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8화 (38/270)

38화

“거참 실하게 생긴 놈이구만.”

장길수는 열린 벽에서 걸어 나오는 미노타우르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거 먹을 수 있을라나? 두 발로 다니는 소라니…… 저건 좀 징그럽잖아. 안 그래?”

그가 허리춤에서 감고 있던 벨트를 풀었다. 그 안에는 여러 개의 나이프들이 들어 있었다.

스르릉-

그중 두 개의 나이프를 꺼냈다.

커다란 덩치에 비해서 그가 사용하는 나이프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발골에 사용되는 본 나이프(Bone Knife)였다.

“공략은?”

“미궁에 들어왔을 때처럼.”

“알아서 각자도생이란 말이군. 좋아. 그럼 일단 내가 먼저 나서지. 소 잡는데 도축업자가 손 놓고 있을 수 없지. 안 그런가.”

남궁의 대답에 장길수는 거리낌 없이 미노타우르스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혹시 약점 같은 거 없습니까? 소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지 않습니까.”

달려가는 그의 뒤를 박효주가 뒤따랐다.

“약점이야 있지.”

그녀의 물음에 장길수는 씨익 웃었다.

“놈도 결국 심장이 뛰는 생명체라는 거. 소든 인간이든 숨통이 끊어지면 죽는 건 똑같아.”

“그게 무슨…….”

퍼억-!

장길수가 미노타우르스의 도끼를 피하며 품 안으로 파고들며 갈비뼈 사이로 나이프를 찔러 넣었다.

주욱-!

그 순간 놀랍게도 마물의 움직임이 멈칫했다.

까드드득……!!

그가 나이프를 비틀자 뼈가 갈리는 소리와 함께 찢어진 상처가 벌어졌다.

꽈악!!

그 안으로 팔을 집어넣고서 있는 힘껏 잡아당기자 우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미노타우르스의 갈비뼈가 휘어지며 튀어나왔다.

[카아아아아악!!!]

비명과 함께 벌어진 갈비뼈 사이로 피가 왈칵 쏟아졌다. 장길수는 피를 뒤집어쓰면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더 팔에 힘을 주었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놈의 뼈가 부러졌다.

부우우우웅--!

비틀거리며 미노타우르스가 장길수를 떼어내기 위해 커다란 도끼를 휘둘렀다.

하지만 장길수는 오히려 떨어지기는커녕 부러뜨린 갈비뼈를 놈의 가슴에 박아 넣었다.

슉! 슈슉!!

동시에 허리에서 두 자루의 본 나이프를 더 꺼내 마물의 다리에 박아 넣었다.

비틀-!

미노타우르스의 중심이 무너지는 순간 장길수는 놈의 뒤로 돌아가 놈의 목덜미를 이로 콱 깨물었다.

우드드득……!!

“……퉷!”

물어뜯은 살점을 뱉어 내고 그 사이로 나머지 나이프를 찔러 넣은 그는 뒤로 물러나며 손에 든 살점을 입에 넣고 질겅질겅 씹기 시작했다.

“어우, 누린내. 드럽게 맛없구만.”

그는 마치 껌을 씹는 것처럼 잘라 낸 살점을 입안에 물고서 말했다.

오만상을 찌푸렸지만 꿀꺽하고 그의 목젖이 움직이는 순간 어쩐지 그에게서 풍기는 기운이 확연하게 달라졌다.

“호오…… 이놈 보소?”

순식간에 몸 안에 퍼지는 강렬한 기운에 조금 전까지 장길수는 씨익 웃었다.

‘과연 폭식왕이로군. 아직 자질을 완벽하게 개안하지 않았는데 이 정도라니.’

남궁은 그의 전투를 차분하게 바라봤다.

딱히 전투술을 익힌 것 같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놀라울 정도로 미노타우르스를 압도하고 있었다.

그의 뒤를 따랐던 박효주 역시 딱히 도울 기회를 찾지 못한 듯 멍한 표정으로 우두커니 서서 남궁의 눈치를 살필 뿐이었다.

“좋아. 이제야 좀 재밌어지겠군.”

그런 두 사람의 시선을 받으며 장길수는 옆구리가 찢어진 미노타우르스를 향해 다시 나이프를 잡았다.

“저놈은 내가 잡아 볼까 싶은데. 이의는 없겠지?”

“잡을 수 있다면.”

“먹어 치운 이상 껌이지. 아직 내 능력을 제대로 모르나 보군. 거기서 그냥 보고나 있으시게.”

장길수가 미노타우르스를 향해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러자 그의 눈빛이 붉은 안광을 뛰었다.

‘약육강식(弱肉强食). 폭식의 능력이 발동되었군.’

남궁은 그가 믿는 카드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인간형을 제외한 동물형 마물에 대하여 사냥할 때 능력치가 증가하고 한번 먹어 치운 마물은 위압의 효과로 능력치가 약화된다.’

[크르르르르…….]

그의 생각을 증명하기라도 하는 듯 장길수의 앞에 선 미노타우르스가 오히려 겁에 질린 듯 뒤로 물러섰다.

‘후반에 가면 마족을 비롯해서 드래곤이라든지 레비아탄과 같이 동물형 마물들의 소환이 줄어들긴 하지만, 확실히 초반엔 사기적인 능력이야.’

“어딜……!!”

물러서는 미노타우르스를 향해 장길수가 오히려 놈을 향해 달려들었다.

부우우웅……!!

조금 전보다 현저하게 느려진 속도의 도끼를 그가 호락호락 맞을 리 없었다. 장길수는 여유롭게 도끼를 피하면서 다시 한번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감히 내가 있는 동네에 터를 잡아? 네놈의 뿔 빼고 모두 발라주마!!”

장길수가 뛰어오르며 미노타우르으의 어깨를 밟고 녀석의 목을 조이듯 두 다리로 꽉 움켜잡았다.

“도대체 저 거구가 어떻게 저렇게 싸울 수 있는 거지? 진짜 도축업자가 맞습니까? 특수 훈련을 받아도 저렇게까지는…….”

“그가 가진 자질 때문이야. 그의 능력치가 상승하는 것도 있지만 그의 위압에 미노타우르스가 약화된 게 크지.”

“……말도 안 되는 능력이네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당신이 가진 능력이 그의 비해서 절대로 낮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데.”

“그런가요?”

“염동의 강도는 정신력에 의해 좌우된다. 그 말은 정신력이 받쳐준다면 육체의 능력을 뛰어넘는 힘을 낼 수 있지. 게다가 공격의 범위마저 무한에 가깝게 늘릴 수도 있어.”

남궁은 미노타우르스와 싸우고 있는 장길수를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그에게 가르침을 받으라고 한 건 단순히 그가 마물을 해체하면서 얻은 약점들을 공부하라는 의미가 아냐. 그렇다고 저 덩치가 곡예하듯 마물을 사냥하는 걸 보라는 의미도 아니지.”

“그럼……?”

“뼈와 살을 바르는 그의 발골 능력은 무식하게 힘만 쓴다고 가능한 게 아냐. 그가 어떤 식으로 힘을 분배하는지를 보라는 의미다.”

그의 말에 박효주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장길수의 솜씨를 당신 것으로 할 수 있다면…… 근접전뿐만 아니라 원거리까지 사각이 없는 일격필살(一擊必殺)의 전투를 완성시킬 수도 있다.”

남궁은 그녀에게 말했다.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여유를 부릴 수는 없는 상황이니…… 장길수가 먹어 치우는 폭식이라면 너는 그런 강자들의 능력을 모조리 흡수하는 거다.”

“언젠가 당신의 능력도 배울 수 있을까요?”

“그건 불가능.”

박효주는 확실하게 선을 긋는 그의 대답에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서걱-!!

역수로 쥔 본 나이프를 내지르며 장길수가 미노타우르스의 허벅지를 갈랐다.

“마무리가 될 듯 보이는군요. 길이 고생스럽긴 했지만…… 보스는 오히려 너무 쉽게 끝났네요.”

“그렇진 않을걸.”

“네?”

‘장길수의 능력은 확실히 대단하지만…….’

남궁은 천천히 고개를 내렸다.

‘무기가 아쉽군.’

그가 사용하는 본 나이프는 마물에게서 얻은 것도, 야차 보따리에서 판매하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껏 그가 발골 때 쓰던 일반적인 칼이었다.

‘아마도 가장 손에 익고 자신 있는 무기라서 사용하는 것이겠지만…….’

전투용이 아닌 이상 칼날의 강도엔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고블린이나 리자드맨 같은 소형 몬스터라면 충분히 통할 수 있었겠지만, 가죽이 질기고 튼튼한 미노타우르스를 상대하기엔 너무 부족해.’

촤아아악……! 캉!!!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허벅지를 가르던 장길수의 칼날이 그만 질긴 가죽을 버티지 못하고 부러지고 말았다.

“……!!”

부우우웅-!!

미노타우르스가 주먹을 날리자 장길수는 부러진 나이프를 버리며 뒤로 물러났다.

“쳇, 질긴 놈이군. 그래도 상관없어. 어차피 거의 피떡이 된 녀석이니까.”

장길수는 아무도 나서지 말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그제야 남궁은 어째서 그가 미노타우르스의 미궁에서 나왔을 때 한쪽 다리를 잃었는지 알 수 있었다.

‘미노타우르스의 또 다른 특성을 아직 파악하지 못한 모양이군. 놈의 살점을 먹었으니 폭식의 능력을 제대로 쓴다면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었을 텐데. 자신을 너무 과신하고 있어.’

[쿠우어어어어--!!]

피투성이가 된 미노타우르스가 포효를 지르자 그의 눈동자가 시커멓게 변했다. 동시에 장길수가 낸 상처들이 순식간에 아물었다.

‘광폭화(狂暴化).’

남궁이 눈을 살짝 흘기는 순간 쿵! 쿵! 쿵! 하며 지면을 울리는 발굽 소리와 함께 마물이 머리의 뿔을 세우며 장길수를 향해 돌진했다.

“……!!!”

조금 전까지와는 달리 엄청난 속도였다.

광폭화로 인해 공포가 사라진 놈에게 더 이상 장길수의 약육강식이 먹히지 않은 것이다.

콰직-!!!

미노타우르스의 뿔이 장길수의 복부를 찔렀다. 놈이 고개를 쳐들자 마치 투우 경기를 보는 것처럼 그의 몸이 뿔에 받혀 부웅 떠올랐다.

“……컥!!!”

옅은 신음을 토해낸 그가 공중에서 한 바퀴 구르며 바닥에 처박혔다.

“저, 저거……!”

박효주가 황급히 그를 도우러 검을 들었다.

“잠깐.”

하지만 그런 그녀를 남궁이 막아섰다.

“아직 아니야.”

“……네?”

“후우, 후우…….”

그의 말대로 쓰러졌던 장길수가 일어났다. 거친 호흡을 내뱉었지만 아직 투지가 꺾이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이프가 한 자루 더 남았잖아.”

마치 남궁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는 듯 그가 허리에 차고 있는 칼집에서 마지막 본 나이프를 꺼냈다.

“……저걸로 가능할 것 같지 않은데요.”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광폭화에 돌입한 마물은 방어력도 상승하니까. 모르긴 몰라도 이제 나이프로 가죽을 가르기는커녕 흠집도 내기 못할걸.”

“어서 도와야죠. 저 괴물에게 당하기라도 하면…….”

“그냥 두면 다리 하나 잘리겠지.”

“……네?”

“하지만 무기가 남아 있는 이상 도움을 준다면 오히려 장길수는 납득하지 않을 거야.”

“아무리 그래도…….”

“단순히 보상 때문이 아니야.”

“그럼?”

살 떨리는 소리를 너무나 담담하게 대답하는 남궁의 말에 박효주는 인상을 찡그렸다.

콰직--!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본 나이프의 칼날이 미노타우르스의 가죽을 베려는 장길수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단박에 부러졌다.

[쿠우우우우!!]

미노타우르스가 숨을 토해내자 새하얀 김이 커다란 콧구멍에서 기관차의 증기처럼 뿜어져 나왔다.

두두두두……!!

부우웅……!!

순식간에 달려들어 거리를 좁히며 놈이 거대한 도끼를 휘둘렀다.

풍압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인 공격에 장길수는 있는 힘껏 녀석의 공격을 피했다.

“……?!!”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가는 도끼에 몸을 아래로 숙이며 피하는 순간 몸을 돌린 미노타우르스의 꼬리가 채찍처럼 장길수의 다리를 감았다.

쿵-!!

다리에 휘감긴 꼬리에 중심을 잃고 그가 그만 바닥에 얼굴을 박으며 쓰러졌다.

“이런 젠장!”

바닥에 처박힌 장길수가 황급히 몸을 틀었다.

부우우웅--

단두대의 칼날처럼 미노타우르스의 도끼가 그의 다리를 찍을 듯 떨어졌다.

“위, 위험……!!”

“장길수는 소같이 우직한 사내지. 그런 자는 돈이나 권력으로 다루는 게 아니야.”

그 순간 박효주는 남궁이 장길수가 당하는 순간을 기다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은혜지.”

파앗--!!

남궁의 몸이 탄환처럼 튀어나가자 그의 등 뒤로 3명의 영혼 병사들이 나타났다.

캉! 카강! 카가강-!!

영혼 병사들이 달려들며 미노타우르스의 도끼를 튕겨내자 남궁은 녀석의 꼬리를 자르며 장길수를 뒤로 잡아당겼다.

“이제부터 제가 맡죠.”

“……쳇, 거의 다 끝났는데.”

장길수는 투덜거리면서 꼬리가 감겨 욱신거리는 다리를 절뚝이며 간신히 일어섰다.

‘부러진 건가?’

그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 발목에 인상을 찡그렸다. 입으로는 투덜거렸지만 그냥 뒀으면 다리가 부러지는 건 고사하고 아예 날아갔을 것이 틀림없었다.

“……빚을 졌구먼.”

평생 잃을 뻔한 다리를 만지며 그는 남궁을 향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 마시죠. 톡톡히 받아낼 테니까.”

남궁은 검을 들며 말했다.

일단은 던전의 보상부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