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끝난 줄 알았던 마물의 습격이 계속되었습니다. 어제 오후 상공에서 생성된 차원문을 통해 마물들이 한강을 기점으로 쏟아졌습니다.
TV에서 기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시가 수습되기 전에 또다시 피해를 입어 국민들이 혼란에 빠진 상태입니다. 그중에서도 여의도의 국회의사당이 피해를 입었다죠?
스튜디오의 아나운서가 고개를 돌리자 화면이 전환되며 불타 무너진 국회의사당이 보였다.
-네, 맞습니다. 어제 국회의사당에서는 이번 사건에 대한 재해대책회의가 열렸습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2번째 마물의 습격에 참사를 피하지 못했습니다.
-국회의사당엔 여러 국회위원과 더불어 대통령도 계셨다는 보고가 있던데…….
-맞습니다. 이번 회의는 평범한 재해가 아닌 마물의 습격이었습니다. 이례적으로 긴급회의에 대통령께서도 대동하셨습니다.
-그럼…… 이번 국회의사당의 피해자가 누구인가요?
침울한 아나운서의 목소리와 함께 기자는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이번 특별재해대책회의에 참석자 명단 중 사망자는 대통령을 비롯하여 국무총리, 기획재정부 장관, 교육부 장관, 외교부 장관…….
핏-
사망자 명단을 읊고 있던 기자의 모습이 사라졌다. 모니터가 검게 변했고 리모컨을 들고 있던 명훈은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대통령꼐서 서거하시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날벼락입니까?”
“켜둬.”
“뭐 좋은 얘기라고 계속 봅니까.”
남궁의 말에 명훈은 한숨을 내쉬었다.
“앞으로 조금 더 지나면 방송을 보고 싶어도 못 볼걸. 각 지역의 통신선이 끊어질 테니까. TV뿐만 아니라 핸드폰이든 PC든 전기 공급이 가능한 범위 자체가 제한될 거야.”
“에이, 그렇게 되지 않도록 막기 위해서 저희가 있는 거잖습니까.”
“맞습니다, 대장. 국회의사당이 공격당한 건 솔직히 예상외지만…… 그래도 1번째에 비하면 훨씬 더 안정적으로 마물들을 막은 것 아닙니까?”
명훈의 말을 호준이 보태었다. 하지만 그들의 말에도 불구하고 남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무 비관적인 생각이십니다. 대장답지 않네요.”
“갑작스러운 사고에 혼란스럽겠지만 다행히 국무총리가 계시지 않습니까. 형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그분께서 권한대행을 이어 가신다면 빠르게 수습될 겁니다.”
명훈은 고개 젓는 남궁을 향해 살짝 속이 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사실 명훈이 그런 표정을 짓는 이유를 남궁도 어느 정도는 이해 할 수 있었다.
국무총리 서재욱.
대통령을 보좌하는 그는 평판도 그렇고 능력도 꽤 뛰어난 자였다.
‘무너진 정부에서 믿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자인 것은 맞지.’
그 믿음이 진실과 거짓을 뜻하는 것이 아닌 순수하게 능력을 말하는 것이었다.
‘서재욱은 앞으로 있을 재해를 대비하여 마물전담팀을 꾸린다.’
그의 결정은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그가 내놓은 정책이 언제 시행되었는가였다.
‘전생에서 마물전담팀이 꾸려진 것은 1번째 지옥문을 막지 못한 채 계엄령이 선포되면서 약 2년 뒤였다.’
대통령의 서거는 그보다 훨씬 전.
즉, 마물전담팀 창설 계획은 훨씬 더 빨리 만들어졌어야 했다.
‘하지만 부대가 2년 뒤에 생긴 이유는 인력 부족 같은 이유가 아니었어.’
바로 서재욱의 죽음 때문이었다.
갑작스러운 그의 죽음과 함께 지휘권자를 잃은 나라는 다시 혼란에 빠지게 된다.
‘그때쯤은 이미 군대로 막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결국 서재욱이 준비했던 정책을 뒤늦게 시행되긴 했지만 피해가 컸어.’
그로 인해 참악부대가 창설되고 변경백(邊境伯)이라 불렸던 박효주란 신성(新星)의 등장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지금은 전생과 다르다. 1번째 문도 닫지 못했던 그때와 달리 지금은 2번째 문까지 닫았다. 피해는 그때와 비교하자면 확실히 극미하다고 할 수 있어.’
하지만 문제는 마물의 피해 같은 것이 아니었다.
“네 말대로 이대로 계속해서 마물을 막으면서 피해를 최소화시킬 순 있을 거야. 하지만 전력 공급이 끊는 걸 왜 마물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그게 무슨…… 마물 말고 지금 더 큰 문제가 있는 건가요?”
“있지.”
틱-
남궁은 다시 TV를 켰다.
국회의사당 참사의 사망자 명단 이후 생존자들의 이름이 열거되기 시작했다.
그는 그 명단 중 하나의 이름을 주시했다.
국방부 장관 박대호.
* * *
“형님.”
“네가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건지 안다.”
모두가 잠든 밤, 남궁은 물고 있던 담배를 비벼 끄면서 명훈을 바라봤다.
고블린 성채에서 나와 무너진 자신의 집 위에 걸터앉아 있는 그의 모습은 묘한 이질감을 풍겼다.
“피울래?”
“괜찮습니다. 그런데…… 정말 박대호 장관이 쿠데타를 일으킨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니. 팩트로만 보자면 그냥 서재욱 총리의 죽음 이후 대행권을 이어받는 것뿐이지.”
“문제는 총리의 죽음이 미심쩍다는 것인가요.”
남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갑작스러운 이변 현상에 서재욱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도 제법 훌륭하다 평가될 정도로 대처를 잘했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그의 죽음 이후 그의 뒤를 국방부 장관인 박대호가 잇게 된다.
‘정권의 정점에 오르자 기다렸다는 듯 계엄령 선포를 했어.’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의 선포가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각지의 군 병력을 서울로 집결시켰다는 거지. 그렇게 서울을 요새화시켰고.’
박대호의 결정으로 인해 군 병력이 비게 된 다른 전국의 도시들은 큰 위험에 빠지고 말았다.
‘뒤늦게 참악부대를 신설하고 방위를 시작했지만 박효주의 부대 역시 사령군단을 이끌었던 최휘수에게 괴멸당했으니…….’
그 뒤로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아비규환(阿鼻叫喚) 그 자체였다.
‘최휘수가 죽었으니 박효주의 참악부대 활약도 그때보다 더 기대 해 볼 수 있겠지만…….’
역시나 문제는 결국 이 모든 것이 서재욱이 살아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알렉과의 약속 장소를 여의도로 변경한 이유도 국회의사당의 이변을 염두에 두셨던 것이군요.”
“맞아. 최대한 단시간에 써펀트를 사냥하기 위해서 알렉과 에리카. 두 사람의 힘을 빌렸던 거니까.”
“흐음, 차라리 국회의사당으로 직접 가셔서 그곳을 지켰으면 좋지 않았을까요?”
명훈의 말에 남궁은 고개를 저었다.
“써펀트가 소환되는 장소와 국회의사당은 거리가 너무 멀었어. 자칫 잘못해서 써펀트를 잡지 못하기라도 하면 피해는 더 컸을 거야.”
“하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월드 보스를 사냥해서 지옥문을 닫는 것이었다.
그게 열려 있다면 단순히 여의도가 아닌 전국, 아니, 전 세계에 계속해서 마물들이 생성될 테니 말이다.
“그곳에 남아 싸우느니 차라리 써펀트를 빨리 사냥하는 게 국회의사당을 지키는 확률도 더 높다고 생각했지.”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서재욱 총리의 죽음을 알린다 한들 그들이 쉽게 믿을 리 없을 텐데요.”
“그렇겠지. 내가 찾아간다 해도 대화는커녕 만나기도 어려울 거야.”
부우우웅-
그 순간, 남궁의 집 앞을 지나는 차 한 대가 있었다. 검은색 세단이 서서히 속도를 줄이자 그는 살짝 눈을 흘기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니 반대로 그들이 날 찾으러 오게 해야지.”
“……네?”
검은 세단의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가 내렸다.
“누, 누구?”
명훈이 황급히 남궁의 앞을 막아섰다. 하지만 남자는 마찰을 일으키고 싶지 않다는 제스처로 두 손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남 대위님이십니까.”
대신 두 사람의 앞에서 가볍게 인사를 했다.
“모시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잠시 저희와 대동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소속부터 밝히는 게 먼저라고 생각하는데.”
“그렇군요. 시안이 급하다 보니…… 국정원 대테러 소속 이진원이라고 합니다. BH로 남 대위님을 모시라 하였습니다.”
“BH라면…….”
명훈이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남궁을 바라봤다.
블루하우스(Blue House).
“청와대입니다.”
남궁은 그의 대답에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 * *
“반갑습니다. 한강에 나타난 거대 괴수를 사냥하신 게 남 대위님이시라지요? 보고받았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대위란 직함은 괜찮습니다. 군에서 나온 지 오래되었으니까요.”
탈칵-
남궁은 탁자 위에 검을 내려놓았다.
“저야말로 감사하군요. 국정원 심문실이 아니라 청와대 접견실로 저를 부르다니 말입니다.”
그러고는 악수를 청하는 서재욱의 손을 가볍게 잡았다.
“하하, 도시를 구한 영웅을 어찌 그런 식으로 대접하겠습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지요.”
“영웅이라…… 제가요? 그렇게 사람을 쉽게 믿으시다간 목숨을 잃기 십상일 겁니다.”
“……!!”
그 순간 그가 총리의 팔을 잡아당겼다.
중심을 잃고 쓰러지는 서재욱의 팔을 비틀면서 남궁이 책상에 꽂혀 있던 펜을 뽑아 그의 목에 겨누었다.
“멈춰!!”
접객실의 문이 열리면서 요원들이 총을 겨누며 소리쳤다.
“보안에 좀 더 신경을 쓰셔야 할 겁니다. 서재욱 총리. 단순히 마물의 위협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사람을 조심하십시오. 당신은 이제 대한민국의 가장 중요한 의사를 결정하는 자이니까요.”
남궁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명심하지.”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비틀고 있던 서재욱의 팔을 풀고서 남궁은 펜을 내려놓았다.
“그를 잡아!!!”
둘의 거리가 떨어지자 날카로운 외침과 함께 총구를 겨누고 있던 요원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부웅--!!
총구를 겨눈 요원들 사이로 날카로운 칼날이 튀어나와 남궁을 공격했다.
파르르……!!
그 순간 남궁이 허리를 뒤로 꺾으며 칼날을 피했다. 쥐고 있던 손바닥을 펼치자 그를 향해 쇄도하던 단검이 손바닥 위에서 빙글빙글 돌며 아슬아슬하게 남궁의 턱을 스쳤다.
스각……!
따끔한 통증과 함께 칼날이 작은 상처를 냈다. 남궁이 탁자에 놓아 둔 검을 잡아 그를 공격한 칼날을 있는 힘껏 후려쳤다.
창그랑……!!
바닥에 떨어진 단검이 튕겨 오르는 순간, 마치 자리로 돌아가는 것처럼 주인의 손으로 돌아갔다.
‘무기가 특이한 게 아냐. 야차 보따리에서 파는 것도 아닌 그냥 평범한 단검에 불과해.’
특이한 건 그 단검의 사용자였다.
“진정하게나. 남 대위, 아니, 남 팀장은 내게 직언을 해준 것뿐일세. 오히려 자네들이 배워야 할 일이야.”
서재욱의 말에 요원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팀장?’
소란스러운 분위기보다 남궁은 총리가 자신을 부른 호칭에 대해 더 주시했다.
“제가 잘못 들은 건가 싶은데요.”
“그럴 리가. 자네를 이곳에 부른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라네. 우리는 힘이 필요하네.”
총리가 남궁을 향해 말했다.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는 많은 관료들을 잃었지. 하지만 슬퍼만 해서는 안 되네. 우리는 이번 습격으로 인해 마물의 공습이 계속될 가능성을 열어두었네.”
“흐음…….”
“사실 오늘 국회에 사람들이 모인 이유가 이것을 논의하기 위함이었네.”
그는 잠시 목소리를 가다듬듯 헛기침을 하고는 힘을 주어 말했다.
“나는 마물을 사냥할 팀을 창설할 생각일세. 그리고 그 팀을 자네가 이끌어주었으면 하네.”
총리의 말에 남궁은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조금 전 자신을 공격했하며 희귀한 전투법을 사용했던 요원을 바라봤다.
뒤로 머리를 질끈 묶고 짙은 눈썹을 가진 그녀가 바로 전생에서 마물전담팀을 이끌었던 참악부대의 리더 박효주였다.
“여의도의 남아 있던 CCTV를 확인했고 당신이 써펀트를 사냥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솔직히 말해 우리는 아직 이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머릿속에 정보는 주입되었지만 어떻게 활용을 해야 할지 아직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솔직하군.’
남궁이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당신과 당신의 동료들은 다르더군요. 마물을 어떻게 사냥해야 하는지부터 어떤 무구와 도구를 사용해야 하는지까지 마치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효율적으로 싸웠습니다.”
“별말씀을.”
“저희를 가르쳐 주실 수 있겠습니까.”
순간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남궁은 그런 그녀를 보더니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거절한다.”
“……네?”
“거절한다고. 나는 당신들을 가르칠 생각도 없고 팀을 맡을 생각은 더더욱 없어.”
“지도자를 잃은 지금 대한민국은 위기에 빠졌습니다. 당신도 한때나마 국가를 위해 몸을 바쳤던 사람이지 않습니까. 아니, 그 이전에 이 나라의 국민이잖습니까.”
박효주는 그의 대답에 소리쳤다.
“그래.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는 싸울 수 있다. 그러기 위해 나는 그들과 약속을 하고 힘을 빌렸으니까.”
남궁은 쥐고 있던 검을 잠시 바라봤다. 검날에 맺힌 영혼들의 대답을 하는 것처럼 떨렸다.
“하지만 내가 지켜야 할 건 이 땅이지 당신들이 아냐. 나는 정부의 개가 될 생각은 없어.”
“……무례하군!!”
“그럼 당신은 무엇을 위해서 싸우지? 나라인가? 정부인가? 아니면…….”
박효주가 인상을 찡그리며 남궁을 향해 소리치는 순간, 오히려 그는 검을 들어 그녀를 겨누었다.
“권력자인가.”
“그게 무슨…….”
남궁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묻고 싶은 건 오히려 내 쪽이거든.”
그 순간 그녀의 눈동자가 떨렸다.
“국방부 장관 박대호.”
남궁은 그녀가 어째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당신 아버지에게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