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저, 저게 뭐지?”
“……던전?”
야차들이 사라지고 난 후 생겨난 던전의 등장에 사람들은 여전히 혼란스러워했다.
“아니. 내가 이걸 왜 알고 있는…….”
“설마 이게…….”
사람들은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 선유도에 생성된 거대한 반구 형태의 검은 돔을 보며 말했다.
야차들의 말처럼 설명이 없어도 그들의 머릿속엔 이제 필요한 정보들이 새겨져 있었다.
던전, 무구, 야차 보따리…….
생존에 필요한 기본 정보들은 마치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각인되어 있었다.
“상태창.”
누군가 말했다.
사람들은 그의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누군가는 그걸 보고 나지막한 따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크흠…….”
하지만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는 것에 민망한 듯 처음 말을 꺼낸 사람은 헛기침을 하며 자리를 옮겼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놈들에겐 게임일지 모르지만 우리에게 이건 게임이 아니니까.’
아이템이 존재하고 스킬과 능력치를 올려주는 룬이란 도구마저 존재하는 것은 맞지만 자신의 능력을 수치화해서 볼 순 없었다.
‘생각해 보면 보따리에서 살 수 있는 무구나 도구들도 부연 설명이 붙어 있기는 하지만 능력치라든지 스킬에 대한 수치 같은 건 없지.’
때론 설명마저 모호할 때도 많았다.
약간의 힌트는 될 수 있었지만 그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결국 본인의 몫이었다.
남궁은 그것이 지금 이 상황이 현실이라는 것을 자각시켜 주는 요소라 생각했다.
‘이건 죽으면 부활할 수 있는 게임이 아니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전장(戰場)이었다.
“아직 다리는 부서지지 않은 모양이군. 잘됐어. 시간이 남았으면 거점 구축부터 할까 싶었지만…….”
남궁은 슬쩍 경인을 바라봤다.
그를 만나서 시간을 지체한 것도 있었지만 남궁은 그를 나무라기 위해 본 것이 아니었다.
‘전태호 선수를 구하려면 엘릭서가 필요하다. 아마 내 기억이 맞다면 엘릭서의 가격은 40만 헤드.’
소모품의 가격치고는 최고가의 아이템 중 하나였다.
‘죽은 자를 부활시킬 수는 없지만 죽음 직전에 있는 자들까지 살릴 수 있는 물건이지. 파괴된 신체나 내장까지도 다시 생성할 수 있으니까.’
지금으로서는 엄청난 가격이지만 사실 헤드의 금액으로 레어급 무구 수준이었다.
‘지금은 기껏해야 고블린을 죽여 봐야 1헤드밖에 얻을 수 없으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5년 정도만 지나도 마물의 헤드 수가 급격하게 증가한다.’
물론 그만큼 도시를 뒤덮는 마물의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말이다.
그럼 누군가는 의문이 들 수 있다.
이런 엄청난 치료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인류는 멸망하고 말았을까.
대부분은 엘릭서를 살 수 있을 만큼의 헤드를 모으기 전에 사망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남은 자들 역시 엘릭서를 마음대로 쓸 순 없었다.
‘보따리에서 살 수 있는 도구의 수는 제한이 있다.’
남궁이 처음 규류에게 녹슨 단검을 구매할 때 물어봤던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가격 때문에 당장 누가 독점하지는 못하겠지만 이제 가장 먼저 얻어야 할 것이 바로 엘릭서다.’
당장 40만 헤드의 가치보다는, 룬 마스터를 영입할 수만 있다면 몇 배, 아니, 몇십 배 더 나으니까.
물론 전생처럼 그를 영입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지만…….
남궁이 경인을 바라본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전생에는 없었고 지금은 있는 차이점.’
경인의 존재가 전태호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큰 변환점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단순한 추측이 아닌 어쩌면 부모로서의 직감이었다.
‘살아남는 것만 급급했는데…….’
그는 세상 자신의 옆에 있는 이들을 바라봤다.
“고맙다.”
“……?”
그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딸의 머리를 가볍게 쓸어 넘기며 말하자 소민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소민아. 아빠 옆에 딱 붙어 있어.”
“응. 아빠.”
남궁은 딸의 손을 잡고서 한달음에 도로를 빠져나왔다.
“가자.”
공원을 가로질러 선유도로 이어지는 다리를 달리며 망설임 없이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 구울왕의 묘터에 입장하였습니다.
* * *
츠즈즉……!!
콰아아아앙……!!!
붉은 뇌전이 머리 위에서 떨어지자 복도를 채우고 있던 좀비들이 순식간에 새카맣게 타 버렸다.
[……케켁!!]
[캬아악!!!]
검게 변한 시체는 보기 흉했지만 그것보다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드는 건 따로 있었다.
“옆에 붙어 있을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요. 형님.”
명훈은 바닥에 너부러진 언데드의 시체들을 바라보며 멋쩍은 듯 웃었다.
“……그러네.”
남궁 역시 그의 말에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흠. 좋아!”
마물들이 쓰러지자 소민은 주먹을 콱 움켜쥐었다. 일대의 좀비들을 쓰러뜨린 주인공은 다름 아닌 그녀였다.
“마법이라니…… 소민아. 너 진짜 대단하다.”
활을 쥐고 있던 경인은 진심으로 놀란 듯 그녀를 향해 말했다.
“별거 없어요. 그냥 우웅 하고 손에 힘이 모이면 팟! 하고 느낌이 올 때 쾅! 하고 떨어뜨리면 돼요.”
“쿠웅? 팟? 아하…….”
소민의 설명에 경인은 남궁을 힐끔 바라봤다.
‘마법은 나중에 팔무성 중 한 명이자 현자의 칭호를 얻는 대마법사(大魔法師), 덴 하울이 이론을 정립하면서 시작되었다.’
마법은 기본적으로 자질이 있어야 하지만, 자질이 있다 하더라도 발현(發現)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덴 하울이 말하길, 마법을 쓰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구현(具現)하는 것이라고 했지.’
구현은 곧 상상력이었다.
‘어린아이일수록 마법의 구현이 쉬울 수 있다고 하더니 틀린 말은 아닌가 보군.’
마법에 대한 소민의 설명을 듣고서 남궁은 덴 하울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물론 소민이의 자질이 뛰어나기 때문도 있겠지만.’
과연 레전드리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운이 좋았다.
자신의 자질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죽는 자들도 수두룩했으니까.
자질을 확인할 수 있는 아이템도 있긴 했지만 가격이 비싸 그것을 사는 자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살아남기 바쁜 세상이었으니까.’
설령 나중에 마법의 재능을 발견 한다 한들 이미 검을 쓰던 자가 쉽사리 마법을 익히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살기 위해서는 헤드를 모아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사냥을 해야 했다.
마물을 상대할 때 이미 검을 쓰는 것이 몸에 굳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징그럽진 않니?”
“응…… 조금 그렇지만 괜찮아요. 「언더 월드」 같다고 생각하면…….”
“언더 월드?”
명훈이 소민의 말에 되물었다.
“아, 요즘 제일 인기 있는 온라인 게임이에요. 좀비들을 사냥하는 게임인데…… 모드에 따라서 연령을 조절할 수 있어서 많이 합니다.”
경인도 그 게임을 아는지 소민을 대신해서 명훈에게 대답했다.
그러고는 핸드폰을 꺼내 너튜브에 올라온 게임 영상을 보여줬다.
[쾅……! 콰강!!]
[투두두두……!]
지하 통로로 내려온 주인공이 검과 마법부터 총기까지 각종 무기를 가지고 좀비들을 사냥하며 아래층으로 계속 도전하는 게임.
“거참…… 이런 게임이 뭐가 재밌다고.”
전쟁터에서 오래 살아왔던 명훈은 썩 내키지 않은 모양이었지만 말이다.
“……소민아. 너 이런 게임 했었니?”
피와 살점이 난무하는 영상을 보자 남궁은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얼마나 인기인데. 플레임 선수라고 한국에 엄청 랭커가 있거든? 진짜 장난 아냐.”
“플레임?”
“응. 며칠 전에 언더 월드에서 이번에 E-스포츠 국가 대항전을 했거든. 우리나라 대표팀 선수야.”
남궁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게임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플레임이라는 닉네임만은 그의 머릿속에 남았다.
“거너(Gunner) 유저인데 엄청 잘해!”
소민은 어쩐지 플레임의 팬인 듯 소리치듯 말했다.
‘플레임이라…… 설마 그 녀석은 아니겠지?’
알지 못했던 딸의 취미에 대한 놀라움보다 남궁은 그녀가 말한 플레임이란 자에 흥미가 생겼다.
“혹시 사진도 있어?”
“응, 있지!”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검색했다.
“으흠…….”
액정에 보이는 얼굴은 아직 앳된 소년이었다. 기껏해야 소민이 또래.
“이름은 정찬호. 명진중학교 출신이고 나랑 동갑이야. 완전 대단하지? 중학생인데 말이야.”
소민의 목소리가 조금 신이 난 듯 톤이 올라갔다.
‘체구가 좀 작긴 한데…… 내가 플레임을 만났을 땐 10년이 지났을 때니까. 확실하진 않군.’
그저 우연의 일치일까.
남궁은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며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그 역시 플레임이란 이름에 대한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과 반대로 10년 뒤 그가 알고 있는 플레임은 반대로 가면으로 얼굴을 가려 진짜 모습을 알 수 없었다.
‘스핏 파이어(Spit Fire).’
사람들은 플레임을 그렇게 불렀고 때로는 화폭마(火爆魔)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했다.
제각기 부르는 이름을 달라도 그가 불을 다루는 데에 있어서 극강의 실력을 가졌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뭐…… 아직 중요한 건 아니니까.’
자신이 알고 있는 플레임이 정말로 프로 게이머인 정찬호라 할지라도 당장 그를 만날 일도 없었다.
지금은 이곳에 집중해야 했다.
‘당지 소민이가 이런 걸 게임처럼 가볍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고블린과 좀비에게도 죽는 이는 태반이었다. 결코 하급 마물이라고 해도 약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소민의 자질이 뛰어나기 때문일 뿐.
‘경각심을 잃게 되는 순간이 가장 위험하니까. 언제나 나보다 적이 강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딸의 뛰어난 자질은 기뻐 마땅해야 할 일이지만 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는 그였다.
“가자.”
그때였다.
그 순간, 남궁의 눈에 내색하지 않는 얼굴과 달리 주먹을 쥔 손이 떨리는 소민의 모습이 들어왔다.
‘아직은 기우였나.’
남궁은 그런 생각을 했던 자신을 돌아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형님, 안색이 안 좋으신 것 같습니다만…….”
“아, 아냐. 괜찮아. 그냥 조금 생각을 하다 보니.”
그는 명훈에게 괜찮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딸의 손을 잡아 주었다.
“걱정 마.”
소민은 그의 말에 아무렇지 않은 척 웃었다.
“나머진 저희들에게 맡기십시오.”
그의 걱정을 알기라도 하는 듯 명훈과 경인이 두 사람을 가로막으며 앞을 나섰다.
코너를 돌자 여지없이 복도엔 좀비들이 가득했다.
콰아아아앙---!!
슈욱!
콰그그그-!!
두 사람은 다가오는 좀비들을 가볍게 쓸었다.
명훈의 실력이야 이미 잘 알고 있었지만 남궁은 경인의 솜씨에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전부 헤드 샷이로군. 활은 어릴 때 조금 배웠다고 하지 않았어?”
“네. 그게…… 전에는 안 그랬는데 신기하게 시위를 당기는 순간 과녁이 커지는 것처럼 커 보여요. 맞히기 쉬운걸요?”
“그래?”
남궁은 좀비의 머리를 터뜨리고 땅에 박힌 화살을 뽑아내며 말했다.
‘전에는 고블린의 머리에 박히는 정도였는데 지금은 완전 폭사(爆死) 수준이야. 역시 전태호의 아들답게 궁술에 관련된 자질을 각성한 건가.’
“또 혹시 다른 점은?”
“음…… 한 가지 의심되는 게 있긴 한데…… 그건 나중에 확실해지면 말씀드릴게요.”
경인은 남궁의 물음에 모호한 대답을 했다.
‘뭘까? 확인이 필요하다는 건 아직 확신이 없다는 건데…… 혹시 룬 마스터의 자질과 연관이 있는 거려나.’
남궁은 궁금했지만 기다리기로 했다.
굳이 미리 물어보다 나중에 전태호가 깨어났을 때 오히려 애매한 상황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래. 얘기해 줄 수 있게 되면 부탁해.”
“알겠습니다.”
“엇, 형님. 저기 보세요!”
그 순간 명훈이 정적을 깨뜨리며 소리쳤다.
“저건…….”
복도의 끝에는 현충원에서 봤던 것과 같은 철 상자가 놓여 있었다.
“오…… 보상 상자일까요? 벌써 끝이라니…… 이거 완전 낙승인데요?”
명훈이 익숙한 상자의 모습에 기대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잠깐.”
“……네?”
“경인아. 저 상자에 활을 쏴봐.”
상자에 손을 뻗던 명훈이 남궁의 말에 황급히 옆으로 피했다.
슉-!!
콰아앙--!!
“……!!”
화살이 상자에 꽂히는 순간, 갑자기 폭발이 일어났다. 떨어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화끈거리는 열기가 그들을 덮쳤다.
“꺄악!”
남궁이 소민의 앞을 가리며 열기를 막아섰다.
“이게 무슨…….”
명훈은 갑자기 폭발한 상자에 멍한 표정을 지었다.
“던전의 트랩이다. 저렇게 폭발하는 것도 있고 미믹이라 불리는 상자 형태의 마물도 있다.”
“형님. 저 정도 위력이면…….”
“지금 상황에선 즉사(卽死)겠지.”
꿀꺽-
남궁의 대답에 사람들은 긴장감에 마른침을 삼켰다.
“하지만 진짜 보상이 들어 있는 상자도 있어서 확인을 하지 않을 순 없다.”
“그야말로 목숨을 걸어야 하네요.”
명훈은 조금 전 그대로 상자를 열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에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말했다.
“그래도 꽝은 아닌 모양이야.”
남궁은 폭발한 상자의 잔해 속에서 뭔가를 집었다.
“……그게 뭔가요?”
그는 명훈을 향해 낡은 열쇠를 가볍게 던지며 말했다.
“보스 룸의 열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