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영국 버킹엄
“알렉. 너튜브에 올라온 영상 봤지?”
“물론이야. 조작이 아니라면 한국엔 대단한 사냥꾼이 둘이나 있다는 것이겠지.”
해와 달의 관망자가 뽑은 계시자, 알렉 트라만은 자신이 머물던 스튜디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강호준이라고 하더군. 현직 군인이라 그런가…… 실력이 뛰어나.”
그의 앞에는 두 명의 남자가 있었다.
가죽 재킷을 입고 있는 흑인은 팔짱을 낀 채로 나지막한 목소리로 알렉에게 말했다.
“단순히 군인이라 실력이 좋다라고만 볼 순 없어. 그가 쓰고 있던 무기를 봤지?”
“물론이야. 한슨.”
“노멀 등급이긴 하지만 가격이 4,000헤드가 넘어. 현 시점에서 살 수 없는 무기야.”
“게다가 그 옆에 있던 자의 무기는 정보조차 없었어.”
나머지 한 사람은 갈색 코트를 입고 있는 여인이었다.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리고 있지만 그녀에게서 풍기는 포스는 절대로 평범하지 않았다.
“거인족의 주머니에 없는 것이었지.”
유럽 지역을 관할하는 대리자 일족인 거인족.
자정이 되어 그들이 나타났을 때를 떠올리며 여자는 몸을 떨었다.
“각 지역마다 대리자 일족이 가지고 있는 물건은 조금씩 다르다고 했어.”
“하지만 그자는 그 검으로 마물을 얼려 버렸다. 속성을 가진 무기는 최소 레어급이야.”
그녀는 알렉에게 말했다.
“우리는 조사를 해볼 필요가 있어. 당신 말대로 8명의 계시자가 있다면 말이지.”
“나를 아직 못 믿는 모양이로군. 요한나.”
“난 무신론자거든.”
한슨과 알렉은 그녀의 말에 헛웃음을 터뜨렸다.
“푸하!! 요한나. 넌 영화가 아니라 TV쇼에 나갔어야 했어.”
“TV쇼도 며칠 전에 찍었어. 빌어먹을 괴물들 때문에 연일 속보만 보도 되는 바람에 결방이 되었지만.”
하지만 웃는 그들과 달리 그녀는 냉소를 지으며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난 농담을 하는 게 아냐. 알렉. 이 빌어먹을 상황이 여기서 끝나고 평범한 생활로 돌아가길 바랄 뿐이지.”
“그건 좀 힘들 거야.”
“칫…… 거짓말이라도 좀 날 위해 해주면 안 돼?”
“우리는 도망쳐서는 안 돼. 나를 선택한 위대한 존재가 그리 말했으니까.”
스르릉…….
그의 검은 세간을 놀라게 한 영상 속 자들의 무기와는 차원이 달랐다.
알렉은 매료되듯 자신의 검을 바라봤다.
“나를 계시자로 뽑은 자는 내게 말했다. 진실을 말하고 인류를 인도하라고.”
“……중증이야.”
요한나의 말에 알렉은 피식 웃었다.
“농담이야. 하지만 그들의 무기가 결코 범상치 않다는 것은 어쩌면 그들이 나와 같은 계시자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있어.”
“만약 그렇다면 강호준이란 자가 아닌 그 옆에 있던 사람일 가능성이 높아. 정보를 알 수 없는 무기. 어쩌면 알렉의 것과 동류일지 모르지.”
“그 남자를 찾으려면 결국은 강호준을 만나야 한다는 것이로군.”
“한순간에 전 세계의 이목이 한국에 쏠렸어. 이건 알렉, 너의 계획에 어긋나는 일인 것 같은데.”
“맞아.”
한슨의 말에 알렉은 고개를 끄덕였다.
“스포트라이트는 언제나 우리 영국이 받아야 해. 오직 우리만이 구원자가 돼야 한다.”
“그들을 어떻게 할 생각이야?”
“일단은 영입을 해봐야지. 실력이야 충분히 확인했으니 우리와 뜻이 맞는다면 다른 계시자들의 손에 들어가기 전에 얻는 게 좋겠지.”
“그 반대라면?”
차르륵-
한슨의 물음에 알렉은 그들의 앞에 커다란 주머니 하나를 내려놓았다.
“게이트가 닫히고 너희들이 고블린들을 사냥하는 동안 나는 던전을 찾았다. 오늘 새벽 구울을 잡고 얻은 보물이다. 15,000헤드로 바꿀 수 있는 금화지.”
“1…… 15,000헤드?!”
“영국 전역의 고블린들을 잡아도 이 정도를 모으지 못할 텐데…… 이거 엄청나잖아!!”
“이건 너희가 쓰도록 해. 오늘 새벽에 잡은 고블린들의 헤드까지 합쳐서 무구를 업그레이드하면 좋겠지.”
꿀꺽-
두 사람은 그의 말을 듣는 순간 기대감에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반대라면 싹을 잘라내야지.”
“크크, 이 정도 헤드라면 싹을 자르고도 남지.”
한슨과 요한나는 쌓여 있는 금화를 보며 자신감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국으로 가자.”
* * *
콰아아아앙---!!!!
콰강!! 콰가강……!!
여의도 지하도로 연결되어 있는 IN몰에서 때아닌 폭발이 일어났다.
평상시였다면 손님으로 가득 찼을 시간이었지만 이곳엔 아무도 없었다.
새벽에 있었던 고블린 사건으로 모든 건물들이 잠정적으로 운영 중단이 된 상태였다.
“후아……!!”
불빛도 없는 어두운 건물 한편에서 숨을 토해내는 소리가 들렸다.
쿵-!!!
바닥에 뭔가를 내려놓자 육중한 무게에 지면이 흔들릴 정도였다.
“더럽게 무겁네요. 허리 나가는 줄 알았습니다.”
“고생했어.”
“그래도 안에 마물들이 없어서 다행이었어요.”
“로드가 죽고 문까지 닫혔으니 남아 있는 고블린들은 아마 없었을 거야.”
어둠 속의 무리는 다름 아닌 남궁 일행이었다.
명훈과 경인은 자신들이 낑낑거리며 들고 온 커다란 상자를 바라봤다.
“열어 볼까요?”
“당연히 그래야지.”
경인의 물음에 명훈은 눈썹을 씰룩이며 입맛을 다셨다. 남궁의 허락이 떨어지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끼이이익-
“……!!!!”
“……!!!!”
낡은 잠금쇠의 소리와 함께 상자가 열리자 그 안에는 수북한 금화가 쌓여 있었다.
“이, 이게 얼마냐?”
명훈은 두 손 가득 금화를 움켜잡으면서 말했다.
▶ 30 금화를 획득하였습니다.
▶ 금화를 헤드로 교환할 수 있습니다.
▶ 교환하시겠습니까?
“오…….”
명훈은 자신에게 울리는 알림을 보며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이거 금화를 꺼내면 헤드로 바꿀 수 있는 모양인데요? 경인아, 뭐해! 어서 전부 꺼내!”
“아, 넵! 네넵!!”
경인은 명훈의 말에 황급히 손으로 금화를 퍼내려 했다.
“그렇게 해서는 끝도 안 날 거다.”
하지만 그때, 남궁이 그의 어깨를 잡았다. 그러고는 상자의 끝을 잡은 채 꾸욱 힘을 주었다.
▶ 고블린의 금화 상자를 확인합니다.
▶ 금화 : 550,000개
▶ 금화를 헤드로 교환할 수 있습니다.
▶ 교환하시겠습니까?
“오…… 오십오만이요?!”
명훈은 나타난 알림의 숫자를 보며 몇 번이나 자신의 눈을 다시 비볐다.
“뭐, 이 정도지.”
경악을 금치 못하는 두 사람과 달리 남궁은 아무렇지 않게 상자 안의 금화를 회수했다.
“자. 받아.”
그러고는 경인에게 뭔가를 건넸다.
다색의 빛깔을 뿜어내는 액체가 들어 있는 작은 유리병이었다.
“엘릭서다. 아버지께 가져가.”
아무렇지 않게 그 자리에서 40만 헤드를 써버렸지만 남궁은 전혀 아까운 기분이 아니었다.
“이게…… 진짜 저희 아빠를 깨워줄까요?”
떨리는 경인의 목소리에 남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명훈아. 혹시 모르니 함께 다녀와. 별일 없겠지만 절대로 조심해야 한다. 잃어버리면 안 돼.”
그는 허리에 차고 있던 드워프의 전대를 풀어 그에게 건넸다.
“이 안에 넣어서 가면 깨질 위험은 없을 거야.”
“형님은요? 같이 안 가십니까?”
“나는 따로 할 일이 있어. 가는 길에 소민이도 데리고 가. 전태호 선수께는 나도 인사를 하고 싶으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신촌에서 뵙죠.”
명훈은 남궁이 준 전대를 허리에 차고는 조심스럽게 엘릭서를 그 안에 집어넣었다.
“그래.”
두 사람을 보내고 난 뒤 남궁은 몸을 돌렸다.
“지하철도 한동안 운행하지 않는 것 같고…… 걸어서 가려면 좀 귀찮으니 어쩔 수 없나?”
그는 엘릭서를 사고 난 뒤에 열어 둔 야차 보따리의 목록을 살피며 말했다.
“이동용으로 1만 헤드짜리 귀환석을 사는 건 지금으로서는 사치지.”
지정된 장소로 워프시켜 주는 귀환석은 때로는 위급한 상황에 탈출용으로도 사용돼서 나중에는 필수 아이템 중 하나였다.
‘하지만 아직은 필요 없겠지.’
남궁은 창을 닫고는 음음 하고 목을 가다듬었다.
“규류.”
그러고는 야차의 이름을 불렀다.
“내 목소리가 들리는 거 다 안다. 어서 튀어와.”
기대와 달리 흐르는 정적을 그를 조금 민망하게 만들었지만, 남궁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한번 천장을 향해 말했다.
“오지 않으면 후회할 텐데? 뭐, 싫다면 어쩔 수 없지. 현류를 만나러…….”
솨아아악……!!!
그 순간 그의 앞에 공간이 일그러졌다.
“아, 진짜. 이러시면 곤란하다고요.”
일그러진 틈 사이로 나타난 규류는 남궁을 향해 짜증 섞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현류 녀석의 이름은 이제 들먹이지 않기로 하셨잖습니까. 진짜 치사하게…….”
어둠 속에서 나타난 야차는 들고 있던 거대한 몽둥이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게다가 아무리 대리자 일족의 계약자라고 해도 이렇게 일족을 소환수 부리듯 부르는 건 안 됩니다. 다른 대리자들이 난리를 칠 거라고요.”
“걸어서 을지로까지 너무 멀어. 차라리 상점을 우리 집 옆으로 옮기는 건 어때?”
“……딱히 거기가 좋아서 있는 게 아닙니다. 거기에 있어야 할 의무가 있어서 그런 거지.”
규류는 남궁의 말에 입술을 삐쭉거리며 대답했다.
“여튼 아직 대리자 일족들은 계약자가 없어 이번 한 번은 넘어 가겠지만, 앞으로 저를 보시려면 을지로로 오십시오. 아셨죠?”
“그래. 알겠어.”
“무슨 일로 저를 부르신 겁니까?”
“혹시 누가 무슨 물건을 샀는지 알 수 있나?”
규류는 그의 물음에 단박에 뭔가 재밌는 일이 벌어질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보따리 속 물건의 구매자를 알고 싶으시다는 거지요? 불가능한 건 아닙니다. 다만 자하상인의 눈이란 걸 쓰셔야 합니다. 그럼 과거의 거래 기록을 볼 수 있지요.”
그는 품 안에서 기묘하게 생긴 붉은 눈동자 같은 것을 보였다.
“야차 보따리 이외에 다른 대리자 일족의 것들도?”
“레어 이상의 물건 중 일족만이 가지고 있는 물건이라면 불가능 합니다.”
“너희 일족의 귀면피(鬼面皮) 같은 것을 말하는 건가?”
“네. 맞습니다. 그런 것을 제외한다면…… 가능하겠지요. 수량이 제한되어 있어 모든 일족이 공유하고 있으니까요.”
규류는 무슨 의민지 알겠냐는 듯 남궁을 향해 눈썹을 씰룩였다.
“다만 자하상인의 눈을 쓰시려면 헤드를 치러야 하겠지요. 가격이 만만치 않습니다만?”
“얼마지?”
“150,000헤드입니다.”
“비싸군.”
“남의 생활을 훔쳐보는 것치고 이 정도면 싼 편이죠. 안 그렇습니까.”
남궁은 그의 대답에 쯧- 하고 혀를 찼다.
하지만 아쉬워하는 표정과 달리 그의 속내는 웃고 있었다.
‘다행이로군.’
금화 상자에서 얻은 헤드가 아니었다면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여기.”
“이제 고작 시작에 불과한데 만 단위의 헤드를 아무렇지 않게 쓰는 사람은 아마 남궁 님뿐일 겁니다.”
그가 헤드를 지불하자 규류는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그가 놀란 부분은 헤드를 쓰는 모습이 아닌, 그만큼의 헤드를 모은 남궁에 대해서였다.
‘천 마리 단위로 고블린을 잡아야 갈 수 있는 금화 창고는 사실 앞으로 몇 년은 걸려야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남궁은 규류의 생각을 보란 듯이 뒤엎었다.
‘아무리 회귀를 했다고는 해도 신체 능력은 아직 크게 뛰어나지도 않아.’
기껏해야 그가 먹은 룬은 최하급 기민한의 룬석뿐이었으니까.
기본적인 스펙이 있지만 그의 나이를 고려하면 국가대표 운동선수들보다 뛰어나게 좋다고 볼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물 사냥에 그가 압도적인 능력을 보여 주는 것은 25년간의 경험 이외에도 다른 이유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전투에 대한 자질.’
규류는 그 이유를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괜히 25년을 살아남은 게 아니야.’
그는 남궁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회귀자이기 때문에 뛰어난 것이 아니었다. 뛰어났기 때문에 회귀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저…… 그런데 말입니다. 구매자를 알아서 무엇을 하시려는 겁니까?”
“명훈이와 호준이가 꽤나 요란하게 일을 벌여뒀으니 이제 곧 계시자들은 좋든 싫든 간에 움직일 수밖에 없을 거야.”
남궁은 규류에게서 받은 작은 단안경을 한쪽 눈에 씌우며 묘한 웃음을 지었다.
“먼 길까지 오는데 어떤 손님이 오는지 알아야 관광이라도 시켜 드리지.”
화아아악……!!
그 순간, 그가 낀 단안경으로 보따리 안 아이템들의 구매자들이 뜨기 시작했다.
“관광이요? 이 상황에서요……?”
하지만 남궁의 대답은 규류의 의심을 단번에 날아가게 만들기 충분했다.
“역관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