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6/270)

6화

▶ 당신은 위상과 조우했습니다.

▶ 타계(他界)를 경험하였습니다.

▶ 능력치가 등록됩니다.

요르의 공간에서 나와 다시 을지로 상가에 도착하자 남궁의 눈앞에 알람 소리와 함께 여러 개의 창들이 나타났다.

▶계시자로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새로운 스킬을 획득하였습니다.

▶ 이미 습득한 스킬의 등급이 변화합니다.

▶ 사령술(초급) → (중급)

▶ 영혼의 눈 Lv1 → Lv2

▶새로운 스킬을 습득하였습니다.

▶ 영혼 감지 Lv1

▶ 영혼 사역 Lv1

▶ 영혼 흡수 Lv1

주르륵 눈앞에서 내려오는 창에 적혀 있는 스킬들은 이미 전생에 그가 썼던 것들이었다.

‘회귀의 특전인 건가? 스킬을 배우자마자 한 단계 레벨이 오르다니…….’

예상치 못한 혜택이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스킬의 레벨을 올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특히 베이스가 되는 사령술의 등급은 세부 스킬과 달리 엄청난 경험치가 필요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중급이 되면 그곳에 갈 수 있을 텐데…….’

그는 살짝 눈을 흘겼다.

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그보다 더 그의 눈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다.

《영혼의 눈 Lv2》

죽은 자의 영혼을 이해하는 능력.

이해도가 높아질수록 영혼과의 교감이 높아져 능력치가 상승한다.

▶ 때때로 시체의 영혼을 볼 수 있다.

▶ 레벨이 최고조에 이르면 영혼을 소환할 수 있다.

▶ 단 소멸된 영혼은 소환이 불가능하다.

“역시…….”

남궁은 첫 회귀의 순간 자신이 느꼈던 영혼이 아내의 것임을 확신했다.

“내가 지옥 속에서 살아남는다면, 어쩌면 널 다시 볼 수 있는 걸까.”

그는 아내의 얼굴을 떠올리며 잠시 눈을 감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제 곧 펼쳐질 지옥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였음에도 불구하고 묘한 희망을 품고 말았다.

‘정신 차려. 희망은 독일 뿐이다.’

하지만 곧 그는 자신을 다그쳤다.

전생에서 몇 번이나 마음을 다잡았음에도, 딸과 아내를 본 순간 그는 조금씩 흔들렸다.

기대가 클수록 실망도 큰 법.

‘지금은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다.’

가슴 한편이 시린 느낌이었지만 남궁은 눈앞의 창들을 치우며 말했다.

“규류. 지금 내가 가진 헤드로 살 수 있는 도검이 뭐가 있지? 최소 레어 등급. 그 이하는 말고.”

“네? 아, 네!! 도, 도검 말씀이십니까?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규류는 황급히 보따리를 풀었다. 요르의 영역에 다녀온 뒤로 남궁을 태하는 그의 태도는 180도 바뀌어 있었다.

“두 자루가 있습니다. 보시겠습니까?”

“응.”

남궁의 대답에 규류가 보따리 안에서 물건 두 개를 꺼내어 그의 앞에 내밀었다.

넘버링 789.

이름 : 미망인의 눈물

등급 : 레어(최고)

▶ 어느 귀부인이 죽은 남편에게 받은 검.

▶ 검날에 독이 발려 있다.

▶ 가격 : 89,000헤드

▶ 추가 : 남편의 사인(死因)은 알지 못한다.

넘버링 1778.

이름 : 사형집행인의 참수검

등급 : 레어(최고)

▶ 단두대에서 1800회 넘게 휘둘러진 검.

▶ 사형집행인의 집념이 남아 있다.

▶ 핏물에 원한이 묻어 있다.

▶ 가격 : 77,000헤드

▶ 추가 : 기개(氣槪) 있는 자가 쓰지 않으면 살인광이 될지도 모른다.

“이 둘이 10만 헤드 안에서 살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검이네요.”

일전에 보따리에서 봤던 【고대 엘프의 활】역시 같은 레어 등급의 무구였다.

하지만 이렇다 할 설명이 없었던 그 활과 달리, 두 개의 무구엔 뭔가 잔뜩 적혀 있었다.

게다가 가격 역시 활이 75만 헤드였던 것에 비해 두 개의 무구는 반의반도 하지 않는 가격이었다.

“설명이 길군.”

규류는 그 말이 무슨 의민지 안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구구절절한 설명이 많다는 건 그만큼 사연이 많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사연이 깊어봤자 좋을 게 없지.”

남궁은 두 자루의 검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저주받았다는 뜻이니까.”

“네. 가격이 싼 이유도 그 때문이죠.”

그는 핏물이 잔뜩 묻어 있는 검을 잡고서 규류에게 보였다.

“이걸로 하지. 그리고 남은 헤드로 물건을 보관할 가방을 살 수 있을까?”

“아, 그건 제가 드리겠습니다. 이 정도면 쓸 만하실 겁니다.”

규류는 기다렸다는 듯 보따리에서 뭔가를 꺼냈다.

누더기 같아 보이는 낡은 전대(纏帶)였다.

넘버링 8021.

이름 : 드워프의 작업 전대

등급 : 매직(최초)

▶ 짧은 다리의 드워프가 작업 할 때 쓰기 위해 만든 전대. 자신보다 큰 도구들도 넣을 수 있다.

▶ 생명체는 넣을 수 없다.

▶ 가격 : 400,000헤드

“내가 가진 돈보다 훨씬 비싼 물건인데?”

“하하…… 말씀대로 사연 많은 물건은 처리하기도 곤란한 일이니까요. 제가 오히려 고마운 일입지요.”

규류는 손을 비비며 헤헤거렸다.

“게다가 남궁 님과 우호를 쌓는 것이 손해 볼 일은 아니지요.”

“현명하군.”

남궁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솨아악--

검을 가까이 가져가자 전대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무게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만족스러운 듯 가볍게 그것을 두들기고는 말했다. 안쪽은 아공간으로 되어 있었고 꽤 많은 양을 수납할 수 있는 듯 보였다.

촤르륵……!!

전대 위에 손을 얹자 그의 눈앞에 보관되어 있는 물품이 아이콘화되어 나타났다.

일종의 인벤토리와 같았다.

‘아직은 매직 등급이지만 최초라고 적혀 있는 걸 봐서 더 성장이 가능하다는 의미겠지.’

생각보다 훨씬 더 쓸 만한 도구였다.

남궁은 지옥문이 열리기 전 필요한 생필품들을 이곳에 보관할 생각이었다.

아껴서 먹는다면 적어도 수개월…… 아니, 몇 년 치를 넣을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몇 시지?”

“응? 아, 아니. 네? 아아! 그, 그러니까…… 3시네요.”

규류는 새삼 고작 1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며칠은 꼬박 밤을 지낸 것 같은 기분이야.’

그는 급격하게 밀려오는 피로감에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늦지 않겠어. 다행이군.”

“네? 또 뭐 하실 거라도 있으십니까?”

남궁의 말에 규류는 다시 잔뜩 긴장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럼 그렇지. 검으로 샀으니 뭔가 또 일을 꾸미는 게 분명하겠지.’

과연 다음 목적지는 어딜까?

설마 계시자 사냥이라도 하려는 걸까?

아니면 또…….

규류의 머릿속이 어지럽게 움직였다.

꿀꺽-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딸을 데리러.”

“……네?”

“학교 수업 끝날 시간이거든.”

“……어련하시겠습니까.”

아무렇지 않게 돌아서는 남궁을 보며 맥이 빠진 듯, 규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어 헛웃음을 지었다.

* * *

“소민아. 명훈 삼촌 기억하지?”

“응. 당연하지!”

“오늘 삼촌 만나러 갈 거야.”

지금쯤이면 다른 계시자들은 아마 자신의 능력을 강화시키려 안달이 났을 테지만, 을지로에서 돌아온 이틀 동안 남궁은 딸과 시간을 보냈다.

그리 특별한 시간을 보낸 것은 아니었다.

함께 밥을 먹고, 함께 TV를 보고…….

여느 때와 다르지 않지만 사실 여느 때에도 하지 못했던 평범한 둘만의 시간이었다.

‘어차피 일곱 뱀의 능력은 지금 당장 뭘 한다고 해서 올릴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스킬의 능력을 올리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

그게 부합돼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딸과 시간을 보내는 것 이외에 미래를 위한 대비는 철저하게 준비했다.

옷가지와 식량, 그리고 나머지 필요한 물건들을 전대에 가득 집어넣었다.

“오늘이지? 아빠가 말했던…….”

“맞아.”

소민은 남궁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자신의 방에서 잔뜩 뭔가가 들어 있는 백팩을 가져왔다.

“그건 뭐야?”

“인터넷에서 찾아봤어. 생존 물품들.”

“……한참 택배들이 오더니 다 그것들이었구나.”

남궁은 딸의 말에 피식 웃었다.

을지로에서 돌아온 그는 딸에게 모든 것을 얘기했다.

미쳤냐고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사실 그 역시도 과연 말 같지도 않은 자신의 말을 믿을지 의문이었으니까.

하지만 소민은 그의 말에 어떠한 질문도 하지 않았다. 남궁은 불안했지만 그녀가 메고 있는 가방이 충분히 대답이 되어주었다.

“가자.”

남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눈에 담아 두려는 듯 천천히 자신의 집을 훑었다.

돌아왔을 땐 사라져 버릴 두 사람의 공간.

아니, 세 사람의 공간이었던 이곳.

“…….”

떠나기 전 그는 중문 안쪽 탁자에 놓여 있던 작은 액자에서 아내의 사진을 꺼내어 품 안에 조심스럽게 집어넣었다.

철컥-

현관문이 닫혔다.

지옥문이 열리기 10시간 전.

* * *

대전 현충원.

접객실 안에는 성묘를 하러 온 사람들 몇몇이 보였다.

“후읍…….”

남궁은 낮은 숨을 토해내며 누군가를 기다렸다.

“충성. 남 대위님.”

“충성은 무슨…… 너나 나나 전역한 지가 언젠데. 오랜만이다. 명훈아.”

“네. 형님은 여전하신데요? 현역으로 다시 복귀하셔도 되시겠습니다.”

“실없는 소리는.”

접객실의 입구에서 남궁을 향해 장난스레 경례를 하며 웃는 남자가 살갑게 그에게 다가왔다.

“저야말로 한가하게 뒹굴거리기만 하다 보니 살만 찐 것 같습니다.”

“너야말로 여전한데. 그래도 좋아 보인다. 피비린내보다 평온을 바랐으니까.”

“네. 바라는 대로 되었죠. 조금 심심한 감도 없잖아 있지만…… 전장보다는 100배 낫습니다.”

남자의 이름은 최명훈.

과거 남궁과 함께 특수 부대에서 작전을 함께했던 후임이었다.

“오늘 손님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럼요. 현충원에 워낙 많은 분들이 잠들어 계시니까요. 묘역뿐만 아니라 납골당에 안치된 사람들까지 하면…… 수만 명은 되겠죠.”

“많이도 계시는군. 그때 내가 본 건 몇 명 되지 않았던 것 같은데…….”

“네? 아시는 분이라도 계십니까?”

“아니다. 아무것도.”

“형님 배고프세요? 배고프실 때 가끔 헛소리하시잖아요.”

“시끄러. 녀석아.”

남궁은 쓴웃음을 짓고는 명훈의 머리를 털듯이 헝클며 말했다.

“에이, 오랜만에 만났는데 재미없는 얘기는 그만하고요. 소민이는요?”

“차에서 자고 있어.”

“하긴 서울에서 꽤 멀죠. 피곤했을 거예요. 죄송해요. 제가 찾아 갈 걸 그랬어요.”

“아니야. 일부러 재웠다. 깨어 있지 않은 게 좋아. 사실 별로 좋은 광경도 아닐 거라서 말이지.”

“……네? 제 얼굴이 그래도 못 보여줄 광경은 아닌데…….”

“그럴 리가.”

명훈의 말에 남궁은 피식 웃었다.

“서울이 아니라 여기서 만나야 할 이유도 있었고. 뭐, 커피 한잔할까?”

“아, 네! 제가 사겠습니다.”

“아냐. 내가 살게. 대신 넌 바닐라 라떼 마셔.”

메뉴를 정해주는 그의 모습에 명훈은 다시 한번 이상하다는 듯 그를 바라봤다.

“형님도 참. 저 단 거 안 먹는 거 아시잖습니까.”

“그래서 그래. 지금 마시지 않으면 너 아마 평생 후회된다고 할 거다. 바닐라 라떼 한 잔. 그렇게도 먹고 싶다고 입이 닳도록 말할 게 분명하거든.”

“제가요? 에이, 말도 안 됩니다. 단거 끊은 지가 언젠데요.”

명훈은 말도 안 된다는 듯 손을 저으며 말했지만 남궁은 단호했다.

“묻지 말고 일단 마셔라. 형이 사는 거니까. 이번만큼은 주는 대로 마셔.”

“…….”

명훈은 어쩌다 보니 눈앞에 놓인 바닐라 라떼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여전히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으…… 달다.”

“다 마셔. 이제 1시간도 안 남았으니까.”

“뭐가 말입니까. 형님? 바로 서울로 올라가시려고요? 에이, 하루 자고 가시죠.”

남궁은 그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만…… 아마 오늘 밤은 잠을 자기는커녕 긴 밤이 될 거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네게 할 말이 있다.”

명훈은 남궁의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감지했다.

마치, 과거 부대에서 그를 마주 했을 때와 같은 날카로운 살기가 느껴졌다.

명훈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남궁을 바라봤다.

“세상이 멸망할 거라면 믿을 거냐.”

“풉……!!”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남궁의 말에 명훈은 그만 입에 머금고 있던 라떼를 뿜어 버렸다.

“아이 참. 형님! 농담을 뭐 그렇게 진지한 얼굴로 하십니까. 진짜 못살겠네. 아까부터 재미없는 소리 하실래요?”

“농담 아냐.”

우우웅--!!

그때였다.

콰아아아앙---!!!

콰가가강--!!!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지면이 흔들렸다.

“꺄악?!”

“무, 무슨 일이야!!”

찬장에서 떨어지는 컵과 접시들이 깨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고, 접객실에 있던 사람들의 비명이 사방에서 울렸다.

[끼아아아아악---!!!]

그 순간 창밖에서 들려오는 이형의 포효.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맑았던 하늘이 검게 변해 있었고, 마치 운석이 떨어지는 것처럼 붉은 낙뢰가 사방에 뿌려졌다.

사람들은 갑작스럽게 찾아온 재해에 반응조차 할 수 없었다.

쾅-! 쾅-! 콰아아앙--!!

와장창-!!

그 순간, 접객실의 천장이 무너졌다.

“꺄악!!!”

“으아아악……!!”

“사람이 여기 깔렸어요!!”

“1…… 119 좀 불러요! 어서!!”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무너진 잔해에 깔린 사람들을 구하려 소리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와그작…… 와그작…….

피어오른 먼지 구름 안에서 들려오는 괴상한 소리에, 그들은 구조는커녕 도망조차 치지 못한 채 그대로 굳어 버리고 말았다.

[캭! 캬캭!!]

[우적……! 꿀꺽……!!]

잔해에 묻혀 있던 사람들의 팔과 다리가 이따금 부르르 떨렸다. 하지만 그 떨림도 이내 곧 멈췄다.

[크르…….]

[크르르르…….]

먼지 사이로 들려오는 묘한 으르렁거림.

툭-

조금 전 부르르 떨던 시체의 뜯겨진 팔이 바닥에 떨어졌다. 팔은 마치 고기를 뜯어먹고 남은 뼈처럼 살점들이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ωϪνοκ!!]

입가에 피를 묻힌 채 괴물에게서 알 수 없는 언어가 들려왔다.

[ωϪυφχφ χω γ stφ……!!!]

체구는 작았지만 녹빛의 피부와 길쭉한 입술, 그리고 기형적으로 튀어나온 송곳니로 인간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고블린(Goblin).

지옥문이 열리고 가장 먼저 나타난 하급 마물이지만 녀석들은 15년 동안 가장 골치 아프고 지독한 놈들이기도 했다.

“꺄아아아악!!!”

“으아악!!”

사람들은 마물의 등장에 소스라치게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런 그들의 뒤를 먹잇감을 쫓는 늑대처럼 고블린들이 무리 지어 달려들었다.

“사, 살려줘!!”

“아아아악!”

와그적-! 와그적-!!!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비명 소리와 뼈와 살이 뜯기고 부서지는 소리가 뒤엉켰다.

“혀, 형님……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 거죠?”

불타고 있는 현충원과 끔찍한 사람들의 최후에 최명훈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넋이 나간 표정으로 말했다.

“명훈아.”

꽈악-

남궁은 그의 어깨를 움켜잡았다.

“……네?”

맑은 눈이었다.

남궁은 그 눈이 앞으로 있을 수라를 겪으며 비탄과 잔혹으로 변할 것을 알았다.

‘태산검(泰山劍) 최명훈.’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마물에게 항쟁했던 두 거대 클랜이 있었다.

그중 하나.

클랜 『무장수호(武裝守護)』의 리더.

그와 조우를 한 것은 지옥문이 열리고 난 뒤 10년 후였다.

이미 그 시간 동안 걸어 온 길이 달랐던 둘이었기에 그들의 상황은 너무나도 달라져 있었다.

그리고 다시 2년 뒤,

다시 두 사람이 만났을 때 한 사람은 살아 있었고 한 사람은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었다.

전생에서 남궁은 몇 번이나 생각했었다.

만약 자신이 지옥문이 열리기 전에 서울이 아닌 대전에서 그와 함께 있었다면…….

미래가 바뀌지 않았을까.

그렇기에 그는 가장 먼저 얻어야 할 동료였다.

“이번엔 함께 살아남자.”

여전히 어리둥절한 명훈을 뒤로 한 채 남궁은 고개를 돌렸다.

차 안에 잠들어 있는 소민은 이런 소란스러운 상황에서도 불구하고 마치 기절한 듯 잠들어 있었다.

“당신들은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딸이 무사한 것을 확인한 남궁은 한 곳을 바라봤다. 그가 이곳에 와야 했던 또 다른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는 전생에 당신들께 도움을 받았습니다.”

명훈은 아무도 없는 곳을 향해 말하는 그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봤다.

“염치없는 말이지만 다시 한번 저를 도와주실 수 없으시겠습니까.”

하지만 보이지 않는 그와 달리 남궁의 눈에 보이는 것이 있었다.

사령술은 죽음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잠들어 있는 당신들을 이용한다면 이용하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저는 힘이 필요합니다.”

요르의 경고처럼 그런 자신이 자신의 딸을 구하기 위해 이 힘을 쓰는 순간, 분명 언젠가 타인의 목숨의 무게를 두고 고뇌할 때가 분명 올 것이다.

“언젠가 위선자의 기로에 놓일 지언정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발버둥을 모두 칠 겁니다.”

어쩌면 그것이 위상들이 바라는 일이지 모른다.

그들은 인간의 고난을 보고 낄낄 대며 즐거워할 자들이니까.

그러나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놈들의 기대대로 흘러가게 두지 않도록.”

그것이 남궁이 문이 열리는 순간 이곳을 찾은 이유이기도 했다.

“누구보다 이 땅에서 강한 힘을 가진 당신들의 힘 말입니다.”

수많은 비석들이 빼곡하게 세워진 무덤.

“호국영령(護國英靈)들이여.”

그들의 이름이 빛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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