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카륵……!! 케케켁!!!]
고블린 로드의 비명 소리가 현충원 광장을 울렸다. 놈을 보호하고 있던 실드가 산산조각이 남과 동시에 명훈의 검이 놈의 목덜미에 박혔다.
카득……! 카드득……!
검날에 뼈가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레어 등급의 무구에 잠들어 있는 사령인데도 한 방에 죽이지 못한 건가? 과연…… 1번째 지옥문이라고 해도 월드 보스는 이름값을 하는군.’
남궁은 검을 밀어 넣는 명훈을 보며 말했다.
무구의 등급처럼 마물 역시 등급이 존재했는데, 고블린의 경우 최하급인 일반 등급의 마물이었다.
사실 현시점에서 가장 강력한 마물인 고블린 로드 역시 일반보다 한 단계 위인 매직 등급의 마물.
그가 살았던 25년의 기간을 두고 본다면 고블린 로드는 강력한 마물은 아니었다.
하지만 수많은 무구와 도구를 두르고 있는 그 시점과 달리, 지금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상황.
‘어쩌면 사냥만을 놓고 본다면 내가 마족의 목을 모두 잘라냈던 그때보다 지금이 더 극한의 상황일지도 모르지.’
팔무성을 제외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스킬을 얻은 것도 아니고 무구를 가진 것도 아니었다.
그야말로 맨몸으로 마물을 상대하는 것이었으니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이 아닐 수 없었다.
[캬륵! 캬가가각!!]
고블린 로드가 들고 있던 스태프로 자신의 목에 박힌 검을 밀어 내려 안간힘을 쓰며 비명을 질렀다.
화르륵……!!
그러자 녀석의 등 뒤에서 붉은 화염구들이 나타났다.
“……할 수 없군.”
남궁은 그 모습을 보고는 입맛을 다시며 전대에 손을 집어넣었다.
슈욱-!!!
그의 팔이 호를 그리며 움직이자 번쩍거리는 뭔가가 공기를 가르며 날아갔다.
퍼억!! 치이이익……!!!!
그 순간, 명훈과 대치하고 있던 고블린 로드의 이마에 남궁이 던진 그것이 박혔다.
은색 날을 가진 투척검이었다.
넘버링 없음
이름 : 악마사냥꾼의 은날검
등급 : 매직(최고)
▶ 날이 잘 벼려진 투척검입니다.
▶ 내구도가 약해 한 번 사용하면 부서집니다.
▶ 부서질 때 치명적 효과를 냅니다.
▶ 가격 : 1,000헤드
카강……!!
고블린의 머리에 검이 박히는 순간 유리가 깨지는 것처럼 투척검이 산산조각 나며 파편들이 튀었다.
[캭!!!]
파편들이 놈의 얼굴에 박히자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시전되던 화염들이 흐트러졌다.
“지금!!!”
“흐아아아……!!”
남궁의 외침에 명훈이 있는 힘껏 고블린 로드의 목에 박힌 참수검을 밀어 넣었다.
우드드득-!! 쩌적……!!!
목뼈를 통과한 검이 그대로 바닥을 찍는 순간, 눈을 부릅뜬 채 잘려 나간 로드의 목이 쿵! 하고 떨어졌다.
“하아, 하아…….”
명훈이 부들거리는 팔로 검을 지탱한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쿠그그그그그…….
그 순간, 놀랍게도 상공에 떠 있던 지옥문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고블린 로드의 소환체인 듯, 나머지 고블린 워리어들은 로드가 죽자 연기처럼 사라졌다.
“……성공이다.”
▶ 고블린 로드를 처치하였습니다!
▶ 반경 150m 내에 있는 모든 참가자에게 보상(기본)이 수여됩니다.
▶ 반경 50m 내에 있는 모든 참가자에게 보상(참가)이 수여됩니다.
▶ 단, 직접적인 영향력을 끼친 참가자의 경우 거리와 상관없이 보상(참여)가 수여됩니다.
▶ 마물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한 참가자에게 보상(성공)이 수여됩니다.
▶ 고블린 로드의 전리품(1개)가 수여됩니다. 전리품은 보상 습득자 중 1명이 습득할 수 있습니다.
고블린 로드의 목이 바닥에 떨어진 찰나, 새하얀 빛과 함께 남궁의 눈에 빼곡하게 차오르는 알림들이 보였다.
월드 보스를 잡았을 때만 나오는 성공 알림이었다.
다른 일반적인 마물과 달리, 강력한 월드 보스는 혼자서 잡는 것이 사실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서 일종의 공격대라 불리는 파티 사냥으로 월드 보스를 사냥하는 것이 정석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월드 보스의 보상은 이렇게 거리를 기준으로 나뉘게 된다.
혹자는 이 조건이 끔찍한 상황 속에서 나름의 배려가 아닌가 할지 모른다.
월드 보스는 그야말로 그 스테이지에서 가장 강력한 마물이었다.
한순간의 실수로도 목숨이 날아 갈 수 있는 상황.
그 와중에 꼭 사냥에 참가하지 않아도 거리 조건 안에만 들어 있다면 최소 기본 보상을 얻을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건 위상들의 얄팍한 속임수에 불과하지.’
반경 100m라는 거리는 처음에는 제법 안전하다는 느낌을 주지만, 사실 몇 개의 지옥문이 더 열리고 나면 그 거리는 절대로 안전한 거리가 아니었다.
보스가 사용하는 스킬 한 번에 반경 수백 미터의 영역이 폭사당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했다.
‘오히려 사냥에 참가하는 것보다 기본 보상을 얻으려 욕심을 부리다가 죽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야말로 더 많은 사람들을 죽이기 위한 미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일이었다.
“열어볼까요?”
명훈은 자신의 앞에 나타난 보상 상자를 신기한 듯 바라보며 남궁에게 물었다.
“안에 뭐가 들었을까요? 막 이상한 게 들어 있진 않겠죠?”
“아마…… 그러진 않을 거다.”
남궁의 대답에 명훈은 조금은 기대하는 눈치였다.
“…….”
사실 그 역시 고블린 로드의 보상이 뭔지 궁금하긴 마찬가지였다.
초창기 월드 보스들은 대부분 팔무성이 사냥했었기에, 평범한 사람들은 구경조차 하지 못해 정보가 거의 전무했기 때문이다.
“네. 알겠습니다.”
명훈의 앞에는 각각 1개의 나무 상자, 철 상자, 은 상자가 있었다.
최후의 일격을 가한 명훈과 달리 남궁에게는 나무와 철 상자는 있었지만 은 상자는 없었다.
“그럼 이게 고블린 로드의 전리 상자인가 보군. 일단 이거 두 개부터 열어볼까?”
“네. 알겠습니다.”
▶ 고블린 로드의 장식품(노멀)을 획득하였습니다.
▶ 대리자 일족에게서 헤드로 교환할 수 있다.
▶ 보상 습득자 간의 거래 가능.
▶ 1,000헤드
▶ 고블린 로드의 애장품(노멀)을 획득하였습니다.
▶ 대리자 일족에게서 헤드로 교환할 수 있다.
▶ 보상 습득자 간의 거래 가능.
▶ 10,000헤드
기본과 참여 상자에서 나온 것은 특별한 무구는 아니었다.
‘그래도 1만 헤드라니. 월드 보스라서 그런지 1번째인 걸 감안하면 엄청난 금액이로군.’
로드를 사냥하기 위해서 규류에게서 산 재료비를 충당하고도 남았다.
게다가 거래 가능이라는 것은 꽤나 유용한 기능이지만, 사실 이 역시 사냥이 끝난 뒤에도 남의 것까지 빼앗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그래서 어떤 클랜은 일부러 약자들을 보상 범위에 줄 세워놓기도 있었지.’
그렇게 해서 기본 얻은 보상들을 강탈하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짓이라 하겠지만 안타깝게도 이제 곧 세상을 뒤덮을 아포칼립스에서 도덕과 양심은 가장 먼저 사라질 감정이었다.
‘나 역시…….’
사자(死者)를 다루는 그는 결국 타인의 목숨을 이용하는 사람이다.
딸을 잃었던 전생에서는 오히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딸을 지키기 위해 돌아온 지금, 목숨의 무게를 대하는 자세는 분명 다를 수밖에 없었다.
탈칵-
그 순간 명훈의 상자 여는 소리에 남궁은 상념을 떨쳐냈다.
▶ 고블린 로드의 팔찌(매직)을 획득하였습니다.
▶ 보상 습득자 간의 거래 가능.
넘버링 448090.
이름 : 고블린 로드의 팔찌
등급 : 매직(최고)
▶ 조잡한 팔찌지만 로드의 마법이 담겨 있다.
▶ 5등급 실드 마법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 제한 : 하루 5회
“형님, 팔찌가 나왔습니다.”
은 상자를 열고서 명훈이 낡은 팔찌를 들어 보이며 남궁에게 말했다.
“드릴까요?”
“아냐. 네가 써. 기억나지? 좀 전에 네 공격을 막았던 방벽. 그걸 쓸 수 있는 팔찌야. 좋은 게 나왔는걸. 근접전을 하는 네게 딱 맞겠어.”
남궁은 보상 상자의 아이템이 꽤나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빼앗기기 전에 어서 착용해.”
“에이, 형님. 여기 누가 있다고요.”
명훈은 남궁의 말에 피식 웃었다.
퍽-!!
그때였다.
남궁이 그의 팔을 꺾으며 팔찌를 빼앗았다.
“왜? 내가 빼앗을 수 있지.”
“혀, 형님?!”
“그런 느슨한 생각으로 앞으로 살아갈 수 없다. 이제부터 항상 의심하고 경계해라. 그게 설령 나라도 말이야.”
“……죄송합니다.”
그는 꺾었던 명훈의 팔을 놓아주었다.
“그래야 내 사람을 지킬 수 있다.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널 따를 거다. 쉽지 않겠지만…… 너는 그들의 앞에 서게 될 거야.”
“그런 소리 마세요. 형님이 계신데 제가 어찌…….”
머리를 긁적이는 명훈에게 남궁은 팔찌를 건네주며 말했다.
“그리고 만약에 내가 죽는다 하더라도…… 네가 소민이를 지켜줬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넌 강해져야 하고.”
“형님…….”
남궁은 눈빛에 대답을 담아 명훈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겼다. 그러고는 전투가 끝난 지금도 아직 잠들어 있는 딸을 바라봤다.
‘소민이를 지키기 위해 돌아왔지만…….’
계속해서 이런 식으로 잠들어 있게 할 수는 없었다.
이제 자신의 딸도 이 지옥 같은 세상을 마주해야 할 때라는 걸 알았다.
“…….”
하지만 막상 이 지옥을 어린아이와 함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남궁은 마음이 무거웠다.
‘단순히 지키는 것만으론 한계가 있다.’
남궁은 그것이 자신이 해결해야 할 가장 큰 과제라는 것을 잊지 않았다.
탈칵-
검은색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솨아아악---!!
그 순간, 눈이 부실 듯한 빛이 상자 안에서 쏟아졌다.
▶ 고블린 로드의 심장(레어)을 확인하였습니다.
넘버링 893.
이름 : 고블린 로드의 심장
등급 : 레어(최고)
▶ 고블린 로드의 마력이 담겨 있는 심장.
▶ 섭취 시 마력을 다룰 수 있게 된다.
▶ 마력 보유자의 경우 섭취 시 마력량이 증가한다.
▶ 능력치 : 마력의 경우 자질 조건이 요구됩니다.
“……이게 여기서 나오는 거였군.”
남궁은 상자 안에서 붉은 보옥을 꺼냈다.
심장이라고는 하지만 다행히 생긴 것은 작은 구슬 같아 꺼려지는 모습은 아니었다.
우우웅…….
보옥 안에는 작은 불씨 같은 것이 들어 있었다.
‘마력은 그냥 배우고 싶다고 해서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태생적으로 가지는 자질.
마력을 포함하여 정령친화력과 같은 자연계 술법부터 예지, 염동과 같은 정신계 술법 등등…….
이 세계는 그 자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소위 이능(異能)이라고 불리는 특수한 능력들이 있다.
‘뭐, 자질을 개안해 주는 아이템도 있긴 하지만 태생적 자질이 없는 자가 써봐야 효율이 좋진 않지.’
차라리 명훈의 팔찌처럼 비슷한 효과를 내는 도구를 쓰는 게 나았다.
명훈이 고블린 로드의 마법을 보고 자신도 배울 수 있느냔 물음에 남궁이 쓴웃음을 지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녀석은 검술은 뛰어나도 마력엔 완전히 젬병이니까.’
그리고 그건 자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력을 개안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마력 증가 효과가 있으니까…… 다음 지옥문이 열릴 때 거래소가 생긴다.’
남궁은 지금 상황에서 보옥을 살 사람은 두 명뿐이라고 생각했다.
‘가시덩굴의 미망인이 뽑은 록산느와 사계절의 방랑자의 계시자인 덴 하울.’
록산느는 변환계 마법을 쓰는 드루이드의 능력을 가진 자였고 덴 하울은 말 그대로 마법사의 길을 가는 자였다.
팔무성 중 마력을 다룰 수 있는 자는 그 둘이었다.
‘경쟁을 붙이면 꽤 비싸게 팔 수 있겠지.’
보상이 자신이 쓸 수 있는 무구가 아니라 아쉬웠지만, 충분히 가치가 있는 것이었기에 그는 전대 안으로 그것을 넣으려 했다.
그때였다.
▶ 자질 대상자를 확인하시겠습니까?
▶ 보상 습득자 간의 거래 가능.
‘……추천 대상? 이런 게 있었나?’
남궁은 처음 보는 문구에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긴…… 그동안 나는 혼자서 사냥을 했었으니까.’
당연한 얘기겠지만 그가 사냥을 하던 상황에는 참가자가 본인 한 명 뿐이니 대상자를 찾아낼 일이 있을 리 없었다.
“흐음…… 이상한 일이로군.”
명훈과 자신의 자질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남궁은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지만, 궁금한 마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솨아악--!!
동시에, 마치 주위를 훑듯 빛이 일대를 가득 채웠다 사라졌다.
“……?!”
▶ 적합자 확인.
▶ 마력 인자의 성장 가능성을 확인합니다.
▶ 추천 대상 : 남소민
▶ 마력 성장 가능성 : 전설급(최초)
▶ 대상자 남소민에게 고블린 로드의 심장의 획득권을 양도하시겠습니까?
“……뭐?”
그 순간, 남궁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