이다.

“죽이면 안 돼!”

라고 일단 크게 목소리를 낸 것은 당연지사. 혹시라도 잔뜩 흥분한 정하얀이 성검용사를 단숨에 구겨 버릴까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성지훈이 지금 저지른 일들은 극형에 처해도 할 말이 없는 수준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1회차 대륙의 기둥이 될 정도로 크게 성장했던 영웅 중에 하나가 이런 곳에서 어처구니없게 뒤지게 내버려 둘 수 없었다. 나중에 이쪽에서도 쓰임새가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정하얀이 내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이성을 잃은 것 같진 않았다는 것.

오히려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면 기분 탓일까.

성검용사가 워낙 극진히 이쪽을 모시고 있기도 했고 내가 오히려 그를 보호하려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을 것이다.

당연히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이쪽을 다시 데리고 올 수 있다는 것도 정하얀이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 요인 중에 하나다.

단적으로 말해 성지훈이 이곳에서 아무리 발악을 한다고 하더라도 정하얀의 손아귀를 빠져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니나 다를까.

“어?”

방금 전까지 성지훈의 품에 안겨 있던 내가 어느새 정하얀의 품에 안겨 있는 중. 이쪽을 자신에 품으로 텔레포트 시켜 버린 것이리라.

“오, 오… 오빠… 괜찮으세요?”

“어? 어… 응. 죽이면 안 돼 하얀아. 최대한 조심스럽게 제압만….”

“네… 네.”

그리고, 푸른색 마력의 형태가 사방에서 뻗어 나오기 시작했다. 사실 정하얀의 마법을 보는 것이 꽤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1회차에서 1하얀이 만들어낸 기적 같은 일들을 목도한 적이 있기는 했지만 2하얀의 마법은 1하얀의 그것과는 조금 종류가 달랐으니 말이다.

별다른 기교 없이 순수한 마력으로 대상을 찢어발기는 종류, 마력을 원소로 변환시키는 귀찮은 공정 과정 따위는 거치지도 않는다. 이미 그런 것 없이도 본인의 마력이 충분히 위력적이라는 사실을 정하얀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오히려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문제자너….’

그래, 정하얀은 본인의 마법이 충분히 위력적이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이 저택 따위는 단숨에 날려 버릴 수 있을 정도로 위력적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하얀이… 화났자너….’

어째서 그녀가 쉬운 방법을 두고 이렇게 거친 방법을 사용하는지는 뻔할 뻔 자. 내 착각이 아니라면 방금 전에 있었던 한소라와 진청의 대화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리라.

물론 한소라가 흑색마탑 이야기를 미리 정하얀에게 꺼냈을 것이고, 둘 사이의 물리적 거리는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사실도 잘 깨닫고 있겠지만 그녀에게 그게 중요하겠는가.

정하얀에게는 언제나 붙어 다니던 자신의 단짝 친구가 저 멀리 떠나버린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심지어 진 군사와 한소라가 꽤 좋은 케미를 보였던 것이 기분 나빴던 것이 분명하다. 어쩌면 기분 나쁜 제비가 한소라에게 접근하고 있다고 여기고 있을 수도 있다.

방금 전부터 짜증을 참지 못하고 있었던 기색이 역력했던 차에 때마침 좋은 사건, 아니, 명분이 터져줬다는 표정이다.

합법적으로 한소라와 진 군사의 관계를 망치고, 자신의 화를 쏟아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는 눈빛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저택의 피해는 최소화….”

“힘… 힘내볼게요… 오, 오빠… 하, 하지만 저 사람이 너무 다람쥐 같아서….”

‘아니야. 하얀이 너 지금 전혀 힘내지 않고 있는 것 같은 얼굴이야. 다른 의미로 힘내고 있는 것 같아.’

오히려 이를 악물고 있다. 물론 성지훈이 다람쥐 같다는 것은 사실처럼 보이기야 했다. 힘 조절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정하얀의 마력들을 이리저리 피하며 검으로 흘려보내고 있었으니까.

“오드아이의 천… 천사님을 돌려줘!!!!!”

‘제발 저리 꺼져. 시바 소름 끼쳐!’

“이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수십, 수백 개의 섬광이 저택을 가로지르며 놈에게 향하는 모습은 장관, 정확히 말하면 가로지르는 것이 아니라 저택이나 장식품에 구멍을 내며 돌진하고 있는 중이다. 값으로도 환산하기 어려울 것 같은 예술품들이 순식간에 쓰레기가 되어버린다.

계속해서 정지훈을 향해 나아가던 정하얀의 마력이 갑작스레 장벽에 가로막힌 것은 바로 그때였다.

진청이 정하얀의 마법을 막은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쾅!!!!!!!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모를 진 군사가 발로 있는 힘껏 놈을 밀어 차는 것이 시야에 비쳐왔다.

“…….”

“…….”

“어지간히도 우습게 보였나 보군….”

“…….”

“침입자는 내가 알아서 정리하도록 하지.”

‘지훈이… 저거… 죽은 거 아니지?’

뒤늦게 도착한 김현성도 자신이 본 것을 믿을 수 없다는 어투로, “성검… 용사?”라고 중얼거리는 중.

진 군사가 꽤나 전력으로 녀석을 앞차기로 밀어버린 탓에 혹시나 성검용사가 뒈지지는 않았을까 걱정되기는 했지만….

“으…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이윽고 벌떡 일어나 반대쪽으로 향하는 성지훈의 모습이 시야에 비쳐왔다. 상황이 끝났을 거라고 생각해 시무룩했던 정하얀의 얼굴에 활기가 감돈 것은 당연지사.

다시 한번 수백의 빛줄기와 수백의 구가 사방으로 쏟아졌다.

“잠깐! 내가… 정리한다고 이야기를!!!”

“이이이익!!!”

이윽고 시바 저택에 난데없이 대륙 최강자들의 마법전투가 펼쳐진다.

당연하지만 초보 용사를 잡으려고 쏟아지는 마력이라기에는 다소 과하다. 누가 봐도 이곳을 페허로 만들어버리겠다는 의지가 가득 들어 있는 마법에 진 군사도 급하게 손짓하고 있다.

마력이 유형화되고, 유형화된 마력을 마법진과 장벽들이 가로막는 것이 눈 깜짝할 사이에 수백 번 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인다.

쾅!!!!

콰아아아아아아아앙!!!!

파지지지지직!!!!

“이… 이런 미친!!!”

“이이이이이이이이이익!!!!!”

“정… 정하얀 님! 그, 그만하세요!”

“당장 그녀를 멈춰라!! 이기영!!!!”

목적을 알 수가 없는 자존심 싸움,  가슴이 웅장해지는 대마법 격돌.

물론 어느 정도 힘 조절을 하고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엄밀히 말해 진 군사가 정하안을 마법만으로 압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녀석은 저택의 피해를 최소화시키고 싶어 하는 것 같았지만 사방팔방으로 쏟아지는 마력은 녀석의 그런 노력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중, 밖에서 보면 진 군사의 저택에서 무슨 시바 레이저 쇼나 불꽃놀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퍼엉!!! 퍼어어어어엉!!!

후드득. 후득.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개… 당장 그녀를 막으라고 이야기했을 텐데!!!!!”

“성지훈부터 잡아요!!! 성지훈부터!!!!”

“기영 씨? 이게 지금 무슨 일입니까? 도대체… 어째서 성검용사가….”

“현성 씨! 성지훈 잡으라니까요!!!! 성지훈!!!”

“네?!”

“아니, 성지훈부터 잡으라고요!!!!”

“아… 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아악!!!!”

그 와중에 아까까지만 해도 위풍당당했던 성지훈의 얼굴이 공포로 얼룩져 있는 것이 눈에 비친다.

사실 그럴 만하기도 하다. 아까 전에 진 군사의 발차기를 맞았을 때부터 멘탈이 부서졌는데, 난데없이 사방에서 살 떨리는 마법 격돌이 벌어지고 있으니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조금만 스쳐도 자신의 몸이 사라져 버릴 정도의 마력이 여기저기서 날아다니고 있는 중이지 않은가.

심지어 시바 김현성조차 저 격전지로 어떻게 향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듯한 얼굴이다. 오죽했으면 나를 뻔히 바라보고 있을까. 이 새끼도 사실 진 군사의 저택이 무너지는 게 보고 싶은 것이 아닐까. 정하얀과 모종의 거래를 한 것이 아닐까?

‘시바!! 회귀자 사용설명서!!! 회귀자 사용설명서!!!’

이런 일에 회귀자 사용설명서를 쓰는 것도 우습기는 했지만 그게 아니라면 단시간 안에 김현성을 성지훈과 옥사나가 있는 곳으로 보내기 힘들다고 판단이 될 정도였다.

“제기랄!!! 이기영!!!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냐!!!”

“…….”

“제기랄!!! 이… 이런 미친… 제길… 내… 내가 미친… 제기랄!!”

“30초!! 30초만!!! 하얀아!! 그만!!! 그만!!!!! 현성 씨! 가요!!! 가요!!!”

“…….”

“현성 씨! 가요!!! 가욧!!!!! 지금이라고요옷!!! 지금!! 가욧!!!”

“가긴 도대체 어딜 간다는 거냐! 이기영 이 개자식!!!”

미소를 띠고 있는 김현성이 곧바로 날개를 펼친다. 순식간에 노을빛이 주변을 감싸기는 했지만 워낙 휘황찬란한 것들이 주변에 많이 날아다니는 터에 빛이 바랠 정도, 김현성이 격전지로 움직이기가 무섭게 사방에서 마법들이 쏟아진다.

물론 위협이 될 가능성은 없다. 이미 모든 루트가 김현성의 머릿속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이리저리 공중에서 온몸을 비틀고, 고개를 숙이고, 검으로 베어내고, 과장해서 이야기하면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를 피하는 것 같은 움직임, 그 와중에 텐션이 올라 불필요한 움직임을 보여 머리카락을 그을리기는 했지만 녀석은 그것조차도 기분이 좋은 것처럼 보였다.

“하….”

‘상쾌하게 웃지 마… 시바….’

저렇게 좁은 곳에서 김현성만 한 덩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자유롭게 유명하고 있다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꽤 오랜만에 회귀자 사용설명서를 발동하는 것 같은 느낌.

물론 여전히 위화감은 없다. 이전보다 더 완벽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 전신을 때린다. 원초적인 쾌감이 등을 스치고 지나간다.

잘 만들어진 슈팅 게임이라도 하는 것처럼 여기저기에서 날아 들어오는 탄막들을 완벽히 회피하며 나아가고 있었다.

애초에 30초 정도가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김현성이 녀석에게 닿은 시간은 불과 10초 안팎.

직후에,

“잡았습니다. 기영 씨.”

김현성의 손에 대룡대롱 달려 있는 성지훈과 옥사나의 모습을 시야에 담을 수 있었다.

“…….”

“…….”

이후에는 정적.

언제 대마법 격돌이 일어났냐는 듯이 조용해진 저택. 들리는 것은 후두득후드득거리며 위에서 먼지가 떨어지는 소리밖에는 없었다.

정하얀은… “아… 잡… 잡았네… 다, 다행이다.”라고 천연덕스럽게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고, 한소라는 진 군사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근데 왜 하늘이 보일까.’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나와 진 군사밖에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불과 몇 분 전만 해도 고풍스러운 음악과 함께 차를 마시고 있었던 공간이었는데, 몇 초 동안 일어난 일이 이해가 가지 않는 표정이었다.

어처구니없어 화도 나오지 않는 듯한 표정에 수 분 동안이나 계속되는 정적. 눈치 없는 김현성만이 기분 좋은 얼굴로 중얼거릴 뿐이었다.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기영 씨 오랜만이라… 조금 적응이 되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이럴 게 아니라… 아무래도 평소에도 좀… 자주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 네.”

“이런… 제가 오해할 만한 발언을 했군요. 기… 기영 씨는 완벽했습니다. 기영 씨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제… 제가.”

“아. 네. 알겠… 알겠어요.”

“정… 정말로 완벽했습니다. 그냥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제… 머리카락이 살짝 그을리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제 실수였고… 기영 씨는… 그 어떤 것도… 기영 씨는 완벽했습니다. 정말입니다.”

“네. 알겠…어요.”

“그리고 조금이지만 평소보다 더 확실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 느껴졌었는데… 역시 영혼이 합쳐진 영향 때문일지도요… 한번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평소와는 분명히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기영 씨. 어쩌면 더 윗등급의 연결이 존재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네….”

“대단하더군요. 영혼과 정신이 함께 연결된 감각 말입니다. 기… 기영 씨도… 느끼셨습니까?”

어떻게 생각해도 얼굴을 들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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