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사용설명서 1588화
새로운 일상(43)
“혈교의 음모고 나발이고 지금은 관심 없고요. 다른 놈들도 떠내려왔을 가능성이 있을 것 같아요?”
“네?”
“수많은 마두들과 노괴들이 갇혀 있다면서! 시바 거기에 있는 새끼들 중에 일부라도 여기에 떠밀려 왔을 가능성이 있냐고!”
“…….”
“…….”
“네….”
“…….”
“그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붉은빛을 보기 전에도 간헐적으로 어디에선가 붉은빛들이 비치는 것을 본 적이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 붉은빛이 제가 이곳으로 이동한 원인인 것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으나 만약 다른 이들도 불은빛의 영향을 받았다면… 어쩌면….”
‘시바… 짜증 나네. 진짜.’
“그래서, 얼마나 위험한데요?”
“…….”
“제 말 안 들려요? 흡성마군이랑 비교하면 거기 있는 마두들은 얼마나 위험하냐고요.”
“확실하게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그곳에서 몇몇 마두들과 마주치기는 했지만 단전이 망가지거나 신체가 성하지 않은 상태로 갇혀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으니… 적어도 제가 만나본 이들은 위험하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들려오는 이야기로는 온전히 내공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모자라 커다란 성취를 이룬 자들도 존재한다고 하더군요.”
“물론 온전히 받아들이기에는 터무니없는 이야기들도 있던 터라….”
“그 터무니없는 이야기 좀 들어볼게요.”
“무려 700년 동안 무저갱 아래에 갇혀 있었다는 광백노사에 대한 이야기나….”
“…….”
“무저갱 속에 머물고 있던 영물의 내단으로 이전의 성취를 회복했다는 역사상 최악의 마두 혈패왕….”
“…….”
“100살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아름다운 외모와 고강한 무공을 지니고 있다는 천음마녀….”
“…….”
“한때는 정파의 커다란 기둥이었지만 배신당해 무저갱 아래에서 미쳐버렸다는 괴선.”
“…….”
“쉬이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뿐입니다. 무저갱 아래에서만 돌고 있는 이야기들 말입니다. 필시 이야깃거리를 만들기 좋아하는 이들이….”
‘시바 뭔 개 미친 빌런 새끼들뿐이 없는 것 같자너….’
사실 녀석들에 대한 사전정보가 아예 없어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감이 안 오기는 했지만 대충 이야기만 들어봐도 위험한 새끼들인 것처럼 들려온다.
별호만 들어봐도 그렇다. 광백노사니 혈패왕이니 천음마녀니 괴선이니 시바 모르긴 몰라도 다들 한 딱가리할 것 같은 느낌이지 않은가.
일단 인간이 700년, 100년을 살아왔다는 것부터가 그렇다. 평소였다면 그냥 미친놈이 미친 소리를 지껄이는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 분명, 지금은 저게 그냥 개소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초월자인 건가?’
마력이 노화를 멈추게 할 수 있다는 건 이제는 별반 놀라울 것도 없는 이야기, 하지만 700년 정도가 튀어나오면 의아함을 표현할 수밖에 없다.
어떤 방식으로든 인간을 벗어났다고 판단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 새끼들이 전부 여기로 시바 쏟아져 온다고?’
김현성, 정하얀, 차희라, 진청, 정도가 이쪽이 보유하고 있는 초월자들, 그 뒤로, 라파엘이나 조혜진 같은 이들을 비롯한 몇몇이 초월자의 편린을 엿보려고 하는 이들, 물론 말이 엿본다는 거지 후보자들은 위 네 명과는 그 궤를 달리한다.
실상 완전하게 초월자라고 말할 수 있는 이들은 저 네 명이 전부. 저쪽이 초월자들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지 아직 알 수 없었지만 놈의 입에서 초월자로 추측되는 인물에 대한 묘사가 떡 하니 나오게 되니 걱정이 들 수밖에 없었다.
‘시바… 시바… 이러면 안 되는데… 이거 개에반데.’
물론 김현성이 세계관 최강자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혹시 알겠는가. 시바… 현성이보다 더 강한 새끼가 갑작스레 튀어나오게 될지 말이다.
사실 초월자들끼리 부딪친다는 것도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지난번에 정하얀과 차희라가 괴수 대격돌을 벌였을 때 지형이 변했다는 걸 떠올려 보면 더욱더 그렇다.
두 초월자들이 서로 멱살을 잡는다는 건 사실상 소도시 하나를 날려 먹는다는 것과 진배없다.
‘아니, 시바 도대체 왜 안 죽이고 무저갱 속에 쳐넣어 놓는 거야? 왜 굳이 이토 소우타나 정진호 같은 새끼들을 살려서 지하 감옥에 넣어 놓은 거냐고. 바하무트 같은 새끼들을 도대체 왜 살려놓는 거냐고. 곧바로 죽여야 되는 거 아니냐고.’
일단은 급하게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객관적으로 당신 수준이 어떻게 돼요? 보아하니 아직 별호도 없는 것처럼 보이고….”
“현 무림에서 촉망받고 있는 후기지수인 오룡삼봉보다는 위에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아직 절정고수지만 저는 초절정의 경지에 발을 들였으니 말입니다.”
“흡성마군은 어느 정도였는데요?”
“화경의 경지에 오른 고수입니다.”
“잠깐, 다시 설명 좀 해봐요. 보통 등급이 정확히 어떻게 나누어져 있어요?”
“보통은 삼류, 이류, 일류, 절정, 초절정, 화경, 현경, 생사경으로 구분합니다.”
“…….”
“삼류는 이제 막 내공이나 무공에 입문하는 단계이고….”
“절정부터 설명해 보세요.”
“절정 고수라 함은 내공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검기를 사용할 수 있는 단계를 뜻하게 됩니다. 검기라는 것은 검에 내공을 실어 방출할 수 있는….”
“그다음.”
“초절정 고수라 함은 일반적으로 경기에 완전히 통달하고 깨달음을 얻어 검강을 제한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는 단계입니다. 보통 많은 무인들이 이 초절정의 벽을 넘지 못하고….”
‘우리 쪽이랑 비슷하구나?’
아무래도 고급 마력 운용 지식을 가지고 있는 이들을 뜻하는 모양인가 보다.
“화경이라 함은 검강과 내공을 온전히 다스릴 수 있게 되는 경지를 뜻합니다. 일반적으로는 환골탈태를 겪어 육체가 재구성되는 과정을 거치게 되므로 진정한 초인이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경지입니다.”
“네. 그다음은요?”
“이후에는 현경입니다. 아주 극소수의 무인들 중에서도, 극소수의 무인들만이 이 경지를 밟게 됩니다. 마음으로 검을 만들 수 있는 경지인 심검이 이 단계에 해당되며, 실상 이 경지에 이른 이들은 반인반선의 경지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준신화 등급 정도….’
“그다음은 없어요?”
“그다음 경지는 생사경이라고 부릅니다. 사실 이 영역은 전설 속에서나 전해져 내려오는 영역인 터라….”
“설명해 주세요.”
“보통 생사경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신선이 된다고들 표현하기도 합니다. 우화등선하여 선계에 진입하여 인간사에 관여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존재한다고 하지요. 이때부터는 더 이상 나이를 먹거나 병들지 않게 되며, 손짓 발짓으로 바다와 산을 가를 수 있다고 하더군요. 물론….”
‘우화등선… 이면 여기가 신화 등급이겠네.’
“그쪽에도 선계라는 게 있어요?”
“들어본 적이 있지만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겁니다. 저 역시 깨달음을 얻어 신선이 된다는 것을 믿지는 않았지만… 이기영 님을 보니 어쩌면 저희 세계에서도 신선이라는 이들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러니까 대충 초절정 고수가 영웅 등급의 상위, 화경을 전설 등급, 현경을 준신화 등급, 생사경을 신화 등급 정도로 분류하면 될 것 같았다.
“생사경의 고수를 실제로 본 적은 없으시겠죠?”
“예.”
“현경의 고수는요?”
“마주한 적이 있습니다.”
“어때요?”
“무슨 말씀이신지….”
“눈앞에 있는 저기 저 사람과 비교하면… 누가 더 강할 것 같냐고요. 군사님 진심개방 같은 거 한 번만 해줘요.”
“쓸데없는 짓거리를….”
“쓸데없는 짓이 아니니까 부탁하는 거죠. 진 군사 진심 100% 개방 이런 거 없냐고요. 변신 같은 거 할 수 있으면 변신해도 좋고요. 군사님은 날개 없어요? 날개 한번 뽑을 수 있으면 뽑아봐요. 저번에 그… 데뷔탕트 무도회에서 보여준 뇌신 모드 같은 거라도 좀 해봐요. 아무튼 인외적인 느낌 팍팍 넣어서요. 정 없으면 만해[卍解] 같은 거라도….”
“만해는 또 뭐지?”
“아… 아니에요. 잊어 주세요. 아무튼 간에… 빨리 해봐요.”
“…….”
“…….”
결국 커다랗게 한숨을 쉰 진 군사가 놈을 향해 입을 열기 시작한다. 당연하지만 갑작스럽게 변신쇼를 선보일 생각은 없는 모양인지, 조용히 놈과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내 눈을 바라봐라. 흡성마군의 제자.”
이쪽 역시 괜스레 자색의 눈을 슬그머니 바라본 것은 당연지사.
그리고,
화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하고 순식간에 몸이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갑작스레 온몸의 신경이 곤두선다. 눈을 잠깐 감았다가 떴을 뿐인데도 불구하고 우주에 혼자 남겨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니, 실제로 우주에 서 있다. 아무것도 없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깜깜한 공허, 그리고 그곳에서 마치 태양이라도 되는 것마냥 존재하고 있는 자색의 거대한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시야에 비쳐왔다.
‘눈 색깔 한번 특이하자너.’
압도적인 존재감. 그것 외에는 이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을 벗어나 초월된 무언가를 목도하는 것 같은 느낌.
마치 처음 벨리알이 소환되었을 때, 그의 편린을 엿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야 진 군사의 눈동자가 생각보다 봐줄 만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아마 백 모 씨는 죽음의 공포를 느끼고 있을 것이 분명. 저 존재가 손가락으로 순식간에 자신을 짓누를 수도 있다고 여기고 있을 것이다.
새삼스럽지만 이 새끼가 갑작스레 대단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림자 저택을 처음 봤을 때처럼 이런 반전매력을 보여줄 때마다 뭔가 대단해 보이는 느낌이 확실하게 있기야 하다.
도저히 다 무너져 내리는 주방에서 마파두부나 만들고 있는 놈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
“…….”
그리고 천천히 커다란 자색의 눈이 감겼을 때.
“허억… 허억… 허억… 우웨에에에엑.”
그 자리에서 곧바로 토악질을 하는 백리현의 모습을 시야에 담을 수 있었다.
“우욱… 우웨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엑….”
고개를 들어 자신의 눈앞에 있는 사람을 확인한 이후에는….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이라 비명을 지르며 전속력으로 진 군사의 반대편으로 기어가기 시작하고 있다.”
‘아주 꼴값을 떨자너.’
“어때요? 그 현경이라는 경지랑 비교하면 어떨 것 같아요?”
“으아아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아아악!!!!”
“어떨 것 같냐니까요?”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악!! 우욱… 우아아아아아아아!!”
“아니… 군사님 이 새끼 미친 것 같은데요? 아! 시바! 왜 내 바지는 잡아당기고 그래요!”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왜 나한테 그래요! 이 양반아!!! 군사님 얘 좀 떼어 주세요! 아! 매달리지 좀 말라니까! 토 묻잖아요!”
“아아아아아아악!!!!”
“아 진짜!”
갑작스레 이쪽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매달리는 녀석에게 떨어지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였다.
-부길드마스터.
-…….
-보고가 늦어 죄송합니다. 차희라 님께서 신원불명의 남자와 전투를 벌이고… 아니, 벌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최영기 님과 스미스 대령께서 치명상을 입으신 상태로… 조혜진 님께서도 부상을… 정황상 튜토리얼 던전에서 빠져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적과….
-…….
-급하게 지원을… 아니, 전투 지원 요청은 필요 없으시다고 합니다. 다만 도시에 피해가 갈 것을 우려해… 이 부분에서 도움을 받고 싶으시다고 지금… 지금 당장입니다. 지금 당장입니다! 부길드마스터! 지금 당장입니다!!! 피해… 피해!!!!!!!
-…….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