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푸하!!”
써펀트의 식도를 타고 미끄러지듯 내려온 가즈마타는 코를 찌르는 매캐한 가스가 가득 차인 위장 속에서 숨을 토해냈다.
피잉--
그는 머리를 때리는 듯한 두통에 자신도 모르게 비틀거렸다.
“……?!!”
그 순간 남궁이 그의 복면을 거칠게 벗겼다.
뭐라 말할 새도 없이 얼굴이 드러난 그가 다급한 표정으로 남궁을 바라봤다.
“웁?!”
하지만 남궁은 대답 대신에 그의 입에 뭔가를 쑤셔 넣었다.
“삼켜라. 써펀트의 위액과 가스에서 보호해 준다. 아무리 비월의 살수라도 맨몸으로는 5분도 버티지 못할 거야.”
꿀꺽-
남궁의 말을 들으며 가츠마타는 목이 아플 정도로 커다란 뭔가를 가까스로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후우…….”
그가 숨을 내쉬다 식도에 남아 있던 쾌쾌한 냄새에 자신도 모르게 헛구역질을 했다.
“그거 하나에 3천 헤드짜리야. 비싼 거다. 뱉으면 위장에 녹기 전에 나한테 죽는다.”
“……좀 미리 말씀해 주시면 안 되는 겁니까.”
그는 얼얼한 목을 만지며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남궁에게 말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어리군. 몇 살이지?”
뒤늦게 복면이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은 가츠마타는 황급히 주위를 훑었지만 이미 위액에 젖어 반쯤 녹아버린 복면은 다시 쓸 수 없었다.
“……스물일곱입니다. 아시면서 물으시는 겁니까? 에리카 님과 대화하실 때 보니 회귀인가 뭔가를 하셨다 하지 않았습니까.”
“그 말 믿는 거야?”
“……네?”
“진짜 내가 미래에서 왔다고 생각하는 거?”
오히려 남궁이 짐짓 놀란 듯 되묻자 가츠마타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놀리지 마십시오.”
가츠마타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얼굴을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야. 니나가와 에리카의 진검이라 불린 비월의 수장은 그녀보다 더 베일에 싸인 존재였으니까. 솔직히 훨씬 더 나이가 많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남궁이 기억하는 가츠마타는 훨씬 더 날카롭고 정돈된 자였다.
오히려 앳된 느낌마저 남아 있는 지금의 얼굴이 그를 놀라게 할 정도였다.
“하나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멈칫-
가츠마타의 말에 남궁의 발걸음이 잠시 주춤했다.
“뭔데?”
“솔직히 당신이 회귀했다는 건 별로 믿음이 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에리카 님보다 오래 살아남았습니까?”
“믿지 않는데 묻는 이유는 뭐지?”
남궁은 생각지 못한 그의 물음에 의외라는 듯 피식 웃었다.
“됐습니다. ……수하로서의 물음이었을 뿐이니까. 해야 할 일이나 말하시죠.”
“별것 없어. 저기 위벽을 보면 살짝 구멍이 난 것 같은 곳이 보일 거야. 저기가 역린이 자라 있는 뿌리다. 저기를 안쪽에서부터 베어내면 된다.”
남궁의 말대로 써펀트의 위장 안에는 작은 구멍 하나가 있었다.
“…….”
가츠마타는 그것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촤르륵……!
그러고는 품 안에서 작은 수리검을 꺼내 사방으로 던졌다. 수리검의 끝에는 옅은 줄이 감겨 있었고, 여기저기 박힌 수리검이 팽팽하게 당겨지자 두 사람의 머리 위로 거미줄처럼 천장이 만들어졌다.
탁-! 타닥-!!
그가 위벽을 타고 뛰어올라 줄 위에 안착했다.
“인법(忍法)이라…… 구시대적인 유물이라 생각했는데 이 런 세상엔 무엇보다 유용하군.”
툭-
“……?”
남궁이 들고 있던 검을 그에게 던졌다.
“무슨?”
“안쪽이라 해도 네가 가진 무기로는 피부를 뚫을 때까지 한참 걸릴 거다. 그걸 가지고 잘라내.”
“자기 무기를 이렇게 아무렇게나 줘도 괜찮은 건가? 내가 당신 무기를 강탈하면 어쩌고?”
“일단 쓸 수 있는지나 봐야지.”
“뭐 얼마나 대단한 검이라고…….”
파즈즈즉……!!
검을 잡는 순간, 가츠마타는 반발력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뭐, 뭐야…….”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던 그는 어리둥절해하며 그를 바라봤다.
“주인을 가리는 검이다. 검을 지배하려 하지 마라. 우위에 서는 것이 아니라 네가 검에게 부탁하는 거다. 비월의 수장이라면 인정받지는 못해도 조금은 힘을 빌려줄 테니.”
“…….”
가츠카타는 그의 말에 긴장한 얼굴로 다시 검을 잡았다.
치직… 치지직…….
손잡이를 잡은 손이 저릿하기는 했지만 처음에 비한다면 충분히 잡을 만했다.
‘명훈이도 검에 일가견이 있는 녀석이지만…… 확실히 비월 출신은 다르군.’
남궁은 그를 보며 생각했다.
“그런데 남을 이렇게 부려먹으면서 당신은 그럼 뭐 할 겁니까?”
“자고로 힘든 일은 연장자가 해야 하는 법이거든. 복면 뒤에 그렇게 어린애가 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
“어, 어린애라니…….”
“단검 내놔.”
“……네?”
“우리가 상대하는 건 월드 보스야. 이번에 열린 지옥문에서 나올 수 있는 마물 중에 가장 강력한 놈이라는 뜻이지.”
쿠륵…… 쿠르르륵…….
그 순간, 써펀트의 위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췩……! 취췩……!!]
[취이이익……!!]
위장 안쪽에서 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호수처럼 깔린 위액 위로 커다란 머리를 들고서 헤엄쳐 두 사람에게 다가오는 마물들.
“저, 저게 뭐야?”
가츠마타는 괴상하게 생긴 놈들의 모습에 인상을 찡그렸다.
몸체는 없이 생선 머리에 팔과 다리가 붙어 있는 놈들은 뼈로 만들어진 듯 보이는 조잡한 창을 들고 있었다.
[췩! 취익……!! 췩!!]
인간의 언어는 쓰지 못하는 듯 녀석들은 아가미를 벌렸다 닫았다 반복하며 알 수 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피서맨들이다. 써펀트의 위장에 살고 있는 마물들이지. 가츠마타. 서둘러서 올라가.”
[캬륵! 캬캭!!]
남궁을 본 피서맨들이 일제히 달려들기 시작했다.
부우우웅……!
차앙!
놈들이 들고 있는 창의 끝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닿는 공기마저 태워 버리는 것처럼 놈들이 휘젓는 창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매캐한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어서!!”
남궁의 외침에 가츠타마는 자신의 상아단검을 그에게 던지며 위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상황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어째서 내가 저 사람의 명령을 듣고 있는 거야?’
어떠한 상의도 요청도 없었다.
처음부터 상하 관계가 정해져 있었다는 것 같은 남궁의 행동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신의 모습까지.
그 역시 한 세력의 수장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모습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제길!!”
그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남궁의 검을 뽑았다.
솨아아악---!!
검에서 느껴지는 날카로운 예기에 그는 숨을 크게 참아내며 검을 긋기 시작했다.
서걱-!!
촤자자작--!!
검이 위벽을 가를 때마다 두툼한 살점들이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크에에에에에엑……!!!]
써펀트가 고통스러운 듯 비명을 지르며 몸을 떨기 시작했고 녀석이 허우적거릴 때마다 위장 안에 들어 있는 위액이 파도처럼 넘실거렸다.
빙그르르……!
남궁이 가츠타마에게서 받은 단검을 한 바퀴 손바닥 위에서 돌리며 피서맨들을 향해 달려갔다.
부웅……! 콰앙……!!
남궁이 피서맨의 공격을 피하며 녀석의 아가미에 단검을 찔러 넣었다.
푸욱~!!
[케, 케켁……!!]
갈비뼈 사이로 검이 들어가자 그는 있는 힘껏 사선으로 검을 당겼다.
쩌적……! 찌이익!!!
단단한 비늘들이 단검에 걸려 뜯어지면서 붉은 살점과 핏물이 뿜어져 나왔다.
콰앙--!!!
남궁은 떨어져 나간 비늘을 집으며 그것을 마치 부메랑처럼 있는 힘껏 던졌다.
콰직! 퍽!!
세로로 날아간 비늘들이놈들의 정수리에 박혔다. 녀석들은 순간 주춤했지만 단단한 두개골을 가진 듯 녀석들은 비늘을 머리에 박은 채로 계속해서 달려들었다.
“훕……!!”
하지만 주춤하던 잠깐의 틈만으로도 충분했다.
남궁은 죽인 피서맨이 들고 있던 창을 들어 자벨린처럼 내던졌다.
파각……!!
이번에는 두개골의 단단함도 버티지 못한 듯 창이 박힌 마물이 그대로 뒤로 자빠지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후웁……!!”
퍽! 퍽!! 퍼퍽!!!
남궁은 숨을 참으며 미끄러지듯 피서맨의 창을 피하며 아래에서 옆구리를 향해 수십 차례 단검을 찔러 넣었다.
“뭐 저런…….”
위벽을 오르던 가츠마타는 남궁의 전투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감탄을 금치 못했다.
‘창에 닿기만 해도 치명상이다.’
종이 한 장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마물의 창을 피하면서 불필요한 동작을 줄인다.
그야말로 극한에 가까운 사냥이 아닐 수 없었다.
‘목숨을 내놓지 않는 이상 저런 싸움을 할 수 없어. 저 사람은 공포심이 없는 건가?’
아무리 특수한 훈련을 수행한 특작 부대라 하더라도 저런 싸움은 불가능할 것 같았다.
‘도대체 어떤 삶을 산 건지…….’
가츠마타는 자신도 저렇게는 싸울 수 없을 거라 생각이 들었다.
“뭐 하고 있어! 가츠마타!!!”
“아, 넵! 죄, 죄송……!!”
남궁의 외침에 그는 황급히 위벽에 채워 넣은 줄을 밟으며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부웅---!!
자신이 죄송하다는 말을 입에 담았다는 걸 부하들이 안다면 경악을 금치 못할 상황이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실력이 있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것이었다.
남궁이란 사람은 자신이 상상할 수도 없는 영역에 있는 자라는 걸 말이다.
서걱-! 서걱-!! 촤아아악---!!
가츠마타의 검이 움직일 때마다 위장의 살점들이 잘려 나갔다.
“이거……!!”
하지만 두툼한 마물의 위벽은 도저히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뚫리긴 하는 겁니까?!!”
얼마나 시간이 흐른 걸까.
미친 듯이 난도질을 하고 있는 그는 이미 호흡이 흐트러졌고 심장은 터질 것 같았다.
하지만 아래에 보이는 남궁의 주위에 쌓여가는 마물의 시체를 보니, 불평 같은 말은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물론.”
남궁은 피서맨의 머리에 단검을 찔러 넣고서 두툼한 머리를 움켜잡으며 말했다.
“두드리면 열릴지어다.”
“뭐 그런 태평한 소리를……!”
콰아아아앙---!!!
그때였다.
“……?!”
가츠마타의 검이 위벽을 찌르는 순간, 갑자기 맹렬한 폭음이 솟구쳐 나왔다.
“봤지?”
동시에 남궁이 피서맨의 머리에 박아 넣은 검을 가로로 그으며 그를 향해 말했다.
* * *
원효대교 위.
평상시였다면 차량으로 빼곡했을 다리는 텅 비어 있었고, 대교의 난간 위에는 넓은 도로와는 어울리지 않게 작은 한 소녀가 서 있었다.
“후우.”
마치 용암이라도 삼킨 것처럼 내쉬는 입김 속에 새하얀 김이 피어올랐다.
“말도 안 돼…… 전설급 자질이라니…… 위상의 계시자들 중에서도 저 정도의 자질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을 텐데…….”
그리고 그녀의 옆에 서 있는 규류는 조금 전 그녀가 날린 마법을 바라보며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마력 자체도 희귀한 자질이었는데 그 자질의 성장성이 전설급이란 것은, 사실 전 세계를 모두 뒤져도 한 명 나올까 말까 할 정도다.
‘아니, 이건 자질의 문제가 아니지.’
그 한 명을 눈앞에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경악하는 부분은 따로 있었다.
‘사상마법…….’
그건 두 개의 서로 다른 마법이 융합 되었을 때 가능한 아주 특수한 마법이었다.
하나의 몸에 두 개의 서로 다른 객체가 함께 들어가 있다는 것과 같았으니 사실상 이건 불가능한 힘에 가까웠다.
이론으로만 존재하는 미지의 영역.
아무리 뛰어난 자질을 가진 자라도 얻을 수 없는 힘이었다.
‘그걸 직접 보게 되다니.’
소민이 쏜 붉은 낙뢰에 한강의 수면이 붉게 변했다.
‘남궁의 딸이 이런 자질을 가졌을 줄이야…… 그 사람이야 나와 계약을 맺었다고 해도 저 아이는 아직 아무도 계약을 하지 않았어.’
그는 을지로에 있어야 할 자신을 또다시 이곳으로 부른 남궁에게 투덜거렸던 자신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고 싶은 기분이었다.
‘게다가 위상의 계시자도 아니니…… 남은 대리자 일족들이 난리가 나겠군. 남궁이 나를 부른 이유를 알겠어.’
[쿠그그그그그…….]
‘이번 사냥이 끝나면 이제 저 아이는 모두에게 알려질 거다. 나머지 대리자 일족들이 군침을 질질 흘리겠지.’
한강 수면 위에 떠 있던 써펀트가 힘을 잃은 듯 지친 숨을 토해내는 것을 보며 규류는 생각했다.
‘어디 한번 계산기 좀 두들겨 볼까?’
규류는 참으려 해도 자꾸만 히죽거리며 올라가는 한쪽 입꼬리를 숨기기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