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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24/270)

24화

-지난밤 상공에 나타난 차원문이 사라짐과 동시에 종결된 마물의 습격은 자정을 지나 갑작스럽게 또 한차례 일어났습니다.

-서울을 비롯하여 수원, 광주, 강릉, 부산 등 각지에서 마물 떼가 속출하였습니다.

-갑작스러운 상황으로 정부는 빠르게 군병력을 투입하였으나 도시는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하지만 암울한 상황에서도 희망적인 보고가 있었습니다. 이소연 리포터.

-네. 저는 지금 광화문 광장에 나와 있습니다. 가장 많은 마물들이 습격한 서울은 오히려 다른 도시에 비하여 피해가 가장 적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지요?

-바로 마물을 막은 영웅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희 NBN에서 가장 먼저 그들의 신원 정보를 확보하였습니다.

남궁은 흐릿하게 들려오는 앵커의 목소리에 천천히 눈을 떴다.

“일어나셨습니까?”

“……내가 얼마나 잤지?”

“반나절 정도요. 도대체 몇 마리나 잡으신 겁니까?”

“글쎄. 3천 마리가 넘어갈 때부터는 모르겠군…….”

“3천이요? 진짜 할 말이 없네요.”

명훈은 헛웃음을 터뜨리며 그를 바라봤다.

“지하도가 무너지지 않은 게 다행이네요.”

“몰이 구역을 나눴으니까. 지상이 아니라 여러 갈래로 나뉜 지하도라서 가능한 일이었지.”

“하지만 죽을 뻔하신 것 아시죠? 폭탄으로 인한 연기가 자욱했습니다. 형님께서 미리 말씀하신 역 입구에 갔을 때 쓰러져 계셔서 얼마나 놀랐는데요.”

“응. 폭탄을 터뜨리기 전에 이미 고블린들에 의해서 환풍 시스템이 고장 나버렸더라.”

대수롭지 않게 얘기했지만 명훈은 남궁을 향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형님. 헤드를 모으고 강해지시는 것도 좋지만 소민이를 생각하셔야죠. 목숨을 함부로 쓰지는 마십시오.”

“알겠어.”

남궁은 그의 말에 손을 두들겼지만 명훈은 어깨를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못 미더우시더라도 앞으로 이런 일은 제게 맡겨주십시오. 아셨죠?”

“네 목숨도 중요해. 대한민국을 구한 영웅이잖아?”

“……그런 말 하지 마세요. 민망하니까. 형님의 눈속임을 위해서 그런 거 다 압니다.”

그의 대답에 남궁은 피식 웃었다.

“정말 형님 말씀대로 알렉 트라만이 연락 올까요?”

“물론. 이제 겨우 1번째 지옥문이 열렸을 뿐이야. 상황에 잘 적응한 자들도 분명 있어서 고블린 사냥에 나선 사람들도 제법 있겠지.”

하지만 고블린 떼를 상대로 호준과 명훈처럼 대대적인 사냥을 성공한 사람은 없었다.

‘알려진 것은 알렉뿐이지만 녀석이 100여 마리의 고블린을 단신으로 잡았다고 하면…… 나머지 팔무성도 비슷한 수준일 거야.’

사실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긴 했다.

그러나 세계 전역에 나타난 고블린의 수를 생각하면 100여 마리는 그야말로 새 발의 피였다.

‘계시자라 불리는 자들의 힘이 그 정도밖에 안 되니 1번째 지옥문이 몇 년이나 유지될 수밖에 없었지.’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반전되었다.

지옥문이 빠르게 닫혔고, 이후 급작스럽게 나타난 고블린들에 의해 공포가 조성되었지만 크게 본다면 훨씬 더 적은 피해로 마무리된 것이다.

‘물론 그렇다는 걸 알 리 없겠지만…….’

중요한 건 피해의 수치가 아닌 계시자라 칭한 알렉 트라만보다 호준과 명훈이 훨씬 더 많은 고블린을 사냥했다는 것이었다.

“알렉 트라만이 너희 둘과 접선을 요구할 때 아마 나머지 팔무성들도 움직일 거야.”

“알겠습니다. 호준에게 연락이 오면 알려달라고 언질해 뒀습니다.”

“응. 잘했어.”

남궁은 그제야 한시름 놓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1번째 지옥문을 닫고 고블린 웨이브가 끝났으니 2번째 지옥문까지는 조금 여유가 있을 거야.’

전생에서는 2번째 지옥문이 열릴 때까지 1번째 지옥문을 닫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1번째가 닫힌 상황에서 다음 문이 열리는 간격을 가늠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단지 숨을 돌릴 틈이 있길 바라는 것뿐.

“헤드는 오히려 손해로군.”

남궁은 시야에 떠 있는 헤드의 수를 바라봤다.

▶ 잔여 헤드 : 31,300

3천 마리 넘게 고블린을 사냥했지만 오히려 헤드는 8천 이상을 사용하게 되었다.

‘150헤드짜리 폭탄으로 대충 6~70마리 정도씩 고블린을 잡았으니 어쩔 수 없지.’

물론 헤드로도 살 수 없는 보상을 얻긴 했다.

▶ 칭호 : 고블린 지배자

수많은 고블린을 사냥한 자는 고블린의 날렵함을 터득할 수 있게 된다.

칭호를 획득한 자는 민첩이 크게 상승한다.

칭호를 획득하고 난 뒤 남궁은 자신의 몸이 확실히 더 가벼워졌음을 느꼈다.

“에이, 형님. 헤드가 뭐가 중요합니까. 형님은 수천 마리 괴물들 속에서 살아 돌아오신 겁니다.”

아쉬운 그의 표정을 보며 명훈은 말했다.

“알아. 녀석아. 어차피 헤드는 나중에 다시 모으면 된다. 대신 목표한 건 이뤘으니까.”

남궁은 전대 안에서 4개의 룬과 양피지를 꺼냈다.

“최하급 룬 3개와 하급 룬 1개. 경인이가 있었다면 더 얻을 수 있었겠지만 폭탄이 터지는 난리통에 활을 쓰긴 힘들었겠지.”

“전 그 와중에 룬을 주우신 형님이 더 대단한데요?”

그는 피식 웃었다.

“그게 형님께서 말씀하신 퀘스트 스크롤이군요.”

“맞아.”

남궁은 양피지를 바라봤다.

최초로 3천 마리 이상의 고블린을 죽였을 때 드랍되는 퀘스트가 적힌 스크롤이었다.

‘밀랍의 색깔은 녹색.’

고급 등급의 퀘스트였다.

일반, 고급, 희귀, 영웅, 전설의 5단계를 생각했을 때 고급 등급의 퀘스트는 그리 높은 등급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막 1번째 단계가 끝났을 뿐이다.’

사실상 전생의 기억에 비추어 본다면 3천 마리 이상의 고블린을 잡는 업적은 몇 년이 흐른 뒤에나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양피지의 내용은 이따가 애들이 오면 보도록 하자.”

“알겠습니다. 형님께서 주무시는 동안 경인이랑 소민이가 연락 왔었습니다. 새벽에 병원에 잘 도착한 모양입니다.”

“다행이군.”

“중환자실에 계셔서 경인이 아버지께서는 아직 이동이 불가능하다네요. 그래서 거기에 좀 더 있다가 천천히 오라고 했습니다.”

남궁은 명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신촌은 안전해.’

다만 중요한 건 그 안전이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호준이는?”

“아직입니다. 아마…… 인터뷰를 하느라 좀 걸리나 보네요.”

“……인터뷰?”

“크큭. 광화문의 영웅이지 않습니까. 형님은 기절하셔서 모르시겠지만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광화문 광장의 고블린들을 모두 처리하고 나니까 어디서 나타났는지 기자들이…… 어휴.”

“녀석 성격에 짜증 내겠군.”

명훈은 몸을 가볍게 떨었다.

“까라면 까야죠. 지금 난리도 아닙니다. 국내 기자들뿐만 아니라 외신들도 광화문 광장 전투를 대대적으로 보도 중이거든요.”

그의 말에 남궁은 쓴웃음을 지었다.

“상부에서 녀석을 얼굴 마담으로 쓸 생각인가 봅니다. 형님께서 의도하신 대로 알렉이 접선을 원한다면 호준에게 먼저 연락이 오겠죠.”

“좋아.”

명훈의 말에 남궁은 조금 더 몸을 바닥에 기대며 말했다.

-정부는 갑작스러운 이현상에 대하여 긴급 방호팀을 창설. 앞으로 있을 사고를 방지코자 한다 전하였습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긴급 소집. 올해 창설된 특수 대항 센터 소속인 박효주 팀장을 필두로…….

“아. 잡화상에서 하나 샀습니다. 여긴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 건전지로 작동하는 겁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방송에 남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박효주…….’

그는 방송에서 들려오는 낯익은 이름에 잠시 숨을 돌렸다.

‘이제 곧 마물전담팀이 꾸려지겠군. 전생대로라면 1번째 지옥문을 아직 막지 못한 상황이라 계엄령이 선포되고 한참 뒤에나 전담팀이 생기지만…….’

자신으로 인해 미래가 바뀐 지금, 남궁은 훨씬 더 빨리 그녀의 행적을 지켜볼 수 있게 될 거라 생각했다.

‘변경백(邊境伯) 박효주.’

그녀는 대한민국의 수문장과 같은 존재였다.

그녀가 이끄는 대(對)마물전담팀, 참악(慘惡)부대는 처음에는 서울을 중심으로 점차 그 영역을 넓혀 대한민국 전역을 관할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령군단을 만들겠다는 최휘수에 의해서 참악은 무너지고 순식간에 대한민국은 폐허가 되었지.’

그러나 지금 최휘수는 없다.

일곱 뱀의 계시자 자리를 자신이 위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쩌면 그녀의 참악부대는 전생보다 훨씬 더 많은 활동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대한민국에서 믿을 만한 몇 안 되는 인재 중에 한 명이니…… 당분간은 그래도 괜찮겠지.’

전생에는 꽤 많은 일이 그녀와 있었지만…….

지금 상황에선 그녀가 자신을 알 리 없었으니 남궁은 굳이 나설 필요 없다 생각했다.

‘부디 이번엔 오래 살아남길…….’

남궁은 자신과 함께 최휘수의 생체 실험 대상 중 한 명이었던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아빠!!”

그때였다.

고블린 동굴의 문이 열리면서 딸의 모습이 보였다.

“왔니?”

“괜찮아? 명훈 삼촌은요?”

“저기 있잖냐. 걱정 마. 둘 다 멀쩡하니까.”

“으휴. 내가 방송 보고 얼마나 놀라는지 알아? 광화문의 영웅이라고 막 뉴스에서 나오는데 거기에 명훈 삼촌 얼굴이 딱……! 진짜 황당했다고.”

“봤지? 이 삼촌의 솜씨를.”

명훈은 팔을 접어 근육을 보이며 피식 웃으며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

“그런데 아빠는……? 같이 갔었잖아.”

“아빠는 조금 다른 볼일이 있었거든.”

“다른 볼일?”

남궁은 소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기며 경인을 바라봤다.

“아버지는 어떠시니?”

“네. 아직 괜찮으세요. 아저씨 말씀대로 군 병력이 배치되어 있기도 하고…….”

“그래도 불안하지?”

“맞습니다.”

의식이 없는 코마 상태인 경인의 아버지, 전태호 선수는 생명 유지 장치로 간신히 연명 중이었다.

다행히 종로에서 습격을 막을 수 있었던 덕에 아직은 무사하지만, 만에 하나 정전이라도 일어나게 되면 위험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다.

“걱정하지 마.”

남궁은 그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말했다.

“아버지를 구하면 되지.”

“……네?”

“아버지의 의식이 돌아오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있어. 야차 보따리의 엘릭서를 쓰면 가능해.”

그는 엄지손가락을 접어 그에게 보여주었다.

“엘릭서의 가격은 40만 헤드.”

“4, 40만 헤드요? 이제 겨우 몇 천 헤드를 모은 게 고작인데…… 언제…… 그건 불가능한 일이에요.”

가격을 들은 경인이 남궁을 향해 소리쳤다.

“조금 전까지는 그랬지.”

그 순간 그는 경인을 향해 양피지를 던졌다.

▶ 고급 퀘스트를 획득하였습니다.

▶ 히든 퀘스트 『고블린의 금화창고』가 추가됐습니다.

▶ 고블린이 모두 죽은 지금, 주인이 없는 금화 창고가 여의도에 숨겨져 있다는 소문이 있다.

“지금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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