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안내 말씀 드립니다. 현재 본 여객터미널은 운영하지 않고 있사오니 이용에 차질이 없…….
“오후 3시 백령도행. 썬플라워호 두 장.”
매표소의 안내 방송을 하던 직원은 창구 앞에 선 남궁을 잠시 물끄러미 바라봤다.
“3번 게이트로 가세요.”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운영 중단을 알리던 직원은 묘하게도 티켓 한 장을 끊어 그에게 주었다.
남궁은 그것을 품 안에 집어넣고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여기부턴 나 혼자 간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듣자 하니 놈들 중에 야차 보따리 아이템들을 구입한 자들도 꽤 되는 것 같은데.”
“지금 얻은 헤드로 구입 할 수 있는 거라고 해봐야 별것 아냐. 크게 문제는 되지 않아.”
“아빠, 너무 위험해!!”
말리는 소민을 두고 남궁은 명훈에게 말했다.
“이제 곧 2번째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될 거야. 둘은 돌아가서 호준이와 함께 거점을 지켜. 나오기 전에 호준이에게 입구 쪽 바리게이트를 치라고 했으니까.”
“너무 걱정 마십시오. 리자드맨이야 이미 한번 상대했던 녀석들이니까…… 형님이나 조심하십시오.”
“그래.”
남궁은 딸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바라봤다.
“아빠는 여기 이 언니랑 같이 다녀올 거야. 국정원에서도 유능한 팀장이고 또 곧 요원들과 함께 움직일 거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하지만…….”
“그리고 우리 딸이 거점을 지켜줘야 아빠도 마음 편하게 다녀 올 수 있지. 거기야말로 가장 중요한 곳이잖아. 부탁해도 되지?”
소민은 그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매번 아빠만 위험한 일을 하는 것 같아.”
“당연하지. 소중한 딸인데. 하지만 아빠는 기다리고 있는 거야. 규류를 만났었지?”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 등을 우리 딸에게 맡길 날이 곧 올 거야. 그때는 진짜 부탁할게. 알겠지?”
입 발린 소리도 거짓말도 아니었다.
그는 소민이가 전설급 마력성장 가능성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여러 가지 생각을 했었다.
마력에 대해서 그는 잘 모르지만 다른 어떤 자질보다도 훨씬 더 특수한 것임은 확실했다.
단순히 마물을 사냥하는 것으로 마법을 성장시킬 수 없다.
가장 좋은 방법은 뛰어난 스승에게 배우는 것.
남궁은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강력한 마법사인 팔무성의 덴 하울을 떠올렸다.
‘녀석은 마법사로서는 대단할지 모르지만 결코 좋은 녀석은 아니야.’
오히려 소민의 자질을 탐내 할 수도 있었다.
게다가 아직은 덴 하울이 마법을 정립하기도 전이니 마법의 기틀이 마련되기 전이라, 제대로 된 마법사를 찾을 수도 없었다.
그런 그가 생각해 낸 방법.
그것은 마법을 가르쳐 줄 스승이 꼭 인간이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는 것이었다.
‘덴 하울은 8명의 위상 중 마도(魔道)를 걷는 사계절의 방랑자가 뽑은 계시자다.’
그는 위상에게 직접 마법을 익혔다.
계시자가 아닌 소민이 그를 뛰어넘을 수 있는 방법은 위상의 마법을 따르는 대리자 일족의 마법을 얻는 것.
‘곧 블랙마켓이 시작된다.’
전 세계 대리자 일족이 관장하는 경매장.
남궁은 그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빠.”
떠나기 전 소민이 그를 불렀다.
“내가 빨리 강해져서 아빠를 도와줄게.”
“응.”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딸아이.”
“아아, 소민이라고 했죠? 당신 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귀여운 아이던데요.”
박효주는 약간의 실망감이 섞인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엄마를 닮아서.”
“어쩐지. 그럴 줄 알았다니까요. 그런데 아내분은 어디에 계신가요?”
“먼저 떠났어. 이번 일 때문은 아니야. 몇 년 전 영등포에 있었던 강도 6.8의 대지진 말이야.”
“아…….”
박효주는 기억이 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났던 모두가 예상치 못했던 끔찍한 사건이었다.
영등포역 역사(驛舍)를 비롯해서 유명 백화점까지 붕괴되며 수백 명의 사상자를 냈었다.
지하철을 비롯하여 주요 교통 시설은 복구되었지만, 그 지진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싱크홀은 아직까지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게 뭐 있어. 지난 일이야.”
남궁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지만 박효주는 무거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쓸데없는 얘기는 잊고 이제 집중해. 다 왔다.”
직원이 알려준 게이트로 가자 그곳엔 체구가 건장한 두 남자가 서 있었다.
“이쪽으로.”
남자는 티켓을 보더니 남궁을 향해 고갯짓을 했다. 정박해 있는 여객선엔 아무도 없었다.
선내의 객실 안으로 들어가자 그곳엔 익숙한 얼굴이 앉아 있었다.
“천일회 신태화.”
“이거, 이거. 천일회가 없어진 지가 몇 년인데 아직도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천일물산 신 회장이라고 불러주시죠.”
덩치들과 달리 깔끔하게 양복을 차려 입은 남자가 남궁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의 손목에 채워진 번쩍거리는 명품 시계가 찰랑거리며 흔들렸다.
“그쪽이 남궁이구만. 부른 건 당신 한 명인데 예쁘장한 누님도 함께 오셨네. 사이가 좋은가 봐?”
“닥쳐. 어디서 조폭 나부랭이 새끼가…….”
“얼씨구? 이 누님 입 한번 걸쭉한 거 보소? 국정원에서 한 따까리 하시 나본데. 여기는 서울이 아니라 인천이오.”
신태화는 박효주를 바라보며 비릿한 웃음을 터뜨렸다. 입술이 들썩일 때마다 금이빨이 번쩍였다.
‘내 정체를 알고 있다?’
박효주는 그의 말에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자, 자, 일단 다들 앉으쇼. 먼 길 오셨는데 뭐라도 마시면서 얘기해야지. 내가 할 이야기가 많거든.”
그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날 찾았다고?”
하지만 남궁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선 채 그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자리에 앉으려던 박효주가 슬쩍 눈치를 보고는 크흠, 하고 그의 뒤에 섰다.
“어제 새벽 삼합회의 천쉰이 조직원들을 데리고 들어왔소. 그들이 당신을 찾더군.”
“천쉰이라면…… 삼합회의 실질적인 주먹들을 이끄는 홍근(紅根)의 직위를 맡고 있는 자일 텐데…….”
박효주는 생각지도 못한 거물이 입항했다는 얘기에 당혹스러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참, 경비대들에게 뭐라 하지는 마소. 그 사람들은 자기 할 일을 다했으니까.”
“……뭐?”
“세상이 재밌게 돌아가서 말이야. 낭만 주먹시대라고 들어봤나? 총이나 칼이 아니라 옛날에는 이 주먹으로. 응? 주먹으로 싸웠는데 말이지.”
차르륵-
그 순간 마치 잽을 날리듯 허공에 주먹을 젓는 그의 손목에 팔찌 하나가 남궁의 눈에 들어왔다.
‘야수 전사의 건틀릿로군.’
팔찌의 형태지만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가시가 박힌 건틀릿으로 변형되는 무기였다.
‘매직 등급이라서 지금 상황에서 구매를 하기엔 가격이 제법 나갔던 것 같은데…… 고블린만 사냥해서 얻을 수 있는 건 아니야.’
남궁은 대충 그가 무기를 어떻게 얻었을지 감이 왔다. 터미널까지 오는 도중 곳곳에서 볼 수 있었던 혈흔은 결코 마물의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크…… 좋잖아? 총보다 주먹이 먼저인 세상. 아무래도 그 시대가 다시 돌아온 것 같단 말이지.”
“설마…… 해양경비대를 네놈들이 처리했다는 건가? 빌어먹을 삼합회 놈들을 들여오기 위해서?”
그의 말에 박효주가 소리쳤다.
“못할 것도 없지. 이제 그런 세상이 된 거잖소. 안 그런가? 아주 이상적인 세상이지.”
“이 새끼가……!!”
참을 수 없다는 듯 박효주가 소리쳤다.
퍽-
하지만 그 순간 남궁의 손날이 그녀의 뒷목을 가격했고, 그녀는 컥! 하는 소리와 함께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이건 또 무슨 시츄에이션?”
기절한 그녀를 보며 신태화는 답을 요구하는 눈빛으로 남궁을 바라봤다.
“네게 하려는 일에 관심이 좀 생겼거든.”
남궁은 쓰러진 박효주를 의자에 기대어 놓으며 말했다.
“나도 어쩔 수 없이 달고 온 혹이라서 말이야.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려면 쫑알거리는 앵무새는 좀 진정시켜야지.”
“하, 하하!!! 그거 마음에 드는군. 삼합회가 왜 찾으려고 하는지 알겠는걸. 시원시원한 게 기대 이상이야!”
신태화가 크게 웃었다.
“삼합회가 날 찾는 이유. 그리고 그들의 부탁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비밀로 하고 나를 먼저 찾은 이유. 그 두 가지에 의해 우리 관계도 바뀌겠지?”
“그들은 사람을 모으고 있다.”
“사람?”
“함께할 동료라더군. 하지만 녀석들과 오랫동안 거래를 해온 우리는 알지. 말이 동료지 지들 멋대로 부릴 수단에 불과하다는 걸 말이야.”
“놈들이 뭘 하려는 거지?”
탁-
그 순간 그는 작은 앰플 하나를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아직 샘플이지만 이걸 양산할 생각이다.”
남궁은 그게 뭔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진웨이가 연금술로 만든 신종 마약. 일명 버서커(Berserker)라 불리는 것이었다.
“삼합회는 레시피를, 우리는 이걸 만들 장소를 제공하기로 했지. 그리고 그들은 이 약을 관리할 사람으로 자네를 꼽았어.”
“……뭐?”
‘진웨이가 나를 찾은 이유가 나를 놈들의 마약 관리자로 쓰기 위해서였다니…….’
남궁은 그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어째서 나지?”
“자네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하니까. 여의도에서 마물을 사냥하던 모습은 나도 봤네. 누군가 찍어서 인터넷에 올렸더군. 아주 난리야. 아마 전 세계적으로 유명인이 되는 건 시간문제일걸?”
“그래?”
그 순간 남궁은 신태화의 앞으로 걸어갔다.
“머, 멈춰……!”
부하들이 그를 막으려 했지만 신태화는 오히려 손을 들어 그들을 저지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한 사람을 앞에 두고 꽤나 자신만만한걸. 삼합회 놈들까지 속여 나를 먼저 만나려고 한 걸 봐선 나와 거래를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목을 부러뜨려 줄 수도 있다.”
“……물론. 대박을 노리려면 때론 목을 걸어야지.”
남궁의 말에 오히려 신태화는 즐겁다는 듯 히죽거리며 자신의 목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잘 생각해 보게. 이건 엄청난 사업이야. 세상은 이미 미쳤어. 앞으로 더 많은 괴물들이 쏟아지면 사람들은 더욱더 공포에 빠지겠지. 그러면 그들이 뭘 찾을 것 같아?”
신태화는 딱! 하고 손가락을 튕기면서 말했다.
“도피처지. 우리는 그걸 제공하는 거야. 순식간에 사람들은 이걸 원하게 될걸. 효과는 보장하지. 직접 확인을 했으니까.”
“욕심이 과하군. 그런 생각은 지금 삼합회도 하고 있을걸. 천일회가 날고 긴다 해도 결국 이 좁은 인천에서 노는 무리에 불과해. 그런 너희를 믿고 놈들과 척을 두라고?”
“알게 뭐야? 어차피 여기 들어 온 녀석들만 처리하면 문제없어. 기껏해야 서른 명이야. 하지만 지금 내 밑으로 700명이 넘는 애들이 모여 있지.”
솨아아악…….
신태화가 손바닥을 펼쳤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의 손바닥 위에 작은 물의 소용돌이가 생겨났다.
‘……원소술사? 설마 물을 다루는 건가.’
남궁은 그가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었을 줄은 몰랐다. 애초에 마약 공장이 세워지고 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천일회의 일당들마저 모두 마약에 중독되어 이용당했을 뿐이니까.
“놈들을 처리하고 난 다음엔 바닷길을 막아버릴 거니까. 아무리 날고 긴다 해도 배가 움직이지 못하는데 무슨 수로 밀입국을 할 수 있겠어.”
“믿는 구석이 있었군.”
“그럼. 그런 것도 없이 베팅을 하겠나. 다만 한 가지 안배를 두고 싶을 뿐인 거지. 만에 하나 삼합회 놈들이 왔을 때를 대비한 전력 말이야.”
탈칵-
신태화는 가방을 하나 꺼내 그의 앞에 놓았다. 그 안엔 5만 원권이 가득 들어 있었다.
“난 삼합회 놈들과 달라. 마약 같은 것에 손을 대라고 하지도 않을 걸세. 그냥 이렇게 생각하면 돼. 삼합회 놈들로부터 우리나라를 지킨다. 응? 얼마나 애국적인 일을 하는 건가.”
“…….”
“이건 그냥 선금일세. 일이 진행되면 보수는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줌세.”
“돈이라…….”
남궁은 가방 안에 들어 있든 돈뭉치 하나를 꺼내 툭툭 치면서 낮게 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는데?”
“……?”
그 순간, 신태화는 남궁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
하지만 그 얼굴은 이내 곧 경악으로 바뀌었다.
“컥, 컥……! 커컥…….”
우드득……!!
그의 등 뒤에서 나타난 팔이 신태화의 목을 졸랐고, 부하들이 반응을 하기도 전에 그의 머리가 기형적으로 꺾였다.
“회, 회장님!!”
“누구냐!!”
부하들이 다급히 외쳤다.
“감히 사람을 기다리게 하고서 뒤에서 꿍꿍이를 부려? 버러지 같은 놈들.”
하지만 신태화의 시체가 자신들의 앞으로 날아오자 그들 중 누구도 달려들지 못했다.
“그 쓰레기 가지고 꺼져.”
“히, 히익……!!”
마치 거대한 독사가 내려다보는 것 같은 위압감에 부하들은 황급히 도망쳤다.
“언제부터 보고 있었던 거지?”
“그러는 당신이야말로 언제부터 눈치챈 거지?”
“들어오자마자.”
“들어오기 전부터.”
그는 마치 카멜레온처럼 주위에 완벽하게 동화되어 있었다.
“천쉰이라 한다.”
장발의 남자가 풀어헤친 머리를 질끈 묶었다. 삼합회의 집행자라 불리는 그가 남궁을 바라봤다.
“보스가 눈여겨보신 이유가 있군. 마음에 들어. 사람은 자고로 큰물에서 놀아야지. 천일회 따위에게 혹했다면 같은 꼴이 됐을 거야.”
“큰물?”
하지만 자랑스레 말하는 그와 달리 그의 말에 남궁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왜 웃지?”
그의 반응에 천쉰은 굳은 얼굴로 되물었다.
“얼마나 큰지 한번 보여줘 봐.”
“……뭐?”
남궁은 마치 어린아이를 다독이는 것처럼 천쉰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기며 애처로운 것을 보는 눈빛으로 말했다.
“대신 감당 못 하면 너희가 잡아먹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