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이거요?”
“그래. 그거. 어디서 났어?”
“저 괴물들이요. 고블린들. 저놈 들을 잡고 나왔습니다.”
경인은 예상보다 더 남궁이 관심을 보이자 오히려 본인이 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에게 대답했다.
“고블린이 룬을 떨군다고? 그런 건 듣지 못했는데…… 설마 지금 나한테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겠지.”
“그, 그럴 리가요! 제가 아저씨들에게 거짓말을 해서 뭐 해요. 오히려 제가 도움을 받으려는 상황인데.”
찔러보긴 했지만 남궁은 경인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사실이라면 그건 더 놀랄 일이었다.
‘최하급이긴 하지만 분명 룬이야.’
그는 쥐고 있는 작은 돌멩이를 바라봤다.
돌에 새겨져 있는 문양은 낯익었다.
지겹도록 봤던 것이었으니까.
‘민첩 룬이군.’
룬(Rune)은 지옥문이 열리고 가장 중요한 아이템 중 하나였다.
태생적으로 가진 특수한 능력인 자질과 달리 인간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능력.
그것은 스테이터스라고 불리는 힘, 민첩, 시력, 체력과 같은 육체적인 능력과 함께 내성과 같은 속성적인 능력이었다.
그리고 룬은 그러한 능력을 상승 시켜주는 일종의 보조도구였다.
‘자질은 얻지 못하면 익힐 수 없지만 스테이터스는 모두가 처음부터 가지고 있으니까.’
꼭 특수한 자질이 있어야만 강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애매한 자질보다 스테이터스를 극대화시키는 것이 더 강해지는 방법일 수 있다.
‘지금 확인해야 할 것은 룬이 어째서 벌써 나왔냐는 것이겠지.’
1번째 지옥문이 끝나고 생존자의 선별이 끝나면, 자정을 기점으로 사람들은 각성의 경험을 겪는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룬.
특수한 아이템으로 자신의 신체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룬의 획득 방법은 마물을 죽였을 때 확률적으로 나오거나, 아니면 특수한 광맥에서만 얻을 수 있다.
전자의 경우 사냥만 하면 되는 장점이 있지만 확률이 낮았고, 후자의 경우 생산 자질 중 하나인 ‘지맥(地脈)’을 가지고 있어야 가능한 것이었다.
‘룬의 드랍은 확률이 극악이고 지맥을 가진 자도 그리 많지 않아서 최하급이라도 룬은 꽤나 비싸게 거래가 되는 아이템인데…….’
이걸 1번째 지옥문이 열린 지금 볼 것이라고는 남궁조차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것도 광맥에서 채취한 것이 아니라 마물을 사냥해서 얻은 것이라고 했다.
‘뭐…… 하급 마물일수록 룬의 드랍 확률도 낮아지긴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제로는 아니니까.’
희박하지만 고블린에게서 룬이 드랍될 가능성도 있긴 했다.
‘그냥 운인 건가?’
남궁이 비록 25년 동안 이 세계를 버텼지만 아무리 그라도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니었다.
“그거라면…… 가능할까요?”
룬을 바라보는 남궁의 모습에 경인은 조금 기대를 하는 듯 물었다.
“명훈아. 차 상태 체크해.”
“네. 알겠습니다.”
남궁은 룬을 품 안에 집어넣고서, 턱을 꺾어 차를 가리키며 경인에게 타라 말했다.
* * *
“아직 학생으로 보이는데…… 왜 아버지랑 같이 있지 않고 혼자 떨어져 지내는 거야?”
“아…… 그게, 기숙사에 있었습니다. 진환 고등학교라고…….”
“헐, 진환? 거기 5년 전에 신설 된 학교 아니야? 완전 영재들만 가는 곳이라고 들었는데. 오…… 대단한데?”
“아, 아닙니다.”
경인은 명훈의 말에 부끄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활은 누구한테 배운 거야?”
“아버지께 배웠습니다. 예전에 국가 대표셨거든요. 뭐, 어릴 때 조금 배운 게 다라서 그냥 가지고만 있었는데…… 이렇게 쓸 줄은 몰랐네요.”
“국가 대표? 양궁 국가 대표 중에 전씨라면…… 설마 전태호 선수?”
“네. 맞습니다.”
“헐…… 나 어렸을 때 완전 팬이었는데!! 그 사건이 있고 은퇴하셔서 얼마나 아쉬웠…….”
신나게 떠들던 명훈은 아차 싶은 마음에 입을 다물었다.
“괜찮습니다.”
경인의 아버지는 7년 전 교통사고로 당해 오랜 세월 코마 상태로 병원에 입원해 있었기 때문이다.
“으음, 분명 쾌차하실 거야.”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명훈의 말에 웃으며 대답한 경인이었지만 그의 표정은 당연히 어두웠다.
꽈악-
그 순간 남궁은 자신도 모르게 핸들을 쥔 손에 힘을 주고 말았다.
‘저 아이가…… 전 선수님의 아들이라고?’
그저 팬으로 기뻐하던 명훈과 달리 남궁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그렇다면 저 아이가 마물을 사냥해서 룬을 얻은 게 단순히 운이 좋아서만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남궁은 생각지도 못한 경인의 내력에 자신도 모르게 살짝 긴장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아버지께 감사해야 할 거다. 가르쳐 주신 활 덕분에 지금 네가 살아남은 것일지 몰라.”
“네. 저도 그러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는 룸미러로 뒷자리에 앉아 있는 경인을 힐끔 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세상이라 오히려 아버지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곧 알게 될 거야.”
부우우웅--
남궁은 굳이 일일이 설명할 필요 없다 생각했다.
곧 자정이 될 것이니까.
* * *
서울에 들어서자 여기저기 무너진 건물과 아직 잡히지 않은 화재로 시커먼 연기들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분명 방송에선 피해가 적다고 하던데…….”
“이 정도가 적은 거면 다른 도시들은 더 심각할 수도 있겠네요.”
명훈과 경인은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과 여기저기 들려오는 비명 소리에 굳은 얼굴로 말했다.
“……진짜 전쟁이라도 터진 것 같네요.”
“아직 시작도 안 했어.”
“……네?”
남궁의 대답에 경인은 창백한 얼굴로 되물었다.
“아버지께서 계신 곳이 어디랬지?”
“아, 네. 신촌 세브란스 중환자실에 계세요.”
“형님, 그리로 가실 거죠?”
올림픽 대로를 달리는 남궁은 여기저기 얽혀 있는 차들을 피하며 시계를 바라봤다.
“오는 길에 도로가 파괴된 곳들이 많아서 돌아오느라 시간이 많이 지체됐어. 그리고 시내 교통도 좋지 않아. 지금 거기까지 가는 건 무리야.”
“하지만…….”
“게다가 자정까지 앞으로 20분밖에 남지 않았다. 우리도 준비를 해야 해. 널 거기까지 데려다주는 건 무리야.”
“그, 그럼 저는 여기서 세워주세요!”
남궁의 말에 경인은 당장에라도 차에서 내릴 기세로 소리쳤다.
조용하게 대답하던 모습과 달리 그가 소리치자 소민이 그의 팔을 움켜잡았다.
“…….”
경인은 팔을 잡은 작은 손을 보며 잠시 머뭇거렸다.
“원한다면 내려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라면 그러지 않을 것 같은데.”
“……네?”
“처음에는 마물들의 습격 때문에 부상자들이 많이 생겼어. 이제 경찰과 소방관들을 비롯해서 군부대가 투입된 상황이지. 그들이 가장 먼저 안정화시키는 곳이 어디겠어?”
“병원이겠군요.”
“맞아. 현 시점에서 가장 안전한 곳은 병원이지. 아버지께서 생존 해 계실 확률보다 네가 거기까지 가다 자정이 되어 죽을 확률이 더 높을걸.”
경인은 남궁의 말에 아무런 반박을 하지 못했다.
“만약 네가 아버지를 위한다면 누구보다 많은 헤드를 모으는 게 나을 거다.”
“그게 무슨…….”
병원이 가장 안전한 장소 중 하나라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하지만 사실 남궁이 확신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네 아버지는 분명 살아 있다. 게다가 반년 뒤에는 코마 상태를 깨고 눈을 뜨기까지 하지.’
남궁은 그의 아버지, 전태호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룬 마스터(Rune Master).
바로 그것이 전태호의 이명이었다.
남궁이 경인에게 그의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놀랐던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경인이 고블린에게서 룬을 얻은 것이 이와 연관이 있어서가 아닐까 생각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
‘안나 리안과 함께 전 세계 단둘밖에 없었던 아주 희귀한 자질이니까.’
마물은 죽었을 때 확률적으로 룬을 드랍한다.
하지만 이 룬 마스터의 자질을 가진 자가 반경 내에 있다면 룬의 드랍률이 상승하게 된다.
룬은 능력치를 올려주는 가장 중요한 도구였으니, 전태호에게 이 자질이 있다는 것이 알려졌을 땐 전 세계의 모든 클랜들이 그를 영입하려 했었다.
가장 먼저 전태호의 자질을 발견한 사람은 정보상 차연오였다.
‘그가 팔무성인 성녀 에이라에게 정보를 팔고 그녀가 엘릭서로 전태호를 깨웠지.’
그 당시 유일한 룬 마스터인 안나를 데리고 있는 알렉 트라만과 경쟁을 하던 그녀였기에 전태호의 존재는 무척이나 중요했다.
‘하지만 에이라의 말에 의하면 깨어난 그는 그녀의 제의를 거절했다.’
결국 비싼 엘릭서의 값만 치렀던 그녀는 오히려 전태호를 은혜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자라 평가했다.
그리고 얼마 뒤,
사람들은 한강에 떠오른 전태호의 싸늘한 주검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성녀가 죽인 것이겠지.’
범인은 명백했지만 그 누구도 팔무성에게 대들 자는 없었기에, 그 사건은 그렇게 소리 소문 없이 사람들에게 잊혀졌다.
‘어째서 그가 에이라의 제안을 거절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그때까지 그는 분명 살아 있다는 것이겠지.’
즉, 아직 경인의 아버지는 무사 하다는 뜻이다.
“날 믿어라. 네 아버지는 분명 무사할 거야. 그리고 병원에 내가 아는 지인이 있으니 연락을 취해보마.”
사실 거짓말이었지만 전태호의 생사를 이미 알고 있는 남궁은 넌지시 경인에게 말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가요?”
“거점을 구축할 거다. 지금부터 긴 싸움이 될 거야. 필요한 물자와 자원을 저장하고 휴식을 할 수 있는 곳이 가장 중요하지.”
그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은 긴장 가득한 얼굴로 그의 말을 경청했다.
“긴 싸움이라니…… 설마 그 괴물들이 또 나타난다는 말씀인 건가요?”
“그래.”
“말도 안 돼요. 뉴스에서는 이제 괴물들이 정리돼서 도시 복구를 시작한다고…….”
경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차 안에서는 연신 정부의 발표를 알리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복구는 될 거다. 어쩌면 내 생각보다 오랫동안 정부가 유지될 수도 있겠지.”
“그럼…….”
“하지만 결국은 모두 사라질 거다.”
“네?”
부우우우웅……!!
남궁은 조금 더 속도를 높였다.
[00 : 00]
시계가 자정을 알렸다.
“……!!!”
그 순간 차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빛이 폭발이라도 한 것처럼 새하얀 빛이 도시 전역을 가득 채웠다.
“저, 저게 뭐야?!”
빛과 함께 수천, 아니, 수만 개는 족히 넘을 듯한 엄청난 뭔가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쿠웅--!!
그것들 중 하나가 올림픽대로 한복판에 떨어졌다.
끼이이익……!!
콰앙!!
쿵! 쿵! 쿠궁!! 콰가가가강……!
“으아아악!!”
“비, 비켜!!!!”
갑작스러운 사고에 주위에 있던 달리던 차량들이 전복되며 서로 뒤엉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혼란에 빠졌지만 남궁은 이제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크클…… 인간들이여.]
상공에서 떨어진 그것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거니 쇠를 긁는 듯한 목소리로 주위를 훑었다.
“……도깨비?”
멈춰 선 차 안에서 경인은 마치 가면을 쓴 것처럼 툭 튀어나온 송곳니와 부리부리한 눈을 가진 거구의 남자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건 야차다. 대리자 일족 중 하나지.”
“저게 그놈들이군요.”
“대리자? 그게 뭐죠?”
설명을 들었던 명훈과 달리 경인이 묻자 남궁은 들어보라는 듯 고개로 야차를 가리켰다.
[일단 살아남은 자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자들이 살아남았군.]
남궁은 놈을 지켜봤다.
[자, 긴말하지 않겠다. 잘 새겨 듣도록. 이제부터 카니발(Carnival)이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관객인 너희들에게 선물로 위상께서 각성의 기회를 주실 것이다.]
우우우웅……!!
그 순간 올림픽대로 위에 있던 사람들의 몸에 옅은 빛이 흘러 들기 시작했다.
“다, 당신 뭐야!!”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 겁니까!!!”
[쉿.]
그 순간 야차가 손을 뻗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의 머리가 그대로 폭사했다.
“꺄아아아아악!!!”
“으아아악!!”
사람들은 끔찍한 광경에 경악을 금치 못했고 그 자리에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말하고 있을 땐 조용히. 들어야지? 어제와 달라. 이제 카니발이 시작되었으니, 대리자들은 이제 생사여탈권을 부여받았다 이거야.]
야차는 바닥을 흥건하게 적신 핏물을 보며 즐거워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웁…… 우우웁…….”
“우웁…….”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소리도 내지 못한 채 부들부들 떨 뿐이었다.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 없겠지. 나머지 필요한 정보들은 각성과 함께 머릿속에 입력될 테니까.]
그의 말대로, 마치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변화에 대한 정보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축제의 규율은 간단하다.]
빠앙―!!!
그 순간, 정적이 깔린 대로 위에 경적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누구야? 썅!! 내가 분명 조용히 쳐들으라고 했을 텐데? 어떤 놈…….]
문이 열리는 소리에 신경질적으로 야차가 노려봤다.
“나다. 규류.”
꿀꺽-
그 순간 야차의 목젖이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