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그, 그게 무슨…….”
남궁의 말에 여자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손가락에 끼고 있는 그거. 샤칸의 니들이지?”
움찔-
여자의 어깨가 들썩였다.
“200헤드짜리. 붉은 호넷의 독침 하위판이라고 할 수 있는 마비독을 가진 바늘. 이걸로 내게 뭘 할 생각이었지?”
그의 말대로 손을 내밀었던 여자의 손가락에 끼어 있는 반지에는 아주 미세한 바늘 같은 게 하나 나 있었다.
“……아악!!”
남궁이 여자의 손목을 비틀어 반지를 빼내자 손목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그녀는 옅은 신음을 토해냈다.
탕그랑-
반지를 바닥에 던져 밟아 버린 뒤 그는 주위를 쓰윽 훑으면서 말했다.
“무, 무슨…… 악!”
그는 조금 더 여자의 손목을 비틀었다.
비명을 지르는 그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뭔가를 확인하려는 듯 옷의 소매를 거칠게 올렸다.
옷으로 가려져 있던 여자의 손목엔 푸른 혈관이 당장에라도 터질 듯 부풀어 있었다.
‘호차의 송곳니. 최하급 독이라 죽진 않겠지만…… 상처가 있는 자에겐 꽤나 고통스럽지.’
“이걸 시킨 사람이 따로 있나?”
“사, 살려주세요!!”
그 순간 여자는 기다렸다는 듯 남궁을 향해 소리쳤다.
“저, 저 사람들이 시킨 거예요!”
바스락-
그녀의 외침과 동시에 공원의 수풀이 흔들렸다. 그러자 일대의 무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
남궁은 그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저 녀석들은.’
며칠을 씻지 않은 듯 보이는 꾀죄죄한 몰골과 제법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악취와 술 냄새.
게다가 나이도 제법 많아 보였다.
특이한 건 아니었다.
그들은 이따금 역주변이나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부랑자들이었으니까.
“빌어먹을. 하여간 제대로 되는 일이 없군.”
“아주 일이 더럽게 꼬였어.”
“뭐 어때. 그냥 처리해 버리면 되지.”
그들은 귀찮은 듯 어슬렁거리며 천천히 남궁을 향해 걸어왔다.
“뉴스 봤잖아? 몇 명이 죽은 지 아직 파악도 되지 않는 상황이래잖아.”
“한 놈 더 추가된다고 달라질 것도 없어.”
“이봐!! 거기. 살고 싶으면 가진 거 다 내놓고 꺼져.”
부랑자의 무리 중 가장 앞에 선 남자가 그를 향해 소리쳤다.
“흠…….”
남궁은 그들을 안쓰럽게 바라봤다.
‘벌레는 언제라도 꼬이게 마련이군.’
그는 남자가 쥐고 있는 검을 보며 냉소를 지었다. 보따리에서 구입할 수 있는 하급 도검이었다.
가격은 아마도 500헤드.
‘생존 보상으로 받은 헤드로 검을 산 것 같은데…… 그나마 저 사람은 보따리를 쓸 줄 아는가 보군.’
칼날에 묻어 있는 핏물을 보니 그래도 그 검으로 고블린을 사냥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남궁의 생각을 증명하듯 남자는 무리에서 가장 젊은 축에 속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칼로 네놈 목을 잘라 버리기 전에.”
남자는 검을 치켜세우며 남궁에게 소리쳤지만,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딱히 검을 다룰 줄 안다고 보기 힘들었다.
‘사람을 죽일 만큼의 깜냥이 있어 보이지도 않고…….’
기껏해야 위협용일 것이다.
숱한 전장에서 살아남았던 남궁은 본능적으로 상대의 그릇을 꿰뚫어볼 수 있었다.
그것은 스킬 같은 능력이 아니었다.
오랜 경험이었다.
게다가…….
“어이!! 내 말 안 들려?”
아무래도 저들은 남궁이 죽인 고블린의 수를 제대로 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고블린의 시체들은 어느새 잿가루가 되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가지고 있는 뭘 주면 되지?”
“뭐긴 뭐야. 그…… 뭐냐. 헤드, 그래. 아까 받은 헤드를 내놔!!”
“진심이야? 정말로 내게서 헤드를 빼앗으려고?”
“……뭐?”
“타인에게서 헤드를 빼앗기 위한 방법은 알고?”
“그, 그야…….”
슈욱---!!
퍽!!!
그 순간 남궁은 품에서 던전에서 쓰고 남은 낡은 단검을 던졌다.
“크악!!”
단검은 순식간에 앞에 서 있던 남자의 어깨에 박혔다.
쥐고 있던 검은 제대로 써보지도 못한 채 바닥에 떨어뜨리고선 남자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헤드를 가진 자에게 양도를 받거나 혹은 그자를 죽였을 때 받을 수 있지.”
저벅- 저벅-
남궁은 천천히 그를 향해 걸어갔다.
“하하 호호 웃으면서 헤드를 나눠 받을 생각으로 벌인 일은 아닐 테고. 날 죽이겠다?”
“뭐, 뭣들 해!! 저 새끼 죽여!!”
남자가 소리치자 잠시 우왕좌왕하던 나머지들이 일제히 남궁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포칼립스에 살다 보면 비일비재한 일이지만…….”
그는 달려드는 무리를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허접하기 짝이 없군.”
선두에 섰던 남자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무기도 없었다. 그들에게는 나름 큰 각오를 하고 저지르는 일일지 몰라도 남궁에게 있어서는 그저 진부한 사건 중 하나에 불과했다.
부우웅--!!
각목이 어설프게 남궁의 어깨를 때렸다.
남궁은 그것을 피하지도 않았다.
파직-!!
각목이 힘을 이기지 못하고 부러지자 그것을 쥐고 있던 남자가 당황한 기색으로 남궁을 바라봤다.
“주, 죽여 버린다!!”
부러진 각목을 겨누며 남자가 소리쳤다.
“뭘로? 어떻게?”
각목의 끝이 심하게 떨리는 걸 봐서는 이제 그걸 다시 휘두를 용기도 없어 보였다.
푸욱…….
그 순간 남자의 옆구리가 붉게 변했다.
“어째서 너희 같은 놈들은 꼭 바퀴벌레처럼 이런 상황에 잊지 않고 나타나는 걸까.”
“으, 으아악!!”
옆구리에 박힌 단검을 보며 남자는 비명과 함께 뒤로 자지러졌다.
“이 개새끼가!!”
“뒈져!!”
단검에 찔린 동료를 본 순간 어디서 나온 용기인지 아니면 광기인지 나머지 사람들이 남궁을 향해 달려들었다.
“1번째 지옥문을 너무 빨리 닫아 버리니 이런 문제도 있군. 이런 쓰레기들은 싹 정리되었어야 하는데.”
“흐아아아악!!”
“크아악!!”
비명인지 함성인지 모를 소리를 내며 달려드는 남자들을 향해 남궁이 검을 그었다.
부웅……!!
수라(修羅)를 겪었던 그에게 허술한 그들의 공격은 슬로모션을 보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푸욱……! 푹! 푹!!
타다당……!!
남궁은 그들의 공격을 피하며 녹이 슨 낡은 단검을 그들의 허리와 허벅지에 하나씩 꽂아 넣었다.
“컥……!”
“크헉!!”
순식간에 열댓 명의 무리를 제압한 남궁은 맨 처음 선두에 서 있었던 남자를 향해 걸어갔다.
“녹이 슨 단검이다. 그것도 아주 오래된 낡은 단검이야. 상처 자체로는 치명상은 아니지만 날에 붙은 녹에는 독성이 있고.”
츠으으으으…….
그 순간, 그들의 상처 부위가 녹색으로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마물들에게는 그다지 효용성이 뛰어나지도 않고 별로 쓸모없는 도구지만…… 이제 막 지옥문이 열린 상태의 연약한 인간에겐 아주 탁월하지.”
“으, 으악……!!”
“이게 뭐야?!”
단검의 녹이 마치 독처럼 상처 부위에서 서서히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면역이 없는 상태에서 그냥 방치해 뒀다가는 팔다리 뭐든 잘라 내야 할 테니까.”
“사, 살려주십시오!!”
쓰러졌던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남궁을 향해 무릎을 꿇으며 사정했다.
“별거 없어. 보아하니 야차 보따리를 쓸 줄은 아는 것 같은데. 거기에 파는 면역증강제를 먹으면 된다.”
“가, 가…… 감사합니다!!”
남궁의 말에 검을 쓰던 남자는 황급히 보따리를 열었다.
“뭐, 뭘 어떻게 하는 거야?”
“젠장, 내가 아나…….”
하지만 그를 제외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보따리를 열 줄도 모르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사용법이 기억 속에 주입이 되었다 한들 그것을 모두가 제대로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린아이가 몇 번 써보지 않은 휴대폰을 어른들보다 잘 쓰는 것처럼 말이다.
“1,000헤드?! 지금 장난해……!! 이걸 어떻게 사라는 말이야!!”
그 순간 남자가 소리쳤다.
“이보게, 김씨. 그거 아까 우리한테 보여줬던 그 이상한 화면 그거지?”
“1,000헤드인가 하면…… 그거 우리 못 사는 거 아냐?”
그 순간 그들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가격이 얼마인지까지 알려줄 만큼 우리가 친한 사이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빌어먹을!!”
검을 잡고 있던 남자는 남궁의 말에 바득 이를 갈았다. 하지만 그 순간 남궁이 떨어져 있던 검을 그에게 쥐어주었다.
“포기하기엔 이르지. 당신. 헤드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얘기해 줬잖아?”
“……뭐?”
남궁은 냉소를 지으며 그의 귀에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양도를 받거나 빼앗거나. 저들 중에 아직 헤드를 가진 자들이 있을 것 같은데.”
그의 말에 남자의 눈빛이 변했다.
‘맞아. 그 난리가 끝나고 다들 500헤드씩 받았잖아. 저 노인네들 중에 분명 헤드를 안 쓴 사람도 제법 있다.’
꿀꺽-
마른침을 삼키는 목젖의 떨림을 바라보며 남궁은 더 이상 할 말이 필요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으…… 으윽…….”
“이제 어떻게 해야…….”
“이런 일에 괜히 끼어들어…… 컥……!!”
그때였다.
쓰러져 있던 남자의 가슴을 뚫고 검날이 튀어나오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무, 무슨 짓이야!!!”
“이보게! 자네 미쳤어!!”
“헤, 헤헤…… 어쩔 수 없잖아. 살 사람은 살아야지. 이런 세상이라고. 안 그래? 다들 그렇게 생각해서 일을 벌인 거잖아. 한두 놈 죽는다고 달라질 것도 없어.”
남자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이런 미친 새끼!!!”
“네놈부터 죽여 버리겠어!!”
그의 말에 사람들은 저마다 소리치기 시작했다.
‘아직 그 정도로 난장판인 세상은 아니지만…… 하긴, 뭐 자기 목숨이 걸리면 결국 이성보단 본성에 충실하게 될 뿐이지.’
남궁은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아도 약간의 틈을 흔들어 놓는 것만으로 결과를 내기엔 충분했다.
“……죽여!!!”
“이 빌어먹을!!!”
“젠장!! 이 쓰레기 같은 놈이……!!”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남궁을 강탈하기 위해 모였던 사람들은 이제 서로를 물고 뜯으며 싸우기 시작했다.
“어떻게 이런…….”
“이런 세상이니까.”
남궁의 뒤에 있던 여자는 그 광경을 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싸움의 결과는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검을 들고는 있었지만 익숙하지 않았던 남자는 나머지 사람들에 의해 두들겨 맞아 죽임을 당했다.
바닥에 떨어진 검을 빼앗으려 서로 뒤엉켰던 자들은 결국 서로 찌르고 찌르며 바닥에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했다.
“구,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자는 창백한 얼굴로 남궁을 향해 말했다.
“저도 어쩔 수 없었어요. 저 사람들이 시켜서……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죽인다고…….”
“분명 얘기했을 텐데.”
남궁은 그 순간 고개를 내리깔며 여자를 향해 말했다.
“당신 시답잖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네?”
여자는 그의 말에 창백한 얼굴로 대답했다.
“저들 중에 야차 보따리를 제대로 쓸 줄 아는 사람은 기껏해야 검의 주인뿐이었어. 나머지는 창을 열지도 못했지. 게다가 그자도 능숙한 게 아니라 마치 기억을 더듬는 것처럼 어설펐어.”
“그게…….”
“그런 자들이 당신을 미끼로 습격을 준비했다고? 내 생각엔 누군가 이런 짓을 시킨 것 같은데.”
“누, 누군가요……?”
남궁은 그녀를 향해 말했다.
“바로 너.”
그 순간 여자의 입꼬리가 묘하게 변했다.
“네가 벌인 짓이잖아. 안 그래?”
웃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