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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11/270)

11화

콰즈즈즈즉……!!!

붉은 뇌전이 요르의 몸을 뚫고 바닥에 닿자 사방으로 흩어졌다.

[뇌화(雷火)? 이거 놀라운걸. 고작 열 살짜리 꼬마가 최상급…… 아니, 신화급의 마법을 쓰다니 말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소민의 공격이 위상인 그에게 먹힐 리 없었다.

[귀여운 짓을 하는구나. 꼬마야.]

오히려 요르는 소민의 마법을 보며 기쁜 듯 웃었다.

[마력의 자질이 있는 것도 모자라서 가장 먼저 배운 것이 사상술이라니…… 남궁. 너로 모자라 더 재밌는 녀석이 생겨났구나.]

“……쿨럭!!”

“큭!!”

남궁과 명훈을 집어 던지고서 요르는 마치 먼지를 털어내듯 손으로 옷을 훑었다.

“가까이 오지 마.”

소민은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요르를 막으려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어?”

하지만 그 순간, 핑 하고 찌릿한 두통과 함께 세상이 뒤집히는 듯 어지러웠다. 심한 멀미를 겪는 것처럼 속이 울렁거렸고 머리가 아파 그녀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뇌화는 엄청난 마력을 사용해야 하는 마법이다. 이제 겨우 마력을 얻은 녀석이 그걸 썼으니…… 과부화가 걸릴 수밖에.]

저벅- 저벅- 저벅-

요르는 천천히 쓰러져 있는 소민을 향해 걸어갔다.

“누나…….”

요란한 폭음에 쓰러졌던 아이가 깨어나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소민을 바라봤다.

흠칫-!!

하지만 요르의 시선이 느껴지는 순간 남자아이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주르륵…….

몸을 부르르 떨자 아이의 바지가 축축하게 젖었다.

[흐음, 그래. 이게 정상인데 말이야.]

요르는 바들바들 떠는 아이를 지나 소민의 앞에 섰다.

[당돌한 꼬마는 나를 똑바로 쳐다봤단 말이지. 남궁. 오히려 너보다 네 딸이 더 나의 흥미를 끄는 군. 이참에 계시자를 바꿔봐?]

“닥쳐……!!”

남궁이 명훈이 떨어뜨린 검을 움켜잡은 채 요르를 향해 달려갔다.

[정말로 그걸로 날 치려는 건 아니겠지. 계시자가 자신의 위상을 공격하면 어찌 되는지 알 텐데. 애송이처럼 굴지 말길.]

“내 딸을 건드리면 위상이고 뭐고 없지. 그리고 내가 죽으면 가장 큰 손해는 오히려 너일걸?”

[하여간 약은 녀석…… 네 딸에게 뭘 하려는 건 아니다. 오히려 도와주려는 것이지. 이렇게 흥미로운 소재를 말이야.]

요르가 소민의 이마에 손가락을 얹자 식은땀을 흘리며 거친 숨을 내쉬던 그녀의 안색이 순식간에 평온해졌다.

[네 딸에게 고마워해야 할 거다. 나머지 위상들도 꽤나 이 아이에게 흥미가 생긴 모양이거든. 그들도 어느 정도 만족한 모양이야. 이번 일은 이걸로 넘어가도 되겠지.]

그는 잠이 든 소민에게서 일어나 남궁을 향해 말했다.

[하나 잊지 마라. 이제 위상들이 이 아이를 탐내겠지. 딸을 지키겠다고 했나? 네 말대로 발버둥 쳐봐라.]

요르가 말했다.

[이제 단순히 마물에게서 딸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위상으로부터도 이 아이를 지켜야 할 테니까.]

“발버둥은 내가 치지만 너 역시 팔짱끼고 관망만 할 순 없을 텐데. 네 계시자가 누군지 잊었나?”

[물론. 나는 내 계시자가 승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것이 옳은 방법이든 옳지 않은 방법이든 말이야.]

촤아아악……!!

그 순간 요르의 손에 뭔가가 나타나더니 그것을 남궁에게 던졌다.

[월드 보스를 잡은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사실 고블린 성채가 완성되고 난 뒤 그 안에 생성될 물건인데…… 네 녀석이 성채가 만들어지기도 전에 로드를 죽여서 말이야.]

그건 스크롤이었다.

[위상들이 다음 문이 열릴 때의 보상으로 주자고 했지만 내가 빼앗아 왔지. 이 정도면 계약 신으로서 충분히 노력하는 것 아니냐. 안 그래?]

“이 안에 들어 있는 내용에 따라서 달라지겠지. 독이 될지 득이 될지는.”

[하여간 예쁜 소리 한 번을 안 한다니까.]

요르는 신기했다.

남궁이 회귀자라는 것에서 호기심이 일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위상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사실 안하무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다른 위상들이었다면, 어쩌면 계시자라는 신분을 떠나 그를 벌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게 당연한 일이었다.

‘어째서 내가 녀석을 이리도 봐주고 있는지 나도 이해가 안 되는군.’

8명의 위상들 중 그렇다고 자신이 선(善)에 서 있는 자가 결코 아닌데 말이다.

[묘할 노릇이야.]

요르는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것도 과거의 영향인가?]

“왜 신기해하지? 애초에 그걸 만든 게…….”

[마족의 시공진을 만든 건 우리가 아니니까.]

그 순간 지금까지와는 달리 남궁의 머릿속에 직접 요르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제 그 퀘스트는 없다.]

“……뭐?”

[전설급 퀘스트는 오직 9개. 그중 8개만이 우리가 만들 뿐이다.]

“나머지 하나는 그럼 누가 만드는데?”

그 순간 요르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남궁을 바라봤다.

[그건 모든 문을 통과했을 때 알게 되겠지. 부디 내 계시자가 위상의 영역에 도달하길 바라지.]

요르는 그 말을 끝으로 사라졌다.

“…….”

남궁은 그가 사라진 자리를 말없이 바라봤다.

‘위상과 이렇게 대화를 나눈 건 처음이군.’

25년이란 세월 동안 살아남은 그는 전생에도 몇 번 위상을 만난 적이 있었다.

요르를 포함하여 그가 본 위상은 모두 셋.

그들을 보았을 때 남궁이 느꼈던 느낌은 종잡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상상 속 위엄 가득한 기품을 가진 자가 있다면, 반대로 장난기 가득한 어린아이 같은 자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 모두 공통점은 있었다.

‘죽음에 대한 시선이 결코 사람과 같지 않다는 것.’

고의든 과실이든 만약 길가의 개미를 밟아 죽였을 때 죄책감을 가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위상들에게 있어서 인간은 그런 존재다.

위엄이 있는 자는 더욱 엄중하게 인간을 다루고, 어린아이 같은 자는 장난으로 인간을 죽인다.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한다.’

남궁이 요르에게 오히려 까칠하게 대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그 누구도 위상에게 반(反)하는 자는 없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요르는 그에게 흥미를 가지는 것일지 모른다.

‘위상들이 원하는 것은 사람들을 구원하려는 것이 아닌 그저 즐거움과 흥미일 뿐이니까.’

어떠한 형태로든 간에 계속해서 그들을 자극시켜야 하는 것이다.

남궁은 사실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과 같았다.

“……아빠!!”

요르가 사라지고 남궁은 쓰러져있는 소민을 끌어 안았다.

“나…… 방금…… 그……!!”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남궁은 터질 듯 뛰는 딸의 심장 소리를 들었다.

“엄마가…… 우리를 지켜준 모양이야.”

그는 끌어안은 팔에 힘을 더욱 주며 말했다.

“엄마가……?”

소민은 그리운 이름에 입술이 다시 들썩였다.

“응. 그러니 무서워할 필요 없어.”

하지만 한 번 쏟아진 울음은 그칠 줄 몰랐다. 결국 해가 조금씩 저물어가기 시작할 때가 되어서야 소민은 기절하듯 남궁의 품에서 잠이 들었다.

‘널 지키겠다고 했는데…… 수아야, 네게 도움을 받았어.’

남궁은 딸의 뺨에 아직 남아 있는 눈물을 닦아주며 생각했다.

‘……고맙다.’

소민이 보옥을 흡수하던 순간 품에서 빠져나간 영령이 자신의 아내라는 것을 그는 알았다.

사상술이란 건 25년 동안 그조차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스킬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력을 사용하는 마법사, 영력을 사용하는 사령술사 모두 자질을 가져야 얻을 수 있는 직업이었으니까.

원소 계열과 정신 계열은 전혀 다른 힘이었기에 이 둘을 모두 가진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각성 직전 아내의 영령의 개입으로 인해, 소민은 마력 자질을 가진 본인의 힘 이외에 영력의 힘까지 가지게 된 것이다.

즉, 하나의 그릇에 2개의 힘이 담긴 것.

‘25년의 기억이 있어도 예상하지 못하는 일은 이렇게 언제나 일어난다.’

그것이 지금처럼 좋은 일이라면 다행이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는 법.

남궁은 한편으로는 더욱더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끄럽네요. 잠깐이지만 사실…… 형님 대신 제가 저 아이를 죽여야 하나 하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의 말에 남궁 역시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사실 자신 역시 그리 생각했었으니까.

어느 누구라도 자신의 사람보다 모르는 타인의 목숨이 더 가벼울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위상들은 그것을 시험한 게 틀림없었다.

“꼬마야. 이름이 뭐니.”

“……호성. 최호성이에요.”

“다른 가족은 없니.”

호성이라고 자신의 이름을 말한 소년은 남궁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는…….”

남궁은 낮게 중얼거리다 이곳이 현충원이라는 것을 떠올리고는 말을 삼켰다.

“대전에 대피소가 만들어질 거다. 거기로 데려가주마. 지금으로서는 거기가 가장 안전할 거다.”

“저, 저도…… 아저씨랑 같이 갈래요!!”

떨리는 목소리로 호성이 소리쳤다.

두려움에 떠는 아이의 심정을 남궁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를 데려갈 수는 없었다.

“널 그냥 떼어두려고 하는 소리가 아냐. 앞으로 우리가 가려는 곳은 여기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 너까지 지키면서 싸우는 건 불가능해.”

“하지만…….”

울먹이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남궁이 말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기억해. 그럼 우리는 분명 다시 만날 거다.”

호성은 긴장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전 동구에 대피소가 하나 생길 거다.”

남궁이 말했다.

“그곳에 진수혁이란 사람이 있을 거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를 따라 다녀. 가끔 무모하다 싶은 상황이 생겨도 절대적으로 그를 믿어야 한다.”

“진수혁…… 진수혁…….”

호성은 절대로 잊지 않으려는 듯 몇 번이나 그 이름을 곱씹었다.

‘그는 대전을 가장 오랜 시간 지켰던 자니까.’

무장공(武裝工) 진수혁.

무구 제작이란 특수한 자질을 가진 그는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서 5번째 지옥문이 열릴 때까지 전 세계에서 가장 단단한 요새를 완성한다.

‘그 뒤엔 결국 그의 요새도 함락되긴 했지만…… 적어도 그때까지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니까.’

남궁은 이제 움직여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서두르자. 호성이를 데려다주고 자정이 되기 전에 서울까지 가려면 시간이 빠듯할 거야.”

명훈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서울로 가시려는 겁니까? 형님 말씀대로면 여기가 더 안전 한 거 아닙니까?”

“1번째 지옥문이 닫히고 나면 서울에 그게 생기거든.”

“……그거요?”

남궁은 고개를 들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던전(Dung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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