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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583화 (1,583/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583화

새로운 일상(38)

어떻게 생각해도 얼굴을 들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진 군사의 눈치를 보게 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그동안 녀석에게 못 할 짓들을 참 많이 한 것 같기는 했지만 지금의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주변을 둘러보는 진 군사를 보고 있자니, 이번만큼은 녀석에게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옳다는 판단이 선다.

물론 그보다 더 신경 쓰였던 것은 그림자 저택의 안주인으로서의 꿈이 일장춘몽이 되어버렸다는 것.

‘시바… 내… 내… 내… 저택….’

그 아름다웠던 조경들도, 본채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어딘가의 건축상이라도 받았을 것처럼 생긴 별채들도

전부 폐허가 되어 있다.

당연하지만 가장 큰 대미지를 받은 것은 그림자의 저택의 본채. 저택의 안을 호화스럽게 꾸며줬던 예술품들은 모조리 쓰레기가 되어 있었고, 천장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어떻게든 이 저택의 안주인이 되고 싶은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했었는데 지금은 줘도 가지고 싶지가 않다. 오히려 어서 빨리 이 저주받은 장소를 벗어나고 싶어진다.

사실 눈앞에 있는 바로 저 남자가 풍기고 있는 음울한 분위기가 가장 큰 원인이다. 뭔가 변명을 하고 싶기는 했지만 지금 당장은 무슨 말을 해도 진 군사의 귀에 들려오지 않을 게 분명, 솔직히 녀석의 눈을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

“…….”

“저… 저희는 이만 들어… 가… 가볼까요?”

“네. 아쉽지만 만남은 다음번으로 미루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기영 씨. 그보다… 아까의 이야기를 계속….”

“아니요. 현성 씨. 그… 이야기는 저택에 돌아가서 해요. 부끄럽다고요.”

“아… 네. 그… 그렇군요. 죄, 죄송합니다. 기영 씨.”

“…….”

“…….”

“하얀아… 갈까?”

“네… 네. 빨리 돌… 돌아가요. 오빠.”

두꺼운 얼굴을 가지고 있는 두 사고뭉치 듀오는 진 군사의 저택이 파손된 것을 손톱만큼도 신경 쓰지 않는 모양새. 창백한 표정으로 진 군사의 눈치를 살피는 한소라의 모습과는 대조적이었다.

혹시나 이번 사건을 계기로 평화도시 계획이 어그러지지는 않을지, 만약 협정이 계획대로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흑색마탑이 없었던 일로 변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하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그녀답지 않게 정하얀에게 원망스러운 눈길을 보내고 있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당연히 범죄현장을 빨리 벗어나고픈 정하얀은 어서 파란 길드로 돌아가기를 촉구하고 있다. 은근슬쩍 한소라의 눈치를 살피면서 말이다.

“저… 진… 군사님… 즐거웠어요… 그… 초대해 주신 것도 정말로 감… 감사했고요. 오, 오늘은 이만 헤어지는 게 좋… 좋겠죠?”

“…….”

“이… 이것 참… 일이 이렇게 돼서 아쉽네요… 그… 그러게! 제가! 가…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이… 이런 사고는 언제나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법이라고요… 헤…헤헷….”

“…….”

“물… 물론 군사님 탓을 하는 건 아니에요… 반 평화협정 시위대에… 저, 저게 섞여 있을 줄은 누가 알았겠어요… 그, 그리고 루키페르의 신도나 최면 아저씨 이야기도 거짓말이 아니었다니까요. 어, 어쩌면 이번 테러를 계획한 게 루키페르의 끄나풀일 수도 있어요. 저 성검용사를 꼬드겨서 평화협정에 타격을 주려는 음모일 가능성이 높을 거예요. 이럴 게 아니라 뭔가 대책 회의가 필요해요. 이 대륙에 다시 한번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고요. 오늘의 일을 절대로 잊지 말고요. 걱, 걱정하지 마세요. 군사님은 혼자가… 아니라는 거 아시죠?”

“…….”

“저희 파란 길드와 교국은 공화국에서 일어난 이 후안무치한 테러행위를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거예요. 모든 관련자들을 잡아들여서….”

“…….”

저 멀리서 누가 들어도 박덕구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막지 마쇼! 우리 형님이 저 저택에 있다니까!!!”

“노옴!! 네놈들의 짓이 아닌가!!!”

“우, 우리는 적이 아니요!! 어쩌다가 사정이 있어서 여기에 휘말리게 된 것뿐이라니까!!!”

“공화국의 지원군이 왔다! 놈들을 모조리 잡아들여라!!!!”

‘하… 시바 타이밍 한번….’

진 군사가 한 번 더 말해보라는 듯이 빤히 이쪽을 바라보는 것이 시야에 비친 것은 당연지사.

“루, 루키페르의 신도들을 잡아들일 목적으로 길드원 몇몇을 반 평화협정 시위대에 침투시켰어요. 무언가 오해가 있었던 모양이네요.”

“…….”

“…….”

“제… 제가 군사님 정말 많이 좋아하는 거 알고 계시죠?”

“…….”

“그… 그럼 돌아가….”

녀석이 무표정으로 입을 뗀 것은 바로 그때였다.

“도대체… 어딜 간다는 거냐. 이기영….”

“네… 네?”

그 분위기가 꽤나 심각하다. 진 군사의 표정이 일그러진 것을 몇 번 보기는 했지만 지금처럼 일그러진 얼굴을 보는 것은 처음, 한쪽은 웃고 있는 것 같은데 한쪽은 화를 내고 있는 것만 같다.

마치 보면 안 될 것 같은 귀신의 표정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터라 내 기분이 다 이상해질 정도였다. 녀석의 말에 순간적으로 가슴이 덜컹 가라앉은 것은 당연지사.

‘뭐야 혹시… 변상하라는 건… 아니지?’

“…….”

“…….”

‘이거… 전부 변상하라는 건 아니지? 우리 진 군사님 가오가 있지… 그렇게 쩨쩨하지는 않지?’

호들갑 떨기는 싫지만 이런 저택을 변상하는 것은 위험하다. 파란 길드의 재정적 위기가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당연하다.

저택도 저택이지만 안에 들어있는 예술품들이 더 문제가 될 소지가 높다. 이름만 대면 알 것 같은 작가의 그림이나 조각상들도 꽉 차 있었던 것 같지 않았던가.

눈은 더럽게 높고, 예술품에도 취향이 까다로웠던 녀석이었던 터라, 부르는 게 값인 물건들도 존재할 가능성도 높다. 이러기는 싫지만….

“군… 군사님… 돈… 많잖아요. 저, 저는… 가… 가난해서….”

라고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를 내뱉었을 정도. 내 목소리가 들릴지 들리지 않았을지는 모르겠지만 이윽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오는 진 군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

“손…님을… 그냥… 돌… 돌려보낼 수는… 없는 노릇… 이지….”

“?”

“식사도… 대접… 하지… 않고… 말… 말이다… 후욱… 후욱….”

“?”

“그런… 무… 무례를… 끼칠 수는… 없… 지….”

‘이… 이 새끼… 목소리랑… 호흡이… 이… 이상한데….’

“저… 저택이… 이렇게 되어… 유… 유감이군… 앉아라….”

“네…? 어… 어디에….”

“바닥… 말이다.”

저 일그러진 표정이 사실은 필사적으로 화를 참는 표정이었던 모양이다. 어떻게든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하고 있었지만 언제 소리를 질러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표정.

이 새끼에게 도대체 손님을 초대한다는 것의 의미는 어떤 것일까. 여기서는 내가 갑이라고 뿌듯해하고 싶었지만 지금 이런 상황에서도 그런 미친 생각을 할 정도로 후안무치하지는 않다.

‘이… 이 새끼… 천사인가?’

“후욱… 제대로 대접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건… 네놈도… 알고 있을 테지… 다소… 대접이… 미흡하더라도… 이해하길… 바란다.”

‘진짜… 천사인가….’

심지어 전부 다 무너진 주방에서 주섬주섬 재료를 꺼내 와 요리를 하기 시작한다. 단언하건대 녀석이 저택의 주방으로 들어간 최초의 순간이 아닐까.

“…….”

“…….”

익숙한 냄새.

시바 그놈의 마파두부였다.

눈치를 보던 한소라와 김현성, 정하얀까지 내 눈치를 보며 일단은 착석하는 모습.

그 와중에 정하얀은 코를 킁킁거리고 있다. 한 차례 운동도 했으니 배가 고플 시간대라는 것일까. 그녀의 뻔뻔함에 혀를 내둘렀던 것도 잠시. 주방으로 달려갈 것만 같은 김현성의 표정에는 기함을 토할 수밖에 없었다.

진 군사와 요리 대결이라도 벌이고 싶었던 것일까. 정녕 김현성에게는 눈치를 보는 능력이 없는 것일까.

“가만히 있어요. 현성 씨.”

“네?”

“가만히 있으라고요.”

“아… 네. 기영 씨.”

“파란 길드로 돌아가게 되면, 저도 한번….”

“가만히 있어요.”

“네….”

심지어 붙잡혀 무릎을 꿇고 있는 성지훈과 옥사나 역시 코를 킁킁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진 군사를 기다린 지 수십 분째.

마파두부를 요리하며 이성을 되찾기라도 했는지 아까보다는 훨씬 나은 표정의 진 군사의 얼굴이 눈에 비쳐온다. 거대한 중국식 원형 테이블에서 끝도 없이 나오는 산해진미를 음미할 거라고 생각한 것 치고는 다소 초라한 마파두부였지만 솔직히 어색하지는 않았다.

“입맛에 맞았으면 좋겠군.”

“…….”

“들도록 하지.”

반쯤은 깨진 접시, 온전치 않은 식기. 옹기종기 모여 앉은 초라한 분위기였지만….

‘딱… 딱히 나쁜 분위기는 아니자너. 배상 이야기는 안 나올 것 같자너….’

오히려 훈훈하다. 그냥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하얀이나 김현성이나 이런 걸 더 익숙하게 여기는 듯했다.

이 새끼가 마파두부에 독을 넣었을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않는 것일까. 가장 먼저 수저를 든 것은 아까

부터 계속해서 입맛을 다시고 있있던 정하얀. 일단 체면이고 나발이고 곧바로 마파두부를 입안으로 밀어 넣는다.

직후에.

“맛있다…!”

저도 모르게 우물우물거리며 중얼중얼거리는 것이 들려왔다.

“진… 진짜 맛있어….”

반신반의하던 김현성도 마파두부를 한술 뜬 이후에는 커다랗게 눈을 뜨는중.

“맛…있군요.”

‘맛… 맛있었던 것 같기는 해.’

근데 자주 먹으니까 좀 질리기는 하더라.

하지만 간만에 입에 넣으니 익숙한 맛이 혓바닥을 사로잡는다.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고 한참이나 우물우물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벌써 한 그릇을 전부 해치운 정하얀이 빤히 진 군사를 바라보자, 진 군사가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그녀에게 한 그릇을 더 건넨다.

“그… 그런데 좀 질리기는 한다. 그… 그치, 소라야.”

그 와중에 한소라에게 마음에도 없는 귓속말을 속닥거리기는 했지만 입안에 잔뜩 마파두부의 잔해를 묻히고 있는 정하얀이 내뱉기에는 설득력이 없어 보이는 발언이었다.

입안이 화끈화끈거려 땀을 흘리며 부채질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손가락을 멈추지 못하는 그녀.

꽤 많아 보이는 한 그릇을 내가 전부 해치우자 깜짝 놀라는 김현성.

“많이 배고프셨군요. 기영 씨.”

“아… 네.”

“이기영. 조금 더 들 텐가?”

“네. 군사님 아주 조금만요.”

“정… 정말 배고프셨던 모양이로군요….”

그렇게 한참이나 계속된 식사시간 이후에,

“본래는 배웅까지 해주고 싶지만… 저택이 여의치 않아 배웅은 힘들 것 같군. 누군가는 이걸 정리해야 할 테니 말이다.”

“네?”

“이제 나가라는 말이다.”

단호한 진 군사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나가라.”

“…….”

“나가라. 이기영.”

“…….”

“제발… 나가라….”

아니, 처절한 목소리였다.

진 군사의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곧바로 나가는 것이 예의였다는 걸 알고 있기는 했지만….

“…….”

“…….”

“군사님.”

“…….”

“자신을 무림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남자가… 튜토리얼 던전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갑작스레 나타난 공화국 전령의 한마디에 저도 모르게 자세를 고쳐 앉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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