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5화 (35/270)

35화

“어이, 김씨. 그거 옮기는 데 조심하라고.”

“걱정 마십쇼.”

“냉동 창고 하나는 비워둬. 마물 해체용으로 쓸 거니!”

“형님!! 저희 건 안 됩니다. 아직 고기들이 잔뜩 있다고요.”

“야 인마. 너희 건 줘도 안 써. 쪼잔한 녀석. 누가 달라고 할까 봐 선수 치긴!”

“헤헤, 잘 아시면서.”

마물의 습격이 있었다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의 목소리엔 활기가 넘쳤다.

하지만 단순히 그들의 목소리만 놓고 본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들의 대화 속 이질적인 단어들이나 주변의 풍경은 결코 활기를 보여 주지 않았다.

“……이런 곳이 있었군요.”

박효주는 반쯤 부서진 시장의 건물들 사이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며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마장동에 축산시장이 있었던 것은 오래전부터였으니 그다지 놀라운 것도 아니지.”

남궁은 대수롭지 않게 얘기했지만 사실 그녀가 놀라는 부분은 따로 있었다.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마물의 시체를 나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물은 죽이면 재가 되어 소멸 되는 것 아니었습니까? 어째서…….”

“마물을 죽이면 재가 되어 소멸된다는 건 틀리지 않아. 그런데 저들이 마물의 시체를 나르고 있다? 답은 하나지. 저거 아직 살아 있는 거다.”

“사, 살아 있어요?”

박효주는 남궁의 말에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들을 바라봤다.

어제 침공했던 리자드맨의 시체가 얼어붙은 채로 창고 안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설마…….”

“산 채로 얼린 거지.”

“우웁!”

그의 말에 박효주는 자신도 모르게 헛구역질을 하고 말았다. 속이 뒤집어지는 기분에 거친 숨을 토해내는 그녀의 앞에 거구의 남자가 나타났다.

“당신들은 누구요? 오늘은 영업 하지 않소. 아니, 언제 할지 모르지. 고기를 대던 농장들이 거의 다 망했거든.”

남궁은 그를 바라봤다.

뺨에 치료도 하지 않은 듯 벌어진 채로 굳은 상처가 길게 나 있는 거구의 남자.

그가 바로 장길수였다.

“그럼 저 고기들은 뭡니까?”

“저건 먹을 수 없는 거요. 괴물 고기니까. 어제 나타난 괴물들 말이오. 그것들을 도축한 거지. 먹었다가 무슨 일이 생길지 나도 장담 못하오.”

“쓸데도 없는데 어째서 수고스러운 짓을 하고 있습니까?”

“그쪽이 먹지 못한다고 했지 우리가 먹지 못한다고 하지는 않았거든. 여튼 우리 먹을 것도 없으니 괴물 고기도 팔지는 못하겠군.”

“머, 먹는다고요?”

“상관할 바 아니잖소. 돌아가시오.”

장길수는 두 사람을 향해 손을 저었다.

‘리자드맨 고기를 식용으로 사용한다라…… 역시 예상대로 폭식(暴食)의 자질을 이미 깨우친 모양이군.’

그가 강자로 부상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폭식이란 말 그대로 집어삼키는 것.’

놀랍게도 그는 마물을 먹으면 먹을수록 자신의 능력치를 증가시킬 수 있는 특수한 능력을 가진 자였다.

‘그것이 지금 저들이 마물을 죽이지 않고 얼려두는 이유겠지.’

저벅- 저벅- 저벅-

남궁은 장길수를 지나쳐 성큼성큼 냉동 창고로 걸어갔다.

“이, 이봐!!”

다급히 그가 불렀지만 남궁은 아랑곳하지 않고 쌓여 있는 리자드맨의 고깃덩이를 잘라 입에 넣었다.

“우엑…….”

박효주는 그 모습에 오만상을 찌푸렸지만 장길수는 그녀와 반대로 얼굴이 굳어졌다.

“맛은 역시 별로야.”

“……무슨 짓을 하는 거요?”

“아무리 맛있는 고기라도 계속 똑같은 것만 먹으면 물리게 마련이지. 육체도 마찬가지입니다. 효과가 있다고 해서 미련하게 먹어 봤자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가 있습니다.”

툭-

남궁은 들고 있던 고깃덩이 위에 뭔가를 발랐다. 그러고는 그것을 장길수에게 던졌다.

“미련하게 얼마나 많이 먹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먹느냐가 중요한 겁니다.”

그는 먹어 보라는 듯 장길수에게 손짓을 했다.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지만 그는 남궁이 건넨 고기 조각을 입에 넣었다.

“……?!”

그 순간 장길수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살 만한 게 없는 것 같으니 우리는 이만 돌아가야겠군.”

“자, 잠시만!!”

남궁이 발길을 돌리는 순간 장길수가 황급히 그를 붙잡았다.

“방금…… 그거 뭐였소? 고기에다가 무슨 짓을 한 거지?”

“글쎄. 일단 자리를 옮기는 게 어떻습니까? 아무래도 손님은 내가 아니라 그쪽인 모양인 거 같은데.”

그 순간 남궁은 묘한 미소를 지었다.

* * *

탈칵-

장길수는 남궁과 박효주를 축산시장 가장 안쪽에 있는 가게 안 창고로 안내했다.

“지저분해 보여도 어쩔 수 없소. 여기가 내가 사는 곳이니까.”

창고 안에는 몇 가지의 생필품과 작업복이 너부러져 있었다. 작업복에 묻은 핏물이 채 가시지 않아 창고 안의 냄새는 지독했다.

“빌어먹을 괴물들 때문에 집이 무너지고 가족도 모두 잃었거든.”

그의 눈은 복수심으로 가득했다.

마물의 고기를 먹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남궁은 살기 위해 전생에 숱하게 놈들의 고기를 먹었지만, 사실 리자드맨의 고기만 하더라도 비리고 역해 생으로 먹는 건 끔찍한 일이었다.

“마물을 먹으면 강해진다…… 지옥문이 열리고 이따금 선택받은 자들은 평범한 사람들과 달리 특수한 능력을 개안한다지만 확실히 보기 드문 능력이군요.”

남궁은 장길수에게 말했다.

“선택받은 사람? 흥…… 저주받은 사람이겠지.”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그들 중 한 명이 바로 당신이잖습니까. 폭식의 능력을 가진 사람.”

“……!!!”

“마물을 먹게 되면 능력치가 증가하는 아주 희귀한 자질이죠.”

“그걸 어떻게…….”

남궁은 아무렇지 않게 박효주를 가리켰다.

“그녀는 국정원 소속입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정보력이 뛰어난 곳이죠. 이거면 충분히 대답이 되었을 것 같은데…… 아닙니까?”

“흥, 잘나신 국정원 요원이 일개 도축업자나 조사하고 있다니. 아주 그냥 감개무량이로군.”

그 순간 박효주는 ‘제가요?’라는 눈빛으로 어이없다는 듯 남궁을 바라봤다.

“하지만 당신 발골 기술은 최고인데 미각은 없는 모양이군요. 왜 날것을 그대로만 먹는 겁니까? 인간은 요리라는 위대한 발명을 했는데.”

“어떻게 내 뒤를 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제대로 조사를 하지 못한 모양이군. 이건 마물의 고기는 맛으로 먹는 게 아니야. 소금? 후추? 그딴 걸 고기에 발라 봐라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남궁의 말에 오히려 장길수는 코웃음을 쳤다.

“마물의 고기는 그대로 녹아 버린다. 사라져 버린다고. 불에 구우려고 해도 전혀 익지 않아. 모르는 건 당신이오.”

“나름 연구를 하셨군요.”

그는 말했다.

“물론. 만약 이 빌어먹을 상황이 계속된다면 언젠가 식량이 고갈 될 위험도 생각해야 하니까. 하지만 갖은 노력을 했지만 결국 식용으로 쓸 수 없었소.”

“고작 2번째 지옥문이 끝났을 뿐인데 식량 고갈을 대비한다라…… 정부보다 낫군. 안 그래?”

“…….”

박효주는 슬쩍 자신을 바라보는 남궁의 눈빛에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하죠. 마물은 우리 세계의 존재가 아닙니다. 요리하려면 그쪽 세계의 도구를 쓰는 게 맞지요.”

탁-

그러고는 그 앞에 작은 유리병 하나를 내려놓았다.

“아직은 구하기 힘든 겁니다.”

넘버링 1211.

이름 : 크루산 서쪽 해변 소금잼

등급 : 매직(최고)

▶가격 : 100,000헤드

▶ 소금으로 만들었지만 걸쭉하다. 발라 먹으면 달콤한 향이 나면서 짭짜름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장길수는 자신의 앞에 놓여 있는 소금병을 바라보며 아차 싶었다.

“야차 보따리에서 이런 것까지 판다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소. 지금까지 바보 같은 짓을 했어.”

“바보 같은 짓은 아닙니다. 당신이 마물을 해체하는 노력을 한 덕분에 놈들의 약점을 알아내지 않았습니까.”

“약점이라고 할 것도 없지만…… 이왕 도살을 하는 김에 녀석들의 몸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살피긴 했지.”

그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근데…… 문이 닫히고 나면 그다음엔 새로운 마물이 나오는 것 아닌가요?”

“1번째엔 고블린 2번째엔 리자드맨. 겨우 두 번밖에 경험하지 못했는데 누가 그런 일반화를 시키는 거지.”

“아…….”

박효주는 남궁의 대답에 아차 싶은 표정이었다.

“놈들이 다시 또 나오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어. 그런 의미에서 그의 해체 작업은 오히려 국정원이든 국과수든 정부 기관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일을 한 거다.”

“추켜세울 필요 없네. 그냥 놈들을 먹어치우면서 알게 된 것뿐이니까. 별거 아니야.”

장길수는 남궁의 말에 손사래를 쳤다.

“그 별거 아닌 게 저희는 필요 합니다. 당신이 마물을 해체하며 알게 된 정보 말이죠.”

“그걸 어디에 쓰려고 하는 것이오?”

그 순간 남궁은 자신의 뒤에 서 있는 박효주를 바라봤다.

“제가 아니라 이 사람에게 알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마물이라고 해도 결국은 생물. 약점이 존재하고 그 약점을 정확히 공격했을 때 가장 적은 힘으로 많은 수를 사냥을 할 수 있으니까요.”

“아…….”

박효주는 그의 말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장길수의 능력이 폭식이라면 그녀의 힘은 염동력이었다. 먼 거리에서도 자유자재로 칼날을 부릴 수 있는 능력이었지만, 딱 하나 위력이 약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의 밑에서 배우도록 해. 훈련과는 전혀 다를 거다. 직접 근육과 뼈를 만져봐야 알게 되는 것이 있으니까.”

“꼭…… 해야 하나요?”

“싫으면 상관없어. 하지만 곧 그에게 배우고 싶다는 사람들이 줄을 설걸?”

남궁은 탁자에 놓인 병을 가리키며 말했다.

“소금 한 병 값이면 오히려 감사 한 일이지.”

계속해서 병에 시선이 가던 장길수는 남궁의 말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병을 품 안에 넣었다.

“하하하, 그 정도야 원한다면 얼마든지. 어려운 일이 아니지. 하지만 단단히 마음먹고 와야 할 거야. 만만치 않을 테니까.”

“딱 3일. 3일만 그의 밑에서 배워. 리자드맨의 약점과 놈들을 공략 할 방법을 말이지.”

“왜죠? 이제 문은 닫혔고 전국에 남아 있는 마물이 소탕되고 있습니다.”

“1번째 지옥문 때를 벌써 잊었나? 문이 사라지고 난 뒤에 더 많은 고블린들이 나타났었는데.”

“아…… 설마…… 이번에도?”

“기대해도 좋아. 그때와는 비교 할 수 없을 정도 큰 파도가 밀려 올 테니까.”

꿀꺽-

광화문에서 치열했던 전투를 떠올리며 박효주는 자신도 모르게 긴장한 듯 마른침을 삼켰다.

“하지만 그 전에…….”

남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길수 씨. 이제 다른 것을 드셔보지 않겠습니까?”

“……다른 거?”

그를 바라보는 장길수를 향해 남궁은 말했다.

“슬슬 나타날 때가 되었는데…….”

그때였다.

쿠그그그그그---!!!

갑자기 지면이 미친 듯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뭐, 뭐야?!”

“무슨……!!”

장길수와 박효주는 황급히 주위의 기둥을 움켜잡으며 남궁을 바라봤다.

“혀, 형님!!!”

“어서 나와 보세요!!”

“시장 앞에 거대한 싱크홀이 생겼습니다!!”

소란스러운 시장의 상인들의 외침에 장길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가게의 문을 열었다.

“……!!!”

그 순간 그의 눈앞에 끝을 알 수 없이 깊고 거대한 구멍이 나타났다.

“맛없는 도마뱀 고기 말고 이번에 소고기 어떠십니까.”

“그거 좋지.”

2번째 던전, 미노타우르스의 미궁(迷宮).

공략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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