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대장……? 설마 남 대위님이 오셨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지금 어디 계십니까?”
“저기 밑에.”
“……네?”
호준은 명훈의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봤다.
“지금 저 안에 계시다고요? 형님, 미쳤어요? 저기 안에 마물들이 득실거리고 있단 말입니다!!”
무너진 지하보도의 입구를 바라보며 호준은 그에게 소리쳤다.
“그래서야. 너도 알 텐데. 상공에 나타난 지옥문과 야차들. 머릿속에 주입된 정보들 말이지.”
“그건…… 아직 상부에 어떤 명령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호준의 굳은 표정에 명훈은 이미 그의 심정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병사들이 일제히 같은 기억을 공유하게 되었다는 것을.
앞으로 계속해서 차원문이 열리고 마물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라는 현실을 말이다.
“혼란을 야기시키는 말씀은 하지 마십시오.”
“설마 집단 최면이라도 걸린 게 아닐까 싶은 기대라도 하는 거야? 혼란을 야기시키는 건 내가 아니라 너희들이지.”
하지만 명훈은 호준의 말을 잘랐다.
“그래. 끔찍한 상황이지만 받아들이지 않고 부정만 해서는 당할 뿐이다. 누구보다 네가 잘 알잖아. 대장과 함께 있었으니.”
명훈은 그가 메고 있는 총을 가리켰다.
“병사들을 살리고 싶지? 그렇다면 총이 아닌 다른 무기를 들어야 할 때야.”
“……네?”
“야차 보따리.”
촤르르륵-!!
그 순간 명훈의 앞에 창이 나타났다.
“형님께서 네게 이걸 전해주라더라.”
그는 스크롤을 내려 그 안에서 뭔가를 꺼내었다. 곤봉에 손잡이가 달린 무기인 톤파(Tonfa)였다.
“이건…….”
“우리 부대에서 네가 이걸 제일 잘 다뤘었잖아. 그거 꽤 비싼 거다? 오늘 밤 너희 부대가 사냥한 고블린들의 헤드를 모두 모아도 못 사는 물건이라고.”
넘버링 770391.
이름 : 오크 톤파
등급 : 노멀(최고)
▶ 오크의 뼈를 깎아 만든 톤파.
▶ 특별한 것은 없지만 무척이나 단단하다.
▶ 일격에 마물의 머리를 부술 수 있다고 한다.
“총으로는 한계가 있다.”
“지금 총을 두고 이걸로 싸우라고요?”
“응.”
호준은 그의 말에 오히려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형님. 지금이 중세 시대도 아니고 폭격과 포격이 가능한 현대에서 이런 무기를 쓰라니요.”
“글쎄? 그럴까.”
그 순간 명훈은 막사를 지나 광장에 남아 있는 고블린을 향해 검을 그었다.
솨아아악……!!
그가 쥐고 있던 검신이 새하얗게 변하면서 순식간에 검을 벤 허공이 얼어붙었다.
쩌쩍……!!
달려들던 다섯 마리가 넘는 고블린들이 일제히 얼어붙었고, 명훈은 놈들을 가차 없이 부쉈다.
“……!!!”
“세계는 변했어. 억울하지만 세계를 바꿀 수 없다면 우리가 변해야 하지.”
꿀꺽-
호준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고블린은 체구가 작아 하급 마물이긴 하지만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마물이었다.
수십 발의 총알을 박아 넣어도 달려들려고 안간힘을 쓰는 지독한 놈 들.
그런 놈들을 일격에 사냥한 명훈을 보며 호준은 그가 준 톤파를 자신도 모르게 움켜잡았다.
“가자.”
그 순간 호준은 메고 있던 총을 풀어 내려놓았다.
퍼억---!!!!
톤파를 휘두르자 고블린의 머리가 일격에 그대로 터져 버렸다.
쫘악……!!
그는 고블린의 시체 위에서 몸에 두르고 있던 나머지 장비들마저 풀어 던졌다.
“……걸리적거리네.”
군복의 소매를 찢어버리자 감춰져 있던 우람한 근육이 드러났다.
톤파를 쥔 손에 힘을 줄 때마다 터질 듯한 근육들이 꿈틀거렸다.
오우거(Ogre) 강호준.
그 순간 명훈은 과거의 그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 직감했다.
* * *
“야…… 저거 진짜냐.”
“저도 믿기지가 않습니다.”
“하나라도 놓치지 마. 알겠어? 씨발…… 이거 완전 특종이야. 특종!”
광화문 근처 세워 둔 승합차 안에 있던 PD는 드론을 조종하던 카메라맨에게 소리쳤다.
수십 개의 모니터는 오직 두 사람을 찍고 있었다.
무너진 지하보도 안에서 새어 나오는 고블린들을 상대하고 있는 두 사람이었다.
CG가 아니었다.
영화를 보는 것 같은 광경은 명백한 현실이었다.
“혹시…… 저 사람들이 그 계시자일까요?”
모니터를 살피던 카메라맨이 PD를 향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계시자?”
“그 있잖습니까. 영국의 배우인 알렉 트라만이 어제 저녁에 했던 기자회견 말입니다.”
“자신을 포함해서 세상을 구할 여덟 명의 계시자가 있다는 말? 그 사람들을 찾고 있다고? 넌 그 헛소리를 믿는 거냐?”
“하지만…….”
PD의 핀잔에 카메라맨은 잠시 머뭇거렸지만 모니터에 마물들을 쓸어버리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말했다.
“저 모습도 정상은 아니잖습니까.”
“…….”
그 순간 PD는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야! 막내야. 당장 저 두 사람 신원부터 알아내!!”
“알겠습니다.”
그는 뒤에 있던 스태프에게 소리쳤다.
“그리고 지금 드론에서 전송 되는 거 당장 실시간으로 올려. 영국의 알렉 트라만이 기자회견 한 것보다 더 대박이 날 거다.”
PD는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냥 막 올려도 됩니까? 초상권은…….”
“초상권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일단 올려! 처리는 나중에 하면 되니까.”
“아, 알겠습니다!”
PD의 일갈에 차 안에 있던 나머지 한 사람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기사 제목은…….”
* * *
“열심히 찍고 있군. 이런 상황에도 말이야. 대단하지 안 그래?”
명훈은 고블린의 가슴에서 검을 뽑아내며 날파리처럼 귀찮게 주위를 날아다니는 드론들을 보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부숴 버릴까요? 그렇잖아도 저것들 때문에 짜증 나는데.”
호준이 기다렸다는 듯 물었다.
“아니. 오히려 더 방송이 나가야 해. 우리가 주목을 받을수록 좋아.”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우리는 미끼거든.”
“남 대위님 때문입니까? 기자들의 눈을 속이려고요?”
퍼억……!!
그는 톤파로 마지막 남은 고블린의 가슴을 후려쳤다. 켁! 하는 비명 소리와 함께 마물의 갈비뼈가 등을 뚫고 튀어나왔다.
지하도의 입구가 내려 앉아 광장에 남아 있던 고블린을 처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무너진 잔해 안쪽에는 아직도 수백 마리가 남아 있을 것이었고 뿐만 아니라 종로를 향해 계속해서 몰려오고 있는 중이었다.
“아니. 그보다 더 앞을 노리고 계시지.”
“더 앞이라면…….”
“알렉 트라만. 그가 우리를 찾게 만드는 것이 이번 우리가 해야 할 진짜 목적이거든.”
명훈은 드론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뭐해? 손이라도 흔들어 줘. 이왕이면 얼굴도 잘 나오게 좀 돌려주고.”
“……네?”
얼떨떨한 표정으로 호준은 명훈의 말에 드론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대한민국, 1번째 계시자가 나타나다……?!」
「대대적인 고블린의 습격!」
「두 명의 영웅이 그들을 물리치다!」
두 사람이 찍힌 사진과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라온 순간 각종 SNS엔 그들의 기사로 도배되기 시작했다.
퍼억……!!!!
남궁은 고블린의 목을 베어내며 마지막 남은 지하철 입구의 문을 부쉈다.
“예상대로야.”
몸을 숨긴 체 고블린 떼들이 달려가는 것을 보며 남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옥문이 닫힌 뒤에 생성된 고블린들은 지휘를 하는 로드가 없는 상태.’
지휘관이 없는 고블린들은 마치 우르르 달려가는 양떼처럼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리기만 한다.
‘오크 정도의 지능을 가지기만 해도 그렇지 않지만 놈들은 본능적으로 서로 뭉치기 시작하지.’
지상에 소환되었던 고블린들은 종족의 특성상 땅굴을 이용하길 좋아했기에 지하철의 노선을 따라 움직였다.
‘놈들의 목적지가 어딘지 모르지만 광화문의 지하도를 통해 나온다는 것은 이곳이 교차 지점일 가능성이 높다.’
[켁……!! 케케켁!!!]
[캬각! 캭!! 캭!!!]
남궁은 그 지점을 파악하기 위해 기다렸던 것이었다.
지하도의 입구가 막힌 지금 놈들 무너진 잔해를 박도로 두들기며 점차 쌓여가기 시작했다.
퍼억……!!!
퍼버버벅……!!!
막다른 입구에 막힌 채 몰려드는 고블린들은 이제 서로 뒤엉켜 자기들끼리 죽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놔둬도 알아서 죽겠지만…….”
남궁은 품 안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냥 두기엔 헤드가 아깝지.”
작은 폭탄이었다.
넘버링 118090.
이름 : 드워프의 광산 폭탄
등급 : 매직(최고)
▶ 드워프들이 광산에서 사용한 채광용 폭탄.
▶ 벽에 부착 가능.
▶ 폭발에 휩싸일 수 있으니 조심 할 것.
▶ 가격 : 150헤드
슉-!!!
남궁은 바글바글 쌓여 가는 고블린들의 머리 위로 폭탄을 집어 던진 후 그는 몸을 기둥 안으로 숨겼다.
콰앙!!! 콰가가강!!!
요란한 폭음과 함께 터진 살점들이 사방으로 쏟아졌고, 동시에 획득한 헤드의 수가 미친 듯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25년이나 굴렀지만 여전히 적응이 안 되는 광경이야.”
남궁은 피바다가 된 막다른 입구를 바라보며 퉷! 하고 침을 뱉으며 중얼거렸다.
[캬륵?!]
[캬가가가각!!!!]
폭탄에 아직 살아남은 고블린들이 남궁을 보더니 알 수 없는 비명을 지르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팟……!!
그 순간 남궁은 기다렸다는 듯 뒤로 도망치기 시작했고, 고블린들 또한 미친 듯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콰앙……!!
지하도의 모퉁이를 도는 순간 다시 한번 폭발이 일어났다. 쫓아오던 고블린들은 그대로 폭사당했다.
“…….”
고깃덩이로 변한 고블린들의 시체 위에서 남궁은 다시 기둥에 폭탄을 붙였다.
“이 정도론 부서지지 않는군. 과연 지하철이 전시(戰時)의 대피소나 방공호를 염두하고 만들어졌다더니 과연 튼튼해.”
남궁은 시커멓게 그을렸지만 무너지지 않은 기둥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 역시 지옥문이 열리고 가장 오랫동안 지내왔던 곳이 지하철 안이었으니까.
“몇 번이나 해먹을 수 있겠어.”
쿠그그그그그…….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떨리는 지면이 노선을 따라 고블린 떼들이 달려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철컥- 탁-!!
그는 능숙하게 곳곳에 폭탄을 붙이기 시작했다.
“고블린은 1헤드밖에 주지 않으니 폭탄 하나에 최소 150마리를 한꺼번에 잡아야 본전이라 손해 보는 짓밖에 안 될 것 같지만…….”
[캬가가가가각……!!!]
마치 밀물처럼 몰려드는 고블린 떼를 바라보며 그는 있는 힘껏 옆으로 몸을 날렸다.
쾅……! 쾅!!!
콰가가가강……!!!
설치 폭탄이 터지며 다시 한번 마물의 살점이 사방으로 튀었다.
솨아아악---!!!
지면을 한 바퀴 구르며 바닥을 손바닥으로 짚자 그의 주위로 영혼 병사들이 나타났다.
서걱……!!!
카강! 캉……! 캉!!!
3갈래로 나뉜 통로에 각각 영혼 병사들이 튀어나가며 고블린들을 베어 넘기기 시작했다.
“진짜 목적은 따로 있지.”
마치 파도가 밀려 나가는 것처럼 순식간에 남궁을 중심으로 마물의 붉은 피가 쏟아져 내렸다.
▶ 500마리 이상의 고블린을 사냥하였습니다!!
그 순간 그의 눈앞에 붉은 글씨가 나타났다.
▶ 최초의 위업을 달성하였습니다.
▶ 칭호 : 고블린 사냥꾼을 획득하였습니다.
남궁의 몸에 새하얀 빛이 뿌려지며 빛의 기류가 그를 감싸기 시작했다.
부우우우웅-!!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검을 그었다.
쾅! 콰아앙!! 콰가가강!!!!
설치해 둔 트랩들이 폭음과 함께 터졌고 여기저기에서 고블린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 1,000마리 이상의 고블린을 사냥하였습니다.
▶ 칭호 변경 : 고블린 사냥꾼 → 고블린 학살자
영혼 병사들의 검무(劍舞)가 이어졌다.
▶ 3,000마리 이상의 고블린을 사냥하였습니다.
▶ 칭호 변경 : 고블린 학살자 → 고블린 지배자
마지막 고블린의 목을 베는 순간 남궁의 앞에 바람이 일었다.
▶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바람은 소용돌이를 일으켰고 바닥을 흥건하게 적신 핏물이 소용돌이에 휘말려 붉은 파도를 일으켰다.
촤아악……!!
남궁은 소용돌이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꽈악-
놀랍게도 그 안에 뭔가가 있었다.
낯익은 촉감에 그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있는 힘껏 그것을 잡아당겼다.
녹색 밀랍이 찍혀 있는 양피지였다.
▶ 히든 퀘스트를 획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