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콰직!!!
알렉은 품에 안고 있던 상자에 힘을 주었다.
나무 상자가 거칠게 부서졌다.
▶ 써펀트의 비늘(노멀)을 획득하였습니다.
▶ 대리자 일족에게서 헤드로 교환할 수 있다.
▶ 보상 습득자 간의 거래 가능.
▶ 2,000헤드
현 시점에서 결코 적은 헤드의 수가 아니었다.
나머지 철 상자에 들어 있는 헤드 역시 20,000헤드가 들어 있었다.
꽤나 많은 헤드였지만 알렉으로서는 결코 달갑지 않았다.
“…….”
눈앞에 보이는 나머지 두 개의 보상 상자 때문이었다.
▶ 마물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한 참가자에게 보상(성공)이 수여됩니다.
▶ 써펀트의 역린 조각(1개)이 수여됩니다. 전리품은 보상 습득자 중 1명이 습득할 수 있습니다.
‘월드 보스의 진짜 보상을 혼자서 독식했군.’
그것을 보고 있자니 속이 쓰릴 수밖에 없었다.
“영국에서 오신 손님들께서 돌아가신다. 길을 열어 드려야 하지 않겠나.”
그 순간 건물 틈 사이로 얼굴은 가린 복면인들이 나타나 리자드맨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더 남아 있었던 건가.’
알렉은 빠른 속도로 마물들을 제압해 나가는 살수들을 보며 더 이상 싸우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남으로 내려가라. 인천공항은 지금 폐쇄되어 있지만 서울공항에서 비행기를 띄우는 건 가능할 거다. 가서 강호준의 이름을 대면 통과 시켜줄 거고.”
“……다음에 한번 영국으로 초대하지.”
“안 가. 비행기는 멀미가 나서 말이야. 오려면 너희가 와.”
“비행기가 멀미가 나?”
“응.”
“한마디를 지지 않는군.”
빠득하며 이를 가는 알렉을 향해 남궁은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가자.”
알렉은 비월이 만들어준 길을 따라 사라졌다. 그의 뒤를 따라 한슨과 요한나 역시 모습을 감추었다.
“휴우.”
그가 떠나자, 그제야 남궁은 긴장을 조금 놓을 수 있는 듯 숨을 토해냈다.
“다행히 물러나 주는군. 써펀트를 상대하는 것보다 저 녀석을 상대하는 게 더 곤욕인데.”
“그렇습니까? 그래 봐야 인간인데요. 저 괴물을 잡은 당신이 그런 말을 하니 이상하군요.”
가츠마타는 피 묻은 단검을 닦아 내며 그에게 다가가 말했다.
“마물은 사냥법이라도 있지. 저 녀석은 없어. 앞으로도 계속해서 강해질 거야.”
“그럼 차라리 보상을 얻지 못하게 하시죠? 2만이 넘는 헤드를 그냥 주셨잖습니까.”
“그거라도 받지 않았으면 저렇게 조용히 물러나지 않았을 걸. 게다가 녀석에겐 헤드가 중요하지 않아. 앞으로 영국에서 생성되는 던전은 거의 대부분 녀석이 독식할 테니까.”
“승부는 누가 먼저 월드 보스를 잡는가겠군요.”
남궁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저희도 조용히 물러가죠. 알렉 트라만의 의중과 당신의 정체를 확인한 것으로 다음 보스는 저희가 잡을 겁니다.”
“기대하지. 빌어먹을 문을 닫기 위해서는 보스를 죽여야 한다. 누가 먼저 잡든 상관 안 해.”
여릿한 목소리에 남궁은 고개를 돌렸다.
“단지 너희들이 못하니까 내가 먼저 할 뿐이지.”
남궁이 니나가와 에리카를 바라보며 말했다.
“위상께서 계시를 내리긴 했지만 솔직히 회귀자의 존재에 대해 반신반의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확신이 되었고, 한 가지 걱정되는 건…….”
촌철살인 같은 그의 한마디에 그녀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회귀자는 결코 계시자들에게 환대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당신은 그들의 적이 될 겁니다.”
“어째서지?”
“그건 예지 능력을 가진 저 역시 공감하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미래에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 알고 있다는 것은 분명 부담스러운 일이니까요.”
에리카는 양쪽 손바닥을 펼쳐 세로로 세우며 말했다.
“예지와 미래를 안다는 것은 사고를 미리 알고 예방할 수 있다는 의미지만, 그건 반대쪽의 입장에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폭력일 뿐이니까요.”
그리고는 한쪽 손으로 반대쪽 손을 튕겨내며 말했다.
“하지만……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기도 하지요. 저 역시 예지로 본 미래가 지금은 완전히 바뀌었으니까요.”
남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야.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꼭 그들이 적이 된다는 보장도 없지.”
“쉽지 않을 겁니다.”
“처음부터 쉽게 갈 생각은 없어.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내 편이 될 거라는 기대도 없었다. 미래의 기억은 그저 사냥을 위해 쓸 뿐. 적이냐 아군이냐를 나누는 건 그때의 기억이 아닌 지금 현실이니까.”
“……알겠습니다.”
에리카는 그의 말에 조금은 납득이 간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본으로 돌아가실 겁니까? 그럼…… 공항에 연락을 취하겠습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저희는 알아서 가겠습니다.”
호준의 말에 애리카는 정중히 고개를 저으며 그의 말을 거절했다.
“과연 니나가와가(家)로군. 일개 연예인과는 달라.”
“부를 논하자면 알렉 님을 따를 수 있겠습니까. 그냥 조금 더 어두운 길을 알 뿐이죠.”
사실 알렉 트라만 역시 전용기로 이곳에 오긴 마찬가지였다.
다만 비행기를 띄우기 위해 허가를 받아야 하는가와 받지 않아도 되는가의 차이였다.
‘니나가와 가문의 연줄은 전 세계적으로 얽혀 있으니까.’
아무렇지 않게 타국에서 비행기를 띄울 수 있는 권력을 가졌으니, 사실 어디까지가 끝인지 알 수 없을 정도다.
“그럼, 저희도 남은 마물들을 정리하러 서둘러야겠군요. 월드 보스가 죽어 문은 닫혔지만 소환된 리자드맨들이 아직 많을 테니까요.”
“무운(武運)을 빌지.”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지막으로 남궁을 향해 말했다.
“한 가지 조언을 해드리죠. 사람을 조심하십시오. 언젠가 마물이 아닌 사람으로 인해 곤욕을 치르게 될 겁니다.”
“예지인가?”
“일단은…… 감이라고 해두죠.”
“그럼 됐다. 내 미래는 내가 알아서 해. 그 조심해야 할 사람이 당신이 아니기를 바라지. 내 손에 목이 떨어질 수 있으니 말이야.”
에리카는 피식 웃으며 자리를 떴다.
가츠마타는 남궁의 말에 못 당하겠다는 듯 고개를 가로젓고는 목례를 하고서 황급히 그녀의 뒤를 따랐다.
[케엑……! 케케켁!!!]
하지만 숨을 돌릴 새도 없이 남궁을 향해 남아 있던 리자드맨들이 달려들었다.
쾅-! 쾅-!! 콰가강--!!
그 순간, 붉은 낙뢰가 남궁의 주위에 떨어졌다.
“아빠!!!”
소민의 외침에 그는 고개를 들었다.
“나도 거들게!”
순식간에 수십 마리의 리자드맨을 불태워 버린 그녀가 호기롭게 말했다.
“무리하지 마. 써펀트의 비늘을 태우는 데 이미 과할 정도로 마력을 썼어.”
“괜찮아. 저기 아저씨 덕분에 충분히 쉬었어.”
그녀의 뒤에는 전태호가 있었다.
“큰 신세를 졌습니다.”
처음 만났지만 두 사람은 눈빛을 교환하는 것만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신세는 지금 갚으면 되죠. 딸아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제게 부탁할 게 뭐가 있겠습니다. 소민 양이 저보다 훨씬 뛰어난데요. 제가 돕겠습니다.”
전태호는 걱정 말라는 듯 남궁에게 말했다.
“이걸 쓰시죠.”
남궁은 전대에서 지금까지 모은 룬석을 꺼내어 그에게 건넸다.
“도움이 될 겁니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한 표정의 전태호였지만, 눈치 빠른 그는 손 안에서 빛나는 룬석을 보자 어떤 의미였는지 단박에 알아차렸다.
▶ 최하급 룬 : 민첩을 사용하였습니다.
▶ 최하급 룬 : 민첩을 사용하였습니다.
▶ 최하급 룬 : 힘을 사용하였습니다.
▶ 하급 룬 : 체력을 사용하였습니다.
‘무기가 좋진 않지만…… 이 정도의 룬이라면 충분히 실력으로 커버할 수 있겠지.’
단순히 전 국가대표였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남궁의 전생에서도 깨어났었고, 그의 활약상은 누구보다 남궁이 잘 알고 있었다.
‘엘릭서로 깨어난 이후 그는 누구보다 빠른 성장을 했다. 덕분에 성녀에게 죽임을 당하기 전까지 그가 죽인 마물의 수는 엄청났어.’
서걱-
남궁이 리자드맨의 목을 베었다.
툭-
그 순간 리자드맨의 시체에서 지금까지와는 달리 작은 돌멩이가 떨어졌다.
영롱한 노란 빛깔의 룬어가 새겨져 있는 룬석.
최하급 마력룬이었다.
‘그의 비약적인 성장은 바로 이 룬 때문이지.’
전태호의 효과는 과연 확실했다.
‘그가 지치지 않고 더 오랫동안 싸울 수 있어야 더 많은 룬을 획득할 수 있다.’
현 시점에서 4개의 룬을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대단하고 사치스러운 일인지 전태호는 모를 것이다.
남궁이 지금까지 모아둔 룬을 자신에게 쓰지 않고 그에게 올인 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다.
“모두 잘 들어!! 얻은 룬이 자신에게 필요한 거라 생각되면 그 즉시 바로바로 사용해도 된다. 그리고 나머지는 거점으로 돌아가서 나눈다.”
“알겠습니다!”
“네!!”
콰아아앙--! 쾅-!!
아직 남아 있는 리자드맨들의 수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지만 더 이상 그들에게 마물은 공포가 아니었다.
툭-
전태호의 특성으로 인해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쏟아지는 룬석들.
생존을 위한 전투가 아닌 강해지기 위한 전투를 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 두 번째 축제가 막을 내렸습니다.
▶ 생존자 전원에게 보상이 주어집니다.
▶ 1,000헤드가 지급되었습니다.
[……케엑!!]
마지막 리자드맨의 목을 남궁이 베는 순간 1번째 지옥문을 닫았을 때처럼 상공에 붉은 글자다 나타났다.
“됐어!!!”
“드디어 끝났다……!!”
처음에 붉은 글자를 봤을 때는 음침하기만 했던 명훈도 이제는 생존의 환호를 지를 수 있었다.
“…….”
남궁은 주위를 훑었다.
처음 여의도에 왔을 때와 달리 짧은 시간이었지만 모두가 성장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단순히 룬석을 먹어 신체 능력이 상승되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전략과 전술.’
마물을 사냥하는 것 이전에 알렉 트라만과 니나가와 에리카를 상대로 명훈과 호준, 그리고 경인과 소민이 각자 맡은 역할을 수행했다는 것이 중요했다.
손발을 맞춰가는 것.
단순히 좋은 무기와 신체의 성장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형님, 이번엔 훨씬 더 안정적으로 막지 않았습니까? 이대로라면 마물들이 계속 나온다 하더라도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명훈이 홀가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힘과 민첩 관련된 룬석도 제법 많이 얻은 건지, 어쩐지 그의 체구가 조금 더 탄탄해진 느낌이 들었다.
“방심은 금물이야. 상상 이상으로 강한 마물들이 앞으로도 수두룩하다. 계획적으로 움직여야 해.”
“명심하겠습니다.”
그 어떤 반발도 없이 명훈은 즉시 대답했지만 그의 표정엔 확실히 이전보다 밝았다.
‘뭐, 조금은 여유가 있는 편도 나쁘지 않지.’
팽팽하게 당긴 줄은 언제라도 끊어지게 마련이니까.
남궁은 명훈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콰아아아아앙--!!
그때였다.
“……!!”
“……!!!”
마치 느슨해진 자신들을 경고하듯 굉음과 함께 시커먼 연기가 치솟았다.
“저, 저기…….”
명훈은 멍한 눈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그들 덕분에 피해를 최소화하긴 했지만, 마물들의 습격으로 여의도 일대는 사실상 여기저기 폐허와 다름없이 엉망이었다.
사실 무너진 건물들은 주위에도 수두룩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무너져서는 안 되는 곳이 하나 있었다.
“국회의사당이…….”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불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