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화 (8/270)

8화

▶ 잔여 헤드 : 20,020헤드

‘20 정도 오른 건가.’

자신이 죽인 고블린의 수가 다섯인 것을 떠올리며 헤드의 잔량을 비교했다.

‘나머지는 영혼 병사들이 잡은 것이겠지. 업적 같은 것은 대신 한다고 적용되는 건 아니라도, 사냥한 헤드는 적립되는 모양이군.’

사실 생명의 안전을 지키면서 헤드를 수집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이득이 아닐 수 없었다.

“형님!! 저길 보세요!!”

그때였다.

쿵-! 쿵-! 쿠웅--!!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지면이 흔들리는 진동과 함께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현충문을 통과해 중앙에 세워진 위패 봉안관이 있는 탑 주위에, 고블린이라고 하기엔 거대한 마물들이 먹잇감을 찾는 듯 두리번거리며 배회하고 있었다.

“고블린 워리어…….”

크기는 거의 성인 남성의 1.5배나 될 정도.

2번째 지옥문에서 나올 오크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덩치였다.

“설마 저걸 잡아야 하는 건 아니겠죠?”

명훈은 광장 주위를 돌아다니는 3마리의 워리어들을 바라보며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걸 잡는 건 아냐.”

“그, 그렇죠?”

“저것도 잡아야 하는 거지.”

“…….”

남궁의 말에 명훈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 뒤에 있는 놈 보여?”

“로브를 입고 있는 고블린이요?”

“그래. 놈이 고블린 로드야.”

“저 작은 녀석이요?”

워리어에 비한다면 보잘것없는 크기였다.

아니, 오히려 지금까지 상대한 평범한 고블린보다도 더 작아 보였기에 명훈은 조금 긴장감이 풀어지는 듯 보였다.

“놈은 마법을 쓴다. 쉬운 상대가 아니야. 몇 배가 더 큰 워리어들이 따르는 데는 이유가 있겠지.”

“하긴…… 이제 어쩌죠? 저 덩치들을 모두 상대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할 것 같은데…….”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저기 있는 워리어들은 조금 있으면 흩어질 거야.”

“흩어져요?”

“응. 놈들이 이곳에 성채를 지을 거거든. 재료를 가지러 갈 거야.”

“성채라니…….”

“여기가 고블린들의 거점이라 할 수 있지. 성채라고는 하지만 일종의 탑과 같아. 고블린들이 로드에게 공물을 바치기 위해 만들어진 탑이지.”

“하, 별짓을 다 하네요. 성채를 지어서 보물이라도 쌓아두는 걸까요?”

“보물도 있지. 시체도 있고.”

꽈악-

명훈은 검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을 주었다.

“현충탑에 그딴 짓을 하다니…… 빌어먹을 놈들.”

“이미 이곳에 온 사람들의 절반은 놈들에게 죽었을걸. 살아 있는 자들도 죽이는데 이미 죽은 자들이야 놈들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겠지.”

남궁은 명훈의 심기를 거스르는 이야기를 계속 했다.

“절대로 가만 두지 않겠습니다.”

그가 자신과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의감(正義感).

그것이 그의 투쟁심을 불태우는 원동력이었으니까.

‘그래. 그렇게 하면 된다. 너는 검성(劍星)이라 불렸던 팔무성의 알렉 트라만조차 인정했던 자니까.’

별해검의 주인이자 해와 달의 관망자의 계시자.

그는 팔무성의 최강자이며 세계의 구원자라 가장 많이 칭송받았던 자였다.

그런 그가 열다섯 번째 지옥문이 열렸을 때 처음으로 지원을 요청 한 곳이 바로 명훈이 이끌던 무장수호였다.

‘알렉 트라만은 명훈이를 자신의 제자로 두려 했었지.’

물론 거절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최명훈의 재능을 충분히 가늠할 수 있는 일이었다.

“성채를 쌓기 시작하면 워리어들은 자재를 옮기기 위해 주위의 건물들을 부수기 시작할 거야.”

남궁은 가운데 서 있는 고블린 워리어를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는 저 한 놈을 빠르게 처리하고 최단거리로 고블린 로드를 잡는다. 전력을 생각해도 우리가 열세인 것은 맞아. 속전속결이 중요해.”

“알겠습니다.”

“만에 하나 나머지 두 워리어가 온다 해도 너는 신경 쓰지 말고 로드를 잡는 데만 집중해. 나머지는 내가 막으마.”

스으으으으…….

그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는 듯 뒤에 서 있던 영혼 병사들이 묵례를 하는 것처럼 고개를 숙였다.

“이런 상황에서 할 말은 아니지만 아무리 봐도 신기하네요.”

명훈은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병사들을 슬쩍 보면서 말했다.

“앞으로 놀랄 일은 수두룩할 거다.”

“……그럴 것 같습니다.”

“준비해.”

“이거…… 대위님하고 같이 파병 갔을 때가 생각나네요. 전장이 싫어서 포기했는데…… 차라리 그때가 나았네요. 저런 괴물과 싸워야 하다니.”

명훈은 쓴웃음을 지었다.

“소민이는 괜찮을까요?”

그는 남궁의 등에 업혀 있는 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처음에는 잠이 깊은 건가 싶었지만 이런 소동에도 잠에서 깨지 않는 걸로 봐서 아무래도 남궁이 손을 쓴 모양이었다.

“괜찮아.”

남궁은 업고 있던 딸을 벽에 기대어 내려놓고는 말했다. 세 명의 영혼 병사 중 하나가 그녀의 옆에 경계를 하듯 섰다.

“주의를 주긴 했지만…… 자칫 패닉에 빠져 사고가 생기는 것 보단 이게 안전해. 천천히 적응해 가는 게 나아.”

“알겠습니다.”

“가자.”

광장을 통하는 문에 몸을 숨기고 있던 두 사람은 워리어들이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지자 일제히 질주하기 시작했다.

파앗--!!

고블린 사냥의 성과인 걸까.

달리는 남궁의 뒤를 명훈은 생각보다 잘 따라왔다.

휘익!! 부우우웅……!!

남궁이 들고 있던 박도를 있는 힘껏 던졌다.

[크륵?]

퍼억-!!

날아가던 박도가 순식간에 워리어의 허벅지에 박혔다.

[……칵!!!]

“크아아압!!!”

갑작스러운 공격에 워리어가 휘청하는 순간, 남궁의 뒤에 있던 명훈이 튀어나와 참수검을 들어 횡으로 그었다.

캉!!

단박에 허리를 양단해 버릴 생각이었지만, 명훈의 검은 비틀거리던 워리어가 들고 있던 태도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칫…….”

있는 힘껏 검을 밀어붙였지만 두꺼운 태도까지 자르기엔 부족했다.

[캭! 캬갹!!]

명훈의 검을 막은 워리어가 괴상한 포효를 질렀다.

[ωϪφχ!!! φγ……!!]

동시에 놈의 뒤에 서 있던 고블린 로드가 알 수 없는 언어로 외치자 뿔뿔이 흩어졌던 워리어들이 다시금 모이기 시작했다.

“막아.”

남궁의 명령에 영혼 병사들이 양쪽으로 흩어지며 남은 워리어를 상대했다.

아직 명훈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고블린 워리어의 뒤로 돌아간 그는 허리에 차고 있던 전대에 손을 집어넣었다.

스르르릉……!

마치 검을 뽑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그가 꺼낸 건 검고 곧은 바늘 같은 기다란 송곳.

줄어든 2,000헤드의 행방이 바로 이것이었다.

대전으로 출발하기 전에 남궁은 구류에게서 이것을 샀다.

넘버링 없음.

이름 : 붉은 호넷의 독침

등급 : 노멀

▶ 진홍 사막에 사는 호넷의 독침입니다.

▶ 미약한 마비 효과가 있습니다.

고블린 워리어의 어깨를 잡아 뛰어오른 그는 목말을 타는 것처럼 위로 올라 있는 힘껏 마물의 쇄골에 송곳을 찔러 넣었다.

푸욱……!!

[크륵?]

일순간 워리어의 몸이 굳어졌다.

파악……!!

그 틈을 놓지 않고 명훈이 있는 힘껏 워리어를 밀어붙였다.

[캬아아악……!!]

휘청거리며 뒤로 쓰러지려던 놈이 포효를 지르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력으로 마비를 푼 듯 워리어의 근육이 터질 듯 부풀어 오르더니 밀어붙이던 명훈의 검을 그대로 올려 쳤다.

“……컥!!!”

밑에서 위로 쳐올리는 태도의 힘에 명훈의 몸이 부웅 떠올랐다.

하지만 그 순간, 어깨 위에 있던 남궁이 허리를 감듯 미끄러지며 다시 한번 허리춤에서 독침을 뽑았다.

푹-!! 푹! 푹!!!

나선으로 워리어의 몸을 타고 내려가며 쇄골 다음 갈비뼈, 그리고 허벅지와 장딴지에 하나씩 독침을 찔렀다.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연격(聯擊).

고블린 워리어 하나 잡는 데 500헤드짜리 독침을 4개나 쓴다는 건 타산이 맞지 않는 일이었지만, 그만큼 확실하게 놈을 죽여야 할 이유가 있었다.

[커…… 커컥!!]

그제야 워리어는 거친 숨을 터뜨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흐아아압!!!”

명훈이 있는 힘껏 검을 그었다.

콰직-!!

뼈가 갈리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워리어의 목이 그대로 잘려 나갔다.

“하아, 하아…… 엄청 단단한 놈이네요.”

목을 내리친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진 듯 검을 잡은 그의 팔이 떨렸다.

“조심해!”

하지만 마물을 잡은 기쁨도 잠시, 남궁이 명훈의 어깨를 잡아당겼다.

쾅! 콰강!! 콰가가강……!!

그 순간, 비도 내리지 않는 하늘에서 낙뢰가 떨어지며 조금 전 명훈이 있었던 자리를 강타했다.

“……!!!”

명훈은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르는 바닥을 바라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 진짜 마법이네?”

상공에 나타난 차원문과 쏟아지는 마물이 이미 넘치게 이(異)현상을 증명해 주는 것이었지만, 그것과 별개로 마법은 새로운 충격을 주었다.

“마법을 쓴다고 했잖아.”

“그야 그렇지만…….”

전생에 지겹도록 겪었던 남궁에겐 특별한 일이 아니었지만, 명훈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고블린 로드를 바라봤다.

“저도 배울 수 있을까요?”

“궁금하면 일단 놈부터 잡자.”

남궁이 손가락 2개를 세운 뒤에 제스처를 취했다.

과거 그들이 작전을 수행할 때 사용했던 암호.

타다다닥……!!

명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고블린 로드의 사선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영혼 병사들이 고블린 워리어를 잘 잡고 있긴 하지만 아직 성장폭이 낮아서 제압하기는 어려울 거야.’

시간은 그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했다.

[캬륵……!!!]

고블린 로드가 들고 있던 지팡이를 위로 들어 올렸다.

“훕……!!”

그 순간 남궁이 쓰러져 있는 고블린 워리어의 태도를 잡아 있는 힘껏 위로 던졌다.

파직……!

콰가가가강……!!!

두 사람에게 떨어지던 로드의 낙뢰가 방향을 틀어 태도를 때렸다.

창그랑-!!!

시커멓게 그을린 채 바닥에 떨어지는 태도가 마치 신호가 된 것처럼, 명훈이 방향을 꺾으며 로드를 향해 뛰어들었다.

“흐아압!!”

그의 참수검이 공기를 갈랐다.

[캭! 캬그칵!!]

자신의 머리를 향해 내려오는 검을 보며 고블린 로드가 괴상한 소리를 냈다.

투웅--!!

그러자 명훈의 검이 로드의 머리 위에서 뭔가에 막혀 튕겨 나갔다.

“……컥!!”

갑작스러운 반동에 검이 머리 위로 날아갔고 명훈의 허리가 꺾였다.

[키릭! 키리릭!!]

그 순간, 로드는 명훈을 비웃듯 어깨를 들썩였다.

“뭐, 뭐야?”

검을 떨어뜨린 채 몇 미터 뒤로 밀려난 명훈은 로드를 바라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로드를 감싸고 있는 반구(半球) 형태의 방벽이 번뜩였다.

실드(Shield)였다.

어딘가 모르게 표면이 거칠어 보였고 완벽한 원형이라기보다는 여기저기 찌그러진 듯 어설픈 모습.

등급으로 따지면 2번째인 매직 등급의 실드 마법에 불과했지만 1번째 지옥문이 열린 지금 그것을 깰 수 있는 것은 전무하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강력한 방어막이었다.

“……저걸 어떻게 깨죠?”

명훈은 얼얼한 손목을 돌리며 바닥에 떨어진 검을 잡았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야. 실드의 능력을 상회하는 힘으로 부수면 돼.”

“……저걸 뛰어넘는 힘이 있을까요?”

혼신의 힘을 다해 내리친 공격에도 금은커녕 상처 하나 낼 수 없었다.

그의 머리로는 솔직히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있지. 지금 네가 들고 있잖아.”

남궁이 그에게 말했다.

“……이거요?”

명훈은 그가 가리킨 검을 들어 보이며 의아한 눈빛으로 되물었다.

확실히 엄청난 위력의 검이었지만 다시 벤다 하더라도 조금 전 일격보다 더 강력할 수 있을까 싶었다.

“네 힘으로는 아직 부족하지. 직업을 얻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가호나 특전을 받은 것도 아니니까.”

“그럼…….”

“검 자체에게 맡기는 거다.”

“그게 무슨…….”

명훈은 그의 말이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저주받은 물건엔 영혼이 맺혀 있는 법이거든.”

남궁이 등에 손을 얹었다.

“절대로 검을 놓지 마.”

그 순간, 검날에 짙게 묻어 있는 검붉은 핏물들이 선홍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 영혼의 눈 Lv2이 발동됩니다.

“……헉!!”

명훈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시야가 역전되면서 칠흑과도 같은 암흑이 그의 전신을 휘감았고, 쥐고 있던 검의 핏물만이 더욱 선명하게 시야에 새기듯 보였다.

[크으으으으…….]

검날에 깃들어 있는 영혼이 그의 눈에 보였다.

▶ 검에 서린 사형집행인의 영혼과 교감합니다.

▶ 사형집행자의 영혼이 피를 갈망합니다.

솨아아악……!!!

그러자 강렬한 돌풍과 함께 영혼이 명훈의 몸 안으로 파고들었다.

“크아악!!!!”

명훈은 마치 쇳물을 들이부은 것같이 전신의 혈관을 파고드는 뜨거운 열기에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콰아아아아앙---!!!!

탄환처럼 튀어나간 명훈이 고블린 로드의 실드를 향해 검을 그었다.

[케륵?!]

요란한 폭음과 동시에 실드가 산산조각 나며, 멱을 따는 소리와 함께 로드의 육신이 바닥을 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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