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솨아아아악---!!!
▶ 영혼 감지 Lv2이 발동됩니다.
▶ 주위 우호적 영혼들이 당신에게 동조합니다.
▶ 영혼의 눈 Lv2이 발동됩니다.
남궁은 천천히 감았던 눈을 떴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의 앞에는 마치 불꽃처럼 피어오르는 강렬한 수백의 영혼들이 일렁였다.
‘이거라면…… 할 수 있다.’
기껏해야 수십, 아니, 수 명만이라도 자신의 말에 깨어나 준다면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움켜잡았다.
▶ 영혼 사역 Lv2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 사역 가능한 영혼의 수가 능력치를 초과하였습니다.
▶ 사역 가능한 사령의 수 0/3
사자(死者)를 조종한다는 맥락에서 일곱 뱀의 계시자는 두 번째 지옥문이 열렸을 때 얻을 수 있는 직업 중 하나인 네크로맨서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시체를 조종한다면 일곱 뱀의 계시자는 오로지 영혼만을 조종한다.
그것이 무슨 차이냐 할 수도 있겠지만 계시자의 스킬을 본다면 그 차이는 명백하다 못해 엄청났다.
▶ 주위의 영혼이 당신과 함께 하고자 합니다.
▶ 사역하지 못한 영혼을 흡수할 수 있습니다.
▶ 영혼 흡수 Lv2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 우호적 영혼의 경우 당신에게 더 큰 효과를 일으킵니다.
바로 이것이었다.
스켈레톤과 좀비와 같은 시체만을 조종하는 네크로맨서들은 막대한 양의 시체를 이용해서 군단을 형성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능력을 강화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남궁은 달랐다.
▶ 현충원의 영령들이 당신에게 스며듭니다.
솨아아악---!!!!
무덤에서 솟구치는 파도와 같은 영혼들이 그의 몸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 흡수되었다.
“후읍…….”
남궁은 밀려오는 수많은 감정에 자신도 모르게 헛구역질이 나오는 것은 간신히 참았다.
그들의 영혼은 그야말로 전쟁 그 자체였다.
지옥문이 열리고 25년 동안 수많은 전투 속에서 살아남은 그였지만, 영혼 속 기억들이 파도처럼 그의 가슴을 때렸다.
“……싸우자.”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그의 앞에 흐릿했던 영혼의 형상이 서서히 진하고 명확하게 나타났다.
세 명의 영혼이 입고 있는 군복의 모습은 제각각 달랐다. 다른 시대를 살았던 자들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 마치 시간이 연결된 것처럼 함께 서 있었다.
▶ 영혼 사역을 완료하였습니다. (3/3)
촤르르륵……!!
검은 연기가 영령을 감싸더니 서로 달랐던 그들의 얼굴에 회색의 가면이 씌워졌고, 각각의 군복 대신 전신을 두르는 칠흑의 갑옷이 나타났다.
‘모습이 다르다?’
남궁은 전생에 기억을 떠올렸다.
그 당시 그가 사령술로 부렸던 영혼들은 생전의 모습 그대로였었다.
하지만 지금은 같은 옷을 입고 한쪽 팔을 가슴에 세우고서 예를 표하는 모습이 마치 주군을 따르는 기사를 연상케 했다.
콰아아앙---!!
순간 세 명의 영혼 병사들이 일제히 사방으로 흩어졌다. 동시에 주위에 날뛰던 고블린들을 쥐고 있던 검으로 단박에 베어 버렸다.
‘아니. 모습만 다른 게 아니다.’
남궁은 단 일격만으로도 지금 자신이 사용하는 힘이 전생에 최휘수로부터 익혔던 사령술과는 비교 할 수 없는 것임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영혼 병사들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모두 그의 의지와 연결된 것 같은 기분.
콰강--!
촤르르륵--!!
마치 세계가 분할된 것처럼 병사들이 보는 시간이 그에게 연결 되었고, 그 어떤 행동도 없이 생각만으로도 병사들은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그건 전생에도 느껴 보지 못한 동질감이었다.
서걱-
하지만 여유롭게 영혼 병사들에게 감탄을 할 때가 아니었다. 남궁은 허리에 차고 있던 전대에서 참수검을 뽑아 그대로 자신에게 달려드는 고블린을 갈랐다.
▶ 고블린을 사냥하였습니다.
▶ 당신은 자격을 얻었습니다.
▶ 자정까지 살아남으십시오.
▶ 자정이 되었을 때 지정된 대리자 일족이 당신을 찾아갈 것입니다.
그 순간 남궁의 앞에 알림이 떠올랐다.
이미 영혼 병사들이 고블린을 사냥했지만, 그들의 도움을 받는 것은 적용이 되지 않는 듯 보였다 .
‘자정이라…….’
손목시계를 바라봤다.
남은 시간은 대략 9시간 정도.
“서둘러야겠군.”
그는 이제 대전에 온 마지막 계획을 실행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거 받아.”
남궁은 들고 있던 검을 명훈에게 던졌다.
“……!!!!”
명훈은 장검을 받아 들고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혀, 형님! 이런 걸 가져오시면 어떡합니까?!”
“지금 상황에 어울리는 말은 아니지? 일단 네 몸을 지키는 게 중요하니까. 절대로 검을 놓지 마라.”
콰아아아앙……!!
“꺄아악!!”
“살려줘……!!”
명훈은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굉음과 사람들의 비명 소리에 참수검을 움켜잡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설명보다는 지금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이다.
“명심해라. 마음이 흐트러지면 검에 잡아먹힌다. 지금 시기의 네게는 버거운 무기야.”
남궁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명훈이 쥐고 있는 참수검의 손잡이에서 붉은 기운이 스물스물 그의 팔을 감싸기 시작했다.
“……큭?”
바늘로 찌르는 듯한 따끔거리는 기분에 명훈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키에에엑!!]
“……!!!”
하지만 그것도 잠시 명훈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고블린을 향해 본능적으로 검을 그었다.
스캉……!!
세로로 그어진 검은 깨끗하게 고블린을 반으로 갈라 버렸다.
철푸덕-!!!
고블린의 살점이 바닥에 떨어지자 명훈은 자신이 해낸 일에 스스로 놀란 듯 손을 바라봤다.
“여전하네. 그만하면 광전사가 되진 않겠어. 선생님께서 계셨으면 좋아했을지도.”
“……됐거든요. 검 놓은 지 오랩니다. 그래도 군에 몸을 담았던 사람입니다.”
한때 검도 유망주였던 명훈은 남궁의 농담에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형님. 앞에 뭐가 막 뜨는데…….”
“첫 사냥 업적일 거다. 너도 이제 지옥에 발을 들여놓은 거지.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남궁의 눈엔 보이지 않지만 명훈이 가리키는 손가락 모양만으로도 그는 대충 예상할 수 있었다.
“……시작이요? 끔찍한 소리를 하시네요.”
“그래. 나도 네게 그렇게 얘기했었지.”
“네?”
“아무것도 아냐. 나중에 설명을 해줄 테니 일단 여길 정리하자. 아직 고블린들이 많아.”
“좋습니다. 사람들을 구하자는 말씀이군요?”
명훈은 이런 위기 속에서도 눈을 반짝이며 남궁에게 물었다.
“그래.”
그리고 남궁은 그의 물음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하지만 명훈의 생각처럼 마물을 정리하려는 것이 단순한 이타심 때문만이 아니었다.
남궁이 노리는 것은 그로 인한 혜택이었으니까.
‘……지옥문이 열리고 첫 사냥이 중요하다.’
그것은 일종의 관문이었기 때문이다.
고작 고블린에 불과하다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사실 놈들은 지옥문이 열리고 가장 많은 살상을 저지른 마물이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고블린의 습격은 무기도 없이 준비되지 않은 맨손의 사람들을 가차 없이 유린했다.
아무리 작은 마물이라도 놈들을 아무렇지 않게 죽일 수 있는 사람은 현실적으로 그리 많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첫 고블린 웨이브 이후 살아남은 자들만이 위상의 관심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살아남기만 한다고 관심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흥미를 끌어야 했다.
어떠한 방법이라도 상관없었다.
그들은 선악(善惡)의 구분보다 자신들의 호기심을 자극시키는 것을 더 가치 있게 여겼으니까.
이미 선택받은 계시자들 이외에도, 지옥문이 열린 뒤 눈에 띄는 자들이 있다면 위상은 이따금 자신의 힘을 일부 빌려주기도 했다.
‘이제 막 지옥문이 열린 상황에서 위상의 관심을 받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누구보다 많은 마물을 잡는 것.’
무난하지만 확실한 방법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봐야 8명의 위상 중에 단 한 명, 해와 달의 관망자만이 관심을 가질 뿐이지만.’
위상들 중 유일하게 인간에게 관대한 성향을 가진 위상인 해와 달의 관망자는 가장 많은 인간에게 자신의 가호를 나눠준 위상이기도 했다.
‘아마도 지금 얻게 되는 가호는 신체 능력 강화일 가능성이 높다. 초반 선택지로 따지자면 나쁘지 않지만…….’
계시자가 아닌 이상 해와 달의 관망자가 선사하는 가호의 위력은 사실 후반으로 갈수록 애매했다.
첫 지옥문이 열린 뒤 1년.
그 시간을 버티고 나면 그 이후부터는 신체 능력을 올릴 수 있는 보구와 식재료들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관망자의 가호는 힘을 잃는다.
‘물론 그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느냐가 문제겠지.’
1년 뒤, 생존자는 1번째 지옥문이 열린 지금의 고작 3분의 1밖에 남지 않았으니 말이다.
약한 것이 죽는 것보다 낫다.
그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이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관망자의 가호는 충분히 메리트가 있는 것이었지만, 더 높은 영역에 가기 위해서는 모험을 해야 한다.’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것도 분명 존재하는 법이니까.
그것은 분명 남궁에게도 위험한 일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고블린 따위에게 질 만큼 그의 경험은 얕지 않았다.
‘1번째 단추를 어떻게 꿰느냐에 따라서 미래의 향방은 완전히 갈린다. 관망자 이외에 나머지 위상들이 관심을 갖게 하려면…….’
단순히 고블린을 사냥하는 것 이상의 업적을 얻어야 했다.
“가자.”
남궁의 말에 명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대피하세요!!”
명훈은 검을 든 채 호기롭게 소리치며 고블린과 맞서 사람들을 돕기 시작했다.
‘내가 없어도 너는 많은 사람들을 이끌었던 클랜의 리더가 될 거다.’
콰가가강……!
콰가강……!
‘내 힘은 결코 빛이 될 수 없다.’
그의 생각을 읽은 듯 영혼 병사들이 고블린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그러니 사람들을 이끄는 자리는 네게 맡기마.’
남궁은 고블린에게서 떨어진 박도를 쥐고 있는 힘껏 내리쳤다.
‘대신 나는 어둠 속에 군림하겠다.’
퍽……!!!
영혼을 흡수했기 때문일까.
날이 무딘 박도임에도 불구하고 고블린의 머리가 그대로 산산 조각 났다.
‘지금쯤이면 나타날 때가 됐는데…….’
남궁은 서서히 줄어가는 고블린의 수를 보며 주위를 훑었다.
그가 지옥문이 열리는 대혼란 속에서 대전까지 내려온 이유는 명훈을 동료로 삼는 것과 영혼을 얻기 위함 이외에 또 하나가 있었다.
“흐아아압!!!”
명훈이 어느새 익숙해진 듯 고블린의 공격을 피하며 제법 유연하게 놈들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콰직-!!!
지친 숨을 토해내며 그가 눈에 보이는 마지막 고블린의 목을 베어냈을 때였다.
“……어?”
그의 표정이 살짝 놀란 얼굴이 되었다.
‘떴다.’
그 순간, 남궁은 기다린 순간이라는 것을 알았다.
“형님, 이게 뭐예요? 형님도 보이세요?”
“뭔데?”
“고블린 로드를 잡아라? 라고 뜨는데요?”
“……월드 보스.”
모든 지옥문이 열릴 때마다 존재 하는 것.
이것이 대전에 온 마지막 이유였다.
‘고블린 로드는 1번째 지옥문의 보스였지만 사냥될 때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그 이유는 로드를 사냥하기 전에 두 번째 지옥문이 열렸기 때문이었다.
이후 마물의 수는 급격하게 늘어났고, 팔무성을 비롯하여 두각을 나타내던 자들도 쉽게 로드를 죽이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게 1년.
로드가 존재하는 동안 고블린의 수는 점점 증가했고, 결국 놈들은 가장 많은 살상자를 낸 마물이 되었다.
팔무성의 계시자 중 한 명인 최휘수가 대한민국에 존재했지만, 그는 고블린 로드를 사냥하는 데 실패했다.
아쉽게도 그가 있던 곳은 서울이었고, 고블린 웨이브 이후 간신히 대전에 도착했을 때 이미 로드는 자신의 성채를 쌓아 올린 이후였으니까.
‘성채를 상대로 싸우게 되면 절대로 불리하다. 놈이 방벽을 올리기 전에 먼저 이쪽에서 친다.’
어째서 월드 보스가 대한민국에 가장 먼저 나타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애초에 지옥문이 열리고 생성되는 월드 보스의 위치는 마치 랜덤처럼 특별한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전생과 같다면 나는 놈들의 리스폰 지역을 미리 알 수 있을 것이다.’
월드 보스의 선점(先占).
그것을 위한 첫발을 지금 내딛는 순간이었다.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