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야 이, 미친놈아. 선물하긴 뭘 선물해? 저기 쓰여 있는 거 안보여? 우. 호. 도. 어? 너랑 나랑 오늘 처음 본 사이면서 쌓일 우호가 있기나 하다고 생각해?”
너무나도 당당하게 말하는 남궁의 모습에 잠시 멍해졌던 규류는 고개를 흔들며 소리쳤다.
“게다가 이것 봐. 팔에다 칼빵을 놓질 않나, 코뼈를 부러뜨리지 않나! 그런 놈에게 내가 저걸 선물하라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규류는 코웃음을 쳤다.
“네놈에게 줄 선물 따윈 없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썩 꺼져!”
그가 보따리 창을 닫으려 했다.
쾅-!!!
하지만 그 순간, 남궁이 쥐고 있던 나이프를 다시 한번 그의 손등에 박아 넣었다.
“으악!! 이 미친!! 쓰벌!!”
“받았잖아. 선물.”
“그래. 이 새끼야. 네놈이 준 칼침만 오지게 받았다. 이거 안 빼? 어?!”
규류가 주먹을 움켜쥐며 소리쳤다.
당장에라도 남궁의 얼굴에 날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참는 듯, 그는 연신 ‘아오!!’ 하는 한숨만 내쉬었다.
“돈. 지금의 가치를 떠나 내게 받았잖아.”
“받긴 뭘 받아. 네가 일방적으로 준 거잖아!”
“2년 뒤에 어쩌면 그게 네 목숨을 구해 줄지도 모르는데도?”
“……뭐?”
순간 규류의 표정이 달라졌다.
“난 너희 일족을 좋아하지 않아. 단지 대리자를 맡은 8개의 일족 중 그나마 네놈이 말이 통할 것 같으니 온 것뿐이야.”
남궁은 나이프를 박은 채로 그를 바라봤다.
“내가 회귀자라는 건 이제 알 테고. 시간이 흘러서 뭐가 가치가 있고 뭐가 가치가 없어지는지 너는 몰라도 나는 알지. 돈은 지옥문이 열려도 여전히 가치가 있다.”
“…….”
규류는 남궁의 말에 바닥에 쌓여 있는 돈다발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진짠가? 인간계의 돈이야 우리 세계에선 그냥 종이쪼가리에 불과한데…….’
그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지옥문이 열리고 2년 뒤에 찾아올 칠흑의 밤이라는 것이 도통 뭔지 모르겠기 때문이다.
“네 말이 뻥카면 어쩌고?”
“증명할 방법은 없다. 믿고 안 믿고는 네 마음이야. 2년 뒤에 네가 땅을 치고 후회하든 말든.”
“사악한 놈…… 넌 나가(Naga) 놈들보다 더 지독한 놈이야.”
“그런 얘기 종종 들었지.”
시답잖다는 남궁의 대답에 규류는 더욱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알겠다.”
결국 규류는 보따리에서 양피지를 꺼냈다.
툭-
던지다시피 남궁에게 양피지를 건네자 남궁은 기다렸다는 듯 그것을 펼쳤다.
“그걸로 뭘 하려고?”
“계시록을 쓸 거야. 계시자의 시험의 입장권.”
“……뭐?”
남궁의 말에 규류는 잘못 들었나 싶어 되물었다.
“계시록을 쓴다고? 말도 안 돼. 그 내용은 오직 신만이 알고 있다고!”
하지만 그의 외침과 달리 남궁은 자신의 손가락을 나이프로 살짝 그어 맺힌 피로 뭔가를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문자라기보다는 도형에 가까웠고 수식에 가까웠다.
분명한 것은 현대에 존재하지 않는 언어라는 것이었고.
양피지를 적어 내려갈수록 규류의 얼굴이 경악스러워지는 것 또한 확실했다.
“미…… 미친. 인간이 룬어를 안다고? 도대체 전생에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거냐.”
“그건 중요한 게 아냐. 중요한 건 이제부터 네가 할 일이지. 대리자 일족은 계시자의 시험의 문을 열 수 있으니까.”
규류는 남궁이 건넨 양피지를 떨리는 손으로 바라봤다. 놀랍게도, 가짜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양피지를 잡자 그 안에 적인 문자들이 빛나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그리고 규류의 뒤로 문이 하나 생겨났다.
블랙홀처럼 일그러진 공간은 분명 퀘스트의 문이었다.
“……하나만 묻자.”
“뭔데?”
“다 좋다 이거야. 네 녀석이 회귀의 기억으로 계시자의 시험의 존재를 알고 룬어까지 안다 치자. 그래서 지금 계시자의 특혜를 훔치려고 하는 것도 오케이야.”
“그런데?”
“그럼 그 계시자는 어찌할 거지? 원래 이곳에 와야 할 계시자 말이다. 너는 누군지 알고 있을 텐데.”
규류는 투덜거리며 양피지를 건넸다.
“지금 이거, 네가 그의 혜택을 빼앗는 거야. 그로 인해서 창창할 그의 미래가 시궁창이 될지도 모른단 말이지. 미안하지도 않아?”
“미안?”
하지만 어쩐지 남궁은 규류의 물음에 웃었다.
“전혀 미안하지 않는데?”
“이런 냉혈한…….”
규류는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더 이상 말하기 싫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
남궁은 양피지를 쥐고서 규류가 연 문의 앞에 섰다.
규류의 말대로 남궁은 이곳에 올 자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귀곡(鬼哭)이라 불리는 자였다.
팔무성 중 단연 독보적인 존재.
수많은 사령들을 거느리고 불사에 가까운 힘을 가진 그는 팔무성 최강이라 칭송받던 알렉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강자였다.
“글쎄. 놈은 죽기 전에 내게 계시자의 시험의 존재를 알려준 자거든. 자신보다 빨리 공략해서 자신이 얻어야 할 힘들을 가로채라고.”
“에이, 거짓말. 강해질 수 있는 힘을 얻을 기회를 그렇게 쉽게 남에게 준다고? 전생을 살았으니 알 텐데. 이 앞이 얼마나 끔찍한 세계가 될지. 엄청나게 착한 녀석이었나 보지?”
규류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귀곡 최휘수.’
남궁은 그의 이름을 잠시 떠올렸다.
최휘수는 그의 스승이었다.
“아니. 그 반대다.”
남궁은 그가 익혔던 사령술을 물려받았다.
“세상 사람들에게 놈은 죽여야 할 쓰레기 중 하나에 불과해.”
희대의 사이코패스.
사령(死靈)을 쓰기 위해서 필요한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당연한 얘기지만 죽은 자들이었다.
지옥문이 열리고 널리고 널린 게 시체라지만, 최휘수는 좀 더 질 좋은 시체를 찾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단순히 죽은 자가 아닌 어떻게 죽느냐의 방법론까지.
그로 인해 자행되었던 형용할 수 없는 갖가지의 고문들. 남궁은 그저 최휘수의 많은 실험체 중 하나에 불과했다.
상처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그에게 당했던 부위들이 욱신거리는 것 같았다.
남궁이 최휘수의 제자가 된 것도 딱히 특이한 인연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셀 수 없을만큼의 실험을 빙자한 고문.
거기서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게도.”
그러니 일말의 죄책감도 가질 필요 없다.
* * *
솨아아악---!!!
규류의 차원문을 넘어서자, 남궁의 시야로 마치 기다란 터널을 빠져나오는 것처럼 깊은 어둠 뒤에 빛이 다가왔다.
“넌 왜 따라와?”
“……신경 꺼. 네놈이 어떻게 뒈지는지 구경하러 가는 것뿐이니까.”
남궁은 자신과 함께 문을 넘어 온 규류를 힐끔 바라보고는 피식 웃었다.
“상관없지만…… 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 아무리 대리자라도 네가 올 곳이 아냐.”
“남이사. 네가 전생에 아무리 대단했어도 지금은 그냥 평범한 인간일 뿐이야. 너야말로 조심하는 게 좋을걸. 네가 문을 열 이곳의 주인이 누군지 안다면 말이지.”
규류는 남궁을 향해 혀를 삐쭉 내밀며 말했다.
“알다마다. 아니, 너무 잘 알지.”
그렇지 않다면 8개의 계시자의 시험 중 이곳을 찾았을 이유도 없었다.
“나를 18년 동안 괴롭힌 놈이니까.”
남궁이 살았던 세월은 지옥문이 열리고 25년.
10월 11일 지옥문이 열리고 4년 뒤 그는 최휘수를 만났었다.
3년 동안 끔찍한 고문을 당했고, 7년째가 되는 날 남궁은 최휘수를 죽였다.
“드디어 빌어먹을 그놈에게서 탈출했다 싶었을 때 더 지독한 자를 만났지.”
차라리 최휘수가 나았다.
적어도 같은 인간이었으니까.
놈은 전생에 결국 닿을 수 없었던 존재였다.
▶ 일곱 뱀을 다루는 자의 영역에 입장하였습니다.
남궁은 눈앞에 나타난 붉은 알림을 바라보며 걸음을 옮겼다.
* * *
[허락되지 않은 자로군.]
그때였다.
머릿속을 울리는 목소리가 들렸고, 규류는 그 목소리에 오금이 저린 듯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규류. 어째서 인간을 데리고 왔지?]
“그, 그게…….”
[이곳은 오직 계시자만 허가된 곳이다. 하나 나는 너를 뽑지 않았다.]
“나를 뽑지 않은 것. 그게 너의 패착이었지. 처음부터 너는 나를 뽑았어야 했다.”
순간, 어둠이 갈라지고 그 사이로 커다란 눈동자 하나가 튀어나왔다.
“이, 일곱 뱀의 주인이시여!! 저자가 바로 그 회귀자입니다!! 666,666명의 상급 마족을 죽인 살인…… 아니, 살육자 말입니다!!”
뱀의 눈처럼 기다란 동공이 나타나 그를 노려봤다.
[……네가 그 우리의 판을 뒤집어놓은 놈인가.]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떠는 규류와 달리, 남궁은 아무렇지 않게 그 커다란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는 자격이 없다.]
“네가 뽑은 최휘수보다는 나을걸. 자격이 없는지 있는지는 확인해 보든지.”
그 순간 바닥이 일렁였다.
너울 치는 것처럼 꿀렁였고 주위는 녹아내리는 것처럼 흘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짙은 공포로서 그들을 짓눌렀다.
정적이 흘렀다.
아니, 그의 귀가 들리지 않는 것이다.
어두워졌다.
아니, 그의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그의 촉각이 사라진 것이다.
탁했던 공기가 변했다.
아니, 그의 후각이 차단된 것이다.
인형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남궁은 자신의 사지가 자신의 의지와는 별개로 마치 타인의 것처럼 느껴졌다.
“흐, 흐힉……!!”
규류는 그 끔찍한 압박에 당장에라도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문은 닫혀 있었고 도망칠 길은 없었다.
“사, 사, 살려 주…….”
위상의 압박에 규류는 겁에 질린 어린아이처럼 주저앉아 무릎 사이로 얼굴을 파묻고는 양팔로 뒤통수를 움켜잡았다.
꺄아아악---!!!
쿵-!! 콰아앙--!!!
벌벌 떨던 규류의 모습이 사라졌다.
대신 환영이 보였다.
고막을 찢을 듯한 비명 소리와 여기저기 울리는 굉음과 같은 폭음 소리.
무너진 잔해들.
그리고 그 아래 죽은 시체들이 보였다.
“…….”
남궁의 시선이 한 곳에 꽂혔다.
쌓여 있는 잔해는 자신의 집이었다.
그 아래 깔린 작디작은 손 하나만 보였다.
놈은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마음을 가장 크게 흔들 수 있는 존재가 바로 딸이라는 것을.
두근-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하지만 그는 크게 호흡을 내뱉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뛰던 심장은 차갑게 식었다.
“유치하군.”
사악-!!!
남궁은 나이프를 꺼내 자신의 손등을 베었다.
꿀꺽.
손등에 흐르는 핏물의 온기도 느껴지지 않았고 냄새도 나지 않았지만, 딱 하나, 목을 타고 넘어갈 때 비릿한 맛만은 느껴졌다.
오감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감각.
미각이 그의 몸엔 여전히 피가 흐르고 있고 자신이 인간임을 되새겨 주고 있었다.
“퉷.”
남궁이 피를 빨던 자신의 손등을 물어뜯자 살점이 뜯기면서 그 순간 고통이 밀려왔다.
눈앞에 보였던 환영은 사라졌다.
다시 어둠이 내리깔렸다.
“이런 걸로 나를 시험하려 들지 마라. 네가 만든 밤낮 없는 무간지옥(無間地獄)에서도 살아남은 나다.”
그는 어둠 속을 주시했다.
[……나를 아는가?]
“그뿐만이 아니지. 나는 너의 힘을 가진 자다.”
솨아아악--!!
남궁의 팔에 자줏빛의 오러가 피어올랐다.
눈동자는 신기한 듯 그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말했다.
[크, 크큭…… 시간축을 비튼 회귀자가 나를 따르던 자였던 건가? 나머지 위상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배가 아파 죽으려고 하겠군.]
퍼억--!!
그때였다.
남궁은 자신의 주위를 돌던 눈동자를 향해 들고 있던 나이프를 박아 넣었다.
“함부로 지껄이지 마라.”
파드드득……!!
주먹에 찔린 눈이 고통스러운 듯 깜빡거리며 바닥을 구르기 시작했다.
남궁이 그것을 놓치지 않고 눈을 발로 밟고서 박아 넣은 나이프를 비틀었다.
촤아아악……!!
그러자 물컹하고 끈적한 점액이 터져 바닥에 흘렀고, 눈동자는 순식간에 바람이 빠진 풍선처럼 납작해졌다.
‘미, 미친……!!!’
규류는 경악스러운 광경에 당장에라도 기절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난 네놈을 따르던 자가 아냐.”
흐물거리는 눈동자를 보니 남궁은 어쩐지 조금 속이 후련해지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