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뭐?”
“됐다. 머리에게 할 말을 꼬리에게 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어. 진웨이에게 연락이나 해. 나와 일을 하고 싶으면 직접 찾아오라고.”
“미친놈…… 감히 누구 이름을 함부로 입에 놀리는 거지? 산주(山主)께서 눈여겨보고 있다고 해서 네가 우리와 벌써 손을 잡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신태화의 목을 비튼 천쉰은 끼고 있던 장갑을 벗어 던지며 어이가 없다는 듯 남궁을 향해 말했다.
“…….”
그 순간, 장갑을 벗은 그의 손이 마치 투명하게 변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동화(同化).’
남궁은 소매 밖으로 보이지 않는 그의 양손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것은 천쉰의 자질 중 하나였다.
‘은신과는 다른 능력. 단순히 모습 자체를 감추는 게 아니라 배경 그 자체에 녹아드는 것이다.’
눈속임에 가까운 은신은 단순히 보이지 않을 뿐 사용자의 존재까지 사라지게 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동화는 주위 풍경에 완전히 녹아들어 그 존재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다.
즉, 지금 보이지 않는 천쉰의 손이 있는 위치엔 정말로 아무것도 없는 것이라는 뜻이다. 남궁이 그의 손을 잡으려 해도 그저 허공만 잡힐 뿐.
반면 손의 주인인 천쉰은 원하는 순간 얼마든지 다시 손을 나타나게 할 수 있었다.
스으으윽-
마치 기다렸다는 듯, 보이지 않던 천쉰의 손이 서서히 나타났다.
“왜? 놀랐나?”
그는 자신의 손을 들어 보이며 남궁에게 물었다.
“딱히.”
한눈에 봐도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 난 모습이다.
‘뭐, 새삼스럽지도 않군. 지옥문이 열리고 난 이후 자질을 각성한 사람들 대부분이 저런 꼴이니까.’
하지만 새롭게 얻은 힘은 결국 익숙지 못한 힘이란 의미기도 했다.
똑같은 일을 할 때도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닌 새롭게 얻은 힘을 이용해서 해보려고 하는 시도.
혹자는 자질의 훈련이라고 하지만…….
‘훈련이 아닌 실전에서 저렇게 사용한다는 건 그저 과시일 뿐이지.’
그리고 그 과시는 결국 틈을 만들어 내게 마련이다.
“세상이 변했지. 평범한 인간이 있는 반면, 나처럼 특수한 힘을 부여받은 자도 있어. 평등한 세상? 이제 그런 건 없어. 철저하게 나뉘게 될 거다.”
천쉰은 남궁을 향해 말했다.
“능력이 있는 자는 군림하게 될 것이고, 그렇지 못한 자는 노예가 되겠지. 우리는 네게 기회를 주는 거다. 그러니 같잖은 잔머리를 굴릴 생각하지 마.”
스르륵…….
천쉰의 모습이 사라졌다.
“목을 따 버릴…….”
퍼억-!
그때였다.
남궁이 팔을 들어 후방을 향해 후려치자, 둔탁한 소리와 함께 주먹에서 묵직한 느낌이 느껴졌다.
투둑……! 툭……!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갑자기 몇 방울의 핏물이 튀며 바닥에 떨어졌다.
“어, 어떻게……!”
코뼈가 부러진 듯 삐뚤어진 코에서 흐르는 코피를 손으로 막으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선 천쉰의 모습이 다시 나타났다.
“내가 공격을 당할 리 없는데!! 내 몸은 완벽하게 주위에 녹아들 수 있다!! 존재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란 말이야!”
“말이 많군. 자기 능력도 제대로 모르는 놈이 실전에서 잔재주를 부리다니. 잔머리를 굴리는 건 너 같은데.”
부러진 코를 잡은 채 천쉰은 그를 바라봤다.
“정신 사납게 사라졌다 나타났다 하지 말고, 닥치고 자리에 앉아. 네 재롱은 재미없으니까.”
“……도대체 어떻게 한 거지?”
“주먹으로 때린 게 아니다. 풍압으로 때린 거지. 물체로 가격하지 못한다고 해서 만능은 아냐.”
천쉰은 그의 대답에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푸, 풍압? 사람이 그게 가능한 일이야?’
하지만 모습을 숨길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신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
흐르는 코피를 틀어막으며 천쉰은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이제 좀 대화를 나눠볼 만하겠군. 진웨이가 나를 꼽은 이유는 대충 알겠다. 여의도에서 내가 싸우는 걸 봤다는 거지?”
“……그렇다.”
“그리고 지금은 천일회에게 맡기려고 했던 일을 내게 맡길 생각이고.”
“천일회 녀석들은 처음부터 뒤가 좀 구렸거든. 덜떨어진 녀석들이 무슨 꿍꿍이인지 감시하고 있었지. 우습게도 당신을 포섭해서 우리 뒤통수를 치려 하다니 말이야.”
“그런데 나의 무엇을 믿고 일을 맡기려는 거지? 나는 이쪽 일을 하던 사람도 아닌데.”
“힘이다. 그것 말고 다른 이유가 필요한가?”
천쉰은 오히려 그의 물음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세상은 이제 변했어. 산주께서는 말씀하셨다. 힘이 전부인 세상이 올 거라고.”
“조폭 새끼들이 못하는 소리가 없군. 너희들 공안의 공권력은 우리와는 차원이 다를 텐데. 지금이야 쉬쉬하지만 그들이 진심이 된다면 감당할 수 있나?”
“공안? 이제 그것도 옛말이지. 넌 우리 산주를 몰라서 하는 말이다. 총이나 칼? 전차든 로켓이든 다 가져오라고 해. 그분을 막을 순 없을걸.”
그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긴 능력치를 상승시켜 주는 포션부터 각종 버프와 치료제까지. 연금술로 만들지 못하는 건 없으니까.’
신체 능력은 물론 훈련와 실전을 통해서도 가능했지만 실질적으로는 룬을 통해서 증가시켜야 했다.
문제는 그 룬을 얻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
그 문제를 진웨이는 연금술로 해결할 수 있었다.
‘덕지덕지 연금술로 자신의 몸을 도배한 녀석이라면 현 시점에서는 알렉보다 더 강할 수도 있지.’
자신과 비교하면 어떨까?
경험에 있어서는 충분히 우위를 점하겠지만 신체 능력에 있어서는 진웨이가 압도적일 것이다.
‘룬을 좀 더 모으지 않는 이상…….’
싸운다면 호각.
‘아니, 조금 불리할지도.’
그는 분명 알렉보다 더 골치 아픈 상대였다. 그렇기에 천쉰의 자신감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러니 조심하라고. 실력이 있다는 건 인정하지만 날고 기는 자들 위에 우리 산주께서 계시다는 걸 명심하란 말이다. 그리고 곧 모든 국가 위에 군림하실 거다.”
“요즘 삼합회의 집행자는 자기 실력이 아니라 두목을 빨아주는 능력으로 되나 보지?”
“이 새끼…… 쯧, 뭐 됐다.”
남궁의 말이 거슬렸지만 천쉰은 조금 전 그에게 한 방 맞고 난 이후 자신과 그의 격차를 충분히 느끼고 있었다.
“…….”
오히려 그가 실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조금 전 그의 말에 행여나 주먹이 움직였다면 남궁은 가차 없이 검으로 자신을 베었을 거란 경고를 온몸이 말하고 있었다.
“계획은?”
“원래는 천일회에게 맡기려던 일이었지만…… 만약 당신이 이 일을 잘 처리한다면 오히려 더 좋은 조건으로 우리와 함께할 수 있겠지.”
천쉰은 낮게 숨을 토해내고는 말했다.
“중간 다리가 사라지니까.”
“흐음.”
“물론, 감시는 붙을 거다. 내가 데리고 온 일행들이 널 도우면서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지 살필 거야.”
“너도 날 막지 못하는데 고작 네 부하들로? 만약 내가 그 녀석들을 쓸어버리고 천일회와 똑같은 짓을 한다면?”
“친절도 하군. 그런 쓸데없는 걱정까지 해주다니 말이야. 내 부하들에게 손을 대는 순간 바로 알게 되니 걱정 마라. 방법까지 알 필욘 없겠지. 오케이?”
천쉰은 남궁의 앞에 조금 전 들어 있던 작은 앰플과 함께 주소가 적힌 메모지를 주었다.
“이미 기술자들이 작업을 위해 준비하고 있을 거다. 너는 이걸 그들에게 가져가기만 하면 돼. 그럼 알아서 그들이 샘플을 양산할 거야.”
“쉽군.”
“천일회의 잔당들이 그곳의 위치를 안다. 혹시 모르니 놈들을 맡아주면 좋겠지. 그냥 허수아비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면 산주께서도 좋아하실 거다.”
“진웨이는 언제 들어오지?”
“일주일 뒤. 그리고 진짜 말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산주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다니.”
경고를 해도 씨알도 먹히지 않는 남궁의 태도에 천쉰은 할 말이 가득한 표정이었지만 입을 다물었다.
“흐음…….”
남궁은 앰플을 품 안에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저 여자는? 저 녀석 묻을 때 같이 묻을까?”
“됐어. 국정원 요원이다. 괜히 손을 썼다가는 정부에서 너희를 타겟으로 삼을 거야.”
“……저런 귀찮은 혹을 왜 데리고 온 거야?”
“천일회가 일 처리를 더럽게 해서 그렇지. 차라리 조용히 연락을 했으면 모를까…….”
“아아. 하여간 도움이 되지 않는 놈들이라니까. 선대 산주와의 친분만 아니었어도 이미 버렸을 놈들인데.”
천쉰은 남궁의 말에 이해 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 여자는 내가 잘 처리하지. 천일회를 핑계 대면 괜찮을 거야.”
“려진.”
그 순간 천쉰의 뒤에서 하나의 인영이 더 나타났다. 남궁이 고개를 들어 바라보자 천쉰의 뒤에 얼굴을 가리고 서 있던 여자가 그를 향해 가볍게 인사했다.
“나머지 애들은 곧장 주소가 적힌 장소로 갈 거다. 너는 려진과 함께 가라.”
“날 못 믿는 거군.”
“아직 신뢰가 쌓인 건 아니니까. 보험 정도는 당연한 거잖아?”
남궁은 천쉰이 박효주를 제대로 처리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자신에게 부하를 붙인 것을 눈치챘다.
“뭐, 상관없어.”
그는 기절한 박효주를 들쳐 메고서 주머니에 차키를 꺼내 려진에게 던졌다.
“대신 운전은 네가 해라. 난 네 부하가 아니니까.”
“…….”
복면 속 려진의 눈빛에 당혹감이 서렸다. 천쉰은 알아서 하라는 듯 그녀에게 대충 손을 저었다.
‘일주일이라…….’
객실의 문을 나서며 남궁은 생각했다.
‘그때까지 못 기다릴걸? 당장 내일 녀석이 날 찾아오게 만들어주지.’
다행히도 그들을 등지고 문 앞에 서 있어서, 올라가는 그의 한쪽 입꼬리는 아무도 보지 못했다.
* * *
부우우우웅--
배기음만이 들리는 정적 속에서 자동차는 미끄러지듯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연안여객터미널을 빠져나와 그들은 영종도로 향했다.
인천대교를 건너는 그들의 양옆에는 칠흑같이 어두운 바다만이 보였다.
도로에는 아무도 없었고 바다는 당장에라도 집어삼킬 것 같은 심해의 마수처럼 음침한 불안감으로 그들을 짓눌렀다.
‘려진이라…… 딱히 기억이 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낯선 이름도 아냐. 분명 언젠가 들어본 이름이라는 건데.’
남궁은 뒷자리에 앉아 운전대를 잡고 있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전생에 삼합회 놈들과 얽힌 적은 없어. 내가 진웨이를 알게 된 건 놈들이 만든 신종 마약으로 인해서 인천이 날아간 뒤였으니까.’
마약 중독자들이 마치 전염병처럼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폐허가 된 인천에 세워진 교단.
금화교의 등장과 함께 남궁은 처음으로 진웨이를 만났었다.
‘천쉰의 아래에 있는 사람이라면 딱히 진웨이의 수족이라 할 수도 없으니 삼합회의 주요 인사도 아닐 텐데…… 어디서 본 거지?’
“이봐. 같이 일하게 된 사이에 좀 알아 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말이야. 무슨 무기를 다루지?”
“…….”
하지만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도 당신 부하가 아니라서. 홍근(紅根)의 명령이니 운전은 하지만 물음에 대답할 필욘 없다 생각되는군.”
“조금 전 일 때문에 그런가? 속 좁게 꽁해 있긴.”
움찔-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남궁은 운전대를 잡은 그녀의 어깨가 가볍게 떨리는 것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천쉰의 명령은 따르고 내 질문은 무시한다라…… 녀석이 내게 한 방 맞았던 거 기억 못하나 보군.”
“그래서? 당신이 홍근보다 강하다 해도 산주보다는 못한데. 나는 궁극적으로 산주를 모시는 자다.”
“충성이 대단하군.”
남궁은 소파에 몸을 숙이며 마치 충격에 대비하는 듯 몸을 아래로 내렸다.
“그런데 실력도 그만큼 대단한지 한번 볼까?”
“……뭐?”
콰아아아앙--!!
그때였다.
대교의 양쪽 바다가 마치 폭발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갑자기 솟구치기 시작했다.
쾅! 쾅! 콰가가가강-!!!
끼이이이익……!!
대교의 높이를 훌쩍 뛰어넘어 바다에서 솟구친 물보라에서 뭔가가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다.
“크윽?!”
처음에는 그저 쏟아지는 물인가 싶었지만 보넷 위를 때리는 묵직한 충격에 핸들을 잡고 있던 려진은 황급히 차를 멈춰 섰다.
“이, 이건…….”
쿵! 쿵! 쿠구구궁!!
하나, 둘…… 스물, 백…….
심해를 뚫고 대교 위로 튀어오르는 리자드맨의 모습이 순식간에 대교를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캭……! 캬캭……!!]
창문 밖에서 날카로운 이빨을 세우며 자신을 향해 으르렁거리는 리자드맨을 바라보며, 려진은 본능적으로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뭐 해?”
탈칵-
살얼음판 같은 그 광경에도 불구하고 남궁은 아무렇지 않게 차문을 열었다.
“자, 잠깐!”
운전석에 있던 려진이 그 모습에 다급히 소리쳤지만, 차에서 내린 남궁은 오히려 놈들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2번째 몬스터 웨이브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