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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화 (41/270)

41화

“농담이시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아닐 수도 있지. 사실 미래는 모르는 일이니까.”

하지만 박효주는 남궁의 대답을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없었다.

“천일물산.”

“……네?”

“아마 당신도 이름을 알고 있을 거야.”

“뭐, 알고 있습니다. 동인천역에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무역회사니까요. 인천항으로 들어오는 대부분의 화물선들이 그들이 관리하기도 하죠.”

“그거 말고.”

그 순간 박효주의 눈빛이 살짝 떨렸다.

“천일물산의 회장 신태화.”

“…….”

남궁은 말을 삼키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대충 예상은 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한때 인천 바닥뿐만 아니라 전국을 휩쓸었던 천일회(天一會)의 수장이지. 천일물산이 녀석들로 시작되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걸.”

처음에는 일개 주먹패로 시작한 천일회였지만 지금은 국내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 러시아를 비롯하여 북미의 마피아와 중남미의 카르텔까지 그야말로 세계적인 범죄 조직 중 하나였다.

“정부도 꼴이 우습지. 그런 조폭들이 버젓이 회사를 차리게 두다니 말이야. 그냥 간판만 바꾼 수준이니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꼴 아냐?”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정부의 고위 관직자들 중에 놈들과 엮인 사람들이 많아요.”

“지금은?”

“네?”

“놈들하고 엮인 자들이 아직 살아 있긴 하겠지만…… 적어도 예전보다는 확실히 줄었잖아?”

국회의사당이 마물에 의해 폭파 되고 수많은 국회 위원들이 죽은 지금, 그들의 죽음은 애도받아야 마땅하지만 남궁의 이야기가 틀린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뒤를 봐주던 자들이 사라진 지금이야말로 놈들을 노려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니까.”

“그런데…… 갑자기 그들은 왜죠? 설마 천일회가 광신교라도 세운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녀는 남궁에게서 생각지도 못 한 이름이 나오자 당황스러운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천일회에 소속된 조직의 인원만 수천 명. 그리고 그 조직의 산하에 소속된 건달들까지 있으니…….’

수만 명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단순히 조폭계를 떠나 전국에서 그 정도 인원을 움직일 수 있는 조직은 결코 흔하지 않았다.

‘확실히 그 정도의 숫자라면 무슨 일이든 꾸밀 수 있는 인원이긴 한데…….’

박효주는 전국을 재패한 주먹의 일인자인 신태화가 교주복을 입고 설파를 하는 모습은 절대로 상상이 가지 않는 일이었다.

“천일물산이 그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뭔지 알아?”

“그건…….”

남궁은 그녀의 눈빛을 살폈다.

대답을 머뭇거리는 것이 이미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다만 국가의 일을 하는 자로서 오히려 그 대답을 입에 담기 어려울 뿐.

“그래. 마약이야.”

그의 말에 박효주의 얼굴이 굳어졌다.

“90년대부터 녀석들은 지금껏 외국에서 마약을 밀수입해서 수백, 수천억대의 수입을 올렸어. 그 힘으로 신태화는 이미 정계에도 수많은 사람들을 포섭했었고.”

“부정할 수 없네요.”

“하지만 아무리 신태화가 욕심 많은 노인네라도 종교까지 손을 댈 정도는 아냐. 교단은 그자에게 있어서 그냥 눈속임일 뿐이지.”

“그럼…… 진짜 목적은 따로 있다는 건가요?”

“마약 제조. 신태화가 아무리 정계에 끈이 길다 하더라도 대한민국에서 마약 제조를 할 수 있을 정도는 아냐. 하지만 놈은 이번 사태를 이용해서 몰래 제조 공장을 세울 생각이야.”

“설마…… 광신교라는 게…….”

남궁은 그녀를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천일회에서 만든 신종 마약의 중독자들인 거지. 단순히 환각을 보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고통을 느끼지도 않아. 만약…… 마물이 튀어나오는 이런 상황에서 그런 자들이 생긴다면 어떻게 될 것 같아?”

“으음, 환각을 본다면 공포심이 사라지겠죠. 그리고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고기방패지.”

“무, 무슨……!!”

그의 말에 박효주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소리쳤다.

“아무리 조폭이라도 그런 천인공노할 짓을 한다고요? 말도 안 돼요!”

“말이 안 되는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게 되는 게 이제 우리가 있는 세상이야.”

“그런…….”

그녀는 잠시 한숨을 내쉬더니 아직 부서지지 않은 자판기에서 캔 커피를 뽑았다.

“여기요. 드세요. 너무 말도 안 되는 일을 계속 겪다 보니 머리가 다 아프네요.”

갓 뽑은 따뜻한 캔 커피를 남궁에게 건네고서 그녀는 피곤한 듯 벽에 기대어 커피를 홀짝였다.

“그러니까 당신 말은 천일회의 신태화가 신종 마약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뿌려 광신도들을 만들 거라는 말이잖아요?”

“그래.”

“그게 인천이 사라지는 것과 무슨 상관이죠? 천일회의 구역이 인천이라는 건 당신도 알잖아요. 그들이 자신의 구역이 사라지는 걸 그냥 둘리 없고…….”

“천일회도 그 마약에 중독될 테니까.”

“……네?”

박효주는 그의 말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약을 제조하는 건 놈들이지만 마약의 제조법을 발명한 건 놈들이 아냐.”

“그럼 누구죠?”

“진웨이. 알렉 트라만과 같이 위…….”

남궁은 아직 팔무성이란 존재에 대해 밝혀진 것이 별로 없는 상황에서 거기까지 말할 필요는 없다 여겨 말을 아꼈다.

8명의 위상 중 한 명, 화롯불을 다루는 자가 뽑은 계시자, 중국의 진웨이.

‘녀석의 능력은 연금술(鍊金術).’

능력만 놓고 본다면 포션을 만드는 보조 직업이라 생각되어 그다지 전투적인 위치로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사실 연금술이야말로 공방일체가 가능한 유일한 직업이었다.

‘일시적이지만 신체 강화부터 마력, 정령력, 그리고 사령술까지 모든 능력을 포션을 통해 사용할 수 있으니까.’

전생에 구울왕의 묘터를 공략했던 진웨이가 네크로맨서 계열의 보구인【쿤달의 왕관】을 얻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설마…… 중국 삼합회(三合會)의 산주(山主)를 말하는 건가요?”

“맞아.”

“삼합회의 우두머리가 어째서…….”

“당신이 염동을 깨닫고 장길수가 폭식의 능력을 얻은 것처럼 진웨이도 새로운 힘을 얻었거든.”

“무슨 힘이죠?”

“연성(鍊成)의 능력.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힘이지. 놈은 그 힘으로 마약을 만들어 천일회에 공급하고 레시피까지 제공할 거야.”

‘놈이 노리는 건 하나. 대한민국을 그 마약을 통해서 광전사(狂戰士)를 육성하기 위한 일종의 실험실로 쓰려는 것이지.’

놈으로 인해 마약에 찌든 수많은 사람들은 환각에 빠져 광기를 일으키고 결국 서로 죽이고 죽이는 끔찍한 일을 벌이고 만다.

놈이 만든 마약은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흩어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어찌 보면 최휘수보다 더 지독한 놈이지.’

꽈악-

절대로 그렇게 두지 않을 것이다.

남궁은 차오르는 분노에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적어도 당신의 아버지는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라도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글쎄…….”

지옥문이 열리고 아포칼립스가 시작되었다.

생존을 위해 처절하게 싸우지만 모든 인간이 합심이 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아직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미 눈치챈 자들은 있지.’

헤드를 얻는 방법은 인간을 죽여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말이다.

“…….”

남궁은 놀이터에서 만났던 채송아를 떠올렸다.

‘전생에는 1번째 지옥문의 고블린로도 통신이 거의 마비되다시피 했다. 덕분에 인간끼리 헤드를 뺏을 수 있다는 정보가 빠르게 퍼지진 않았다.’

하지만 자신으로 인해서 각국의 도시는 생각보다 적은 피해로 막을 수 있었고 여전히 인터넷과 전화가 유효했다.

살해를 통해 헤드를 빼앗을 수 있다는 것이 어쩌면 이미 각종 커뮤니티 알려졌을 수도 있다.

힘을 얻었다.

처음에는 공포였지만 인간은 적응하게 된다. 그리고 더 강한 힘을 갈구한다.

문이 닫혀갈수록 생존자들에게 헤드가 주어진다.

눈앞의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

보너스 헤드 같은 존재.

‘강한 힘을 얻을 수 있는 방법 중 마물을 사냥하는 것보다 쉽고 확실한 방법이 눈앞에 있다.’

그걸 그냥 둘 리 없다.

‘……피는 인간을 미치게 하니까.’

그것이 마물이 아닌 인간의 것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어쩌면 진짜 아포칼립스는 인간끼리의 싸움으로 인해 생길지도 모르지. 당신도 알 거야.”

남궁의 자조적인 말에 박효주는 씁쓸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그녀에게 인간을 죽였을 때 헤드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줄까 고민했다.

하지만 그는 입을 함구했다.

곧 천일회의 일이 벌어지면 알기 싫어도 알게 될 것이니까.

‘어쩌면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모른다면 내가 말해주는 것보다 직접 겪는 것이 더 큰 충격으로 와 닿을 테니까.’

남궁은 박효주는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런데…… 어떻게 그걸 아시죠? 삼합회와 천일회가 손을 잡을 거라는 것부터 놈들이 신종 마약을 만들거라든지 하는 정보 말이에요.”

“말했잖아. 나도 따로 정보원이 있다고. 711부대의 이력을 조사하면 조금은 이해될 거야.”

박효주는 남궁의 말에 아무런 반박을 하지 않았다.

사실 그가 알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정보는 전생의 기억이지만 수많은 특수 임무를 했던 711부대라면 어렵지 않게 납득시킬 수 있었다.

“어쨌든 천일회 녀석들을 감시 할 눈을 좀 붙여 두는 것도 좋을 거다. 그리고 곧 있을 몬스터 웨이브도 대비하고.”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더 이상 처음처럼 막연한 불안감은 없었다.

오히려 남궁으로 인해 할 일이 많아지고, 조금은 기분 좋은 떨림까지 느껴졌으니까.

“팀원들을 소집해야겠습니다. 일단 2차 웨이브를 끝내고 난 뒤에 천일회를 살펴보죠.”

“살아나길 빌지.”

그의 말에 박효주는 살짝 입술을 들썩이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또 만나죠.”

황급히 돌아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남궁은 이제 밀려오는 피로감에 처음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어서 돌아가서 자고 싶다.”

청와대부터 던전까지.

정말 하루 만에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남궁은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런 순간 보고 싶은 사람은 한 명.

“아빠!!!”

졸린 눈을 비비며 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익숙한 목소리에 그는 앞을 바라봤다.

“소민아?”

와락-!

골목 어귀에서 자신을 향해 달려와 안기는 딸의 모습에 그는 깜짝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머릿속으로만 떠올렸던 딸이 지금 눈앞에 있었으니까.

“형님. 모시러 왔습니다.”

그녀의 뒤에 서 있던 명훈이 웃으며 남궁에게 말했다.

“어떻게 딱 맞춰 왔어?”

“에이, 맞추긴요. 언제 끝나실지 알고. 소민이가 아빠 보고 싶다고 보채서 몇 시간 전부터 계속 요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 고생했구나.”

명훈의 대답에 남궁은 품 안의 소민이를 한 번 더 꽉 안아주었다.

“고생은 무슨…… 아빠가 더 고생했지. 어디 다친 덴 없어? 진짜 걱정 많이 했어.”

“괜찮아.”

그는 딸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옅게 웃었다.

“가자. 집으로.”

“네. 알겠습니다. 어서 타세요.”

남궁은 명훈의 차에 몸을 실었다.

히터가 틀어져 있는 차 안의 온기에 그는 의자에 기대자마자 곯아떨어졌다.

* * *

또옥- 또옥-

잠이 든 남궁은 규칙적으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에 천천히 눈을 떴다.

“……여긴?”

분명 명훈이 모는 차에 탔을 텐데 전혀 다른 풍경에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위를 훑었다.

“어떻게 된 일이지?”

피로가 완벽하게 풀린 것은 아닌 듯 그는 조금 무거운 머리에 이마를 짚으며 일어섰다.

그때였다.

우우우웅…….

자신의 재킷 안쪽에서 가벼운 떨림.

“설마…….”

그가 주머니에 손을 넣자 펄럭이는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것을 꺼내자 놀랍게도 미궁에서 얻은 티켓이 마치 바람에 흔들리듯 움직이고 있었다.

“이게 아공간을 만든 건가?”

남궁은 검은색의 티켓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던 티켓 위로 붉은색의 알 수 없는 문자가 천천히 새겨지기 시작했다.

“……도전하라?”

인간의 언어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신기하게도 남궁은 티켓 위에 쓰여 있는 글자를 읽을 수 있었다.

▶ 티켓의 소유자를 확인하였습니다.

▶ 서브 퀘스트 『란의 둥지』가 추가됐습니다.

▶ 둥지에 도전하여 자신을 증명하십시오.

‘란의 둥지……? 이런 게 있었나?’

기억을 더듬어 봤지만 딱히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둥지라면 분명 마물이 있는 곳일 터.’

그렇다면 보상템도 존재한다는 뜻이었다.

어쩌면 전생에도 알지 못했던 새로운 기회일지 모른다.

“…….”

그는 앞을 바라봤다.

동굴의 끝에서 상공에 생성되었던 지옥문과 같이 일그러진 공간이 보였다.

단지 일반적인 차원문보다 훨씬 작았고 마치 어서 들어오라는 듯 공간은 소용돌이를 치며 그를 유혹하고 있었다.

‘……침착하자.’

남궁은 흥분을 가라앉혔다.

▶ 입장 후 퀘스트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저기에 들어가는 순간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뿐.’

퀘스트를 완료하든지 아니면 죽든지.

난이도가 어떻게 되고 저 안에 어떤 마물이 있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평상시의 자신이었다면 절대로 이런 위험을 감수하지 않았을 것이다.

솨아아악--!!

하지만 그때, 남궁의 앞에 거대한 갑옷을 입은 영혼 기사가 나타났다.

“……?!”

아스테리온의 사령이었다.

척-

그가 쥐고 있던 도끼를 들어 문을 가리켰다.

“내게 저 안으로 들어가라고?”

그의 물음에 기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남궁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이 기회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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