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화 (26/270)

26화

▶ 자하상인의 눈을 사용하였습니다.

▶ 상품의 구매자를 찾을 수 있습니다.

▶ 지속 시간 : 1분.

15만 헤드나 하는 아이템이 고작 1분 사용하고 사라진다는 건 남궁에게도 속이 쓰린 일이었기에 그는 서둘러 손을 움직였다.

그는 가장 오랜 시간을 살아남았지만 처음부터 강했던 것은 아니니까.

시간이 지난 뒤 홀로 남은 세계는 누구보다 완벽하게 알았지만, 초반에는 살아남기 급급해 정세를 파악하는 힘이 부족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초반의 계시자들의 성장과 선택에 대한 것이었다.

‘그것을 알게 되면 놈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비싼 값을 치르겠지만, 그로 인해 미래에 대응할 수 있을 터.

넘버링 230.

이름 : 별해검

등급 : 레어(최초)

▶ 판매가 완료되었습니다.

▶ 구매자 : 알렉 트라만

아이템의 효과는 확실한 듯, 보따리 안에 있는 물건들의 구매자 이름이 나타났다.

‘전생대로 알렉이 해와 달의 관망자에게 선택받으면서 별해검을 받은 모양이로군.’

사실 어차피 알고 있는 사실이었기 때문에 놀랄 일은 아니었다.

넘버링 498.

이름 : 크로논의 시계태엽.

등급 : 레어(최초)

▶ 판매가 완료되었습니다.

▶ 구매자 : 니나가와 에리카

남궁의 손가락이 하나의 아이템에서 멈췄다.

그녀는 예지 능력을 가진 안갯속 길잡이의 계시자.

‘내 기억이 맞다면 레어 등급의 시계태엽은 아마 하루 1번밖에 미래 예지를 쓸 수 없을 거야.’

게다가 태엽으로 볼 수 있는 미래는 소지자가 알고 있는 사람에 한정되어 있다.

‘아직 그녀는 내 존재를 알지 못할 거야. 뿐만 아니라 나머지 계시자들도 찾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지.’

그런 상황에서 그녀가 시계태엽을 사용할 상대는 한 명뿐이었다.

‘스스로 계시자라 말하며 얼굴을 내민 알렉 트라만. 그녀가 예지 능력을 쓴다면 아마 녀석뿐이겠지.’

“그리고…….”

남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넘버링 2119.

이름 : 붐 블라스터

등급 : 매직(최고)

▶ 마도 공학국가라 불린 알체스터 공하국에서 만들어진 전투 병사용 건틀릿.

▶ 판매가 완료되었습니다.

▶ 구매자 : 한슨 마티오

넘버링 3218.

이름 : 구미호의 꼬리

등급 : 매직(최고)

▶ 아홉 개의 꼬리를 가진 여우의 털을 엮어서 만든 채찍

▶ 판매가 완료되었습니다.

▶ 구매자 : 요한나 화이트

“역시 알렉은 이 둘을 선발한 모양이로군.”

구매자의 이름을 확인한 남궁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들에게 무구를 사도록 헤드를 준 것을 보니 예상대로 영국에 생성된 던전은 알렉이 가져간 것 같고…….’

남궁은 알렉 트라만의 쌍익(雙翼)이라 불리는 한슨과 요한나의 얼굴을 떠올렸다.

‘저들까지 함께 한국으로 넘어온다면 조금은 귀찮아지겠어.’

주먹을 무기로 싸우는 권사와 채찍을 사용하는 편사인 두 사람은 계시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실력을 가진 자들이었다.

‘호준이의 도움을 받는다 하더라도 명훈이랑 둘이서 한슨 한 명을 상대하는 게 전부일 거야.’

레어 무기를 가진 알렉의 실력이야 두말할 것 없으니 그를 상대 할 사람은 자신뿐이었다.

‘그렇게 되면 경인이와 소민이가 요한나를 맡아야 한다는 건데…….’

아무리 두 사람이 뛰어난 자질을 가졌다고는 하지만, 바로 며칠 전만 하더라도 겨우 중학생과 고등학생이었을 뿐이다.

‘그에 비해 요한나는 살수 출신이다.’

살인에 있어서 전문가.

두 사람이 그녀를 당해낼 리 없었다.

“에리카에게 떠넘기면 좋겠지만…… 그녀는 알렉의 행보를 예지한다 하더라도 굳이 녀석과 마찰을 일으키려 하지는 않을 거야.”

아마도 그녀는 알렉을 통해 호준과 명훈이 중 진짜 계시자가 있는지를 알아내려 할 것이었다.

“흐음…….”

남궁은 판매된 아이템의 목록을 내리며 생각했다.

“……어?”

그 순간, 그의 눈에 하나의 아이템이 들어왔다. 그리고 【자하상인의 눈】의 지속 시간이 끝나기 바로 직전, 구매자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 구매자 : 이고르

“이 이름…….”

낯익은 이름을 본 순간 그는 뭐라 할 말이 없어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이 녀석이 있었지.”

남궁은 어쩐지 묘한 미소를 지었다.

* * *

“서울의 공기는 별로군.”

“뭐, 영국과 그리 다르지도 않는 것 같은데.”

“다르지 않아? 한슨, 넌 아무래도 병원에 진료를 한 번 받아야겠어.”

비밀리에 대한민국에 입국한 알렉 일행은 공항에서 출발한 차량에 몸을 싣고 시내로 들어오고 있었다.

“……놀랍군.”

“뭐가?”

“우리와 똑같이 지옥문이 열리고 마물의 습격을 받았어. 하지만 영국은 수천 명의 사망자와 함께 큰 피해를 입었지.”

알렉은 창밖으로 여전히 화려하게 켜져 있는 도시의 불빛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도시 역시 폐허 수준으로 무너진 곳이 많아. 런던만 하더라도 우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빅 벤(Big Ben)이 무너지고 말았으니까.”

런던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조형물 중 하나인 시계탑이 고블린들의 습격으로 인해 부서졌던 당시를 떠올리며 알렉은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왕실뿐만 아니라 의원들 중 그 누구도 네 말을 귀 기울여 들은 자는 없었으니까.”

한슨의 말처럼, 아무리 그가 인지도 있는 배우라 할지라도 당장 내일 세상이 멸망할지 모른다는 얘기에 군을 움직일 수 있을 리 없었다.

“그건 여기도 마찬가지였을 거야. 하지만 봐봐. 서울 역시 피해를 입긴 했지만 다른 도시들에 비한다면 정말 미비한 수준이야.”

“조치가 훌륭했다는 건 인정해. 고블린들이 지하로 이동한다는 것을 포착하고 마치 몰이를 하듯 나머지 길목을 막았으니까.”

화르르륵……!!

알렉이 손바닥을 펼치자 그 위로 붉은 구슬이 하나 나타났다.

“오호…….”

“그게 스킬이란 건가?”

두 사람의 물음에 알렉은 고개를 끄덕였다.

“태양목(太陽目)이라고 한다. 주위에 기준 이상의 힘을 가진 자들을 찾아낼 수 있어. 나를 선택한 해와 달의 관망자께서 내린 두 개의 능력 중 하나야.”

그가 붉은 구슬을 자신의 이마에 가져가자 놀랍게도 구슬이 스며들며 마치 제3의 눈처럼 붉게 타올랐다.

화아악……!!

순간, 그의 기운이 도시 전체를 감쌌다.

‘하나, 둘, 셋, 넷…….’

눈을 감자 그의 시야가 검게 변하면서 마치 위성사진을 보는 것처럼 곳곳에 불빛들이 나타났다.

‘뭐, 뭐야? 이 숫자는?’

계속해서 나타나는 불빛들에 알렉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태양목으로 탐지할 때 걸 수 있는 조건은 하나.’

그가 제한한 조건은 혼자서 고블린 50마리를 사냥할 수 있는 자를 찾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의 시야에 나타난 불빛의 수는 여덟.

‘내가 탐색할 수 있는 범위는 지금 상황에선 서울 정도 크기가 한계일 것이다. 그런데 서울 안에서만 그 정도의 능력자가 8명이나 된다고?’

물론 그의 스킬은 완벽하지 않다.

제한할 수 있는 조건이 하나라는 것은 그만큼 나머지 변수에 대응하지 못한다는 의미였으니까.

‘현 상황에서 가장 최선의 조건이지만 사실 고블린 50마리를 상대 할 수 있다, 라는 건 빈틈이 많아.’

고블린과 어떤 방식으로 싸울 수 있느냐에 대한 제한을 둘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신체 능력이 뛰어난 격투기 선수에서부터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전략적으로 싸울 수 있는 전술가까지.

사냥의 방식은 다양했고 그런 세부적인 것까지 나누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고블린의 숫자를 늘린 건데…….’

고블린 50마리는 격투기 선수나 군인이라 하더라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불가능한 숫자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고블린의 수를 너무 늘렸다가는 아무도 탐지되지 않을 수 있으니…….’

알렉은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생각보다 너무 많아.’

그는 영국을 떠나기 전 런던에서 이 스킬을 사용해 본 적이 있었다.

그 당시 그의 탐지에 나타난 숫자는 모두 4명이었다. 그중에 3명이 바로 자신과 한슨, 요한나였고.

“영상을 보니 광장으로 나온 고블린의 수가 많긴 했지만 다른 도시에 비하면 턱없이 적었어. 기껏해야 수백에 불과했지.”

“그런데?”

요한나는 알렉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런던에 나타났던 고블린들의 수는 수천 마리였어. 만약 생성 된 마물의 숫자가 비슷했다면 서울에도 그 정도의 수가 나타났을 가능성이 높아.”

“흠…… 그렇겠지.”

“입구가 막혔다면 나머지 고블린들이 지하에 갇혀 있었겠지. 그렇다면…… 그 많던 고블린들은 어떻게 죽인 걸까?”

그녀는 그의 의중을 단박에 파악 할 수 있었다.

“당신 말은 광장의 그 두 사람 이외에 다른 조력자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거지?”

“그래. 강호준의 옆에 있던 신원불명의 남자를 우리는 계시자로 예상하고 있었지.”

“그런데 그자보다 더 많은 고블린을 사냥한 다른 사람이 있다?”

한슨이 그들의 대화를 다시 한번 곱씹었다.

“어쩌면 그자 이외에 또 다른 계시자가 있을지도 몰라.”

“대한민국에 두 명의 계시자가 존재한다는 뜻이야?”

알렉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그렇진 않을 거다. 나를 선택한 위상이 말하길, 위상에게도 영역이 있어 같은 지역에서 계시자가 탄생하지는 않는다고 했어.”

“그 말은 타국의 계시자가 이곳에 있을 수 있다는 뜻인데…….”

“조심해야겠군. 어쩌면 그 둘이 서로 조력 관계일 수도 있으니까.”

한슨의 말에 알렉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이이이잉…….

그때였다.

알렉의 핸드폰이 울렸다.

“쉿.”

발신자 번호 제한으로 걸려온 전화에 그는 살짝 굳은 얼굴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안갯속 길잡이의 계시자가 지금 당신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조심하십시오.

“……누구십니까?”

뚜- 뚜- 뚜-

“자, 잠깐. 여보세요!”

정체불명의 핸드폰 너머로 들린 단 한마디는 알렉의 마음을 흔들기 충분했다.

‘안갯속 길잡이? 내가 알기로 분명 그 위상의 계시자는 예지(豫知) 능력을 가진 자일 텐데…….’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

사기급의 힘이지만 그 역시 자신과 마찬가지로 아직 완벽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능력을 쓰더라도 기껏해야 한두 번일 터.’

다만 방금 전 목소리의 말이 진짜라면, 길잡이의 계시자가 지금 자신이 한국에 왔다는 것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요한나.”

알렉은 눈을 흘기며 그녀를 불렀다.

“응. 무슨 일이야?”

“강호준과 약속한 시간이 몇 시였지?”

“앞으로 다섯 시간 뒤. 왜?”

“시간을 앞당겨야겠어. 그자가 본 미래가 달라지도록 말이야.”

“그자?”

“미래를 볼 수 있는 자가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설사 미래를 볼 수 있다 하더라도 나를 막을 수는 없지.”

그 순간 알렉은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 * *

“뭐, 거짓말은 아니니까. 니나가와 에리카가 널 주목하고 있다는 건 사실이지.”

남궁은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놀랍게도 그의 핸드폰엔 팔무성의 전화번호가 모두 저장되어 있었다.

“주시하고 있는 장소가 대한민국이 아니라 일본 교토라는 점이 다르긴 하지만 말이야.”

“형님. 연락이 왔답니다. 접선 시간과 장소를 바꾸겠다고 하네요. 어떻게 할까요?”

예상대로였다.

명훈은 호준의 메시지를 확인하고 남궁에게 보고했다.

“시간은 1시간 뒤. 장소는 여의도, 63스퀘어.”

“알겠습니다.”

“접선자는 알렉 혼자서. 만에 하나 다른 자가 있다면 그건 다른 의중이 있다고 판단하겠다고 해.”

남궁의 말에 명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바로 호준에게 연락했다.

“그런데 괜찮을까요? 형님 말씀대로 예지 능력을 가진 에리카란 자가 알렉을 주시하고 있다 하더라도…… 어차피 이곳에 없잖습니까.”

“없어도 상관없어. 중요한 건 알렉이 그녀가 이곳에 있다고 믿게 하는 것이니까.”

남궁은 그의 말에 묘한 웃음을 지었다.

“녀석은 소심하고 의심이 많지. 절대로 영웅이 될 그릇이 아니야.”

“그렇군요.”

“의심이 커지면…… 거짓도 진실이라고 믿게 되거든. 그리고 그건 에리카 역시 마찬가지가 될 거야. 볼 수 있는 미래는 한정되어 있고, 그녀는 우리가 만든 미래를 보게 될 거야.”

‘그 미래를 보게 된다면 아무리 뒤에 숨어 훔쳐보기만 하려 해도 결국은 움직일 수밖에 없을 거다.’

“알렉이 시간과 장소를 바꾼 시점에서 이미 우리가 만든 판으로 뒤집혔다. 그자를 주시하고 있어. 놈이 움직인다면 에리카 역시 곧 이곳으로 온다는 뜻일 테니까.”

“이고르란 자 말입니까?”

“그래. 불곰이란 별명을 가진 그자는 에리카의 수하 중 한 명이거든.”

남궁은 말했다.

“어쩌면 이미 이곳에 들어와 있을지도 모르고.”

“형님 말씀대로라면…… 계시자만 무려 3명입니다. 모두 이곳에 모이게 된다면…… 소란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오히려 반대가 될 거야. 녀석들은 서로를 견제하다 가장 큰 변수를 놓치고 말거야.”

“그게 뭐죠?”

“2번째 지옥문.”

“……!!!”

“남의 땅에 들어왔으니 대가는 치러야지.”

남궁의 눈빛이 빛났다.

“녀석들은 우리 대신 대한민국을 지키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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