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저것들은 뭐야?”
장길수는 남궁의 뒤에 서 있는 영혼 병사들을 바라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내 폭식이 사기라더니 자네 능력이야말로 진짜 사기급이로군. 저런 걸 숨겨 놓다니 말이야.”
하지만 투덜거리는 장길수의 말과 달리 남궁은 아직 자신의 영혼 병사들이 미노타우르스를 상대하기엔 부족하다는 걸 알았다.
‘아마 나라도 저걸 잘못 맞으면 한 방에 죽을 수도 있겠는걸.’
남궁은 거대한 도끼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단 한 대도 허용해서는 안 된다.’
그는 정신을 집중하며 영혼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그들이 해야 할 건 녀석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것.
파악--!
순간 3명의 병사들 중 2명이 미노타우르스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남궁은 찰나를 놓치지 않고 녀석의 뒤를 노렸다.
스르르-
“……?!”
박효주와 장길수는 갑자기 사라진 그의 모습에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넘버링 946770.
이름 : 써펀트의 부서진 비늘 조각
등급 : 매직(최고)
▶ 써펀트의 비늘의 일부.
▶ 빛을 반사시키고 시야를 굴절 시켜 소지자의 모습을 주위 풍경에 동화시킨다.
▶ 제한 : 하루 1회
2번째 지옥문의 월드 보스인 써펀트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하고 나온 은상자에서 얻은 보상템이었다.
다다다다다-!!
남궁이 달리자 미세한 흔들림이일어났다. 은신처럼 완벽하지 않아 크게 호용성은 없었지만 순간 마물의 시야에서 벗어나기엔 충분했다.
콰직-!
두 명의 영혼 병사들이 미노타우르스의 공격을 막아섰고 남궁은 놈의 뒤를 향해 검을 찔렀다.
계획대로였다.
“……!!”
영혼 병사를 향해서가 아니라, 갑자기 그를 향해 미노타우르스가 고개를 돌리기 전까지 말이다.
[쿠오오오오!!!]
놈은 신기하게도 보일 리 없는 남궁의 위치를 단박에 알아차리고서 거대한 도끼를 그에게 정확히 휘둘렀다.
남궁은 황급히 뒤로 물러서려 했지만 광폭화로 폭주하고 있는 놈은 순간적으로 폭발하듯 속도를 올렸다.
“큭?!”
낭패였다.
그 순간, 공격하지 않고 있던 나머지 한 명의 영혼 병사가 둘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퍼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미노타우르스의 도끼가 영혼 병사의 몸을 갈라 버렸다.
[크르르르……!!]
놈은 바닥에 떨어진 병사의 상체를 향해 다시 한번 도끼를 찍어 눌렀다.
퍽! 퍽! 콰직!!!
병사의 몸이 토막이 나며 그대로 연기와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찌릿…….
남궁의 가슴 안쪽이 바늘로 찔린 듯 통증이 느껴졌다. 영혼 병사들이 강제로 파괴되어 역소환되었을 때 시전자에게 돌아오는 영력 타격이었다.
챙그랑……!
그때, 미노타우르스의 머리 위로 날아온 뭔가가 깨지면서 달콤한 향기가 순식간에 코를 찔렀다.
[크륵? 크에엑……!!]
미노타우르스의 커다란 콧구멍이 들썩이더니 짙은 향기에 괴로운 듯 고개를 저었다.
“냄새야! 놈이 냄새로 자넬 찾는 걸세!”
장길수의 외침과 동시에 남궁은 그가 던진 것이 다름 아닌 자신이 그에게 주었던 소금잼이 든 병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흐아아아!!”
강렬한 향기에 취해 남궁을 놓친 미노타우르스의 목덜미에 그가 검을 박아 넣었다.
푸욱-!!
사선으로 박힌 검에 있는 힘껏 힘을 싣자 쩌적……! 하는 소리와 함께 놈의 피부가 점점 잘려 나갔다.
[쿠오오오오오!!]
녀석은 괴로운 듯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남궁의 몸이 검의 손잡이를 움켜쥔 채 이리저리 휘청거렸다.
쾅! 쾅! 콰앙!!
자신의 뒤에 남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마구잡이로 도끼를 바닥에 내리찍기 시작했다.
그를 떨어뜨리기 위함인지 아니면 분노와 고통에 미쳐 버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녀석의 힘줄을 끊어!”
장길수가 외치자 박효주는 본능적으로 쥐고 있던 단검을 있는 힘껏 날렸다.
“후읍!!”
그녀가 숨을 들이마시며 두 팔을 허공에 움직이자 날아간 두 자루의 단검이 부메랑처럼 빠르게 회전하며 미노타우르스의 양쪽 아킬레스건에 박혔다.
까득……! 까드드득……!!
박효주는 보이지 않는 줄을 잡아당기는 것처럼 주먹을 움켜쥐고서 잡아당겼다.
하지만 마물의 발목 뒤에 박힌 검은 힘이 부치는 듯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무리예요. 녀석의 가죽이 너무 단단해요!!”
박효주가 소리쳤다.
“……그거면 충분해.”
비록 아킬레스건을 끊지는 못했지만, 그녀의 단검이 박히면서 아주 잠깐 놈의 자세가 무너졌다.
한쪽 무릎을 바닥에 꿇고 주저앉는 순간 남궁의 발이 지면에 살짝 닿았다.
서걱-!!
지지할 수 있는 바닥이 생기자 남궁의 검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있는 힘껏 미노타우르스의 목을 갈랐다.
빠득-
남궁은 마지막 힘을 짜내기 위해 다문 입에 힘을 주었다. 이빨이 갈리는 소리와 함께 미노타우르스에 박혀 있던 검이 놈의 몸을 뚫고 튀어나왔다.
철푸덕……!!
잘려 나간 상체가 바닥에 떨어졌다.
촤아아악……!!
목을 시작으로 등까지 사선으로 잘려 나간 상체의 단면에서 붉은 핏물이 분수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 미궁의 주인을 처치하였습니다.
▶ 보상(기본), 보상(참여) 상자가 수여됩니다.
▶ 미궁의 전리품(2개)가 수여됩니다. 전리품은 보상 습득자 중 1명이 습득할 수 있습니다.
“돼…… 됐다!!”
미노타우르스의 죽음을 알리는 알림이 들리자 박효주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아…….”
호들갑을 떤 자신의 모습이 민망한 듯 그녀는 입을 가리며 주위의 눈치를 살폈다.
“후우…….”
남궁은 마물의 피가 웅덩이처럼 깔린 바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친 듯 낮은 숨을 토해내며 주저앉았다.
“자신만만하게 나선 것치고는 꽤나 고전한 것 같은데. 저 친구가 돕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지 몰라.”
“그러게요. 두 사람 모두에게 도움을 받았네요.”
장길수의 말에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미노타우르스…… 10년 정도 지나면 별것 아닌 녀석인데. 너무 무르게 생각했어. 나야말로 자신을 너무 과신했군.’
현충원에서 영혼을 흡수한 덕분에 신체 능력이 올라가긴 했지만 그래봤자 아직 초반에 불과했다.
자신의 능력은 아직 부족했다.
오히려 너무 많은 사냥의 경험이 마물에 대한 인식을 가볍게 만들고 말았다.
“아, 아닙니다. 저는 그냥 장길수 씨가 말씀을 해주셔서 검을 날린 것뿐입니다.”
“그게 도움이라는 거지. 내 다리가 날아갈 뻔한 걸 저 친구가 구해줬고, 빈손인 나는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 줄 수 없었네. 게다가 그 먼 거리에 정확히 검을 꽂는 건 나는 할 수 없는 일일세.”
박효주는 장길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국정원에서도 정평이 난 요원인 그녀가 마장동 협회장에게 칭찬을 받는 것에 기뻐할 줄은 스스로도 모를 일이었다.
“반박하지 않고 인정하다니. 됨됨이가 된 친구로군.”
“별말씀을.”
남궁은 장길수가 자신을 ‘친구’라는 호칭으로 부르기 시작했다는 걸 눈치챘다.
‘생각지 못한 일이지만 어쨌든 그의 호감을 얻긴 한 모양이로군.’
남궁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미노타우르스의 시체에 앞에 나타난 상자를 열었다.
▶ 미노스왕의 하얀 황소(노멀)를 획득하였습니다.
▶ 대리자 일족에게서 헤드로 교환할 수 있다.
▶ 보상 습득자 간의 거래 가능.
▶ 30,000헤드
▶ 미노스왕의 붉은 황소(노멀)를 획득하였습니다.
▶ 30,000헤드
“와…….”
“허허, 이거 쏠쏠한걸.”
박효주와 장길수는 자신들의 보상 상자에서 얻은 헤드의 값을 보며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정도로 대량의 헤드를 얻는 건 처음이겠지. 월드 보스나 던전을 공략해 본 적이 없으니…….’
하지만 중요한 건 헤드가 아니었다. 진짜 즐거운 시간은 이제부터였으니까.
탈칵-
남궁은 은색 상자를 먼저 열었다.
▶ 미노타우르스의 간(매직)을 획득하였습니다.
▶ 보상 습득자 간의 거래 가능.
넘버링 350313.
이름 : 미노타우르스의 간
등급 : 매직(최고)
▶ 말 그대로 미노타우스의 간.
▶ 먹게 될 경우 미노타우르스의 특성 중 하나를 얻을 수 있다.
▶ 웬만한 비위가 아니면 먹을 수 없다.
▶ 삼키지 못하고 뱉어낼 경우 간의 신선도가 상해 더 이상 효과가 없다.
남궁은 상자 안에서 썩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회색빛을 띠는 간을 꺼냈다.
“으윽…….”
박효주는 그걸 본 순간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단순히 외형 때문이 아니었다. 코를 찌르는 괴상한 냄새 때문이었다.
“흐음.”
하지만 경악하는 그녀와 달리 남궁은 그것을 보자 장길수를 바라봤다.
“좋은 게 나왔네요. 저도 도움을 받았으니 보답은 해야겠죠.”
“……그게 무슨 뜻이야?”
“드셔 보시죠. 손해는 아닐 겁니다.”
남궁의 한마디에 장길수는 오만상을 찌푸렸다.
“내가 아무리 폭식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지만 상한 걸 먹진 않아. 게다가 자네가 준 소금…… 우읍?!”
절룩거리는 다리 때문에 뒷걸음질도 치지 못한 장길수는 남궁이 자신의 입에 밀어 넣는 간을 꾸역꾸역 삼키기 시작했다.
“웁!! 우우우웁!!”
코를 찌르는 악취에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장길수는 방정맞게 뒹굴기 시작했다.
‘무슨 놈의 힘이 이렇게…….’
자신의 입을 틀어막고 있는 남궁의 팔을 떼어내려고 본능적으로 잡아 밀었지만 그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꿀꺽.
결국 그의 목젖이 움직이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남궁은 손을 놓았다.
“이게 무슨……!!”
▶ 미노타우르스의 간을 섭취하였습니다.
▶ 미노타우르스의 특성 : 재생을 획득하였습니다.
“……어?”
장길수는 발목의 통증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눈썹을 들썩였다.
남궁은 그의 반응에 옅게 웃고는 나머지 상자를 열었다.
넘버링 ??
이름 : 둥지 이동서
등급 : ??
▶ 자격이 있는 자들만이 입장 할 수 있는 특수한 장소로 갈 수 있는 이동마법서.
남궁은 상자 안에 들어 있는 1장의 검은색 티켓을 꺼내어 보며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이게 뭐예요?”
“……나도 모르겠군.”
‘이런 게 있었나?’
넘버링이 없는 아이템이었다.
이런 건 25년간 아포칼립스에서 살아남은 그조차 처음 보는 것이었다.
“흐음, 던전의 보스를 잡으면 거창한 게 나올 줄 알았는데 종이쪼가리 한 장이 끝이라니. 시시한걸. 오히려 내가 덕분에 좋은 걸 얻었군.”
미노타우스르의 간을 먹고 재생의 능력을 얻은 장길수는 어쩐지 미안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괜찮습니다. 어차피 폭식의 능력이 없다면 간을 삼킬 수도 없었을 테니까요. 그건 당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거였습니다.”
“으흠, 그런가?”
남궁의 대답에 장길수는 조금은 마음이 놓인다는 표정이었다.
“이건 제가 가져가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하게. 난 상관없네. 이미 충분히 보상을 받았으니 그것까지 관심을 보이는 건 욕심이지.”
“저도요. 그걸 가지고 뭘 할 수 있을지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으니까요.”
“나는 알 것 같아?”
“네.”
요원으로서의 직감일까 아니면 그냥 자신을 넘겨보는 것일까 알 수 없었지만 박효주는 의외로 지금까지와는 달리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조금 더 멋지게 보스를 잡았으면 좋았을 텐데. 도움을 받아 이긴 것치곤 관대한 평가로군. 고마운걸.”
“도움을 받아도 저는 잡지 못했을 겁니다. 오히려 보스에게 죽임을 당할 가능성이 더 높았죠. 굳이 빚을 따진다면 저도 당신께 목숨을 빚진 겁니다.”
남궁은 그녀를 향해 쓴웃음을 지었다.
“그거야말로 과한 평가야. 애초에 내가 아니었다면 이곳에 끌려올 필요도 없었을 테니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미궁의 출구를 향해 걸어갔다.
‘던전을 클리어하고 얻은 건 정체불명의 티켓 한 장이라…… 구울왕의 묘터에 비한다면 아쉬운 보상이긴 하군.’
남궁은 검은 티켓을 주머니에 넣었다.
“뭐, 무사히 돌아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기쁜 일이지. 가자.”
미궁의 출구의 문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 미노타우르스의 영혼을 발견했습니다.
그때였다.
손잡이를 잡아당기려는데, 그의 눈앞에 알림이 떴다.
▶ 사역하시겠습니까?
그 순간, 시체에서 붉은 혼구(魂球)가 흘러나와 남궁의 주위를 맴돌기 시작했다.
“……어?”
보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