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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화 (28/270)

28화

부웅--!! 퍽!! 

이고르의 육중한 주먹이 기둥을 후려쳤다.

기둥이 움푹 들어가며 주먹 자국과 함께 파편들이 사방에 튀었다.

“후웁……!”

불곰이라는 별명답게 인간의 완력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힘이었다. 하지만 그런 괴물 같은 힘에도 내지를 주먹을 회수하지 못한 채 그는 고개를 떨구었다.

“네 주인에게 전해라. 열차를 타려면 줄을 똑바로 서야지. 지금 지옥행을 타려고?”

“크르르…….”

거대한 육체가 그대로 무너졌다.

갈비뼈 안쪽으로 깊게 파고든 검을 뽑아 들며 알렉이 그를 밀치며 일어섰다.

“그리고 네놈들 역시 마찬가지다. 너희들 뒤에 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짓을 벌인 대가를 치르게 될 거라고.”

“저 새끼 완전 괴물이네.”

“그래. 정신 똑바로 차려. 고블린 같은 것과는 차원이 달라. 한 방에 당한다.”

“그건 저 덩치를 보니 알겠네요.”

쓰러진 이고르를 보며 호준과 명훈은 긴장한 얼굴로 자세를 취했다.

휘익-

호준이 양손에 쥔 톤파를 한 바퀴 돌리며 가볍게 뛰기 시작했다.

‘형이 왼쪽. 제가 오른쪽.’

두 사람은 눈짓만으로 대화를 나누었고 누가 뭐라 할 사이도 없이 그들은 양쪽 방향으로 흩어졌다.

“……!!!”

호준의 톤파가 먼저 알렉을 노렸고 그의 공격을 막는 순간 명훈의 검이 뒤를 노렸다.

카앙!

단발마의 비명처럼 날카로운 공명음이 터지자 호준의 톤파가 깨끗하게 잘려 나갔다.

부웅---!!

알렉의 별해검은 속도를 늦추지 않고 그대로 그의 목을 노렸다.

“조심해!!!”

“조심해야 할 건 네놈이다.”

명훈의 외침이 들렸고 알렉은 호준을 공격하던 검을 뒤로 당기며 기다렸다는 듯 위에서 아래로 검을 그었다.

호준을 노린 공격은 미끼였다.

애초에 처음부터 그가 노렸던 것은 명훈이었다.

카강--!!!

명훈의 검과 별해검이 서로 부딪혔다. 검날이 맞물리면서 날카로운 스파크가 튀었다.

“내 검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적어도 네 녀석의 목은 가져가마!!”

알렉이 있는 힘껏 검을 그었다.

명훈의 검에 대한 정보는 없었지만 그는 자신의 무기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위상에게 선택받은 그에게 수여 된 무기였다.

콰아아아앙!!!!

하지만 요란한 굉음 뒤로 검을 내려친 알렉의 얼굴이 굳어졌다.

“……과연 레어 등급의 검이로군.”

알렉의 공격을 막은 명훈은 그대로 검을 놓으며 그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액션 연기는 좀 배웠나 본데. 어설퍼. 무기만 믿고 자신만만하면 안 되지. 세상은 실전인데. 안 그래?”

퍼억-!!

그의 주먹이 알렉의 허리에 박혔다.

“컥!!”

알렉의 허리가 기억자로 꺾이는 순간 명훈은 무릎이 다시 한번 그의 가슴을 쳐올렸다.

퍽! 퍽! 퍽!!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알렉의 몸이 사방으로 흔들렸다.

“……어떻게?”

황급히 뒤로 물러난 알렉은 입가에 피를 잔뜩 머금은 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너만 좋은 무기를 가진 건 아니야.”

‘……검이 다르다?’

그 순간 알렉은 명훈의 검이 영상 속에서 봤던 새하얀 속성검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전에 쓰던 검도 평범한 게 아니었어. 그런데 그 짧은 사이에 별해검과 동급의 무기를 얻는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였다.

“너…… 네 위에 다른 자가 있는 것이었군.”

명훈은 그의 말에 씨익 웃기만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대답은 충분했다.

“후우…….”

‘공기가 바뀌었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자신을 바라보는 알렉을 보며 명훈의 본능이 위험을 외쳤다.

“나 알렉 트라만이 제대로 농락을 당했어.”

저벅- 저벅- 저벅-

자세를 잡지도 않은 채 알렉은 마치 활보하듯 그를 향해 걸어왔다.

‘저 검 말고…… 또 다른 게 있는 건가?’

오히려 무방비 상태가 되지 섣불리 공격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탁-!!

명훈은 바닥에 떨어진 검을 발로 차 올려 잡으며 뒤에 있는 호준을 슬쩍 바라봤다.

“흐아아압!!”

반토막 난 톤파를 몽둥이처럼 움켜잡은 호준이 그를 향해 톤파를 휘둘렀지만 알렉은 여유롭게 그의 공격을 피했다.

“내 액션이 연기처럼 보이던가?”

“……!!!”

“그렇다면 유감이군. 나도 제법 능숙하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우드득……!!

알렉이 호준의 팔을 비틀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두터운 그의 팔이 그대로 빠진 듯 맥없이 떨어졌다.

“크아악!!”

호준의 비명과 함께 알렉이 그의 머리를 바닥에 있는 힘껏 내려찍었다.

“SLS 부대라고 들어봤는지 모르겠군.”

“설마…… 몇 년 전에 해체된 암살부대?”

“과연 현직 군인답군. 맞아. 나의 증조부께서 만드신 것이지.”

알렉은 호준의 뒤통수를 즈려밟으며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내가 뽑은 저 둘도 그 부대 출신이야.”

콰아아앙---!!

취이익……!!

순간 건물의 문이 부서지며 연막이 뿌려졌다. 가려진 시야 뒤로 검은 인영 2개가 난입했다.

퍼억-!!!

반응을 할 새도 없이 명훈의 뒷목을 가격하는 둔탁한 타격에 그는 그 자리에서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알렉. 함정이야. 일단 물러서는 게 낫겠어.”

“퇴로는 확보해 뒀어. 가자.”

“알아. 하지만 마무리는 확실하게 해야지. 날 농락한 대가는 치러야지 않겠어? 가기 전에 저들의 목을 자르겠다. 놈들의 배후에게 주는 선물이니까.”

한슨은 그의 말에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굳이 적을 만들 필요 있을까? 저 덩치. 나도 아는 자다. 러시아 킬러단 자가트(закат)에 몸을 담았던 자야. 저런 자가 모시는 자라면…… 결코 평범한 자는 아니다.”

“그래서? 우리가 겁이라도 먹어야 한다는 뜻인가?”

“그게 아니라…….”

“저놈의 입에서 배후의 이름이 나왔다. 에리카라고 했던가? 돌아가면 누군지 알아내.”

알렉은 바닥에 쓰러진 명훈의 멱살을 잡아들어 올렸다.

“……감히 나를 물 먹여?”

“크, 크큭. 대배우의 진짜 모습이 암살 부대의 수장일 줄이야. 팬들이 아주 좋아하겠는걸?”

“걱정 마. 네놈도 이제 저승에서 내 팬이 될 테니까. 내가 돌아가게 되면 너희 셋의 죽음 따위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해줄 테니.”

“그런데 어쩌냐.”

그 순간 명훈은 있는 힘껏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씨익 웃었다.

“너 못 돌아갈걸?”

“……뭐?”

쩌적……! 쩌저저적……!!

그때였다.

갑자기 태양이 사라진 듯 짙은 어둠이 그들을 덮쳤다.

“시간 다 됐다.”

동시에 창밖으로 거대한 눈동자 같은 것이 나타나더니 서서히 반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끼에에에엑---!!!]

“큭?!”

“이, 이게…….”

고막을 찢을 듯한 날카로운 포효가 들리자 건물 안에 있던 사람들은 귀를 막으며 주저앉고 말았다.

▶ 두 번째 축제가 시작되었습니다.

알림이 그들의 머릿속에 울렸다.

▶ 살아남으십시오.

알렉은 명훈을 밀치고서 창문으로 뛰어가 밖을 바라봤다.

“……빌어먹을!!!”

거대한 눈동자와 같은 지옥문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마물들이 보였다.

삐리리리리---!!

그 순간 핸드폰의 벨 소리가 들렸다.

툭-

“……?”

그 순간 명훈이 그에게 핸드폰을 던졌다.

‘당했다.’

발신자 표시 제한으로 번호조차 보이지 않았지만 알렉은 핸드폰 너머에 있는 자가 누구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들었지? 돌아가려면 열심히 싸워야 할 거야.

“……네놈이로구나.”

-맞아. 널 이곳으로 초대한 사람이지.

“가만히 두지 않겠어!!!”

빠득--!!!!

남궁의 말에 알렉은 이를 갈며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그것도 살아남은 뒤에나 가능한 일이겠지. 어서 서둘러야지. 안 그래?

“이 개새끼야!!!”

콰직!!!

알렉은 신경질적으로 소리치며 핸드폰을 집어 던지고서 발로 밟았다.

“저 새끼들 모두 죽여 버려!!”

슉--!!!

그때였다.

“피해!”

요한나가 몸을 날리며 알렉을 밀쳤다.

“큭?!”

쓰러진 알렉은 조금 전 자신이 있었던 자리에 박힌 화살을 바라봤다.

‘저격?’

주위에 이 정도로 높은 고층 빌딩은 없었다.

‘밑에서 쏴서 이 안으로 맞혔다는 건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가능할 리가…….’

높이만 해도 수백 미터였다.

게다가 창의 색깔도 외부에서 안을 확인하기 어려운 환경.

꿀꺽-

알렉은 과연 지금 화살이 정말로 자신이 피한 것인지, 아니면 일부러 빗맞힌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물러난다. 우리 쪽이 불리해.”

그는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한슨과 요한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괜찮습니까. 형님.”

“응. 하지만 두 번은 못할 짓이야.”

명훈은 알렉에게 얻어맞은 턱을 손으로 만지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 * *

“……정말 당신 말대로 차원문이 열렸네요.”

니나가와 에리카는 상공에 떠 있는 거대한 눈의 형상을 한 지옥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물론.”

“아무리 회귀자라 하더라도 문이 열리는 시기까지는 알 수 없을 텐데…… 도대체 무슨 요술을 부린 거죠?”

“신이 아닌 이상 내가 저 빌어먹을 문이 언제 열릴지 어찌 알겠어.”

퍼엉---!!

그 순간 새하얀 연기와 함께 시간이 멈춘 듯 모든 것이 정지되었다.

두 사람이 앉아 있는 공간만이 마치 다른 경계가 된 것같이 배제 된 것이다.

“하지만 회귀자이기에 알 수 있는 방법은 있지.”

“……그게 뭐죠?”

“당신도 알 거야. 1번째 지옥문이 끝나고 대륙 곳곳에 던전이 생성 되었지.”

에리카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구울왕의 묘터를 말씀하시는군요. 물론입니다. 일본 역시 그곳을 공략했으니까요.”

“맞아. 바로 계시자들을 포함하여 살아남은 강자들이 던전을 발견하고 그곳을 공략했지.”

“그런데 그게 이것과 무슨 상관이죠?”

“2번째 지옥문이 생성되는 데엔 한 가지 조건이 있거든.”

“그게 뭐죠?”

“바로 생성된 모든 던전이 공략 되었을 때 나타난다는 점이지. 그렇다면 과연 내가 어떻게 2번째 지옥문의 개방 시기를 알았느냐…….”

남궁은 그녀를 바라보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구울왕의 묘터를 가장 마지막으로 공략한 나라가 바로 일본이거든. 당신이 여기에 있다는 건 공략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하겠지.”

“설마…… 저희가 던전을 공략하는 것을 기다리셨다는 말씀입니까?”

“뭐, 편할 대로 생각해.”

에리카의 물음에 남궁은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제가 미래를 보는 눈을 너무 맹신한 모양이군요. 회귀의 기억을 이런 식으로 쓸 것이라곤 상상도 못 했습니다.”

그녀는 남궁의 반응에 헛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당신은 미래를 볼 필요도 없이 이미 미래를 알고 있는 방법을 가진 자였는데 말이죠.”

“글쎄. 지금의 미래를 보는 당신의 예지와 나의 경험을 비교하지 마.”

화르르륵……!!

그 순간 남궁의 등 뒤로 영혼 병사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딱히 내 쪽에서도 도박이었으니까. 현재는 현재. 내 기억과는 절대로 같지 않아. 지금도 그렇잖아? 전생에 내가 당신과 만난 건 수년은 지난 뒤인데.”

“제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별거 없어. 나와 함께 2번째 지옥문을 닫는 것. 지금의 나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이거든.”

“그 말은…… 2번째 월드 보스의 보상을 당신이 차지하겠다는 뜻이군요.”

“너희들만의 힘으로는 어차피 불가능한 일이다. 나를 돕는다면 콩고물이라도 얻을 수 있으니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지.”

“1번째 문의 보스를 사냥한 것도 당신이었군요.”

“맞아.”

에리카는 너무나도 당당한 그의 모습에 할 말이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문이 열린 이상 공항과 항구는 모두 폐쇄될 테고…… 일본으로 돌아가려면 선택의 여지는 없겠군요.”

그녀는 남궁을 바라봤다.

“이거 아무래도 알렉 트라만뿐만 아니라 저 역시 당신에게 당한 것 같은데요.”

스르륵-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남궁은 보이지 않지만 아주 옅은 인기척을 감지할 수 있었다.

“이번 한 번은 저희 쪽에서 수(手)를 내어드리죠.”

남궁은 그들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역시…… 혼자 올 리 없지.’

오랜 역사를 지닌 니나가와 가(家)의 살수들.

“잘 쓰고 돌려주지.”

남궁이 기대했던 에리카의 진짜 힘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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