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명훈 삼촌!”
“아, 소민아. 일어났니?”
아침거리를 사온 명훈은 고블린 성채에서 나오는 소민을 향해 봉지를 들어 보였다.
“지금 마트에서 구호물자들을 나눠주더라. 수량 제한이 있으니까 경인이랑 같이 다녀와. 그동안 아침 준비 해놓을게.”
“정말요? 알겠어요. 그런데 아빠는 어디 가셨어요?”
“음…… 형님은 어젯밤에 일이 있으셔서 바로 나가셨어. 아마 던전 공략 때문인 거 같더라.”
“엑?! 저희들을 두고 혼자서요?”
“혼자는 아니라고 하긴 했는데 이번엔 따로 움직이시겠다고 하더라고.”
“이상하네…… 던전의 기본 보상은 참여한 사람들 모두에게 주어지잖아요. 이왕이면 많은 사람들이 같이 가면 더 좋은 거 아닌가?”
소민은 명훈의 말에 서운한 듯 말했다.
“그러게.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번에 나올 던전은 그렇지 않은가 보더라.”
“으흠?”
“이번 던전은 저번과는 달라. 입장할 수 있는 인원의 수가 제한되어 있다고 하더라.”
명훈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구나. 인원 제한이라니…… 그런 던전도 있는 거군요. 신기하네. 왜 그렇지?”
“그건…….”
* * *
“제물이거든요. 우리는.”
남궁은 마장동에 생겨난 거대한 싱크홀 앞에서 장길수와 박효주에게 말했다.
“아마 들어는 보셨을 겁니다. 이 세계에도 전해지는 신화의 한편이죠.”
“미궁 라비린토스(Labyrinthos). 크레타섬의 미노스왕이 반인반우(伴人半牛)의 괴물 미노타우르스를 가두기 위해 만든 미궁. 설마 그게 저 아래 있다는 말인가요?”
박효주는 그의 말에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왕은 괴물의 분노를 달래기 위해 매년 7명의 총각과 처녀를 제물로 바쳤다…….”
“맞아. 잘 알고 있군. 하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신화와는 조금은 달라.”
남궁은 세 개의 손가락을 펼쳤다.
“이곳에 들어갈 수 있는 건 3명뿐이야. 제물로 바쳐질 남성과 여성, 그리고 안내자. 그리고 그들이 죽으면 또다시 3명이 들어갈 수 있다. 그렇게 7번의 기회가 주어진다.”
“만약 모두 실패하면 어떻게 되나요?”
“미궁의 문이 열리고 미노타우르스가 미궁에서 풀려나게 되지. 참고로 제물을 1명씩 먹어 치울 때마다 놈은 강해진다.”
“지독한 던전이군요.”
“걱정 마. 실패할 리 없으니까.”
박효주는 너무나도 자신만만해 하는 남궁의 태도에 오히려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당신 실력이 대단한 건 알겠지만 자신감이 너무 과한 것 아닙니까?”
“내가 자만하고 있다고 생각해? 글쎄, 내가 믿는 건 따로 있는데.”
그 순간 남궁은 장길수의 어깨를 가볍게 쳤다.
“대한민국에서 소를 제일 잘 잡는 사람이 여기 있으니까. 안 그래?”
“……농담하지 마십시오.”
그의 말에 박효주는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흥, 마지막 말은 마음에 드는군. 미노 뭐시기인지 무슨 왕인지…… 나는 그런 어려운 말은 모르겠지만 밑에 있는 게 소라면 내가 빠질 수 없지.”
장길수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조금만 기다리시오. 칼을 좀 갈아야 하니까.”
“기대하겠습니다.”
남궁은 그의 대답에 피식 웃고 말았다.
‘미궁의 공략법은 나도 모른다. 애초에 2번째 던전을 내가 클리어한 것이 아니니까.’
그러나 그가 던전 공략에 있어서 장길수를 믿는다고 하는 것 역시 농담이 아니었다.
2번째 던전, 미노타우르스의 미궁을 공략한 사람이 바로 장길수였기 때문이다.
‘미궁에서 무엇을 얻은 것인지는 모르지만, 장길수는 던전을 공략한 이후 엄청난 속도로 마물들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비약적인 성장.
그것은 마장동이 서울에서 가장 강력한 지역이 될 수 있게 해주었지만, 장길수 본인을 갉아먹는 독이 되기도 했다.
‘나중에 결국 그는 광기에 빠지게 된다.’
남궁은 던전의 공략과 함께 그것을 막기 위해서 이곳에 온 것이기도 했다.
“미궁 속 미로는 오직 혼자서 이겨내야 한다. 아마 들어가면 뿔뿔이 흩어질지 몰라.”
“각자도생(各自圖生)해야 한다는 말이군요.”
“맞아. 딱히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누가 그러더라. 미심쩍을 땐 오른쪽이 정답이라고.”
“퍽이나 도움이 되는 얘기네요…… 무슨 시험 문제 찍기도 아니고…… 마물을 잡는 데 방향이 무슨 소용인지 모르겠네요.”
“그러게. 나도 잘 몰라. 그래도 기억해 두는 게 좋을 거야.”
박효주는 그의 말에 인상을 찡그리고는 대충 주위에 쓰러져 있는 잔해에 몸을 기대었다.
“출발할 때 깨워나 주시죠. 밤을 새우고 왔더니 피곤하네요. 조금 눈을 붙여야겠어요.”
마물의 발골 작업이 한창이라 피비린내가 잔뜩 나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눈을 감았다.
마음을 먹어서일까.
헛구역질을 하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개인전에서 가장 중요한 게 체력이라는 걸 아는 거지.’
과연 훈련을 받은 사람다웠다.
남궁은 그녀를 데려온 것이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미궁의 문을 열기 위해서는 성별의 조건을 맞춰야 한다. 자질의 능력만 놓고 본다면 소민이가 뛰어나지만…….’
아직 혼자서 싸우기엔 부족했다.
아무리 뛰어나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신력이었으니까.
남궁은 박효주에게 항상 쓴소리를 했지만 자신의 기억 속에 가장 믿을 만한 여성이 그녀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그럼 나도 준비를 해야겠군.’
남궁은 입고 있던 점퍼를 벗어 눈을 붙이는 그녀의 위에 얹어 주고는 몸을 돌렸다.
* * *
▶ 미노타우르스의 미궁에 입장하였습니다.
▶ 당신들은 제물이 되었습니다.
▶ 미로를 통과하여 제단 위로 올라가십시오.
[남아 있는 제물 : 3/3]
[제단에 바쳐진 제물 : 0/3]
눈을 뜨자 새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여기가 미궁이군.’
양쪽 어깨에 닿을 정도로 좁은 길은 끝이 보이지 않았고, 곳곳에 새로운 길이 있어 방향을 외운다는 것도 쉬워 보이지 않았다.
‘제물의 숫자는 지금 미로에 있는 우리들을 말하는 거겠지.’
남궁은 상공에 떠 있는 작은 글씨를 바라봤다.
그 아래 제단의 바쳐진 제물은 아마 미로를 끝낸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따로 떨어져 있긴 하지만 그래도 저걸 통해서 생존의 여부는 알 수 있을 것 같군.’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는 던전에서 제공되는 2개의 정보에 쓴웃음을 지었다.
저 숫자는 3명이 모두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정보임과 동시에,
‘제단에 바쳐진 제물의 수가 올라가지 않았는데 남아 있는 제물의 수가 줄어든다면…….’
누군가의 죽음을 알리는 정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뭔가 일이 생겼다고 해도 미로에 있는 한 도움을 줄 수도 없었다.
‘그저 동료의 죽음에 절망할 수밖에 없는 것.’
남궁은 그것이 미궁의 진짜 공포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흐음.”
그는 이끼 가득한 벽을 바라보며 천천히 호흡을 들이마시자 눅눅한 습기가 느껴졌다.
철벅-
발걸음을 내딛자 물웅덩이들이 곳곳에 보였다.
길바닥은 공기를 채운 습기만큼 축축했고 웅덩이들이 군데군데 징검다리처럼 보였다.
“물이라…… 그걸 써먹을 수 있겠는 걸.”
남궁은 한쪽 무릎을 꿇고서 물웅덩이 위에 손바닥을 가져갔다.
쉬이이이이…….
그러자 그의 손바닥과 평행이 되어 있는 웅덩이의 수면이 천천히 흔들리더니 물방울들이 떠올라 물고기의 형태가 되었다.
지잉-
그의 손목을 감고 있는 팔찌에 박혀 있는 작은 에메랄드가 떨렸다.
‘3마리가 한계인가.’
남궁은 피곤한 듯 자신의 주위에 떠 있는 투명한 수어(水魚)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넘버링 748090.
이름 : 어룡(魚龍)의 보석
등급 : 매직(최고)
▶ 써펀트의 심장 조각이 박혀 있는 팔찌.
▶ 수어를 조종할 수 있다.
▶ 착용자의 정신력에 따라 수어의 숫자가 증가한다.
써펀트를 사냥하고 얻은 보상이었다.
“길을 찾아.”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소환 된 수어들이 마치 공중에서 헤엄을 치듯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각각의 수어들의 시야가 공유되는 것까지는 아니었지만, 마치 머릿속에 가려진 지도가 벗겨지는 것처럼 수어들이 이동하는 경로 조금씩 나타났다.
‘과연…….’
남궁은 수어들을 통해 천천히 미로를 밝혀 나가며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는 25년 동안 수많은 문과 던전을 겪으면서 하나의 규칙을 찾아냈다.
그것은 각각의 월드 보스의 드랍템은 그 문이 닫히고 나서 생성 되는 던전을 공략하는 데 도움이 되는 물건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룡(魚龍)의 보석은 단순히 이번 던전을 공략하는 도구에서 끝나는 게 아냐.’
손목에 채워져 있는 그의 팔찌는 조금 특이했다.
박혀 있는 에메랄드 보석뿐만 아니라 보석이 박혀 있어야 할 4개의 소켓이 더 있었다.
‘보상템의 이름이 팔찌가 아니라 보석인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니까.’
지옥문의 아이템엔 여러 종류가 있다.
【고블린 로드의 팔찌】처럼 더 이상 승급되지 않은 완성형, 그리고 등급의 괄호 안에 ‘최초’라고 써져 있어 그 이상으로 승급시킬 수 있는 것을 성장형이라고 한다.
하지만 사실 그보다 더 특이한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조합형이었다.
‘등급 자체는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완성형이지만, 그것들을 재료로 삼아 특수한 조건을 완성시켰을 때 새로운 아이템을 만들 수 있다.’
남궁이 획득한 【어룡의 보석】이 바로 그것이었다.
‘써펀트를 비롯해서 드레이크, 바실리스크, 샐러맨더, 그리고 와이번까지.’
5마리의 아룡(牙龍)들을 사냥해서 얻은 보석을 모으면 새로운 보석으로 조합할 수 있다.
하지만 풍문으로만 들었을 뿐 단순히 보석을 모으는 것으로 끝인지 아니면 또 다른 조건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전생에는 그 보석을 모두 모은 자가 없었으니까.
‘15개의 지옥문이 열리는 동안 나머지 4마리의 아룡들이 나온다.’
남궁은 그 문이 모두 열린 이후까지도 살아남았었고 놈들을 모두 겪어봤다.
‘전생에 아무도 이루지 못한 업적을 이번에 내가 달성해 보겠어.’
차르릉…….
남궁은 가볍게 떨리는 팔찌 안의 보석을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퍼억---!!!
그때였다.
미로 안에 뿌려 놓은 3마리의 수어 중 하나가 풍선 터지듯 터져 버렸다.
“……!!”
수어의 기운이 사라지자 남궁은 황급히 그 방향으로 손을 내저었다.
솨아아악……!! 솨삭……!
그러자 나머지 수어들이 빠른 속도로 헤엄치며 조금 전 폭사 당한 수어가 있는 곳의 길을 찾았다.
퍽! 퍼벅!!
각기 다른 통로를 따라 그곳으로 들어 간 나머지 수어들도 어김없이 터져 버리고 말았다.
“찾았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무것도 없었던 미로에 갑작스러운 공격.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었다.
남궁은 미궁의 주인이 있는 그곳을 향해 거침없이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