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끼이이이익--!
대교를 가득 채운 마물 떼의 모습에 려진은 황급히 기어를 R로 바꾸며 액셀을 밟았다.
“쓸데없는…….”
남궁은 후진하는 차량을 보며 쯧, 하고 혀를 찼다.
콰앙!!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트렁크 쪽이 굉음과 함께 종잇장 구겨지듯 찌그러졌다.
“크윽?!”
려진은 심각하게 흔들리는 차체에 핸들을 움켜잡으며 간신히 중심을 잡았다.
부우우우웅……!!
다시 액셀을 있는 힘껏 밟았지만 차는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 차의 뒷바퀴가 들려 허공에서 헛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크르르르…….]
차의 뒤쪽 창에서 거대한 마물의 얼굴이 보였다.
“……저게 뭐야?”
려진은 리자드맨과는 달리 마치 두꺼비처럼 둥글둥글한 얼굴에 양쪽 귀까지 찢어진 입을 가진 괴상한 마물의 모습에 황급히 차문을 열고 뛰쳐나왔다.
콰아앙!!
양팔로 차의 후미를 잡고 있던 녀석이 두 팔을 있는 힘껏 위로 올리자 그녀가 타고 있던 차가 너무 쉽게 뒤집어졌다.
“저런 건 없었는데…….”
려진은 리자드맨들보다 1.5배는 더 클 것 같은 덩치에, 창이 아닌 둔기를 허리에 차고 등에는 커다란 원형 방패를 메고 있는 괴물을 바라보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리자드 워리어. 중간 보스 같은 놈이다. 써펀트가 소환되고 일주일이 지나면 소환되는 놈들이지만…… 그 전에 써펀트가 잡혔으니 지금 나온 거지.”
와그작…… 와그작…….
리자드 워리어는 마치 메인 디시를 먹기 전 애피타이저를 먹는 것처럼, 갑자기 자신의 옆에 있던 리자드맨을 낚아채서는 목덜미를 뜯어 뿜어져 나오는 피를 꿀꺽꿀꺽 들이켰다.
“적아의 구분도 없어. 그냥 포악한 괴물이나 다름없지. 조심하는 게 좋아. 놈이 가장 좋아하는 게 인육이니까.”
려진은 너덜너덜해진 리자드맨의 목덜미를 바라보며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목을 쓰윽 문질렀다.
“어떻게 할 거지?”
“어떻게 하긴. 길은 하나뿐이잖아. 그냥 뚫을 수밖에.”
“미, 미쳤어? 우린 지금 다리 한복판에 있다고! 최고 4㎞는 더 가야 하는데 그 거리를 저 괴물들과 싸우면서 가자고?”
“왜? 못하겠나? 천쉰이 내 감시역으로 붙일 정도라면 그래도 실력을 믿고 있다는 걸 텐데.”
남궁은 당황하는 그녀를 향해 말했다.
“아니면 그냥 버리는 카드라서 내게 붙인 건가?”
“…….”
복면으로 가리고 있어서 표정을 읽을 순 없었지만, 남궁은 그녀에게서 풍기는 살기만으로도 충분히 가늠할 수 있었다.
지이이잉……!
그 순간, 그녀가 소매를 걷고 손목에 채워져 있는 팔찌를 잡아당겼다.
그러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주 가느다란 실이 뽑혀져 나왔다.
‘……은사? 쉽지 않는 무기인데…….’
남궁은 그런 그녀를 흥미롭게 바라봤다.
“도와주진 않을 거니까 알아서 따라와.”
려진은 그리 말하면서 리자드맨의 무리 안으로 뛰어들었다.
[캬악! 캭!!]
[캬가각!!]
리자드맨들이 그녀를 보며 알 수 없는 괴성과 함께 창을 찔러대기 시작했다.
콰앙- 쾅!! 콰가가강--!
그녀는 날렵하게 공격들을 피하면서 놈들을 하나씩 쓰러뜨리기 시작했다.
턱!
자신을 향해 찔러드는 창끝을 밟아 튀어오르며 그녀가 리자드 맨의 어깨 위에 올라탔다.
양팔을 교차해 놈의 목에 실을 걸며 무게를 실어 바닥에 내려오며 팔을 당기자, 서걱! 하는 소리와 함께 마물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타닥……!
거기서 멈추지 않고 착지한 그녀는 미끄러지듯 리자드맨의 다리 사이사이를 파고들었다.
다다다닥……!!
수미터를 그렇게 질주하듯 달린 그녀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양쪽 팔을 교차하며 뻗었다.
[캬아으윽!!]
[크아악!!]
그러자 리자드맨들의 비명 소리와 함께 물을 틀어 놓은 것처럼 촤아아악……! 하며 놈들의 다리가 잘려 나가며 피가 바닥을 적셨다.
다리가 잘려 나간 리자드맨들은 그 자리에서 고꾸라지고 말았다.
“뭐 해?”
려진이 쓰러진 마물의 시체 위에서 뒤로 고개를 돌리며 남궁에게 말했다.
똑똑-
그런 그녀를 보며 남궁은 뒤집어진 차의 문을 두들겼다.
“이제 깼지?”
“……으으.”
찌그러진 차에서 기어 나오는 박효주는 원망 섞인 눈초리로 남궁을 바라봤다.
“이건 말씀에 없으셨잖아요.”
“나도 차를 후진시킬 줄은 몰랐지. 그리고 그때쯤엔 깨어 있었잖아. 빠져나오지 그랬어.”
“의심을 사는 건 곤란하니까요.”
그녀는 남궁에게 맞은 뒷목을 잡으며 말했다.
“……좀 살살 때리지.”
“나야말로 의심을 사면 곤란하잖아.”
“그나저나 정말 천일회 쪽에 삼합회의 눈이 숨어 있었네요. 신태화와 손을 잡았다가는 큰일 날 뻔했어요.”
사실 그녀를 기절시키는 것부터 모두 천일회를 만나기 전에 계획 된 일이었다.
남궁은 진웨이가 그들을 믿을 리 없다 생각했고 그의 예상은 역시나 들어맞았다.
“이제부터가 중요해. 써펀트의 문이 빨리 닫혔기 때문에 생성될 마물의 숫자는 고블린 떼와는 비교할 수 없을 거야. 아마도 소환되는 시간만 해도 최소 하루가 소요될 정도겠지.”
“확실히…….”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 해저의 깊이가 요동칩니다.
▶ 2번째 카니발의 특별한 막이 열렸습니다.
▶ 남은 리자드맨들이 모두 소환됩니다.
▶ 리자드맨의 수 : 1,000…… 5,000…….
고블린 때와는 올라가는 숫자의 단위부터가 달랐다.
‘괜찮을까…….’
미리 팀원들에게 얘기는 해뒀지만 그녀는 일전에 국회의사당 때를 떠올리며 불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세계를 버티려면 동료를 믿는 수밖에 없다. 일반인도 아니고 훈련된 자들이니 살아남을 거다.”
남궁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우리가 한시라도 빨리 마물을 처리하는 게 그들을 돕는 일이기도 하고.”
“알겠습니다.”
대답하던 박효주는 남궁의 발밑에 조금 전 자신이 타고 있던 차를 뒤집어버린 리자드 워리어의 머리가 떨어져 있다는 걸 확인했다.
▶ 리자드 워리어의 사령을 흡수합니다.
▶ 영혼 흡수 Lv2를 사용하였습니다.
▶ 리저드 워리어의 특성 : 힘이 소폭 증가합니다.
꽈악-
남궁은 바닥에 나뒹구는 리자드 워리어의 머리를 발로 치우면서 앞으로 튀어나갔다.
“후웁……!!”
마물 떼를 뚫고 어느새 200m 이상을 달려온 려진은 거친 숨을 토해 내며 손목에 감겨 있는 실을 정비했다.
‘소모가 너무 빠른데…….’
그녀의 은사는 날카로웠지만 마물의 비늘을 자르기엔 내구도가 너무 약했다.
서너 마리를 잡고 나면 어김없이 그녀의 실이 끊어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그녀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자는 도대체 뭘 하고…….’
괜히 억울한 기분이 들어 뒤를 돌아보는 순간,
솨아아악……!!
“흡?!”
그녀는 자신의 몸을 뚫고 쏟아지는 검은 연기에 화들짝 놀라며 양 팔로 얼굴을 감쌌다.
오싹……!!
연기들이 몸을 관통하자 마치 오한이 든 것처럼 뼛속까지 시린 기분이 들었다.
“헉, 헉…….”
거친 숨을 토해내며 그녀는 황급히 자신을 뚫고 간 연기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앞을 바라봤다.
콰앙!!! 콰가가강……!!
그 순간 놀랍게도 연기의 형태가 서서히 굳어지더니 무구를 든 병사들이 되어 리자드맨들을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쿠웅-!
그중에서도 가장 선두에 서서 두터운 중갑옷을 입은 사령이 휘두르는 도끼는 한 방에 열댓 마리의 리자드맨들을 날려 버리고 있었다.
“무슨…….”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영혼 병사들을 바라보던 그녀는 그들의 앞에 서 있는 남궁을 바라보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도와주진 않을 거다. 알아서 따라와.”
자신이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는 그에게 민망한 듯 려진은 고개를 숙이고는 다리에 힘을 주었다.
부우우웅--!
아스의 도끼가 마치 낙엽을 쓸어버리듯 리자드맨들을 바다 아래로 날려 버리며, 그들은 대교를 건너기 시작했다.
* * *
드르르르륵……!!
쿠웅……!!
대교를 건너 영종도 인천공항 쪽으로 달린 일행은 컨테이너 건물이 세워진 폐기물처리공장에 도착했다.
“이, 이게…….”
단단하게 잠겨 있는 철문을 연 순간 려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모두 죽었군.”
남궁은 건물 안에 쓰러져 있는 시체들을 보며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예상했던 일이죠.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 보였던 시체들. 대부분 삼합회들 것이었잖아요.”
“기구들은?”
“아……!!”
남궁의 말에 려진은 황급히 주위를 살폈다.
그러더니 시체들이 몰려 있는 곳으로 다가가 아직 전원이 꺼지지 않고 돌아가는 커다란 기계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마약을 조제하는 조제기 주위에는 천쉰이 데리고 온 삼합회의 조직원들 대부분이 몰려 있었다.
“녀석들도 필사적이었나 봐요. 저거만큼은 지키려고 한 것 같아요.”
박효주는 쓰러져 있는 그들을 보며 말했다.
“……산주의 명령이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완수해야 한다. 어서 앰플을 줘. 지금 당장 약을 조합해야 해.”
려진이 다급히 외쳤다.
천쉰이 말했던 기술자들이 그래도 제조기의 모든 작동을 끝마친 듯, 남궁이 앰플을 건네자 그녀는 그것을 바로 제조기 안에 밀어 넣었다.
우우우웅…….
“하여간 나쁜 놈들이 더 쓸데없이 충성스럽다니까. 이런 건 너희가 본받아야겠다.”
“됐거든요.”
제조기의 엔진이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남궁이 말하자 박효주는 입술을 내밀며 쀼루퉁하게 대답했다.
“근데 세상 좋아졌네. 마약을 이런 식으로 기계로 뽑아내다니. 그렇죠?”
남궁은 그녀의 말에 피식 웃었다.
“걸리는 시간은?”
“……1시간 정도.”
“흐음. 알겠다. 너희 둘은 여길 지켜. 잠시 소강상태인 거 같으니 크게 위험하진 않을 거야.”
“저 사람하고 같이요? 지금 저한테 조폭이랑 같이 마약을 지키라고요?”
“응.”
“끄응…….”
박효주는 남궁의 말에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신. 분명 객실에서는 저 여자를 조용히 처리하겠다고 했을 텐데. 그런데 지금 보니 친분이 있는 것 같은데…… 우리를 속여 먹을 생각이라면…….”
“그런 거 아냐. 저 여자도 함께할 거다.”
“……뭐?”
그녀의 말을 끊으면서, 남궁은 오히려 박효주의 어깨를 잡아 려진에게 밀어 넣으며 말했다.
“부패 공무원이거든.”
“자, 잠깐!!”
“그러니 1시간 동안 잘 지켜라. 죽고 싶지 않으면 말이야.”
당황하는 박효주를 뒤로한 채 남궁은 공장의 출구를 향해 걸어갔다.
“당신은? 우릴 여기에 두고 1시간 동안 뭘 할 생각인데?”
“내가 오랜만에 바다에 왔거든.”
남궁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려진에게 말했다.
“낚시나 좀 하려고.”
“그게 무슨…….”
* * *
“다행히 시동은 걸리는군.”
남궁은 공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을왕리해수욕장에 정박 어 있는 어선들 중 한 척에 올라서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느 때였다면 조개구이와 술로 북적거릴 가게의 거리들은 마치 폐허처럼 조용했다.
두두두두두두…….
어선이 해안을 넘어 바다 안쪽으로 들어가자 남궁은 키를 잡으며 기억을 더듬었다.
‘고블린 로드가 성채를 짓는 것처럼 써펀트 역시 소환되고 난 뒤 자신의 둥지를 튼다.’
그리고 놈은 둥지가 완성되고 나면 그 안에 알을 낳는다.
그 말은 소환된 직후 이미 놈은 배 속에 알을 품고 있다는 뜻.
‘놈이 둥지를 트는 장소는 장봉도(長峯島).’
다행히 지금 그가 있던 을왕리에서 북쪽으로 그리 멀지 않는 섬이었다.
‘그 섬에 있는 작은 동굴인 해골 바위에 녀석은 알을 낳는다.’
물론 써펀트는 남궁에게 사냥되었고 놈이 이제 둥지를 틀 일은 없었다.
‘하지만 놈이 사라져도 한 가지 절대 규칙은 여전히 적용되지.’
두두두두두…….
남궁은 조금 더 배의 속력을 높였다.
‘지옥문이 닫히고 난 뒤 일어나는 몬스터 웨이브에서는 헤드를 주는 모든 마물들이 소환된다.’
그리고 알 속에 들어 있는 써펀트의 새끼 역시…….
“마물이지.”